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37화 (137/178)
  • Chapter61. 진호가 없을 때(2)

    은서의 회사는 공식적으로 의견을 발표했다.

    은서와 박준호는 그냥 친구 사이일 뿐, 그날도 밥을 같이 먹은 것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완벽하게 진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소요는 줄어들었다.

    “진짜 내가 그 인간 때문에······아호.”

    “그나마 회사에서 무마해 준 덕에 많이 번지지는 않았네. 대표님이 많이 신경 써 준 거야.”

    “어휴. 그건 언니가 진호 오빠 얘기했을 때의 얼굴을 제대로 봤어야 해. 대표님 분명 오빠 엮어서 뭔가 하려고 할 걸?”

    은서가 어깨를 감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표는 꽤나 사람 좋은 성격을 지녔지만 돈 문제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진호 씨랑은 연락해 봤어?”

    “촬영 중이라서 연락만 남겨 놨지. 확인하면 전화 할 거야.”

    “불안해?”

    “······좀.”

    은서가 어눌하게 답했다.

    한 순간의 사고에 불과했지만 이역만리에서 일하는 진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가늠이 안 됐다.

    안 그래도 장거리 연애로 불안하던 차였으니까.

    “걱정 마. 진호 씨가 생각이 깊잖아. 고작 소문 몇 개로 흔들리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괜히 휘둘리지 말고 당당하게 대해.”

    “푸후. 언니 말대로 하는 게 최선이지.”

    “역시 내가 최고지?”

    “대표님한테 오빠 이름만 안 말했으면.”

    언제까지 감추고 갈 일은 아니라 후련하긴 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밝혀지게 될 일.

    그때가 되면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은서는 마냥 낙관적일 수가 없었다.

    #

    “왜 전화가 안 올까.”

    은서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벌써 오고도 남았어야 할 연락이 안 온 탓이다.

    미국 시차 탓이다, 드라마 스케줄 탓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 봤지만 그래도 속이 편하지 않았다.

    [시간 있으면 커피라도 한 잔 할래?]

    오라는 연락 대신에 쓸데없는 연락만 오고.

    대체 어디에서 연락처를 얻었는지 박준호가 계속해서 연락을 해 왔다.

    속 편이 무시하고 싶지만 그때마다 ‘서로 대화도 못 하는 사이야?’라는 말로 속을 뒤집었다.

    그렇다고 하면 아주 못된 년이 되는 기분이라 마냥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너랑 연락이 닿아서 얘기 할 수 있어서 기뻐. 언제 같이 밥이라도 먹자. 술이면 더 좋고]

    [오빠, 제발 적당히 하자. 난 이제 오빠한테 아무 감정 없다고. 그만 해 줘]

    [그건 만나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잖아. 예전에 우리가 얼마나 좋았는데. 그 감정이 그렇게 사라 질 수 있어?]

    이 부분에서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벽창호인지 집착남인지 도통 말귀를 들어먹질 않았다.

    “야, 은서야!”

    “응?”

    그때, 소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손에는 뜨거운 감자라도 되는 냥 핸드폰을 들고.

    “이 새끼 완전 양아치였어!”

    “뭐가? 누구 말하는 건데?”

    “누구긴 누구야! 박준호지! 이거 봐!”

    핸드폰 화면에는 기사가 떠 있었다.

    박서준 왈 ‘오래전에 사귀었다가 헤어진 친구에요. 지금 다시 좋은 감정으로 만나보려 합니다.’ 라는 속보 아닌 속보였다.

    “이 인간 미쳤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작정했다고. 너 이번에 들어가는 드라마 경쟁작 주연이 누구인지 아냐?”

    “······설마.”

    “그래, 박준호야. 너 잡고 이슈몰이로 실검 1위 찍고 있다고.”

    은서가 황급히 내던졌던 폰을 가져왔다.

    소윤의 말대로 박준호와 은서가 실검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데? 스캔들 나면 자기도 타격인거 모르나?”

    “아니지. 그 짝은 복귀 작이잖아. 네가 훨씬 더 인기가 많고. 스캔들로 털리는 팬보다 이슈로 얻는 인기가 더 많다 이거야.”

