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28화 (128/178)
  • Chapter57, 아이돌이 왕창(3)

    정식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서훈이 카메라 앞으로 나와서 짤막하게 룰과 방식을 설명하고 그대로 들어갔다.

    “그럼 시작 전에 일단 밥부터 먹을까요?”

    이제 겨우 8시 정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제대로 배를 채운 사람이 없다.

    “여기서 자기가 요리 좀 해봤다는 사람?”

    “저요. 제가 요리 할 줄 알아요.”

    “저도 간단한 거라면 할 수 있어요.”

    냉큼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럼 두 사람이 아침 메뉴를 구상해 주세요. 여기 차트에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적혀 있으니까, 참고하시면 되겠네요.”

    “나머지 사람들은 뭐 해요?”

    “두 사람이 메뉴를 정하면 재료를 수급해야죠. 전부 냉장고에 들어있는 건 아니거든요.”

    진호가 손으로 창 너머 뒷산을 가리켰다.

    직접 캐서 요리해 먹는 것이 트렌드라고 하든가.

    냉장 보관이 필수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죄다 뒷산에 심어 놓았다.

    “각각 한 명씩 붙어야 할 텐데. 은서 씨는 요리랑 재료 수급 중에 어디가 좋아요?”

    “제가 요리 쪽을 맡을게요. 뒷산은 진호 씨에게 맡겨도 되겠죠?”

    “하하. 사양 말고 부려 주세요.”

    방송 이다보니 두 사람은 존댓말을 사용했다.

    “아침이니까 간단하게 된장국에 밑반찬 더해서 먹죠? 재료도 많이 필요 없을 것 같고.”

    “된장국이라. 다들 괜찮나요?”

    “좋죠. 아침에 뜨끈한 국물로 배 채우면.”

    싫어도 싫다고 말 할 사람은 없었다.

    메뉴가 정해지고 은서를 비롯한 요리 팀이 필요한 재료를 정해 주었다.

    “그럼 뒷산으로 갑시다. 길이 조금 험하니까 다들 조심하세요. 괜히 엄한 곳에 끼어서 끙끙거리면 두고 갈 겁니다.”

    뒤따라오던 우희가 움찔했다.

    #

    산에서 재료 수급하는 장면에 뭐가 필요할까.

    그냥 ‘이게 뭐에요?’ 라고 물으면 ‘이건 뭐에요.’라고 답하면서 서로 놀라워하면 된다.

    양파니 감자니 모를 수가 없는데.

    그냥 시골 처음 온 도시 처녀 총각마냥 들뜬 얼굴을 한 채 열심히 일해주면 되는 것이다.

    “진호 선생님. 이건 잡초인가요?”

    “쪽파네요, 쪽파. 쑥 뽑아서 흙만 털어요.”

    “······아니, 우희 씨. 전 선생님께 물어봤는데.”

    “제가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모르는 거 있으면 더 물어보세요.”

    유독 도드라진 건 의외로 우희였다.

    시골에서 자란 덕에 작물에 대해서 꽤나 빠삭했다.

    진호 대신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료 수급을 도왔다.

    물론, 그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 한 건 아니지만.

    “우희 씨는 이런 일에 많이 익숙해 보이네요.”

    “헤헤. 커서도 시간 날 때면 시골 내려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많이 도와드렸거든요. 농가에 일손 구하기가 힘들어서 두 분 만으로는 많이 벅차거든요.”

    “이해합니다. 저도 집에서 농사를 짓거든요. 우희 씨 만큼 많이 내려가서 돕지는 못하지만.”

    “와. 선생님도 집에서 농사를 지어요?”

    “땅은 얼마 안 돼요. 그나마도 비가 왕창 온 탓에 손해만 봤죠. 일 년 농사 짓고 그럴 때면 참 가슴이 아파요.”

    “와. 우리 할머니도 딱 그렇게 말 했는데. 농사가 참 야속하죠. 열심히 해도 하늘이 안 도와주면 말짱 꽝이고 그러니까요.”

    공통 주제가 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진호 선생님! 저 이거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뿌리가 엉켜서 잘 안 떨어져요.”

    하지만 그 모습을 계속 지켜 볼 리 만무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하던 채소정이었다.

