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23화 (123/178)
  • Chapter55. 참으면 호구다(2)

    영화 편집 작업이 마무리 과정에 들어갔다.

    진호도 작업에 참여해서 장면들을 덜어냈다.

    감독인 서덕찬은 그의 의견을 상당히 존중해 주었다.

    처음에는 못미더워 하던 그가 지금은 그를 가장 인정했다.

    “영화 괜찮게 뽑혔네요.”

    “진호 씨 덕분입니다.”

    “전 그냥 연기만 했죠. 감독님이 잘 뽑아주신 덕분입니다.”

    덕담이 스스럼이 없이 나올 정도로 영화가 괜찮았다.

    화려한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가족 영화의 흐름을 잘 탔다.

    게다가 여러 가지 상징과 철학적 사유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음에도 그걸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예술 6에 상업 4정도라고 하면 될까?

    완성본을 확인한 사람들은 손익 분기점은 쉽게 넘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확실히 진호 씨 이름값이 있긴 있나 보네요. 영화제 초청과 함께 수입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어요.”

    “어디에서요? 중국? 미국?”

    “아뇨, 일본이요. 자막 달아서 수정 없이 개봉을 원하고 있어요. 일본 쪽 배급사는 제법 센 곳이 붙었더라고요.”

    손가락으로 글자를 슥슥 새겼다.

    JJ보다는 규모면으로 열 배 이상 되는 배급사였다.

    “신기하네요. 아직 일본하고 관계가 썩 좋은 상태는 아닌데.”

    “공연 덕 좀 보는 거죠. 수요는 많은 공급이 없다보니 저예산 영화라도 양 팔 벌려서 환영하나 봅니다.”

    “나쁘지 않네요. 일본에서 영화 성적이 좋으면 되레 역수입 효과도 있을 수 있으니.”

    저예산 영화는 아무래도 관을 확보하기 어렵다.

    배급사가 작은 곳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일본에서 흥행을 하면 역풍 받아서 관이 늘어 날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럼 시사회 날짜는 윤 대표가 통보 할 겁니다.”

    “네. 그날 뵙죠.”

    영화는 이제 마무리 단계.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었다.

    #

    “아직도 이사를 안 한 거냐? 그냥 2사옥으로 들어오라니까.”

    진호가 음원 이야기로 선아를 찾았다.

    어영부영 무거운 엉덩이를 걸친 채 아직도 이사를 안 가고 있었다.

    “일만 끝나면 집 알아볼게요. 요즘은 너무 바빠서 틈 내기가 어려워요.”

    “대표님한테 말해서 사람 한 명 빌려달라고 해. 아니면 2사옥으로 오라니까. 불편해?”

    “······조금요. 갑자기 너무 신세지는 거 같고.”

    “아이고야. 너도 참 힘들게 산다.”

    좁은 집구석에서 미지근한 콜라로 입을 축였다.

    그깟 2사옥이 뭐라고.

    진호는 쉽게 말하지만 선아 입장에서는 이미 받은 게 크다보니 미안한 마음이 컸다.

    당장 계약금이라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못 만져 본 거액이었다.

    “대표님한테 음원 이야기는 들었지?”

    “네. OST를 정식 음원으로 낸다고 했어요.”

    “그래. 확실하게 이름을 알려야지. 이거 등록되면 너도 명실상부한 가수가 되는 거야.”

    “······가수.”

    발그레한 볼과 슬슬 벌어지는 입을 막기 어렵다.

    선아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어제 엘빈한테 연락이 왔다. 네 노래 들었다고, 한 번 보자더라.”

    “······엘빈이요?”

    “그래. 엘빈. 너도 알지? 저번에 트루 엔딩인가? 그 노래로 빌보다 1위 한 애.”

    알다 뿐일까.

    젊은 층에서 엘빈이라면 닮고 싶은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이다.

    “엘빈하고 개인 친분이 있어요?”

    “있지. 예전에 엘빈이 내 팬이라고 찾아 온 거 모르냐? 그때부터 연락 주고받는 사이야. 서로 팔로우도 했고.”

    “······와. 엘빈은 어때요? 성격 좋아요? 평소에 막 활발하고 그러나?”

    “그건 나중에 오면 직접 물어봐. 시사회에 맞춰서 들어온다고 하니까.”

    선아가 꿈꾸는 소녀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 음악 작업 곁가지만 하던 입장에서 지금은 음원도 내고 팝 스타와 대면하는 처지가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이 아닐까 하고 묻곤 한다.

    “그럼 할 얘기는 다 했으니까 나가자.”

    “나가요? 어딜요?”

    “밥 안 먹어? 송학 형이 근처에 돼지갈비 기가 막히게 하는 곳 안다더라. 가서 좀 뜯고 오자.”

    “같이······말이죠?”

    “그래. 같은 소속사 식구잖아. 내외하지 말라고.”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

    신나게 갈비를 뜯었다.

    처음에는 조신하게 먹던 선아가 어느 순간부터는 전의를 드러내더니 판을 연달아 갈아엎었다.

