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56. 이런 전생은 처음이야(2)
진호는 숱한 전생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 전생들이 별자리처럼 연결된 채 다른 세계에 집약되어 있음도 이해했다.
죽은 영혼이 옮겨가게 되는 사후세계라고 해야 할까.
완벽한 형태를 안 것은 아니나, 대충의 흐름은 짚어냈다.
하지만 숱하게 체험한 전생들 중 어느 것도 진호 자신과 대화가 통했던 것은 없다.
애초에 죽고 없는 자의 흔적을 밟아가는 것에 불과하니까.
“신기하군. 어떻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조금 더 선명해진 목소리를 내며 송준찬이 주변을 배회했다.
뿌연 연기처럼 흐려져 있긴 하지만 주변과 구별되는 형태는 확실히 있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어떻게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지? 여태까지 봐 왔던 전생들은 이런 적이 없어.”
“전생이라? 내가 네 지난 삶이라는 건가?”
“······아니. 그런 의미의 전생이 아니야. 말 그대로 지나간 삶. 난 죽은 이의 삶을 경험 할 수 있다.”
“죽은 자의 삶을 경험한다! 넌 뛰어난 무당이겠구나!”
“난 무당이 아니야. 너도 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홍 진호. 배우 홍진호다.”
“홍 진호? 배우? 진짜로 네가 그 홍진호라는 거냐?”
송준찬의 형태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사람이 놀랐을 때 보이는 감정 표현과 비슷했다.
“배우 홍진호가 무당이었다니. 놀랄 노자로군.”
“무당 아니라니까. 그보다 넌 내 얼굴이 안 보이는 거냐?”
“어. 며칠 전만 해도 보였는데 갑자기 안 보이기 됐다. 아마도 이승에서의 끈이 옅어져 가는 거겠지. 보통 49제라고 하지 않더냐. 시간 채우면 나도 떠나는 거겠지.”
“49제라.”
그 안에 죽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것일까.
진호는 송준찬의 형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쩌면 죽은 직후에는 인간의 형태를 온전하게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 마침 잘 됐다. 네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저 아이에게 좀 전해다오.”
“선아?”
“오. 선아라고 하는가? 재능은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가르쳐 주는 이가 없지 않나. 죽은 귀신의 소원이라 생각하고 내 말을 좀 전해 다오.
“그게 소원이야? 생전의 억울함이나 그런 건 없어?”
“하하. 억울한 거라면 일찍 죽은 것 밖에는 더 없지. 이제 와서 누구한테 하소연 하겠는가. 내가 이리 끌려 온 것도 저 아이와의 만남 때문 일 터. 길을 인도하고 떠나면 그것도 나름 방법이겠지.”
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로 안다.
하지만 말하는 투는 인생 오래 산 명인의 그것이다.
죽어서 그렇게 된 것이든, 본래 성격이 그런 것이든 진호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걸로 성불 할 수 있다면.”
“좋아. 약속 한 거다.”
49제까지.
귀신 작곡가와 거래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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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는 조금 이상한 눈으로 진호를 봤다.
어쩐지 평소의 진호와는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자꾸 허공을 곁눈질로 보는 것도 그렇고 의미 없이 끄덕이는 고개도 그러했다.
게다가 뜬금없는 제안 역시.
“작곡 한 걸 봐 주신다고요?”
“그냥 옆에서 조금 도와주려고.”
“오빠, 작곡도 배운 적 있어요?”
“일단 그렇다고 해 두자. 의문은 접어두고 일단 해 보는 걸로. 조금 전에 하던 노래가 이거지?”
진호가 에둘러 답하고 노트를 손으로 짚었다.
여러 번 고쳐 쓴 티가 역력한 작곡 노트였다.
— 하하. 열심히 했군, 열심히 했어. 자자, 부족한 점을 지적할 테니 잘 들어서 전하라고.
울리는 목소리에 작게 끄덕이며 진호가 대변했다.
멜로디, 화음, 전조 등.
선아가 작곡한 노래에서 부족하다 싶은 곳들을 지적했다.
처음에는 뭔가 싶어 보기만 하던 선아도 바뀐 노래가 훨씬 풍부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이, 이렇게 하면 되는군요. 와. 전 상상도 못 했어요. 굉장히 독특한 코드 진행이네요.”
