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38화 (138/178)

Chapter62. 슈퍼 히어로(1)

상황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진호의 팬덤에서 적극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나서면서 반대 여론이 힘을 쓰지 못했다.

‘우리 오빠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고 팬들이 발 벗고 나서는데 다른 사람들이 욕하기는 뭐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화살을 돌릴 대상이 있었다.

박준호 말이다.

은서에 대한 인터뷰를 진호가 정면에서 반박하고 나서니 진실공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진실이야 서로 말뿐이니 알 수 없지만 화력 면에서는 진호 쪽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박준호는 순식간에 쓰레기로 전락했다.

애인 있는 여자한테 집적거리다가 차인 놈이 된 것이다.

“깔깔깔. 그 놈 얼굴을 봐야 하는데.”

“무섭네, 우리 은서. 사랑이 변하게 한 걸까?”

“마음 같아서는 불러다가 대질심문 시키고 싶은데, 특별히 참아 주는 거라고.”

은서도 한 숨 돌렸다.

진호가 나서서 상황을 불식시켜 준 덕분에 여론도 좋은 쪽으로 돌아섰다.

비밀 연애를 숨긴 나쁜 년에서 지조 지킨 좋은 여자로.

이래저래 팬덤의 손해는 있었지만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대표님도 이제 뭐라고 안 하지?”

“볼 때 마다 한 마디씩 하긴 하는데, 많이 누그러진 거 같아. 열애 공개 이후로 평가가 더 올라갔다나 뭐라나.”

“참 속물이다, 대표님도.”

“그래도 덕분에 난 편해졌지. 이젠 마음 놓고 오빠랑 데이트 할 수도 있고.”

가장 좋은 점이라면 아마 이것일까.

은서가 실실 웃었다.

“아주 살판 나셨네. 아예 미국으로 따라가지 그랬냐?”

“헤헤. 그러고는 싶지만 나도 촬영 있잖아. 오빠 돌아 올 때 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어야지.”

“장거리 연애 힘들다고 징징 거릴 때는 언제고.”

“이젠 괜찮아.”

마음을 확인했거든.

은서는 뒷말을 삼켰다.

이건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

미국으로 돌아온 진호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운동, 액션 연습, 대본 리딩.

반복적인 생활에 실전 촬영까지 합쳐져서 꽤나 빡빡한 일정이었다.

“꺄아악! 진호 오빠! 팬이에요!”

“이쪽 한 번 봐주세요!!”

그럴 때 마다 힘을 주는 건 역시 팬들이었다.

드라마 특성 상 야외 촬영이 많았고, 그때마다 한인 팬들이 몰려들었다.

정보를 어디서 얻고 오는 건지 매번 인산인해였다.

플랜카드와 환호는 당연한 일.

인삼이나 전복 등 몸보신 하라는 의미로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게 한국의 보양식인가? 맛있어 보이는군]

촬영하며 친해진 얀센이 살갑게 말을 붙였다.

러시아 태생으로 진호와 마찬가지로 제3국 출신 히어로 배역을 맡았다.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얼굴에 비해 성격은 차분했다.

[와서 같이 먹지 그래. 양은 넉넉하게 있어]

[오. 그래도 되는 건가? 괜히 먹었다가 네 팬들에게 한 소리 듣고 싶진 않아]

[하하. 내 팬이라면 되레 좋아 할 거다]

자리를 내어주고 한 상 거하게 차렸다.

촬영 때마다 동원하는 트레일러 안에는 조리를 위한 시설도 구비되어 있었다.

찌고, 굽고, 볶고.

한식이 필요 할 때면 그때그때 재료를 사서 요리했다.

[음. 굿. 스테이크와는 또 다른 맛이야]

[보양으로는 최고지. 남자 건강에 으뜸이라고]

[하하. 그런 거라면 난 굳이 필요 없는데]

[에헤이. 그렇게 말하면 나도 안 먹어도 된다고. 팬들이 보내 준 거니까 정성 생각해서 먹는 거지]

이럴 때 유치한 것이 남자다.

서로 확인 할 길 없는 힘을 자랑하며 먹네 마네 유치하게 싸웠다.

[그러고 보니, 진호. 니어슨과는 이제 화해 한 거야?]