    가게 주인이 껄껄 거리며 ‘도전자가 나타났군!’이라고 웃었을 정도.

    “차, 창피해요!”

    “이제 와서 무슨. 가게에 사인까지 붙여 둔 이상 빼도 박도 못한다고.”

    “으. 첫 사인이 갈비집이라니.”

    든든하게 배를 채우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진호가 집까지 에스코트했다.

    평소 다니던 길이라 괜찮다고 선아는 만류했지만, 시커먼 동네는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였다.

    “이제 저기 골목만 돌면 집이에요. 들어가 보세요.”

    “그래. 대표님이랑 음원 얘기 잘 하고. 시간 나면 이사 갈 집은 알아보는 거다. 알았지?”

    “알았어요. 누가 보면 진호 오빠가 엄마인지 알겠네.”

    “내가 업어 키우는 애들이 여럿이다, 이것아.”

    진호가 장난스럽게 툭툭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꺅—!”

    그리고 그 걸음이 채 셋이 되지 않았을 때.

    날 선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에 헤어진 선아의 것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지, 집 안에 누가 있어요!”

    선아의 손이 가리키는 곳은 반 지하 창문.

    누군가 쇠창살을 잘라 낸 채 그 틈을 기어서 나오고 있었다.

    “너, 여기서 경찰에 신고부터 해.”

    “아, 네!”

    선아를 뒤로 물려놓고 진호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틈바구니에서 바동거리던 괴한도 막 밖으로 빠져나와 거리로 달리던 차였다.

    “거기 서, 새끼야!”

    이런 걸 놓치면 전생이 운다.

    진호의 발이 지면을 차고 두 번째 가속을 했다.

    몸이 앞으로 쑥 빨려 들어가서는 괴한의 가슴팍을 낚아챘다.

    콰앙!!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상당히 컸다.

    “으, 으악!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가만히 있어! 도둑놈의 새끼가 어디라고 떠들어!”

    “으아! 시팔! 이거 놔!”

    발버둥치는 걸 무릎으로 콱 찍었다.

    그제야 억 소리를 내며 바동거림이 멈췄다.

    진호는 아예 팔까지 뒤로 꺾어서 제압 한 뒤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던 스키 마스트를 벗겼다.

    “하, 하지 마! 아이 시팔!”

    “······애잖아. 너 몇 살이냐?”

    “아아! 이거 놓으라고! 그거 알아서 뭐하게!?”

    잘 해 봐야 십대 후반.

    얼핏 보기로는 고등학생 정도였다.

    “너, 여기서 뭐하려고 한 거야?”

    “아, 짜증나! 그냥 장난 좀 친 거라고! 별로 가져나온 것도 없어! 팔 아프니까 풀어 달라고!”

    “이 미친 새끼를 봤나. 너 지금 도둑질 하던 거 현행범으로 걸린 거야. 경찰서 가서 빨간 줄 그어볼래?”

    “하든가. 그래봐야 훈방 정도겠지. 경찰서라고 하면 내가 뭐 무서워 할 줄 알았냐?”

    경찰서라고 대번에 겁먹지 않았다.

    되레 할 테면 해 보라는 듯 강하게 나왔다.

    “하. 요즘 애들은 약아 빠졌다더니. 너 부모님 죄다 소환해서 달달 볶여봐야 정신 차릴 거냐?”

    “그럼 뭐 어쩌게? 난 깜방 갈 것도 아닌데? 괜히 일 키우지 말고 이거나 푸시지? 저기 저 년, 가수인데 이런 일에 휩쓸려도 괜찮은 거냐?”

    소년은 눈알을 굴려서 선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며칠 전의 그 중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아아아! 팔! 팔!!”

    “부러지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라.”

    이런 쓰레기와는 더 이상 말 섞고 싶지 않았다.

    팔을 힘껏 꺾으며 경찰을 기다렸다.

    10분 뒤, 경찰이 도착했다.

    #

    경찰이 도착하고 나서도 난리였다.

    일단 현장에 있는 사람이 진호였으니까.

    연예인이 얽힌 사고다 보니 경찰들도 행동을 조심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에게도 연락했습니다. 조만 갈 도착 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서에서는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연락처를 알아내 부모에게 전화를 걸고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고개 빳빳하게 들고 설치던 놈도 경찰서에서는 그래도 조금 주눅 든 모습이었다.

    “아, 진짜. 별 거 안했다니까요. 그냥 우리끼리 내기해서 연예인 물건 하나 챙기려고 갔을 뿐인데.”

    “그게 절도라고, 이 멍청한 놈아.”

    “뭐, 대수라고. 집구석이냐고 아주 거지꼴이라서 가지고 갈 것도 없더만. 뭔 가수가 저래.”

    “입 조심해라. 자꾸 떠들래?”

    상황이 매우 뚜렷하다 보니 조사 할 건 많지 않았다.

    놈도 배짱을 부릴 뿐 자기가 한 일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이고, 내 새끼! 경찰서가 뭔 말이냐. 응?”