    “그럼 뭐야. 일부러 나한테 작업 걸었다는 거야?”

    “반응 보고 뒤늦게 작업치는 걸 수도 있고.”

    은서가 입술을 꽉 깨물고 주고받던 카톡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박준호! 너 이거 뉴스 뭐야!?]

    [그냥 솔직하게 인터뷰 한 거야]

    [솔직? 장난쳐? 우리가 뭘 또 만나? 그냥 우연하게 밥 먹은 거잖아!]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해서 답을 한 것 뿐인데. 아니라면 실망이네]

    [하. 양아치네. 오빠,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야?]

    [성공을 하려면 뭐라도 해야지.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뭘······! 됐어. 오빠, 이 발언. 내가 진지하게 고소로 맞서 줄 테니까, 각오해]

    [하하. 얼마든지. 고소 사유가 될는지는 모르겠다만]

    은서는 폰을 다시 던질 뻔 했다.

    박준호의 말마따나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고소에 성공 할 확률은 적다.

    그저 그때의 밥 한 끼가 모든 걸 망쳤을 뿐이다.

    우우웅.

    “어. 은서야, 너 전화.”

    “아 씨. 머리아파.”

    폰에는 ‘내 님 진호’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

    무슨 말을 할까,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은서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고민했다.

    어느 것도 쉽지 않았기에 시간만 더 길어졌다.

    “괜찮아?”

    그때,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진호의 첫 마디가 이랬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반가웠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응. 오빠, 기사랑 다 본 거야?”

    “방금. 아주 작정하고 인터뷰를 했던데. 회사에서 혼나거나 그러진 않았어?”

    “대표님하고 면담을 했어. 오빠랑 사귀고 있는 것도 들키고. 근데, 그거 말고. 오빠 나한테 묻고 싶은 거 없어?”

    그래도 마음이 불안한건 어쩔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너랑 박준호라는 사람하고 만난다는 내용?”

    “으, 응. 신경 쓰이거나 그러지 않았어?”

    “신경 쓰이지.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이겠냐.”

    “그래?”

    “근데, 그렇다고 너한테 뭐라고 하면 넌 얼마나 힘들겠냐. 원해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니라고 확신하는 거야?”

    “믿는 거지. 내가 본 은서라는 여자는 이런 일로 사람 뒤를 칠 성격이 아니거든. 나한테 마음이 떠나면 차라리 면전에서 말 할 성격이야. 그러니까 내가 본 너라는 사람을 믿는 게 내 최선이야.”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보는 것이 참 나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답을 얻는 것이 너무 기쁘다.

    은서는 핸드폰 너머로 보이지 않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응. 오빠가 사람 하나는 잘 보지. 준호 오빠는 세미랑 루카 밥 사주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거였어.”

    “애들 챙겨주고 있었구나. 고생했네.”

    “진짜, 난감해서 죽을 뻔 했다고. 자꾸 치근대기만 하고. 이번에도 내 드라마 경쟁 작이라고 물고 늘어지는 거잖아.”

    “인터뷰? 제대로 어그로 끌었더라.”

    “그러니까. 나도 답답해서 죽을 거 같아.”

    마음이 놓이자 칭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약았네. 이슈몰이를 해도 타격이 적으니까, 마음대로 써먹자 이거네.”

    “난 아니라고 계속 얘기를 해도 대중은 들어먹지를 않으니까. 믿지도 않고. 괜히 드라마 팀에게 피해만 주는 거 같아서 미안하기만 하네.”

    “그럼, 아예 더 큰 걸로 덮을까?”

    “응?”

    진호가 잠시 틈을 주고 답했다.

    은서의 눈이 동그랗게 벌어지는 그런 답이었다.

    “우리 연애. 공개하자.”

    #

    당연히 반대했다.

    최현석도 반대하고 송학도 반대하고 은서와 나머지 줄줄이 사탕들도 전부 반대했다.

    애초에 연예인의 공개 연애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연애 감정을 품고 있던 팬들이 떨어져 나가고 광고나 배역에 대한 폭도 줄어든다.

    특히, 은서와 진호는 모두 드라마 공개를 앞두고 있는 상황.

