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22화 (122/178)
  • Chapter55. 참으면 호구다(1)

    OST작업이 끝나고 영화 촬영도 막바지로 돌입했다.

    주인공 역의 진호와 누나 역의 전수영의 갈등이 최고조로 도달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나는 안 그랬는 걸. 누나가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적 없는데.”

    겨우 가족들 사이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전수영.

    동네 사람들의 ‘돈을 노리고 돌아 온 거 아니야?’라는 수군거림에 감정이 곯다고 터졌다.

    “거짓말 하지 마! 너도 나 싫어했잖아! 누나라고 하나 있는 게 집구석 싫다고 도망이나 치고! 솔직하게 말 하라고!”

    “아,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누나, 떠났을 땐 미웠지만 돌아왔을 땐 너무 좋았는데. 엄마. 엄마도 그랬다고.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뭔데. 왜 다들 그러는 건데? 나만 나쁜 년이야? 나쁜 그렇게 이기적이야?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거냐고!”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편하고 싶은 마음, 가족의 편안함, 한 번 떠났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 등.

    자신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하지 마. 누나야, 하지 마라. 아픈 거 싫어. 아빠도 아프다가 죽었는데. 누나 떠나면 밉고 싫지만, 없으면 너무 슬프다.”

    “화를 내라고 멍청아! 넌 동네 사람들이 하는 얘기도 못 들었어? 나보고 썅년이라잖아! 집에 있는 몇 푼 안 되는 돈 노리고 돌아왔다고!”

    “하지만 누나인데. 나는 돈보다 누나가 좋은데.”

    “······멍청아. 그런 게 짜증난다고.”

    전수영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답이 같으니 메아리랑 싸우는 기분이었다.

    “누나, 바지에 흙 묻어. 내가 털어줄까?”

    “아아아! 짜증나. 너 왜 그렇게 짜증나는 거야. 나쁜 년이라고 그냥 확 욕해주면 안 돼?”

    “나쁜 년.”

    “어?”

    “했다. 헤헤. 했다. 이제 누나 편한 거지?”

    흙바닥에 나란히 누워서 웃는 진호.

    구김살 없는 그 웃음에 전수영은 몸에서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멍청아. 그렇게 좋아하다가 나 사라지면 어쩌려고.”

    “누나 없으면 슬프다. 밉다. 엄마랑 나는 아프다. 그래도 우린 가족이니까 이해한다. 누나가 또 돌아 올 거라 믿는다.”

    “······바보 같아.”

    전수영이 눈물을 훔치고 몸을 돌려 진호를 껴안았다.

    모자란 동생이 셈 빠른 마을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렇게 바보라고 말했음에도.

    “오케이, 컷!!”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

    저예산 영화라고는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촬영이 마무리되자 전체 내용을 함축한 예고편이 방영되었다.

    진호의 이름 덕분인지 조휘수가 상당히 나왔다.

    “반응은 썩 괜찮네요.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편이다.”

    평은 제법 갈렸지만 시도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영화 좀 봤다 싶은 이들은 ‘이미지 소모를 줄이기 위한 좋은 수단.’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협회 반응은 어때요?”

    “아. 안 그래도 그쪽에서 연락이 왔더라. 영화 잘 뽑힌 거 같다고. 이미지를 우습게 안 쓴 것 같아서 마음이 든다고 하더라.”

    “시사회에 초대하죠.”

    “이미 표 보내뒀어.”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수가 빠른 최현석이었다.

    “배급은 어때요? 관 확보가 쉽지 않을 텐데.”

    “실험적으로 관을 내주는 곳이 있긴 한데, 썩 마땅치는 않다.”

    “어쩔 수 없죠. 대형 배급사와 손잡은 것도 아니고, 감수 할 건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진호가 유명해도 결국 돈으로 돌아간다.

    제작 및 배급을 JJ에서 담당 한 이상 관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손익분기점이 얼마였죠?”

    “관객 수로 치자면 40만.”

    “그럼 목표는 40만으로 잡죠.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찍고 싶은 영화를 찍었다는 것으로 만족할래요.”

    “돈은 안 되지만.”

    “에이, 그래도 OST반응이 좋잖아요.”

    예고편과 함께 OST도 선공개 되었다.

    선아의 목소리와 예고편 영상이 맞물려 꽤 강한 파급력을 불러왔다.