    “아! 엄마.”

    그 순간, 도둑놈의 어머니가 도착했다.

    멋 부린 복장에 오밤중의 선글라스.

    평범한 주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어머나, 세상에. 진짜로 진호 씨네.”

    “지금은 딱히 인사 할 만 한 상황이 아니네요. 이 쪽 어머니 되십니까?”

    “네, 네. 근데 우리 애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혹시 진호 씨와 무슨 시비라도 붙은 건가요?”

    “제가 아니라 이쪽입니다. 소속사 식구인데 이 친구 집을 저쪽이 털다가 저한테 잡힌 거죠.”

    진호가 턱짓으로 도둑놈을 가리켰다.

    “아, 그냥 장난이었다고요. 애들끼리 내기해서 진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니까 진호 씨랑 엮인 문제는 아니라 이거지?”

    “내가 뭐 있는 줄 알았나? 애들이 그냥 그 집에 가수 산다고 뭐 하나 집어 오라고 한 거야. 내가 때리기를 했나 성추행을 했나. 죄도 없구만.”

    “어휴, 그런 거였니? 난 또 큰 잘못을 한 거라고. 놀랐잖아, 이것아!”

    “아! 아! 아프다고!”

    놈의 모친은 소리만 크게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심각하게 질책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이고, 진호 씨. 그리고 그쪽은······?”

    “선아입니다. 유선아.”

    “네, 네. 유 선아 씨. 보니까 우리 애가 어린 나이 호기심으로 실수를 한 거 같은데,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실수요?”

    “뭐, 애들이 다 그렇죠. 저들끼리 내기 한다고 낄낄 거리다가 실수 한 거 같은데. 내가 뭐 사죄 의미로 몇 푼 드릴 테니까 그걸로 그만 합시다.”

    선아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이런 상황에 대한 내성도 대처 방안도 알지 못했다.

    “저기, 아주머니.”

    “네. 진호 씨.”

    “실수라는 건 의도가 없이 벌어진 일을 의미해요. 그쪽 아드님은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선아의 집을 침입했고요. 차이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봐야 애가 한 일인데요. 너무 과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과하다니. 그쪽 아드님이 무슨 열 살 짜리 아이입니까? 보아하니 못해도 고등학생 같은데. 그 나이면 성인하고 다를 게 없어요.”

    진호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상황도 짜증나는데 이를 대처하는 여자의 태도가 더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어머나. 진호 씨 그렇게 안 봤는데 굉장히 박하네요. 애가 철이 없어서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지. 어쩜 그거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해요?”

    “철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실수가 있고 아닌 실수가 있는 겁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가택침입을 했는데 그냥 웃고 넘기라는 겁니까?”

    “아니면 뭐 어쩌게요? 우리 애 콩밥이라도 먹일 셈입니까?”

    말문이 막히자 배 째라는 듯 나왔다.

    도둑놈의 심보가 어디에서 나온 건지 훤히 보였다.

    “저기, 진호 오빠. 너무 일 커지는 거 같은데 그냥 수습하고 말죠?”

    그러자 보다 못한 선아가 속삭였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진호가 고생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야.”

    “네?”

    “내가 말했지. 이제부터 너 자신은 스스로가 보호해야 한다고. 저런 잡범 따위는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숱하게 봐. 아주 별별 놈들이 다 있다고.”

    진호가 잡범1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여기서 저런 놈 봐주면 어떻게 될까? 잡범 2나오고 잡범 3나오는 거라고. 한 번 봐주면 그냥 그런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호구 잡히는 거라고.”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는 거 같아서요.”

    “걱정 마. 지금 이 시간까지 여기서 죽치는 건 부모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자 할 뿐이니까. 괜찮다 싶으면 잘 교육한다는 보장 받으며 끝낼 생각이었지만 이젠 아니지.”

    “그럼요?”

    “고소해야지.”

    “고소!?”

    놀란 목소리는 선아가 아닌 잡범1의 어머니였다.

    “조만간 고소장 전해 드리죠.”

    “아, 아니 잠깐만요. 연예인이면 이런 일 커져서 좋을 게 없잖아요. 뭐하니, 넌! 어서 사과 안 드리고?”

    “됐습니다. 그런 건 이쪽에서 거절하죠. 조사에는 충실하게 응하고 제대로 법적 절차 밟아서 고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호는 아예 등 돌리고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지 어쩌고 하면서 대충 무마하지 않습니다. 죄 지은 놈이 있으면 벌 받아야죠. 고통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받는 겁니다. 고소장 받고 어디 제대로 고민해 보세요.”

    “진호 오빠. 정말로 이래도 돼요?”

    “너도 보고 배워. 겸손과 사랑은 팬에게나 주는 거야. 저딴 놈에게는 절대 고개 숙이지 마라.”

    “······네. 네!”

    빳빳하게 앉아 목소리 높이는 진호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든지.

    선아는 눈을 반짝이며 답에 힘을 실었다.

    ‘닮고 싶다.’

    작은 꿈을 가슴에 담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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