[화해? 딱히. 그냥 영화 때문에 서로 못 본 척 하는 것뿐이지. 옆에서 보기에 티가 많이 나?]

[조금은. 니어슨이 널 볼 때마다 움찔 거리는 게 보인다고.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러는 거야?]

[남자대 남자로 가볍게 만져 준 거지]

으쓱하는 진호에 얀센이 가볍게 웃었다.

그도 잰 채 하는 니어슨이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작은 체구로 니어슨을 주눅들 게 하더니. 역시 이 코리안 슈퍼 푸드가 대단한 건가?]

[내가 말했잖아. 남자한테 으뜸이라고]

[남는 거 더 있어?]

[아까는 안 먹는다면서]

[진호 같은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다면 조금은 창피해도 참을 수 있지]

얀센이 낄낄 거리며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촬영장에서 확인한 진호의 에너지는 체구가 무색할 만큼 대단했다.

존경을 보내 줄 만큼.

[먹어서 되는 거라면 얼마든지. 배터지게 먹고 같이 슈퍼 히어로가 되자고]

[오. 코리아 만만세]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냐]

트레일러 조리실이 다시 바빠졌다.

#

이 날은 유독 인파가 많이 몰렸다.

도로를 통제하고 대규모 액션씬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배우들도 주연급으로 대부분 참석한 씬.

구경 온 사람들의 얼굴이 설렘으로 물들어 있었다.

[스탠바이 하세요. 곧 슛 들어갑니다]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로를 통제하고 촬영에 들어간 거라서 시간에 민감했다.

한 번 삐끗하면 그때마다 손해가 쭉쭉 쌓이는 것이다.

[준비 끝났습니까?]

[이쪽은 다 됐습니다]

[오케이. 촬영 들어갑니다. 차량 움직이고 신호에 맞춰서 터뜨리세요]

폭발 씬도 함께 찍는다.

CG로 대부분의 것을 처리하는 할리우드라도 실제 터뜨리는 것의 맛은 못 따라간다.

이번 씬에서는 차량 몇 대를 연달아 폭발시키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한 번에 갑시다]

[긴장은 저보다 감독님이 더 하신 거 같은데요?]

[하하. 이거 한 번에 통과 못하면 분명 한 소리 들을 겁니다. 귀찮은 건 피하고 싶군요]

[오케이. 자본을 위해서]

[자본과 영화를 위해서라고 해 두죠]

적당한 농담으로 긴장을 풀었다.

이내, 감독의 슛 사인이 떨어지고 배우와 스텝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위험해! 여기를 벗어나야 해!]

니어슨의 다급한 말을 기준으로 준비 해 둔 차량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쾅. 쾅. 우르릉.

사용한 폭발물의 양이 적지 않은 듯 굉음이 들려왔다.

땅이 흔들리고 파편이 휘날렸다.

[폭발이다! 범위에서 벗어나!]

진호도 대사를 이어갔다.

뿌옇게 피어 오른 연기 사이로 뛰어가 동료를 감쌌다.

다급한 표정과 격렬한 액션이 빛을 발했다.

콰콰쾅.

그리고 마무리 폭발.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불꽃이 화면 안에 가득 담겼다.

스텝과 배우. 연출이 한 번에 어우러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었다.

부르르릉—!

그 순간이었다.

감독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오기 전.

통제 된 도로 쪽에서 오토바이를 탄 무리가 한 번에 쏟아져서 촬영장을 가로질렀다.

스텝들과 배우들이 깜짝 놀라 좌우로 흩어졌다.

[뭐야!? 저놈들 누구야!?]

[도로 통제 한 거 아니었어?]

[경찰을 불러! 뭐하는 거야!]

다들 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정작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이 오토바이 무리는 촬영장을 한 바퀴 돌고 왔던 길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런 개 불알 같은 새끼들아!!]

감독인 헨리 놀슨의 악 바친 외침이 그 뒤를 따랐다.

#

촬영이 전면 스톱되고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진호는 촬영장에 난입한 이들에 대한 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환경단체라고?”

“어. 그린 헬인가? 요즘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미친놈들이라고 하더라.”

“아니 뭔 환경단체가 그러고 다녀?”

“과격파지.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곳이면 찾아가서 훼방 놓고 파괴하고 그래.”

“그러면서 자기들은 오토바이를 탄다고?”

