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31화 (131/178)
  • Chapter59. 팀 진호(1)

    촬영 막바지에 돌입했다.

    마지막 주.

    그간의 실력 향상을 평가받고 이에 따른 마지막 피드백까지 진행했다.

    “대단하네. 다들 사람이 바뀌었어.”

    서훈은 마지막 촬영 분을 보며 감탄했다.

    첫 촬영 때의 실력과 비교하면 굉장한 차이였다.

    연기에 생동감이 있고, 춤에 드러나는 감정 선이 뚜렷해졌다.

    “나는 배우는 법을 가르치니까. 배우려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다면 앞으로도 잘 할 거야.”

    “명인 홍 진호 씨의 답변인가.”

    “명인은 무슨. 나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아주 겸손을 온 몸에 두르셨네?”

    진호가 짧게 웃었다.

    “사실 이번 촬영에서는 저들만큼 나도 얻은 것이 많아. 난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성공했잖아.”

    “보통 사람의 방식을 알게 됐다는 거야?”

    “비슷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경쟁하고, 무엇을 그리며 연기하는지. 머리에서 그리던 것과 부딪치며 알게 되는 건 다르더라고.”

    “깨달음이라도 얻으셨나요, 진호 선사?”

    “왕도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아직 입 밖으로 낼 만 한 것이 아닌 거 같아.”

    두 번째 것은 입 안으로 삼켰다.

    덜 익은 과일을 자랑하기에는 아직 얼굴이 덜 뻔뻔했다.

    “회식이나 가자.”

    “사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

    서훈도 애써 묻지 않았다.

    #

    프로그램 때문에 모였던 이들은 각자 속한 곳으로 전부 돌아갔다.

    저마다 한 마디씩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진호 선생님 덕분에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용기가 생겼어요. 이젠 연기를 해도 주눅 들지 않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저, 데뷔하면 방송 보러 와 주실 거죠? 그대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연예계 바닥은 치열하고 자신감이 무너지기 쉽다.

    진호는 이들의 실력만이 아닌 자신감도 회복시켜 준 것이다.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

    어쩌면 실력보다 더 중요한 부분일지 모르겠다.

    “저, 선생님.”

    “아. 소정 씨.”

    “그 동안 죄송했어요. 제가 너무 건방졌죠?”

    “전 신경 안 써요. 경쟁심 강하고 에고가 높은 것도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어요. 너무 스스로를 닫지 말고 그 무기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 두세요.”

    채소정은 독심 있는 연기자다.

    곁에서 보기에는 짜증나고 불편하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면 독특한 연기자가 될 수 있다.

    진호는 그녀에게 쉴 틈을 마련해 준 것뿐이다.

    “우희 씨는 할 말 없어요?”

    “훌쩍. 흑.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요······”

    구석에서 훌쩍이는 우희와는 반대로 말이다.

    “우희 씨도 돌아가서 자립을 해야죠.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할 거죠?”

    “네, 네. 꼭 그럴 거예요. 소정 언니랑도 약속해서 나중에 드라마나 영화 같은 곳에서 보기로 했거든요.”

    “두 사람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젠 언니를 붙이는데 어색함이 없는 사이다.

    중간 점검 이후로도 숱하게 싸웠지만 어디까지나 성형 차이.

    그 안에서 상대의 것을 배울 만큼 열린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됐다.

    “나중에. 나중에 진호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그래도 돼요?”

    “꼭 나중에 할 필요가 있나요?”

    “지금은 좀 창피해서요. 나중에 더 잘 되고 그러면 선생님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요.”

    “그래요. 근데, 난 이미 여러분이 충분히 자랑스럽습니다. 그간의 일정도 잘 따라와 주시고, 보란 듯이 성취를 얻어냈으니까요.”

    우희가 찡한 듯 바라보다 후다닥 달려와 안겼다.

    그러자 채소장을 비롯한 다른 출연자들도 전부 달려와 진호에게 매달렸다.

    은서는 도끼눈을 떴지만 꾹 참았다.

    제자와 선생의 석별의 장면 아니겠는가.

    “저기, 나도 선생님이었는데.”

    한 마디는 거들면서.

    #

    촬영을 마무리 하고 며칠이 지났다.

    이미 첫 예고편이 송출되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스타의 일상생활은 언제나 흥미로운 것.

