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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134화 (134/178)

Chapter60. 차별 앞에서(2)

프로모션 행사는 꽤 많은 반향을 낳았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보인 니어슨의 행동을 배역이라고 냅다 믿어주지 않았다.

‘촬영에 뭔가 트러블이 있다.’라는 냄새를 맡아서 이래저래 파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좀 자중하라고]

[시끄러워, 닐. 난 톰 니어슨이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고]

[이런 벽창호 같으니]

이건 당연히 배우 입장에서는 안 좋은 흐름이었다.

니어슨의 소속사와 매니저 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그를 달랬다.

잘 지내보라고, 발언을 신중하게 하라고.

하지만 니어슨은 콧방귀만 뀔 뿐 그런 말은 귓등으로 흘렸다.

[어차피 아시아 원숭이들 따위는 돈으로 배역을 땄을 뿐이라고. 현장에서 실력으로 콧대를 꺾어주면 그만이야. 그렇게 하면 지금 떠들고 있는 쥐새끼들도 입을 다물겠지]

[니어슨. 진호는 어중간한 배우가 아니야. 그의 연기라면 너도 봤잖아. 굳이 각 세우고 싸울 상대가 아니라고]

[집어치워, 닐. 팔 다리도 짧은 원숭이들이 연기에 대해서 뭘 안다고 설치는 건데? 머저리들 앞에서 내가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겠어]

워낙 어릴 때부터 성공한 인물이라 그런지 고집이 대단했다.

매니저인 닐은 몇 번을 더 설득하다, 포기했다.

‘될 되로 되라지.’

할 만큼은 했으니까.

#

진호는 한국과 미국을 계속해서 오고 갔다.

행사만이 아니라 배역을 위한 준비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캐릭터는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외계 종족의 슈퍼 히어로.

기본적으로 얼굴에 CG가 들어가고 특수 분장과 복장까지 착용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전부 포함해서 계속 미국을 오간 것이다.

“하나 더! 하나만 더 합시다!”

그리고 이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몸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전용 짐을 통해서 운동을 하고 미국으로 갈 때는 트레이너를 대동해서 드림의 시설을 사용했다.

“끄으응······!”

“오케이! 하나만 더!”

“아까부터 하나만 더라고 하시는 거 같은데요?”

“아직 정신이 멀쩡하네요. 좋습니다, 하나 더!”

체중을 늘리고 전체적인 근육량을 상승시켰다.

하루 식사량이 평소의 배로 늘어 먹다가 지치는 일도 허다했다.

“으아아. 저러다가 다치는 거 아니에요?”

짬 내어 찾아 온 은서가 발을 동동 굴렀다.

무거운 원판이 다닥다닥 달린 벤치 아래에서 부들거리는 진호가 위태로워 보였다.

“전문가가 붙어 있으니까 걱정 마.”

“그래도요. 저거 엄청 무거워 보이는데. 하나에 몇 kg씩 하지 않아요?”

“원판 하나에 20kg. 지금 드는 게 봉 포함해서 100kg정도 되네. 진호 체중 생각하면 괜찮은 수준이야.”

“세상에. 그렇게 무겁게 들어요?”

전문적으로 몸 쓰는 배우들은 그보다 더 무겁게 들지만 진호는 경우가 달랐다.

일단 체격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평소 체중이 75kg을 간신히 넘는 남자가 100kg을 치는 거면 훌륭했다.

“그래도 진호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 둔 덕분에 무리 없이 따라올 수 있는 거지. 근력은 좀 떨어져도 근지구력하고 심폐 지구력은 엄청 좋더라.”

“하긴. 오빠가 틈 날 때면 등산을 하곤 해요.”

“나도 따라가 봐서 알지. 아주 날다람쥐가 따로 없어.”

“아, 끝났다.”

송학과 은서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틈에 운동이 끝났다.

진호가 지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오빠, 이거 마셔.”

“응? 어, 은서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운동 많이 힘들지?”

“끄응. 아니라고 말 하고 싶은데 그러긴 힘들다. 평소 치던 중량이 아니라서 그런지 죽겠어.”

“내가 마사지라도 해 줄까?”