    “아, 잠시 만요. 이런 건 억지로 당기지 마시고 그냥 살살 흔들면 떨어져요.”

    “아, 그렇구나. 역시 선생님은 모르는 게 없네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진호 선생님이 이런 일에도 능숙한 줄은 전혀 몰랐거든요.”

    방송의 주역은 진호.

    그와 엮이면 카메라에 계속 잡힐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건수를 만들어서 진호와의 접점을 만들려고 했다.

    “선생님! 제 감자도 좀 봐주시면 안 돼요?”

    “감자는 그냥 캐면 되잖아요. 저쪽은 알아서 하라 그러고 절 좀 더 도와주세요.”

    “감자가 그냥 캔다고 캐지는 게 아니거든요? 소정 씨, 너무 혼자서 진호 선생님 독점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나. 독점이라니. 누가 보면 진짜인지 알겠네.”

    그러다 보니 출연자들끼리의 경쟁이 심각했다.

    채소정이 여우같이 웃으니 다른 아이돌 지망생이 이를 바득 갈았다.

    뜨기 위한 열망은 너나 할 것 없었다.

    “저기 진호 선생님.”

    “응? 아, 우희 씨.”

    “이만큼 캤으면 된 거 아니에요? 내려가도 될 거 같은데.”

    유일하게 그런 구도를 벗어난 건 우희였다.

    그녀는 간만의 농사일이 신난 건지 작물을 왕창 캔 채 소쿠리에 담아 두었다.

    필요한 재료로는 차고 넘칠 정도였다.

    “일. 열심히 하셨네요.”

    “헤헤. 집에서 농땡이 부리면 할머니가 한 소리 하거든요.”

    “그래요. 이 정도면 충분 한 거 같습니다. 다들 내려가죠.”

    괜히 각 잡고 싸우던 둘만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엉덩이 털고 일어나는 진호를 따라 분분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스쳐가는 우희를 노려보는 일도 잊지 않으며.

    #

    당연히 펜션 안에는 요리 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은서와 요리 팀은 재료를 가지고 오면 바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세팅해 두었다.

    “저기, 은서 선생님.”

    “응? 왜요?”

    “은서 선생님은 진호 선생님하고 꽤 오래 알았잖아요. 작업도 같이 하고.”

    “그렇죠. 이래저래 많이 엮였죠.”

    “그럼 진호 선생님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도 알고 계시겠네요?”

    은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대는 아이돌 지망생인 유은나라는 여자.

    아직 제대로 뜬 적은 없지만 외모 자체는 상당했다.

    “개인 취향까지 다 파악 한 건 아니라서요.”

    “그런가요. 취향을 알면 좀 더 어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근데, 은나 씨. 제가 진호 씨에 대해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건 있어요.”

    “뭔데요?”

    “진호 씨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본질에서 벗어난 행동이 아닌, 제대로 된 노력. 눈에 들고 싶으면 배움에 충실하세요.”

    마지막에서는 말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유은나가 살짝 움찔하며 은서를 바라봤을 정도.

    ‘큼. 큼’ 은서도 목을 가다듬으며 올라왔던 감정을 추슬렀다.

    “그래도 제가 선배니까 이렇게 충고하는 거예요. 아셨죠?”

    “네······명심할게요.”

    납득 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거 남자 한 명 빼고는 죄다 진호를 노리고 있네.’

    은서의 불안감만 한층 더 올라갔다.

    “재료 가지고 왔습니다.”

    때 마침 재료를 공수하러 간 팀이 돌아왔다.

    선두에 선 진호를 포함해서 모두의 손에 소쿠리가 묵직하게 들려 있었다.

    “수고했어요. 손질만 조금 도와주시고, 쉬셔도 돼요.”

    “따로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아뇨. 진호 씨는 그냥 쉬세요. 더 이상 열심히 하면 곤란 할 거 같네요.”

    “응?”

    “그런 게 있어요. 선생님은 체력 안배도 해야 하니까 저기 소파에서 쉬시죠.”

    안 쉬면 안 될 것 같은 은서의 눈빛이었다.

    진호가 재료를 내려놓고는 쭈뼛쭈뼛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나머지는 따라와요. 손질해야 하니까.”

    묘한 박력.

    은서의 말을 거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수업에 들어갔다.

    시작 주제는 표현력이었다.