    신인이기 때문에 주목도는 낮았지만 ‘노래가 좋다.’, ‘목소리가 훌륭하다.’라는 평은 확실히 받았다.

    제대로 탄력만 받으면 차트에도 충분히 랭크 인 될 저력이 있었다.

    “안 그래도 선아 덕분에 일이 산더미다. 내가 연기 쪽은 알아도 노래 쪽은 문외한 아니냐. 사람 모으는 일이 쉽지 않더라.”

    “자문이라도 좀 구해볼까요?”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엘빈 정도······?”

    “허. 빌보드 탑 찍는 가수를 자문으로 부르자고? 부른다고 오겠냐?”

    “해봐서 나쁠 건 없죠.”

    최근 듣기로 싱글로 빌보드 1위를 찍었다고 한다.

    활동은 마무리 되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부른다고 올 만큼 한가할지는 미지수.

    “돈 들여서 초대 할 만큼의 여력은 없다. 친분으로 꼬셔보고 안 된다 싶으면 말아.”

    “그냥 넌지시 물어나 볼게요.”

    “그래. 그건 너한테 맡기마. 난 다른 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서.”

    회사 규모가 커지다보니 최현석도 힘에 부친다.

    최근 들어 끙끙 거리는 날이 많아졌다.

    ‘전문가가 더 필요하려나?’

    진호는 스치듯 그리 생각했다.

    #

    “스토커가 있는 거 같아요.”

    예고편이 방영되고 며칠 뒤.

    세미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스토커? 너한테?”

    “아뇨, 나 말고 선아 언니한테요.”

    선아는 혼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반 지하 월 25만원.

    진호는 차라리 2사옥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아직은 결정하지 않았다.

    “선아가 그렇게 말했어?”

    “저번에 회사 식구 된 겸 해서 다 같이 놀러 간 적 있거든요. 그때 누가 따라오는 걸 봤는데, 선아 언니는 이미 아는 눈치였어요.”

    “경찰에 신고는? 다른 조치는 취했어?”

    “아뇨. 언니가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서.”

    세미가 역팔자 눈썹을 자랑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일단 신고부터 해야지. 또, 소심하게 가만히 있었던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이번 작업 신경 쓰는 거 같았어요. 괜히 소란 일고 그러면 평에 누가 될 거 같다고.”

    “영화랑 OST?”

    “네. 별 일 아니니까 그냥 조용히 있자고.”

    진호가 혀를 찼다.

    선아가 어떤 마음인지는 대충 이해를 했다.

    처음으로 낸 성과물에 괜한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괜히 그렇게 쉬쉬하면 더 기가 산단 말이지.’

    소란은 싫지만 그런 놈들이 기고만장하는 꼴은 더 싫다.

    “선아 집 알지? 같이 가 보자.”

    진호가 선택지를 골랐다.

    #

    전형적인 낙후 주택단지였다.

    재개발을 바란다는 걸개가 여기저기 붙어있고, 사채업자 딱지들이 몇 걸음 단위로 바닥에서 보였다.

    이런 곳 월 25만원이면 되레 비싼 가격이었다.

    “여기야?”

    “네. 저번에 왔다가 깜짝 놀랐어요.”

    “계약금도 두둑하게 줬는데, 후딱 이사를 갈 것이지.”

    선아의 집은 낙후된 동네에서도 안 좋은 집이었다.

    반 지하에는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고 들 고양이들이 순찰하듯 주변을 배회했다.

    집 창문 너머로는 전날 회식의 증거품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쿵쿵.

    진호가 초인종도 없는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헉! 진호 오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던 선아.

    문 앞의 진호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근데 할 말이 있어서.”

    “으, 으아아. 잠깐만요. 나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지금 오후 세신데?”

    “아주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주실래요?”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아가 황급히 문을 닫았다.

    철제 문 너머로 우당탕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진호 샘. 저기요, 저기.”

    “응?”

    그때, 세미가 진호의 소매를 당겼다.

    시선은 정면으로 한 채 눈알만 굴려서 구석 쪽을 가리켰다.

    ‘중학생?’

    잘 해 봐야 그 정도.

    어린 티가 역력한 학생들이 폰으로 선아 집 앞을 찍고 있었다.

    “어이, 거기. 너희 잠깐 나 좀 보자.”

    “어, 어? 왜요?”

    “핸드폰으로 저기 찍고 있던 거 아니냐?”

