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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140화 (140/178)
  • Chapter62. 슈퍼 히어로(3)

    아프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아픔이었다.

    아프다는 건 이해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입안에서 감도는 건 피 맛.

    숨은 거칠고 폐부를 타고 올라오는 열기는 뜨거웠다.

    아. 총을 맞았구나.

    그제야 무언가 와 닿는 기분이었다.

    [이 개자식이!!]

    날 선 목소리.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고쳐 쥐는 총신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맞추지 못한 거구나.

    이해를 하자 다음에 할 행동들이 순차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팍—!

    전광석화 같은 앞차기.

    총을 고쳐 쥐던 놈의 손목을 후려 찼다.

    총이 손아귀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런 맨몸 무술을 할 줄 알았던가?

    알 게 뭔가.

    지금은 이해보다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저 새끼 제압해!]

    총을 놓친 놈 하나.

    뒤에서 멀뚱멀뚱 보는 놈 하나.

    문가에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놈 하나.

    그리고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진우와 그의 어머니.

    눈을 깜빡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머리에 각인되었다.

    훅.

    숨을 뱉는 것과 동시에 뻗었던 다리가 지면을 찼다.

    [커어어억!!]

    팔극권인가.

    섬광과 같이 뻗어나간 정권에 테러범의 복부가 기형적으로 짓눌렸다.

    내장이라도 뱉을 것 같은 얼굴로 나동그라지는 건 원인에 따른 당연한 결과.

    ‘왼쪽에 하나. 뒤에 하나.’

    각인되었던 그림이 움직였다.

    제압해, 라는 말 대로 총은 사용하지 않은 채.

    말을 잘 들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내려앉은 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며 뛰었다.

    고개를 돌려 따라오는 테러범의 얼굴이 보였다.

    사람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니 놀란 것이다.

    놀랄 수밖에.

    진호 그 자신도 이런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 해 본 적 없으니까.

    쩌억.

    발 외측이 놈의 얼굴을 후려 찼다.

    관자놀이부터 전해지는 충격에 눈알이 흔들리고 다리가 풀렸다.

    손에 쥔 총은 막대기마냥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냥 쏴 버려!!]

    결국은.

    진호는 망설이지 않고 2층 계단 쪽 난간을 잡으며 뛰었다.

    팍. 팍. 팍.

    총알 세 발이 난간 벽에 박혔다.

    인질들을 고려해서라도 아래에 있어서는 안 된다.

    계단 벽을 엇갈려 차며 몸을 움직였다.

    성난 목소리와 총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시야에 두었던 셋 말고도 남은 이들이 더 있는 것이다.

    [그냥 죽여 버려! 필요 없어!]

    [개자식이 우리를 가지고 놀아!?]

    누가 누구를 가지고 놀았다는 건지.

    진호는 2층 플로어에 닿자마자 몸을 굴렸다.

    층 끝자락에서 보인 테러범의 사선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총성이 울리고 바닥에서 탄이 튀었다.

    만화에서 보던 ‘총구를 보고 총알을 피한다.’라는 모양새였다.

    기가 막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가능했다.

    기이할 정도의 차분함 역시 그걸 도왔고.

    탕. 탕. 탕.

    짧은 사격.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이를 벗어나는 진호의 속도가 빨랐다.

    바닥을 구르고 테이블 뒤로 몸을 던져서 사선을 비켜나갔다.

    거리는 좁혀지고 당황한 테러범의 사격은 점차 난잡하게 변해갔다.

    [죽어! 죽어!!!]

    전장에서는 심장을 뜨겁게 하되 머리는 차게 해야 한다. 좌우를 살피고 전황을 읽을 수 없으면 1군을 거느릴 자격이 안 되니까.

    테러범은 그런 면에서 자격 미달이었다.

    몸을 흔드는 난사는 얼핏 굉장해 보이나, 결국 커다란 도검에 휘둘리는 초보 무사일 따름이었다.

    [이익—!]

    난사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

    테이블을 넘어서 진호가 뛰어나갔다.

    황급히 총구를 올리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무기를 적에게 겨누지 않는다면 누가 그걸 난적이라 칭하겠는가.

    그저 질 좋은 검을 가진 허수아비일 뿐이다.

    진호는 손이 총신을 휘감아 아래로 찍어 눌렀다.