“고맙지만 그것도 뒤에 다 스케줄이 있어서. 괜히 하면 트레이너분이 화 낼 거야.”

전문 마사지사도 준비되어 있다.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잘 풀어주는 것도 운동의 방법.

관리는 타이트하게 굴러가는 중이다.

“이렇게 옆에서 보기만 하는 것도 힘들다. 저번에 액션 씬 찍을 때는 이렇게 힘들게 안 했잖아.”

“그때는 차량 씬만 집중하면 됐으니까. 이번에는 회당 한 두 번은 몸 쓰는 씬이 있거든. 합 맞추는 걸 제외하더라도 운동 능력이 돼야 소화가 돼.”

“그러다가 다치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안전장치 다 돼 있어. 그리고 내가 액션에는 또 일가견이 있잖아. 궁금하면 세미한테 물어보라고.”

“이 와중에 자랑은.”

은서가 진호의 가슴팍을 찰싹 찰싹 두드렸다.

체중이 늘고 근육이 붙어서 그런지 손맛이 전과는 또 달랐다.

볼이 살짝 발그레해졌다.

“오빠. 촬영 다 끝나고 나면 살 다시 뺄 거야?”

“응? 아직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왜?”

“아니, 그냥. 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근육 붙은 것도 좋다 싶어서. 헤헤.”

“이, 엉큼한 아가씨를 봤나.”

진호가 은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때마다 박장대소를 하며 눈물을 쏙 뺐다.

“아주 신혼집 차리시지?”

송학이 들어오기 전 까지.

“이럴 땐 눈치 있게 좀 빠져주지.”

“야, 바빠. 압축해서 애정행각 몰아서 하고 준비해라. 2시까지 미국으로 출발해야 해. 내일 이 시간에 그쪽 세트에서 연습 들어가기로 했어.”

“그게 내일이었나? 그럼 그 인간도 오지?”

“어. 니어슨도 같은 시간에 모이기로 했다.”

기본 액션 연습과 전체 합에 대한 조율이 진행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는 주연 배우인 니어슨이 포함되어 있다.

“니어슨이 그 사람이지? 오빠한테 개소리 한 놈.”

“어. 정확하게 표현했네. 아주 개잡놈이야.”

“흥. 자기가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다고 그딴 소리를 한데? 가서 아주 혼을 내 줘.”

“걱정 마. 각오는 단단히 하고 있으니까.”

진호가 이를 악 다물었다.

예전 우상이라고 너그럽게 대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거칠게 나오면 그 배로 갚아 줄 생각이었다.

“그럼 가기 전에 밀린 거 몰아서 하자. 송학 오빠는 나가 있어요.”

“······진심?”

“아, 빨리요!”

송학이 도망치듯 짐을 벗어났다.

#

진호는 쉴 틈도 없이 미국으로 이동했다.

기내에서 잠을 보충하고 호텔에서 겨우 시차적응을 완료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일정에 몸은 꽤 피곤했지만 열의는 여전했다.

“벌서 다 모여 있나 보네.”

고지된 장소로 이동하니 스텝들이 여럿 보였다.

촬영 스텝은 아니고 액션을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시범 조의 느낌으로 합을 맞추는 이들도 더러 보였다.

[왔군요. 비행은 괜찮았습니까?]

액션을 총괄하는 액션감독, 바이슨이었다.

전직 권투선수 출신으로 지금도 몸이 단단했다.

[제가 늦진 않았나, 모르겠군요]

[하하. 시간 맞춰서 오셨습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1체육관에서 보도록 하죠]

[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군소리 할 시간은 없었다.

곧바로 짐을 옮기고 옷을 갈아입었다.

몸에 딱 붙는 쫄쫄이라 어색했지만 이게 다 근육을 보완하는 재질로 된 옷이었다.

[볼 품 없군, 동양인]

[······니어슨]

자리를 옮기는 길에서 니어슨을 마주쳤다.

그 역시 진호와 같은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체형이 다르다 보니 느낌도 상이했다.

진호가 단단한 나무라면 그는 커다란 고철.