“그래?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다 뿐이겠어요? 이건 엄청난 거라고요. 제가 직접 고치려고 했다면 몇 년이 걸려도 알아내지 못할······”
진지한 감탄에 이번엔 진호가 조금 놀랐다.
천재 작곡가라는 이름만 알았을 뿐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놀랄 정도면 정말로 뛰어났나 보네.’
이른 나이에 요절 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 저 아이. 확실히 재능이 있어. 제대로 가르치면 뛰어난 작곡가가 될 거라고.
아쉬움은 송준찬도 마찬가지였다.
선아는 기초가 안 되어 두서없이 작곡을 했을 뿐, 재능은 차고 넘쳤다.
제대로 가르친다면 자신 만큼 훌륭한 작곡가가 될 재능이 충분했다.
“완성 된 곡으로 한 번 불러볼까?”
“아직 가사를 안 붙여서······”
“주제는 정했지?”
“네. 희망찬 노래에요. 포기하자 말자, 좌절하지 말자. 이런 느낌으로요.”
“그렇단 말이지. 잠깐 있어 봐.”
진호가 멜로디를 쭉 훑은 뒤 가사를 써내려갔다.
그에게는 명 문장가들이 더러 존재했다.
지금의 트렌드와는 안 맞을지 모르나 문장의 유려함이라면 모자람이 없었다.
“······와. 이건 거의 시조인데요?”
“일단 이걸로 대충 불러 봐. 괜찮겠지?”
“대충 부르기에는 가사가 너무 아까워요.”
“아까우면 열심히 부르고.”
진호가 손짓하고 선아가 마이크 앞에 섰다.
반주는 오로지 기타 하나.
퉁퉁, 두드리는 손짓에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오오. 승천한다!”
“······아직 승천하면 안 되지.”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라니. 제대로 부를 때는 완전히 다르군.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야. 재능.”
송유천이 승천 할 뻔 했다.
실제로 몸이 있었다면 침을 마구 튀었을 정도로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 오오. 악상이 떠오른다! 이봐 가만히 있지 말고 받아 적어! 내 유작이라고, 유작!
죽은 뒤에 쓰는 것도 유작일까.
진호가 한 쪽 귀로는 선아의 노래를 듣고 다른 한 쪽 귀로는 송유찬의 곡을 받아 적었다.
‘공사가 다망하구나.’
어디선가 제갈량이 껄껄 거리며 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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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더 활발해 지는 걸까.
송유찬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곡을 찍어냈다.
선아의 목소리가 영감을 자극한다나.
하나하나가 훌륭한 곡이니 손해 볼 건 없었지만 중간에 끼인 진호는 피로감이 굉장했다.
“혹시 너 과로로 날 죽여서 같이 데려갈 심산이냐?”
“하하하. 배우라 그런지 농담이 실하군. 내가 예쁜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왜 데리고 가겠냐?”
“그럼 곡 좀 작작 써. 받아서 적는 것도 일이라고.”
“쯧쯧. 같이 예술로 밥 벌어먹는 입장에서 배려심 하고는. 내 곡들이 어디 시장통 싸구려인줄 아냐? 49제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남기고 가야 한다고.”
송유찬은 꿋꿋했다.
어차피 이미 죽은 몸.
창피할 것도 피곤할 것도 없었다.
생전에 못 다한 곡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저기, 진호 오빠. 오빠는 배우가 본업이죠?”
“어. 배우가 본업이지. 왜?”
“무슨 배우가 작곡을 이렇게 해요? 이거 곡만 줘도 평생 먹고 살겠다.”
“그러게. 나도 작작 좀 작곡하고 싶다.”
덕분에 진호를 보는 선아의 눈이 또 달라졌다.
존경을 넘어서 괴이함 수준.
하루에 몇 곡씩 써 내려가는 모습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송유찬. 작곡한 곡을 건네 줄 사람은 없는 거냐?”
“곡을 줄 사람?”
“응. 가족이라든지. 가까운 사람. 곡 보는 눈은 없어도 네가 만든 거면 수준이 높을 거잖아. 쓰임에 따라 도움이 될 텐데.”
“난 결혼도 안 했고 친한 사람도 없어. 그냥 음악이 좋아서 일만 했다고.”
“그러냐.”
진호가 인터넷으로 조사하기로도 그랬다.