    진호가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학생들은 움찔하며 핸드폰을 숨기기 급급했다.

    “그냥 우리끼리 사진 찍고 있었을 뿐이에요.”

    “거짓말 하지 말고. 저 집 찍고 있던 거 맞지?”

    “아니라니까요. 왜 우리한테 그래요? 우리는 잘못 한 거 없어요.”

    “그럼 사진 보여줘도 되겠지? 확인했는데 저 집 사진 없으면 형이 두당 10만원씩 줄게. 어때?”

    중학생한테 10만원이면 크다.

    하지만 선뜻 핸드폰을 내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거 봐라. 너네 여기서 뭐하는 거냐? 저 집은 왜 찍고 있어?”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그냥 보내줄 거예요?”

    “스토킹 하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있던데. 혹시 너희냐?”

    “아, 아니에요! 우린 오늘 여기 처음 온 거예요!”

    “진짜에요! 우린 사진만 찍었어요!”

    “멍청아,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우르르 쏟아내는 모양새가 어설프다.

    스토킹을 하거나 그럴 정도의 머리는 아니었다.

    진호가 손을 까딱거려서 핸드폰을 받아냈다.

    집 주변 사진은 꽤 있지만 선아의 모습이 담겨 있거나 그렇진 않았다.

    “솔직하게 불어. 이 사진은 왜 찍은 거냐?”

    “······놀이에요. 여기에 가수가 산다고 그래서.”

    “놀이라고?”

    “네. 얼굴을 찍어오거나 접촉 한 증거물 등을 가져오면 점수를 얻어요.”

    “그게 범죄라는 상식은 없는 거냐? 그 나이에 경찰서 구경하고 싶어?”

    “우린 뭐 어려서 딱히 처벌받지 않는다고 들어서요. 그, 그렇다고 우리가 나쁜 짓 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사진만 찍었는데요.”

    이걸 한 대 때릴까.

    진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유지를 마음대로 찍는 것도 범죄야. 너희 말대로 나이가 어려서 처벌이 약하다 한들, 그게 정당 한 건 아니라고.”

    “죄, 죄송해요. 하지만 다들 하는 놀이라서 우리만 안 하면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고요.”

    “······왕따가 무서워서 누군가를 이렇게 괴롭히면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말 한다고 아이들이 설득 될까.

    참 잔인하게도 진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남보다는 자신이 더 소중한 게 사람이니까.

    “가서 친구들에게 전해. 여기 사진 찍고 사람 스토킹 하는 건 범죄라고. 한 번 더 걸리면 당사자랑 부모랑 전부 소환해서 경찰서 모임 한다고.”

    “그럴게요. 죄송해요.”

    “가 봐. 줏대 있이 살고.”

    진호가 아이들을 풀어 주었다.

    돌아가서 전한 말로 상황이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진호 오빠?”

    그 사이, 머리를 정돈한 선아가 나왔다.

    머리끝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

    “그냥 별 일 아니라서 말 안했어요.”

    상황을 묻자 선아는 이리 답했다.

    “별일이 아니긴. 요즘 중고생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이제 막 예고편 공개하고 OST 떴잖아요. 괜히 저 때문에 시끄러워지면 곤란 할 거라 생각했어요.”

    “생각은 이해하는데, 그러면 안 돼. 앞으로 아티스트로 살아 갈 거면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해. 많은 사람들이 널 돕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켜주는 건 자신뿐이야.”

    진호가 못을 박았다.

    “괜히 나 때문에, 이러다가, 어쩌면. 그런 거 필요 없어. 챙길 건 자신이 챙겨야 해. 결국 돌아보면 손해 보는 건 자신이고 아픈 것도 자신이야. 말 할 건 확실하게 말 하고 때릴 건 확실하게 때려.”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키워. 계속해서 자신감을 키워. 겸손한 거랑 소심한 건 다르잖아. 의견을 내야 할 때는 확실하게 내라고. 머뭇거리면 너만 손해를 보는 거야.”

    배려는 자신의 것을 챙기고 난 후에야 하는 거다.

    자신이 다치면서까지 다른 걸 돌보는 건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너, 확실하게 약속하는 거다. 무슨 일 있고 그러면 망설이지 않고 말하는 거야.”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해 보지 말고 해. 그냥 해. 알았어?”

    “네. 할게요.”

    그제야 진호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아리를 보는 어미 닭의 마음이 이런 걸까.

    꽤나 피로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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