타고난 체형 자체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흥. 주제를 알아야지. 너같이 작고 왜소한 것들은 몸에 맞는 연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어울리지도 않는 곳에서 설치다간 망신만 당할 뿐이야]

[아. 그래서 일본 배우에게 망신을 당한 건가?]

[······뭐? 너, 이 새끼!]

[설치지 마, 이 오랑우탄아]

발끈하는 니어슨을 향해서 진호가 차갑게 말했다.

[배우면 배우답게 연기로 승부하자고. 그 잘난 액션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거든]

[하. 내가 몇 년을 액션 연기로 밥벌이 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놈 따위는 상상도 못 할 정도야]

[쫄리면 뒈지시던가]

[······쥐새끼 같은 놈. 그래, 한 번 해보자. 네놈이 한계를 알고 질질 짜게 만들어 주마]

단순한 놈은 단순하게 상대하는 편이 낫다.

이를 박박 갈며 돌아서는 니어슨을 보며 진호가 코웃음을 쳤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해 주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 작진 않지만.”

마지막 말은 조금 작았다.

#

액션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신체 능력이다.

가능한 선에서 합을 찾고, 이 합을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으로 씬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전체 연출을 정하기 전에 선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원숭이, 잘 보라고]

니어슨이 먼저 테스트에 응했다.

굵은 밧줄을 양 손을 교차해서 잡고서는 그대로 타 올라갔다.

팔 근육이 펌핑되어 터질 것 같았다.

[네놈이 따라 할 수 있을까?]

[대수롭지 않은 재주로 그만 떠들지?]

진호도 곧바로 따라 움직였다.

근력은 니어슨보다 부족해도 체중이 가벼웠다.

휙휙, 밧줄을 잡아당기니 몸이 그대로 딸려 올라갔다.

되레 니어슨보다 빠른 속도였다.

[······건방진 새끼. 이것도 할 수 있을까?]

니어슨은 훈련용으로 세워 둔 타이어를 손으로 밀어서 뒤집었다.

백 kg이 넘어가는 고중량 타이어였음에도 한 번에 훌쩍 넘어가 버렸다.

힘 하나는 확실했다.

[우린 파워리프팅 대회에 나온 게 아닌데 말이지]

[겁먹은 거냐?]

[배우 본분에나 집중하라는 거다]

진호도 타이어를 뒤집었다.

니어슨보다는 힘들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그 역시 코어가 확실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이런 애들 장난은 그만 두고 직접 올라와서 싸워보는 건 어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대역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고. 몸으로 부딪치는 작업은 직접 소화하는 게 배우 아니겠어?]

니어슨은 아예 스파링을 제안했다.

애초에 그런 설비도 다 돼 있는 장소였기에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하.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사이가 정말 안 좋군]

문제는 총괄 감독인 바이슨이 이를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이 정도 투쟁심은 있어야지. 정 붙고 싶다면 장비 착용하고 올라가서 손으로 해결 해]

[감독님, 그래도 그건······]

[몇 달이고 부딪칠 두 사람이야. 언제까지 아웅다웅 하면서 찍을 거냐. 몸으로 부딪치면서 해결을 보자고]

어찌 보면 상남자고 어찌 보면 무책임하다.

공룡 기업인 드림이라고 모든 것이 스마트 한 건 아니었다.

[어때, 원숭이. 올라와서 나하고 주먹 맞댈 용기는 있나?]

[······]

이 정도가지 판이 깔렸으면 진호도 거부하기 어렵다.

애초에 겁이 나서 피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난 분명 액션 연기로 승부를 보자고 했어. 이렇게 상황을 벌려놓은 건 어디까지나 너라는 걸 명심하자고]

[하하하. 아직 입은 살아있군. 형편없이 쳐 맞은 뒤에도 그럴 수 있나 보자고]

[너야말로 지금이라도 빌어. 불쌍하게 보인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봐 줄 수 있으니까]

진호가 링 위로 걸음을 옮겼다.

눈이 가늘어지고 몸의 기세가 조금씩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그저 배우가 연기하는 무술인 느낌이었다면, 여기부터는 달랐다.

피 냄새가 배어 나오는 무인.

[아니면, 너 죽어]

장군, 무인, 살인자, 짐승.

숱한 전생이 그르렁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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