“애초에 과격파에 논리가 있겠니?”

진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환경보호론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촬영장을 훼방 놓다니.

대체 어디가 보호의 개념이란 말인가.

“꽤 악질인가 봐. 현지에서도 말들이 많아.”

“유명한 놈들이야?”

“전적이 꽤 있어. 비료 공장을 테러하고 발전소에 침투하다가 잡힌 경력도 있더라.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현지에서도 눈여겨보는 모양이야.”

몇 자만 검색해도 기사가 주르륵 나왔다.

처음 취지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마구잡이 테러 단체에 불과했다.

기사에서도 옹호하는 글은 없고 욕만 가득했다.

“아니, 근데 왜 우리 촬영장이야. 많고 많은 게 공장이고 매립장이고 그런데.”

“유명하잖아. 이놈들 행동 방식의 첫 번째 원칙이 이슈야. 너처럼 유명한 사람을 건드려야 많은 이들이 알아채거든. 극심한 관심종자라고 보면 되지.”

“우리나라의 관심종자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다르지. 이거 봐봐.”

송학이 핸드폰을 들어 웹사이트를 보여 주었다.

대문에 떡하니 ‘그린 헬’이라는 글이 박혀 있었다.

“이놈들 홈페이지도 있어. 오늘 있었던 일을 아주 자랑스럽게 올려놨더라.”

“와. 고소 안 돼? 대놓고 촬영을 방해했잖아.”

“드림에서 알아서 고소를 하겠지. 근데 미친놈들이라 제대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땅이 넓으니 미친놈이 많은 걸까.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 해 본 일에 진호는 황당함을 지울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보호조치 끝날 때 까지 촬영이 미뤄진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래.”

“아 진짜. 미친놈들 때문에 이게 뭔.”

“이게 할리우든가 싶다.”

안 좋은 쪽으로 새로운 문물을 경험 중이었다.

#

경찰이 와서 수사를 하고 고소를 어떻게 진행하고.

촬영을 방해한 그린 헬이라는 집단과는 꽤 판 크게 일이 진행되었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런 집단에 대한 반감이 많았던 터라 여론도 극적으로 들끓었다.

그린 헬을 성토하고 온갖 욕설로 홈페이지를 뒤덮었다.

“촬영 재개된다는 거지?”

“어. 그쪽 홈페이지도 닫고 완전 잠수 상태로 들어갔다. 미친놈들도 미국 전역에서 욕먹는 건 감당이 안 됐나 보다.”

“그렇게 환경을 생각 할 거면 집에서 나무나 심을 것이지. 쓸데없는 일 때문에 시간만 버렸잖아. 그때 장면 잘 나왔었는데.”

“아쉬워도 어쩌겠냐.”

진호가 툴툴 거리며 외투를 챙겼다.

폭발 씬은 주의 허가도 필요 한 터라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오늘은 별도의 촬영이 잡혀 있었다.

“여긴 또 왜 이렇게 어수선해?”

촬영 장소에 도착하자 분주히 움직이는 스텝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척 봐도 촬영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

“있어 봐. 내가 알아보고 올게.”

송학이 스텝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몇 마디 주고받고는 금세 돌아왔다.

“섭외한 장소에 그놈들이 무슨 경고장 같은 걸 남겼다고 해. 아무래도 오늘 촬영도 좀 딜레이 될 거 같다.”

“그린 헬? 그놈들이 또 나왔다고?”

“어. 지금 담당자하고 얘기하는 중인가 봐. 일단 들어가서 쉬고 있을래?”

“아, 짜증나.”

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외적인 일로 촬영이 방해받는 건 배우로서 꽤 짜증나는 일이었다.

“아니면 가서 햄버거라도 먹고 있을래? 다른 배우들하고 스텝들은 단체로 이동했데.”

“응? 어디로?”

“저기. 길 건너편 도날드 아저씨네 햄버거.”

길 건너편 x도널드의 간판이 눈에 쏙 들어왔다.

패스트푸드 사랑은 한국보다 미국이 더 강한걸까.

창문 너머로 다닥다닥 앉아 있는 스텝들이 보였다.

“그래, 갑시다. 가서 햄버거로 배나 채우자고.”

햄버거라면 진호도 좋아한다.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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