    그 대상이 진호라면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드림에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이슈가 있었다.

    최현석이 테이블 올려놓은 영문 가득한 종이 몇 장.

    서류 말미에 ‘Dream’이라는 서명이 뚜렷하게 들어가 있었다.

    “드림 크리에이션. 맞죠?”

    “그래. 그곳. 미디어 공룡.”

    드림 크리에이션.

    흔히 말하는 미디어 공룡이다.

    10수 년 전부터 동종업계 회사들을 흡수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몸집을 키웠다.

    당장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3가지를 대라면 아이라도 첫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하다.

    사실상 남은 두 곳을 합친 것보다도 규모가 클 정도.

    그런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무슨 내용인데요?”

    “드라마 섭외야. 거액을 들여서 8부작 슈퍼 히어로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더라.”

    “슈퍼 히어로 드라마라. 원작은 뭔데요?”

    “너도 알 거야. 리벤젼스라고.”

    “아. 이번에 작심하고 만든다고 하더니.”

    리벤젼스라면 진호도 잘 아는 영화다.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덕분에 후속에 대한 요구가 엄청났다.

    드라마를 비롯한 스핀오프.

    각종 추가 제작 계획이 빠듯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중 하나인 드라마에서 진호를 섭외하러 온 것이다.

    “어떤 캐릭터로 섭외를 하는 건가요?”

    “여기 있는 아시아 계열 히어로야. 마샬 아츠 타입으로 액션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어.”

    “아시아 계열이라. 여기도 신경을 쓰는군요.”

    “아무래도 본토의 풍토가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PC즘.

    영화나 드라마에 아시아, 흑인, 성소수자 등이 반드시 포함되는 풍토를 의미한다.

    “대표님이 보기에는 어때요?”

    “생각이 필요해? 드림에서 온 섭외라고. 재고 말 것 없이 바로 잡아채야지.”

    “하하. 대표님 정도 되는 사람도 드림이라면 껌뻑 죽네요.”

    “우리가 언제 또 이런 곳하고 일을 해 보겠냐. 솔직히 기회가 또 오리라고 장잠은 못하잖아.”

    항상 진중했던 최현석마저 들뜰 정도로 드림의 이름값은 컸다.

    진호가 테이블 위 종이를 손끝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캐릭터나 배경에 대한 것도 자세하게 알아봐야 하고.”

    “허, 참. 넌 흥분되거나 그런 것도 없냐?”

    “저도 들떠요. 그래도 연기 할 캐릭터인데 배경 정도는 충분히 인지를 해야죠. 드림에 연락해서 드라마 추가 정보를 보내달라고 하세요.”

    중요 한 것은 어떤 작품인가.

    진호는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미쳤어, 오빠!?”

    은서가 번개처럼 방문을 열고 들어와 멱살을 잡았다.

    짤짤짤, 잡고 흔드는 손아귀 힘이 제법이었다.

    “어지러워. 그만 흔들어.”

    “더 흔들어야 해. 그래야 정신이 돌아오지.”

    “난 정신 멀쩡한데?”

    “멀쩡한 사람이 드림의 제안을 보류해? 지나가던 동네 개도 드림이 섭외하면 멍, 하면서 받아들이겠다.”

    찰진 비유에 진호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은서는 농담이 아닌 듯 더 힘껏 흔들었다.

    “아니, 진짜로. 왜 보류 한 건데?”

    “드림이고 드럼이고. 일단 작품을 봐야지 선택 할 거 아니냐. 덜컥 하다고 했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려고?”

    “그래도 드림이잖아. 꿈의 드림.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곳인데.”

    “라임 죽이네. 근데, 그래도 내 결정은 마찬가지야. 드림 할아버지가 와도 배역이 마음에 안 들면 고사 할 뿐이라고.”

    딱 부러지는 답에 은서가 손을 풀었다.

    이렇게 말 한다고 들어먹을 고집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만나는 사람이지만 가끔 보면 무서워. 드림에서 섭외 오면 일단 날뛰어야 정상인데 말이야.”

    “어차피 회사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규모가 크다고 넙죽 수락하고 그러면 나중에 독 된다고.”

    “그거 드림 회사 정문에 가서 말 해 보쇼.”

    “삐진거야?”

    “삐지긴. 아니, 삐졌다. 우리 잘난 애인님이 드림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얼마나 들떴었는데.”

