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26화 (126/178)
  • Chapter57, 아이돌이 왕창(1)

    영화는 국내 200만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일본에서의 흥행을 발판으로 국내 관 수도 조금 더 확보한 덕에 수익 면에서는 덕을 톡톡히 봤다.

    마무리 될 즈음해서 계산기를 튕겨 봤다.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이득을 챙겼다.

    제작사 측에서는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은 성과에 쌍수를 들고 웃었고, 감독인 서덕찬은 평단의 평가에 마찬가지로 웃었다.

    진호는 기존의 이미지에 새로운 면을 추가했다.

    배우로서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앨범 반응이 좋아.”

    그리고 선아의 미니앨범도 반응이 좋았다.

    OST곡 외에 다소 급하게 낸 기색이 있었음에도 호응이 좋았다.

    곡이 좋은 것이 첫 번째 이유, 선아의 목소리가 좋은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덕분에 곡에 대해서 문의가 많이 오더라. 쌓아 둔 곡을 팔라고.”

    이 과정에서 진호는 한 가지 직함을 더 얻었다.

    바로 작곡가라는 직함이었다.

    배우 일을 하면서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에 성과를 내는 사람은 적다.

    특히 작곡과 같은 전문적인 분야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진호의 곡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곡은 마땅한 사람에게만 팔 거예요.”

    “그래. 뭐, 곡은 네가 만들었으니까. 난 네가 곡을 만들 줄 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우리 음악 파트 쪽에 사람 보강되면 곡을 풀든가 할게요.”

    “안 그래도 그 덕에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잘 골라서 받아주세요.”

    블루 아이의 음악 파트는 신생이다.

    인력도 시설도 부족한 만큼 지원하는 사람은 적었다.

    선아와 진호가 아니었다면 풀을 확장하는 것만 해도 몇 년은 걸렸을 것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서훈이한테서 연락 왔었다.”

    “서훈 형이요?”

    “응. 이번에 ANT 예능국으로 옮겼잖아. 신규 예능 들어가는데 한 번만 도와달라는 거 같더라.”

    “예능국으로 옮겼어요? 형하고 안 어울리는데.”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전화 해 볼 거냐?”

    “네. 얘기해보고 결정할게요.”

    이 정도 선의 결정권은 전부 진호에게 있다.

    최현석도 개입하지 않는 편.

    대표와 소속 연예인이라기보다는 형과 동생과 같은 관계였다.

    #

    회사 근처에서 서훈을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는 살이 꽤 빠져 앙상해 보였다.

    “형. 요즘 많이 힘든 가 봐?”

    “죽겠다. 갑자기 예능국 옮겨서 일 하려니까 적응을 못하겠어.”

    “그러니까. 왜 갑자기 옮긴 건데?”

    “원래 있던 PD가 날아가면서 공석 떴잖아. 빨리 치고 올라가려면 후딱 자리 하나 잡아야지.”

    서훈이 한숨을 섞어 답했다.

    여느 일터가 다 그렇듯 성공하려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솔직히 말해서 너랑 친분이 점수 좀 더해 준 거지.”

    “동생 이용해 먹으려고?”

    “좀만. 양심껏 써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여튼 곧 죽어도 입은 뜰 양반이야.”

    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사람 관계에 직위와 돈이 개입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의 진호는 방송가에서 말하는 황금돼지다.

    끈이 있다면 당연히 커리어 발판이 되는 것.

    대놓고 말하는 서훈이 싫지 않았다.

    “무슨 예능인데? 영화 홍보는 이미 끝나서 딱히 메리트가 없어.”

    “단발성이 아니야. 2주에 3일 씩. 전부 4번 촬영하는 관찰 예능이야. 네가 선생님이 돼서 신인 애들을 가르쳐 주는 방식.”

    “3일이나? 스케줄 빼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알아. 아니까 부탁하는 거야. 너 예능은 제법 했지만 아직 관찰 쪽은 없잖아. 다 공개하라는 건 아니고 평소 생활 방식 정도만 좀 오픈하자.”

    서훈이 미리 준비해 온 포트폴리오를 공개했다.

    흔하게 있는 단체 생활 관찰 예능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엄청난 슈퍼스타라는 것이 다를 뿐.

    “뭐, 스케줄 어떻게 맞췄다고 쳐. 나도 아직 이 바닥 베테랑이 아닌데 누굴 가르친다는 거야?”

    “물론, 너 혼자 하는 건 아니야. 파트 나눠서 몇 명 같이 들어 갈 거야.”

    “그러면 사람이 너무 많잖아. 몇 명이나 출연하는데?”

    “선생 역할로 셋. 학생 역할로 아홉.”

    “열 둘? 과해. 그렇게 많으면 샷도 다 못 받을 텐데. 의미가 있겠어?”