    다급히 힘을 주어 버티려 하지만 균형은 무너진 뒤.

    떨어지는 턱을 무릎으로 치고 미간에 주먹을 쑤셔 넣었다.

    비명도 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스윽—틱.

    하나가 끝났다고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

    진호가 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몸을 숙였다.

    총알이 스쳐서 벽에 틀어박혔다.

    나머지 놈들도 2층으로 올라온 것이다.

    수는 전부 셋.

    [쏴!! 벌집을 만들어 버려!!]

    [죽여!!]

    [죽어버려!!]

    마찬가지로 난사.

    하지만 숫자가 셋이면 사선을 읽어서 피하는 건 쉽지 않다. 모든 걸 읽는다 해도 인간의 몸이 가진 기동성의 한계는 명확하니까.

    그럼 화기에 맞설 화기가 필요하다.

    미끄러지듯 바닥을 구르며 쓰러진 테러범의 총을 손끝으로 긁어왔다.

    ‘쓸 줄 아는가?’

    군대조차 갔다 오지 않은 진호다.

    게임으로 접해 본 총기를 제대로 다룰 리 없다.

    철컥. 철컥.

    하지만 지금은 된다.

    누구인지 모를 전생.

    몇 이나 있는지 모를 전생들이 한꺼번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탄을 확인하고 장전을 한 뒤 단발로 바꿨다.

    타타타탕! 타탕! 탕!

    지겹도록 이어지는 총성.

    무한하게 쏠 것처럼 갈겨 대지만 총알은 제한되어 있고 무기를 든 사람도 체력이 있다.

    운동에서 호흡을 고르듯, 사격도 호흡이 필요하다.

    이어지던 총성이 뜸해지고 잠시의 정적이 왔다.

    그때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탕—!

    멍청하게 나와 있는 놈.

    정확하게 총을 노렸다.

    무기가 팍 튀자 제풀에 놀라서 고꾸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이마에 박아버리고 싶지만 그건 뒤처리가 어렵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테러범을 쏴 죽였다.

    박수만큼 비난도 많이 생길 일이다.

    [으아아아! 이 개자식이!!]

    총을 맞고 죽은 줄 알았는지 다른 놈이 분개했다.

    마구잡이로 총을 발포하지만 이미 진호는 기둥 뒤로 몸을 숨긴 뒤.

    쏟아지는 파편 속에서 차분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앞으로 두 걸음 옆으로 한 걸음.

    그러니까 위치는 이곳.

    [아악!!]

    정확하게 총신을 때렸다.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 고꾸라지는 모습이 괜히 같은 조직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

    [너, 너 대체 뭐하는 놈이야!? 특수부대냐!?]

    [영화배우]

    [개, 개소리 하지 마! 영화배우가 이런 짓을 어떻게 한단 말이야! 우릴 잡으려고 심어 둔 거지? 너 FBI냐? 어!?]

    [그건 감옥에서 심도깊이 생각해 봐]

    탕. 마지막 놈의 총까지 날려버렸다.

    깜짝 놀라서 무릎까지 꿇은 채 벌벌 떨었다.

    순교자라며 두려움 없다고 말 한 것 치고는 지독하게 겁 많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약에 절어있는 놈들이 순교가 뭔지나 알까.

    총을 회수하며 놈들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쳤다.

    이제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거기 서! 움직이면 이 새끼 머리통이 날아간다!!]

    아니었다.

    테러범의 리더. 그러니까 복부를 후려쳐서 제압했다 생각한 놈이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준우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머리에는 총을 겨누고.

    [고작 애를 인질로 잡는 거냐?]

    [움직이지 마!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만 해. 애새끼 머리통 날아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치졸하기 짝이 없군]

    [닥쳐! 우리의 성스러운 일을 방해하는 네놈이 나쁜 거다!]

    애초에 말로 어떻게 될 놈들이 아니다.

    약기운에 흥분으로 인한 이지 상실.

    설득은 고사하고 까딱하면 준우가 위험하다.

    “준우야. 침착해. 형이 구해 줄 테니까.”

    “으으으으······혀엉.”

    “준우, 엄마 구해야지. 용감해지자. 반드시 둘 다 무사히 나갈 수 있어.”

    [닥쳐! 떠들지 마! 한 마디만 더해도 이 새끼 머리통에 구멍이 날 거다!]