    부, 한 은서의 볼을 진호가 가볍게 꼬집었다.

    최현석도 그렇고 은서도 드림이라는 이름값에 너무 들떠 있다.

    “그럼 온 김에 같이 검토 할래?”

    “나 봐도 되는 거야? 비밀 엄수 조약 같은 거 없어?”

    “이건 그런 종류가 아니라서. 간단한 배경 설명과 캐릭터에 대한 첨부 자료야.”

    “볼래, 볼래. 드림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

    언제 그랬냐는 듯 진호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둥글게 몸말아 자리 잡는 모양새가 고양이었다.

    “일단 종족이 그로니악이라는 건데······”

    그리고 진호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했다.

    자글자글한 영어를 하나씩 읽어갔다.

    혼자 보다는 둘이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

    3일간의 고민 끝에 진호는 출연을 결정했다.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평면적이었지만 배경 스토리가 괜찮았다.

    게다가 규모 큰 슈퍼 히어로 드라마에 비중 있는 배역을 맡는 건 확실히 큰 도약이었다.

    이미 월드 스타급 성공을 이룬 그라고 해도 드림과의 작업은 이야기가 달랐다.

    “근육을 조금 더 키우고 드라마 액션 씬을 위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이거죠?”

    “계약 조건에 들어가 있어. 촬영 기간을 보면 못해도 석 달. 편당 제작비가 거의 영화급이라 씬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준비가 상상을 초월해.”

    “영화 여덟 편이라 이거네요.”

    드림 쪽에서 건네 온 계약 조건을 굉장히 빡빡했다.

    영화 캐릭터에 맞춰서 몸을 만다는 것은 기본이고, 캐릭터가 사용하는 특수 언어도 외워야 했다.

    비밀 엄수나 배경 설정의 이해는 당연한 일이었고.

    “그럼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꽤나 왔다 갔다 해야 해. 그쪽 팀과 계속해서 교류를 해야 하거든. 드림 쪽에서 집이 하나 구해주기로 했으니까 넘어 갈 때는 그곳에서 머무르자.”

    “집을요?”

    “어. 집이랑 차랑 필요한 것들은 전부 드림에서 제공하기로 했어.”

    “허. 역시 큰 회사는 다르네요.”

    집, 차, 옷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가 값싼 물건인 것도 아니었다.

    집도 마당 딸린 고급 주택이었고 차도 전부 고급이었다.

    “스텝은 어떻게 할까요? 계속 이동하는데, 고정 스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말인데. 팀 말이야. 너, 전담 팀을 세분화해서 조정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떻게요?”

    “국내 팀, 해외 출장 팀. 홍보팀과 회계 팀은 이미 있고. 드라마나 예능 쪽. 혹은 뮤지컬을 하든 연극을 하든 그쪽은 따로 분할을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요?”

    “너 정도면 많아도 돼.”

    최현석이 구상했던 계획안을 내밀었다.

    팀 숫자도 많고 총원도 굉장했다.

    전체를 헤아리자면 얼추 100명에 가까운 숫자였다.

    “기존의 팀에 추가를 하면 되니까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을 거다. 네가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내가 정리해서 사람을 선별 해 볼게.”

    “어후. 숫자가 이 정도 되니까 살짝 부담되네요.”

    “여기 이 리스트에는 경호팀은 아예 빠져 있어. 넌 이제 어중간한 스타가 아니야. 드림에서 직접 섭외가 올 정도의 몸이라고.”

    “거물이라 이건가요?”

    “거물이지. 거물 중의 거물.”

    진호가 테이블 위의 종이를 손끝으로 훑었다.

    백여 명의 사람을 책임지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다.

    ‘망해도 나 하나 망한다.’는 과거의 가벼 움과는 결별하는 거니까.

    “알았어요. 필요한 거라면 해야죠. 책임이 무겁지만, 그렇다고 멈춰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잘 생각했다. 이미 이름도 정해놨는데 거절하면 어쩌나 싶었지 뭐냐.”

    “이름도 있어요?”

    “그럼. 슈퍼 히어로 팀도 이름이 있는데, 너도 하나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겠냐?”

    최현석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팀 진호. 호벤젼스다. 어떠냐?”

    “······”

    진호는 처음으로 선택을 후회 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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