    “무엇을 공통으로 가르칠까 고민하다가 이걸 골랐습니다. 배우는 당연하고 아이돌도 무대 위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표현력이 필수니까요.”

    “표현력은 말 그대로 나타냄을 의미해요. 감정을 전달하거나 어떤 행동을 선명하게 드러낼 때 필수적인 요소죠.”

    “이렇게 말로만 해 봐야 와 닿지 않을 테니까 간단하게 시범을 보이도록 하죠.”

    말을 주고받던 진호와 은서가 마주 섰다.

    “준비했던 걸로 갈게요.”

    “오케이. 바로 들어오세요.”

    사전에 약속해 둔 연기 합이 있었다.

    진호가 은서를 향해서 손을 뻗으며 감정을 잡았다.

    순식간에 한 쪽 눈이 출혈되면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표현력의 심벌에는 눈물이 있죠. 슬픔. 혹은 기쁨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하지만 같은 감정이라도 꼭 눈물이 필요 한 건 아닙니다. 이런 경우도 있죠.”

    진호가 눈물을 지우고 짧게 심호흡 했다.

    그리고 같은 동작을 취하며 은서를 응시했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담담한 시선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눈물 없이 같은 감정을 드러낸 겁니다.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느낌도 다르죠. 어떻습니까?”

    “······와. 방금 그게 같은 걸 연기했다 이거죠?”

    “눈물이 어떻게 금방 날 수 있어요?”

    “대박. 저게 순식간에 된다고?”

    답 대신 감탄만 들려왔다.

    “전 눈물 없는 게 더 좋아요.”

    한 명을 제외하고.

    손을 번쩍 들고 말 한 건 우희였다.

    “눈물 없는 것이 더 좋다. 그렇게 느낀 건가요?”

    “네. 눈물 흘린 장면은 뭔가 찡 하고 감정이 북받치는 느낌인데, 눈물 없는 장면은 쓸쓸하고 허무함이 느껴졌어요. 후자가 더 마음에 깊이 남는 거 같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상입니다. 중요한 점은 표현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거죠. 이를 아이돌의 무대로 이어볼까요?”

    진호가 은서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내, 준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이돌 식 춤을 추었다.

    화려한 동작에 화려한 표정.

    정말로 아이돌 스러운 무대였다.

    “방금 무대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잘 춘다? 화려하다?”

    “나, 대단하다.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평이 바로바로 나왔다.

    “그럼 이번에는 어떻습니까?”

    은서가 다시 한 번 춤을 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춤과 춤 사이의 간격에 텀을 주고 표정을 달리했다.

    “어? 방금······윙크하지 않았어요?”

    “뭔가 더 상큼하네요. 느낌만 그런 건가?”

    “아니야. 조금 더 역동적인 느낌도 있어.”

    아이돌을 지망하는 이들 위주로 의견이 나왔다.

    상큼하다, 역동적이다.

    춤 자체는 변한 것이 없는데 느낌은 달랐다.

    “흔히 말하는 필이에요. 춤선이 표현의 도구가 되는 것처럼 표정도 그렇게 쓰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런 건 타고나는 거 아닌가요?”

    “분명 타고나는 사람도 있죠. 필 많은 사람이라고 하죠. 춤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부류. 그건 확실히 재능의 영역입니다.”

    타고나는 건 부정 할 수 없다.

    배우지 않아도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며 표현에 능숙한 사람들.

    “하지만 제가 가르치려는 건 노력의 영역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노력을 해야 재능 있는 사람의 방식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

    “그걸 진호 선생님이 말인가요?”

    “단적으로 전 재능 쪽입니다. 재수 없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얄밉겠죠. 안 그런가요?”

    다들 답은 안 해도 표정으로 수긍하고 있다.

    단기간에 연기 커리어를 쌓은 진호가 노력파라고 말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노력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전 제가 가진 재능을 어떻게 하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지 부단하게 연구했습니다. 그걸 전해드리고 싶은 거죠.”

    “노력하는 법 말인가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배워보고 싶지 않나요?”

    전생의 삶은 분명 재능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삶의 무게는 진호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 주었다.

    “배우고 싶어요!!”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건 우희였다.

    그녀는 지금껏 보아 온 얼굴 중 가장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케이.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수업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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