    숫자가 많으면 카메라가 분산된다.

    이건 예능의 기본 중 기본이었다.

    “어차피 애들은 병풍이야. 중요한 건 네가 애들을 가르쳐 주는 모습. 그리고 평소 생활 습관 같은 거지.”

    “전에도 3일 관찰 때린 적 있구만 뭘.”

    “그때랑은 또 다르지.”

    “됐고, 숫자 좀 줄여. 드리고 애들 병풍으로 쓰지 마. 만약 내가 가르쳐야 할 컨셉이면 진짜로 할 거야. 가르침 받을 만 한 애들로 추려서 보내.”

    “그러면 예능 방향성이 달라지는데······”

    “시늉만 하기는 싫다 이거야. 아니다. 차라리 나한테 뭐라도 배우고 싶은 애들이 있으면 응시하라고 해.”

    “응?”

    진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각 기획사들이 있잖아. 뭐라도 싹수가 보이고 열정이 있는 애들을 나한테 보내라고. 내가 반 방송국이 절반. 이렇게 뽑아서 진행하자.”

    “또 일 복잡하게 만드네.”

    “싫음 관둬. 시늉만 할 거면 안 한다고.”

    “끄응. 그래, 네가 갑이지.”

    “이제 아셨어요? 을 형님. 어떻게 할 거야?”

    “어쩌겠냐. 갑이 하라면 해야지. 일단 국장님하고 상의 해 볼 테니까 전화 씹지 마.”

    “알았어.”

    일차적인 합의가 끝났다.

    하지만 서훈이 결정권자도 아니고 조금 더 조율이 필요했다.

    “그리고 형. 가기 전에 나랑 고기 좀 먹자. 살이 왜 이렇게 빠졌데?”

    “네가 쏘냐?”

    “어. 내가 살게. 형 얼굴 보니까 도저히 못 얻어먹겠다.”

    “하하. 역시 성공한 동생 있으면 좋단 말이야.”

    두 사람은 근처 소고기 집에서 5인분을 해치웠다.

    이럴 작정으로 살을 뺀 것처럼 서훈은 화끈하게 먹었다.

    ‘기회 있을 때 많이 먹어야지.’ 라며 이 쑤시는 서훈의 모습은 사회인 다 되어 있었다.

    #

    며칠 뒤 정식으로 회사에 문의가 들어왔다.

    서울 외곽 한적한 저택을 빌려서 교습소를 여는 형태였다.

    진호가 말 한 방식이 채택되어 이미 여러 기획사에 공문을 돌린 상태.

    지원자를 추려서 보내 온 곳도 많았다.

    “여기는 오디션 프로그램 나갔다가 떨어진 애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네.”

    “오디션 코리아요? 1회전에 떨어진 애들만 잔뜩 모아놨네.”

    “쯧쯧. 대충 애들 보내서 홍보나 하려는 모양이네. 애들은 전부 재끼자.”

    반응은 꽤 갈렸다.

    적극적으로 인원을 추려서 보내 온 곳이 있는 가 반면 회사 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을 추려서 보내 온 곳도 있었다.

    온도 차이는 극명했다.

    “대형 기획사는 미지근하네요.”

    “아무래도 그쪽은 좀 그렇지. 대형 오디션도 아니고 자기애들 풀어서 가르침 받는 것도 모양새가 썩 좋지 않으니까.”

    “그래서 3군 정도로 보낸다 이거네요.”

    “나가서 뜨면 좋고 아니면 말 애들이지.”

    급한 건 중소 기획사였다.

    이쪽은 아예 신상명세서를 자세하게 띄어서 보내왔다. 이번을 기회로 삼아서 제대로 한 몫 잡을 야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역시 기획사 별로 역량 차이는 확실히 보이네요.”

    “괜히 대형이 대형이겠냐. 가르치는 방식도 노하우도 작은 곳과는 다르지. 일단 실력 좀 있다는 애들은 전부 큰 곳으로 몰리잖아.”

    대형 기획사 3군이라도 중소 기획사 1군보다 실력이 좋았다.

    배우는 방식 차이도 있지만 애초에 재능 있는 인력이 대형 기획사로 몰리기 때문이었다.

    서류는 수십 장이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아. 서훈 형만 아니면 캔슬하고 싶다.”

    “힘들면 그냥 안 한다고 해. 빚진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이미 한다고 했는데. 없는 사람이라도 잘 추려서 해 봐야죠.”

    서훈의 퀭한 눈빛이 떠올라 차마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진호가 입맛을 다시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으면 그냥 열정으로 보죠.”

    “실력보다 열정으로?”

    “고작 며칠 본다고 실력이 급상승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럴 거면 열정이라도 있는 사람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가르치는 저도 기분이 날 거고.”

    “그래.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

    당장의 실력보다는 배우려는 열정으로.

