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29화 (129/178)
  • Chapter58. 한 만큼(1)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진호와 은서가 번갈아가며 표현력에 대한 걸 설명하면 출연자들이 이를 따라하는 방식이었다.

    잘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못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으으······”

    우희는 단연코 후자였다.

    주제에 대한 표현이 굉장히 빈약했다.

    말투와 표정은 어색하고 동작은 딱딱하기만 했다.

    “어떻게 해. 우희 씨 많이 힘든가 봐요.”

    “너무 딱딱해서 나무 토막인줄 알았어. 너무 긴장해서 그렇겠죠? 설마 연기자가 저렇게 할 리는 없는데.”

    “긴장 풀고 천천히 해 봐요. 우희 씨라면 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툭툭 던지는 말.

    얼핏 응원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살살 긁으며 약 올리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우희야. 긴장하지 말자. 후우.”

    “어머. 혼잣말 저렇게 하는 사람이 있구나. 난 처음 보네.”

    “그러게요. 얼마나 긴장되면 저러겠어요. 그냥 우리는 응원만 하죠. 우희 씨 화이팅!”

    조롱은 끝없이 이어졌다.

    “응원 감사합니다. 꼭 성공 할게요.”

    하지만 우희는 되레 그런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먹을 불끈 쥐며 힘 낼 것을 다짐하면서.

    ‘뭐 저런 애가 있어?’라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이 순간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프지 않아요.”

    주어진 상황 대사.

    아픔을 겉으로는 감추되 가슴 속으로는 아파하는 상황이다.

    눈썹이 출렁거리고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그러면 안 돼요, 우희 씨.”

    “진호 선생님.”

    “방금 무슨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그런 그녀 앞으로 진호가 자리했다.

    “슬프지만 슬픈 표정 안 짓는 사람이요.”

    “머리로 그렇게 구상을 했다는 거죠?”

    “네. 그렇게 연기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걸 그런 식으로 머리에서 그리면 안 돼요. 우희 씨는 어떨 때 가장 슬퍼요?”

    문답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각자 연습하던 출연자들도 두 사람 대화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할머니가 농사 망쳤다고 힘들어 하실 때?”

    “자신에 대한 건 없나요?”

    “저요? 전······너 같은 건 아무리 해도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욕먹었을 때 정도요.”

    “심하네요.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많이 아팠죠?”

    “네. 진짜로 잘 하고 싶은데 안 됐거든요. 답답하고 서글퍼서 눈물이 나올 거 같았어요.”

    실제로 우희 눈가가 붉어졌다.

    “근데 그 사실을 할머니가 눈치 채고 물어보면 어떻게 답 하실래요?”

    “하, 할머니가요? 안 돼요. 할머니 이런 거 알면 너무 안타까워하실 텐데. 그런 거 알려드리기 싫어요.”

    “그럼 답 해 봐요. 우희야, 요즘 힘든 일 있니?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혹시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우희는 순간적으로 할머니와 맞닥뜨린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 아니에요. 별 거 아닌데.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 아무 일 없고?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하렴. 할머니는 항상 우희 편이니까. 알았지?”

    “으, 응. 꼭 그럴게요. 할머니, 고마워요.”

    눈가가 찰랑찰랑한 채로 우희가 겨우 답을 했다.

    입술을 세게 깨물어 주변이 하얗게 물 들었을 정도.

    “······와.”

    “저게 진짜 된다고?”

    “좋다. 제대로 할 줄 알잖아.”

    감상은 주변에서 먼저 나왔다.

    비아냥거리던 출연자들조차 이번만큼은 무시 할 수 없었다.

    우희는 확실하게 슬픔을 억누르며 평정을 가장했다.

    넘칠 듯 넘치지 않는 가정 라인이 좋았다.

    “어때요, 우희 씨.”

    “······아. 아! 으아! 바, 방금 나 무슨 말 했어요?”

    “제대로 된 답변. 좋은 연기였어요.”

    “좋은 연기······”

    “머리로 이해 한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의 차이를 알 것 같아요?”

    우희가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손으로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시도가 더 와 닿았다.

    회사에서는 죽어라 다그쳐도 안 되던 것이 여기서는 고작 하루 만에 된 것이다.

    “경험보다 좋은 도구는 없죠. 살아온 삶을 되짚어 보며 상황에 맞춰 보세요. 좋은 연습이 될 겁니다.”

    “네! 선생님!”

    우희는 눈물도 다 닦지 못한 채 소리쳤다.

    연기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

    연기는 배우는 것만큼 가르치는 것도 힘들다.