    [알았어. 내가졌다. 준우 대신에 날 인질로 잡는 건 어때? 그편이 너희가 원하는 관심도 더 받을 수 있을 거다]

    [흐. 흐흐흐흐. 미친 새끼. 이제 와서 그런 말에 속을 줄 아냐? 네놈이 어떤 특수부대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꼬맹이 머리가 터지는 것보다 빨리 움직일 수는 없어]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지?]

    거리는 세 걸음 반.

    뛰어들기에는 멀었다.

    조금 더 여유가 필요했다.

    [네놈 총으로 머리를 쏴. 잘난 영웅 질 할 정도면 그런 각오는 돼 있겠지?]

    [굳이 누가 죽을 필요는 없어. 아직 누구도 안 죽었다고. 괜한 짓 하지 말고 말로 해결하자]

    [흐. 흐흐. 그럴 것 같았어. 네놈들은 항상 그런 식이지. 말로 우리를 회유해서 온갖 것들로 땅을 오염시켜. 우리 농장도 그런 식으로 망한 거야. 역시 누군가 죽어야 이해를 하게 돼]

    논리적 비약이지만 약 먹은 놈에게 그런 건 의미 없다.

    실실 웃던 놈이 갑자기 준우를 앞으로 밀었다.

    진호는 그 모습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준우야!!”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테러범.

    밀려나오는 준우와 총구에서 튀는 불꽃까지 전부 망막에 잡혔다.

    피한다, 대응 사격한다.

    선택지는 올라왔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퍽—!

    옆으로 준우를 밀치는 소리와 총알이 몸에 맞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이번에는 앞선 것처럼 스친 것이 아니다.

    어깨와 가슴 사이 즈음.

    고통이 번지고 머리에서 불꽃이 튀었다.

    [크, 크하하하!]

    웃지 마라.

    진호가 무너지던 몸을 억지로 세웠다.

    총을 맞은 쪽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고통이 전신을 유린했지만 그것은 겪을 만큼 겪은 일.

    사지에서 올라온 전사에게 고통은 숨만큼 익숙했다.

    [이—!!]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차이를 낳았다.

    세 걸음 반.

    이미 따라잡은 상태였다.

    총을 맞은 왼 손은 버리고 오른 손 하나로 총을 잡아 앞으로 밀었다.

    이것은 상산에 사는 한 무장의 창술.

    형태가 다르나 한들 정수는 오롯이 녹아 있었다.

    [끄어어어억!!]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다.

    하복부를 총구가 정확하게 강타했다.

    #

    상황은 정리 됐다.

    테러범들은 모조리 쓰러졌고 곧 이어 출동한 경찰에게 인계됐다.

    대거 출동했던 스와트팀만 붕 떠 버렸다.

    대규모 총격전을 각오하고 왔는데 이미 다 제압되어 줄줄이 실려 나오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찌 된 상황이냐고 묻는 말에 하나같이 이런 답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저 사람이 때려잡았어요! 닌자 아닐까요!?]

    [브루스 리의 환생이 분명합니다!]

    [슈퍼 히어로에요! 사람이 그럴 리 없잖아요!]

    단체로 헛것을 봤나 싶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테러범들의 상태 역시 타격으로 인한 실신이었으니 ‘닌자’, ‘브루스 리’등이 아귀에는 딱 맞았다.

    어이없음에 혀만 차다가 돌아갔다.

    “으아아아앙!! 죽지 마!”

    그리고 테러범을 제외한 피해자 둘.

    진호와 준우 어머니는 나란히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둘 다 총상에 출혈이 꽤 있는 터라 빠른 처치가 필요했다.

    “안 죽어. 나도 네 어머니도. 뚝. 그만 울자.”

    “흑. 흐윽. 하지만 총 맞았잖아. 총 맞으면 죽는다고 그랬는 걸······”

    “총도 살살 맞으면 괜찮아. 봐봐. 난 이렇게 멀쩡하잖아. 어머님도 그럴 거야.”

    진호가 억지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피로감이 엄습했지만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어.”

    분명 그 생각에는 문제가 없었다.

    총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피명상은 피한 상황.

    주먹 하나 뒤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근데 어째서.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른한 걸까.

    몸에서 힘이란 힘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형!! 형!!”

    다급한 준우의 외침에도 답을 하지 못한 채.

    진호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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