    이 마당에 공개 연애를 발표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은 처사였다.

    “그래도 하겠어요. 어차피 할리우드는 공개 연애 같은 거에 무덤덤하기도 하고. 이쪽 이슈에 확실하게 답하기 위해서는 이정도 무게감은 있어야죠.”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너야 그렇다고 쳐도 은서는 어쩌냐. 공개 연애 발표하면 팬들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라고.”

    “알아요. 근데 은서도 이제 아이돌 아니잖아요. 여자 배우로 자리를 잡고 있잖아요. 뜨내기 팬 좀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아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서?

    한국, 블루아이 사무실에서.

    “미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와서 하는 소리가 이런 거라니. 아이구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복이죠, 복. 그리고 어차피 비밀 연애는 평생 안 가요. 언젠가 들킬 거 지금 공개한다고 생각하죠.”

    “넌 속 편해서 좋겠다.”

    “속은 안 편해요. 솔직히 박 뭐시긴가 하는 놈 하는 짓을 보면 찾아가서 죽빵 날리고 싶은 걸 참고 있어요.”

    진호가 차분하게 격한 말을 했다.

    은서와의 통화에서야 최대한 그녀를 배려하냐고 참았을 뿐 그라고 속이 편할 리 없다.

    알고 싶지 않았던 전 남친까지 알게 된 거니까.

    “하여튼 전 마음 정했으니까, 이번에는 대표님이 양보해 주세요.”

    “어휴. 내가 널 무슨 수로 이기겠냐.”

    “발표는 제가 직접 하는 편이 낫겠죠?”

    “그래.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라. 루머에 희생당하는 연인을 위로하는 멋진 남자로. 잘 포장해서 가자고.”

    진호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딱 원하는 방향이었다.

    #

    박준호는 촬영장 분위기를 만끽했다.

    연일 실검에 오르는 터라 다들 기대감이 충만해 있었다.

    사실이 어떻든 이슈몰이는 확실하게 한 거니까.

    “후. 오늘 촬영도 깔끔하게 가자고.”

    “저기, 준호 형. 지금 방송하고 있는 거 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뭔 방송? 곧 슛 들어가잖아.”

    “아, 그래도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나이 어린 매니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슛 들어가기 직전인데 뭘 보라는 걸까.

    귀찮은 듯 눈알만 돌려서 화면을 봤다.

    “······은서? 그리고 저건 진호잖아?”

    “네. 지금 실검에 막 올라오고 있어요.”

    “뭔데? 무슨 내용인데 저 둘이 같이 떠?”

    “열애 공개래요.”

    “여, 열애라고? 저 둘이?”

    박준호가 자세까지 바꾸고 다시 폰을 살폈다.

    이미 소식이 쫙 퍼졌는지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실검은 이미 두 사람 이름으로 잠식 당한지 오래.

    전날까지만 해도 따끈따끈하던 드라마 제목은 자취를 감추었다.

    [남자의 용기. 루머에 휘둘리는 연인을 위해서 진호가 나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첫 드라마부터······]

    [배우 홍 진호, 공개적으로 연인을 지지. 어째서 박준호가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모르겠다, 발언]

    [충격! 대배우 홍진호의 연인. 향간에 퍼지는 루머를 잠식시키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발언하다]

    굵직한 언론들 모두 두 사람 관계에 집중했다.

    박준호의 인터뷰로 퍼진 이야기들이 루머로 확정되고, 진호는 이를 막기 위해 나선 백기사로 포장되었다.

    박준호와 진호.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산과 모래알 정도의 차이가 있다.

    [박준호, 그 인간 뜨기 위해서 그런 거야?]

    [치사하네.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홍 진호가 대인배네. 대놓고 공개를 하고]

    [멋지잖아. 솔직히 공개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선남선녀니까 잘 만나겠지]

    커뮤니티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박준호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준호 씨! 감독님이 급하게 보자고 하십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스텝의 목소리도.

    박준호가 마른 침을 삼키며 폰을 내려놓았다.

    조금 전까지 들떠 있던 마음은 차게 식은 지 오래.

    “이게 아닌데······”

    망연자실한 혼잣말이 속마음을 대변했을 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