    애초에 자신의 것을 뽑아내는 일에 타인이 개입하기가 쉽지 않은 이치다.

    너 슬퍼해, 라고 말해봐야 당사자가 이입하지 못하면 말짱 꽝이니까.

    “또 수정하는 거야?”

    늦은 밤.

    진호가 제작진에게 부탁해 카메라 없이 개인 시간을 가졌다.

    준비했던 계획을 실시간으로 수정하기 위해서다.

    “오늘 보니까 다들 받아들이는 게 다르더라고.”

    “당연하지. 똑같이 배우면 선생님들은 다 편하게? 재능도 다르고 태도도 다르잖아.”

    “은서야. 네가 볼 때는 누가 제일 나아 보여?”

    “흠. 굳이 뽑자면 채소정? 나이가 있는 만큼 연기력은 개중에 제일 낫더라.”

    “지금 상태에서는 제일 낫긴 하지.”

    진호도 은서의 말에 긍정했다.

    연습생 경력만 있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서 채소정은 나름의 커리어도 있었다.

    쌓인 경험도 연기 노하우도 다른 이들과 비교 될 것이 아니었다.

    “이제 하지만이 나올 차례지? 뻔한 걸 질문 할 리는 없고.”

    “그런 거지. 채소정 씨는 확실히 연기 틀이 잡혀 있어. 하지만 그게 너무 굳어서 다른 걸 받아들이지 못해.”

    “습관성 연기라 이거구나.”

    “응. 슬플 때는 이렇게, 화낼 때는 이렇게. 패턴이 고착화 된 탓에 습득이 더딘 거야.”

    흔히 학원형 연기라고 말한다.

    정형화된 방식으로 연기를 배우다보니 표현이 너무 뻔해지는 것이다.

    “그럼 반대는? 반대 경우도 있는 거지?”

    “응. 우희 씨.”

    “우희 씨? 진심으로?”

    “지금 연기력 자체는 가장 안 좋지. 대신 도화지 같은 면이 있어. 회사나 이런 쪽에서 나쁜 버릇이 들지도 않았고.”

    “꽤 조사를 많이 해 뒀구나.”

    “말했잖아. 노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출연을 결정하고 다양한 연기를 연구했다.

    학원에서 배우는 학원 연기, 대학로 연극 공연, 클래식한 배우의 연기, 난폭한 형태의 자유연기까지.

    다양한 방식을 보고 학습하며 차이를 연구했다.

    “두 사람은 극단이야. 배우지 못하는 도화지와 너무 배워서 꽉 찬 연습장. 이 간격을 메울 수 있다면 이번 프로그램은 성공이겠지.”

    “이거 예능이라는 건 알고 있지?”

    “진지하게 성취하는 것도 예능의 맛 아니겠어?”

    “서훈 선배는 싫어하겠지만. 오빠가 좋다면 나는 찬성이야. 두 사람의 간극을 열심히 메워 봐.”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너도 도와 줘야지. 은서 선생님.”

    “윽. 날로 먹을 수 있었는데.”

    은서가 깔깔 거리고 진호가 웃었다.

    역시 혼자 보다는 둘이 낫다.

    같이 출연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

    촬영이 진행 될수록 차이는 도드라졌다.

    우희는 기본기가 없고 학습 능력이 떨어짐에도 가르치는 건 꾸역꾸역 따라왔다.

    반면 채소정은 기본기가 있고 경험이 탄탄함에도 쉬이 가르치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루를 배우고 나면 다음 날에는 다시 본래대로 돌아와 버리는 것이다.

    “오늘은 2주차 마지막 날입니다. 다음 모임을 기약하기 전에 내부 평가를 진행해 볼까 해요.”

    “평가요? 점수를 매기는 건가요?”

    “그렇게 등급 나눌 생각은 없어요. 다만, 2주간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을 뽑아볼까 해요. 그래도 성과가 있어야 의욕이 생기지 않겠어요?”

    해서 진호는 나름의 수단을 강구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뭐든지 좋아요. 자신 있는 걸로 실력을 뽐내면 은서 씨와 제가 평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가 있나요?”

    “주제는 변화. 해석도 표현도 모두 자율입니다.”

    꽤 포괄적인 주제에 다들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내 의지를 불태웠다.

    이런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방송이 나갈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2시 까지 이곳에서 다시 모이는 걸로 합시다. 저희 둘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죠.”

    출연자들과 따로 흩어졌다.

    개별 연습실도 있으니 시간 맞춰서 알아서 준비를 할 것이다.