송유찬은 불세출의 천제였지만 대인관계에서는 빵점이었다.
가족도 없고 친하다 말 할 사람조차 전무했다.
귀신인 지금 상태가 되레 살아있을 때보다 친근하다 평 할 정도.
“아. 생각해보니까 죽기 전에 바람이 하나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뭔데? 가능하면 들어줄게.”
“내 곡들.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널리 불렸으면 하는 거.”
“······너도 천생 아티스트구나.”
곡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작곡가.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송유찬에게는 그 말이 진실 그 자체였다.
“네가 수정해준 선아의 곡에 새롭게 만든 곡 몇 개 더해서 앨범으로 쓸게. 그리고 어울릴 만 한 사람을 찾아서 곡을 전달해 주마.”
“적어도 선아 수준은 돼야 해. 아니면 절대로 곡을 전해주지 마.”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난 송유찬이야. 나 송유찬의 곡을 어설픈 인간이 쓰는 건 용납 할 수 없어.”
자부심 가득한 아티스트.
어쩌면 이것이 미련으로 남아서 이리 배회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작권료 받으며 묘비라도 화려하게 만들어 줄까?”
“천재 작곡가, 송유찬. 음악을 꿈꾸다. 이렇게 써 줘.”
“특대 형으로 박아주마.”
이 정도면 남는 장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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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부 기자들이 단체로 어리둥절해 하는 사건이 생겼다.
영화 OST로 반짝 뜬 가수가 미니 앨범을 선 공개하는데, 작곡가 목록에 익숙한 이름이 섞여 있었다.
“홍 진호? 배우 홍 진호 말하는 거지?”
“네. 그 홍 진호 맞아요. 블루 아이에 확인 해 보니까 즉답해 주더라고요.”
“허. 뭐지? 원래부터 음악적으로 소양이 있었나?”
“글쎄요. 노래 부르는 영상이 있긴 한데, 썩 훌륭한 솜씨는 아니었죠. 이번 OST만 봐도 그냥 묻어 갈 정도지 실력자라고 하기에는······”
배우라고 음악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소양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보통 다양한 활동을 한다.
노래도 마땅치 않은데 음악을 배운 경력도 없다.
갑자기 작곡가라고 등재되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이거 쇼하는 건가?”
“이름 값 업고 가는 거요?”
“그렇지. 블루 아이가 배우 쪽 말고 가수 쪽으로 영역을 넓힌다며. 그 첫 번째가 선아야. 하지만 그래봐야 신인이잖아. 인기몰이 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힘들지.”
평은 비슷하게 나왔다.
인지도를 이용해서 가수를 띄우겠다는 수작.
아마도 곡은 돈 주고 산 뒤에 이름만 빌려 온 것으로 단정 지었다.
“지금 만들어 둔 곡만 200개가 넘어요. 선아 씨를 필두로 음악적 색이 맞는 친구들에게 계속 건네 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공개 인터뷰에서 진호가 의견을 밝히며 이런 평들이 한 번에 반전되었다.
자작곡이 무려 200개 이상.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적어도 임시방편으로 곡을 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나요?”
“곧 공개 될 앨범에서 노래를 확인해 보세요. 대부분은 선아 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들이지만 일부는 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두 분이 모두 작사 작곡을 했다는 건가요?”
“네. 받아서 쓴 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되레 이슈로 불거지며 입소문만 탔을 뿐이다.
천재 배우가 작곡까지 한다, OST로 입소문을 탄 목소리 좋은 가수가 작사 작곡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 그래도 네 노래인데.”
“하하. 됐다. 노래가 남아 좋은 사람을 통해 불려 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부와 명예보다 선율을 사랑하다가 떠나는 것이 내 삶의 의의니까.”
“낭만적이네.”
“묘비에 한 줄 더 적어 줘. 낭만적으로 살다 간 아티스트 송유찬이라고.”
“궁서체로 해주마.”
그렇게 49일이 되는 날.
뿌옇게 나타났던 송유찬은 한 점의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자신의 것이라 말 할 수 없는 수많은 곡을 남긴 채.
“진호 오빠. 이 곡은 제목이 뭐에요?”
“Pray for song.”
“노래를 위해 기도하다?”
송을 위해 기도하다.
진호가 그에게 남긴 유일한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