    진호가 수북하게 쌓인 서류를 다시 처음부터 뒤적였다.

    #

    예능 구성 인원이 결정되었다.

    선생 역으로 둘. 제자 역으로 여섯.

    기간은 전과 동일하게 2주에 한 번 합숙하여 3일을 보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스케줄에 난색을 고한 이들이 여럿이었지만 출연 조건으로 못 박아 두었다.

    어중간하게 왔다갔가 할 거면 안 하는 편이 낫다는 진호의 말 때문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서훈 선배.”

    “그래. 오랜만이다. 연극은 잘 하고 있지?”

    “에이 씨. 저번 무대 끝난 지가 언제인데.”

    “그, 그랬냐. 미안하다. 요즘 바빠서.”

    은서가 진호를 제외한 다른 선생 역으로 합류했다.

    나이가 적어서 제작진 쪽에서는 꽤 고민했지만 아이돌 경력에 배우 커리어까지 있는 그녀가 제격이라는 말에 선택을 했다.

    “오늘은 이렇게 셋만 모이는 건가요?”

    조금 늦게 진호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프로그램 들어가기 전 사전 미팅이었다.

    서훈을 포함한 프로그램 관계자들과, 주요 출연자 셋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나머지 애들은 그냥 현장에서 처음으로 만나기로 했다. 한 번 보고 가면 반응이 예쁘게 안 나오잖아.”

    “그거야 뭐 형이 선택하는 문제고. 따로 만나는 봤지? 괜찮을 거 같아?”

    “잠깐 만난 건데 어떻게 아냐? 겉보기로는 다들 싹싹해 보여. 열심히 하겠지.”

    제작진은 합류할 인원을 미리 접촉해 봤다.

    인터뷰를 따고 몇 가지 영상을 사전에 제작하기 위해서.

    “근데 서훈 선배. 이거 비율이 좀 안 맞지 않아요?”

    “응? 뭐가?”

    “성비가 너무 한 쪽으로 쏠려서요. 여섯 명 중 다섯이 여자잖아요.”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니, 그런 말 말고요. 이렇게 성비 어긋나면 시청자들이 뭐라고 안 할까요?”

    은서의 눈이 부리부리하게 빛났다.

    주변에 다른 제작진들이 있는 터라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여탕이냐고.

    “야, 야.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다 괜찮은 애들이니까 신경 쓰지 마. 진호 주변에 여자애들 모여서 배우고 그러면 화면도 예쁘고 좋겠네.”

    “쓰읍. 이 아저씨가 어느 시대 감성으로 답을 하시나.”

    “어이, 야. 포크로 찌르겠다?”

    “찌를까 생각 중이에요.”

    “놓고 말 해. 너도 알잖아. 이번 프로그램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호야. 다른 남자 출연자 늘리면 시선만 분산된다고.”

    은서가 윗입술을 씰룩이다가 참았다.

    마음 같아서야 포크로 콱 찌르면서 성비 바꾸라고 말 하고 싶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진호 오빠는 이거 마음에 들어?”

    “다들 연습생 연차가 짧아서 걱정이다. 잘 따라오려나 모르겠어.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짜 봤는데, 너무 타이트 할 거 같고.”

    “아니 그거 말고.”

    “열심히 하면 되지. 남자고 여자고가 뭐가 중요하겠냐. 서훈 형도 그렇게 생각 한 거지?”

    “으, 응. 그럼. 역시 진호가 내 마음을 잘 아네.”

    은서가 서훈과 진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 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눈빛을 하고 있다.

    이래서야 화내는 게 우스운 형국이다.

    “그래서 뭐. 우리 피디님은 프로그램 구성을 어떻게 해 오셨나?”

    “몇 가지 지침은 있는데, 기본은 자율이야. 다만 예능이니까 가볍게 게임은 할 거야. 연습 과정을 몇 개의 게임으로 풀어서 식생활을 충당 하는 걸로.”

    “그저 게임. 하여튼 방식 구닥다리야.”

    “야, 야. 위에서는 예능에 게임 없으면 안 된다고 하잖아. 구색 맞추기로 몇 개만 해라.”

    “흥.”

    트렌드를 따르는 척 하지만 어딘가 고리타분한.

    진호가 섞여 있지 않으면 시청률을 책임 질 수 없는 그런 예능이었다.

    “일단 좀 먹으면서 얘기하자.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제작비에서 나가는 거면서.”

    “이거나 그거나.”

    서훈은 여전히 불만 많은 은서를 음식으로 막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형이 왜 말라가는지 알 것 같다.”

    “······그래. 알아주니 고맙다.”

    참 사회생활 어렵다.

    서훈이 공깃밥 위에 올라온 고기 한 점에 뭉클해졌다.

    얻어먹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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