    “진호야. 준비 시간이 너무 짧지 않냐? 차라리 다음 주에 평가를 하지.”

    서훈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이런 건 즉흥 평가가 나아요. 말 그대로 배운 걸 드러내는 자리니까요.”

    “그런가. 그래도 고작 2주인데. 차이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2주라도 배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에요. 이곳에서 알아 간 것을 개인적으로 연습하기도 했을 거고.”

    배우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촬영이 끝났다고 그대로 나 몰라라 한다면 자격이 없다.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됐다.

    서훈은 카메라 밖으로 빠지고 진호와 은서가 선생님 자격으로 참석했다.

    관찰 예능의 미니게임 같은 분위기였지만 출연자들의 얼굴은 꽤나 비장했다.

    “그럼 준비했던 걸 보도록 할게요.”

    진호의 신호에 따라 한 명씩 시작했다.

    배우 지망생 둘에 나머지는 전부 아이돌 지망이었다.

    춤, 노래, 춤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 두 명이 연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어때요? 누가 제일 나은 거 같나요?”

    툭툭 치는 은서의 노트에는 글이 빼곡했다.

    그녀는 전직 아이돌 관점에서 지망생들을 평가했다.

    나아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게 갈렸다.

    “지금 이 상태로 보자면 채소정 씨가 가장 훌륭하네요.”

    짧은 평에 출연자들의 얼굴이 일변했다.

    특히, 좋은 평을 받은 채소정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발했다.

    “하지만 그건 처음 들어 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볼 때 가장 변화가 큰 건 이 사람 같네요.”

    “흐음. 각자 노트에 쓴 뒤에 맞춰볼까요?”

    “그거 좋네요.”

    진호와 은서가 안 보이게 노트에 이름을 쓴 뒤 한 번에 카메라 쪽으로 내밀었다.

    우희, 라는 이름이 동일하게 적혀 있었다.

    “생각이 같네요. 우희 씨 앞으로 나오세요.”

    “네? 저, 저요?”

    “네. 우희 씨가 이번 테스트 우승자입니다.”

    우희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 앞으로 걸어나왔다.

    자신도 이 결과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깐만요. 제 연기가 가장 낫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걸음을 제지하는 건 역시 채소정이었다.

    “네. 소정 씨 연기가 가장 훌륭했어요.”

    “근데 왜 제가 아닌 우희 씨죠?”

    “말했다시피 소정 씨는 들어 올 때도 실력이 훌륭했어요. 다만, 그 상태에서 거의 변한 것이 없더군요.”

    “그럼 우희 씨는 변했다는 겁니까?”

    “네. 아주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곁에서 볼 때, 그런 점을 전혀 못 느꼈나요?”

    “전혀요! 연기라고는 초등학생 수준으로 하는데 대체 뭐가 변했다는 겁니까!?”

    채소정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초등학생 수준의 연기라. 소정 씨는 우희 씨의 연기가 정말로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보시나요?”

    “네. 꾸준하게 봤습니다. 저런 연기는 저학년 연극 동아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수준이에요.”

    “그렇게 보이는 겁니까. 아니면 그렇게 보고 싶은 겁니까. 소정 씨는 이 답을 하지 못하면 몇 달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수준일 겁니다.”

    “······!”

    입술을 깨무는 채소정의 얼굴이 흉악했다.

    그녀는 자신이 1등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희 같은 모자란 것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았다.

    ‘방송 때문이라 이거지.’

    시청률을 위한 농간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납득 못 합니다. 저랑 우희 씨랑 단 둘이 대결을 하게 해 주세요.”

    “단 둘이 말입니까?”

    “네. 그게 아니라면 전 이 결과에 승복 할 수 없습니다.”

    진호는 발끈한 채소정과 우물쭈물하는 우희를 번갈아 바라봤다.

    당장 연기로 대결을 한다면 당연히 채소정의 승리.

    하지만 여기서 그걸 말로 설득하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남는 것이 없어 보였다.

    “좋습니다. 3주차 첫 날. 두 사람이 연기로 대결을 벌이는 걸로 하죠. 대신 이번 심사는 저와 은서 씨가 아닌 다른 분들이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을 초청하는 건가요?”

    “아뇨. 두 분과 함께 해 왔던 다른 참가자 분들이 심사를 대신하는 걸로 하죠.”

    이번에는 서훈과 은서마저 놀랐다.

    “가장 가까이서 봐 온 사람들이라면 납득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가요, 소정 씨.”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손해 볼 것 없는 제안.

    채소정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희 씨는요?”

    “······네.”

    자신 없는 우희와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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