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21화 (121/178)
  • Chapter54. OST(3)

    유선아는 가만히 앉아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지금 이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았다.

    기획사 대표라고 소개한 최현석도 영화감독인 서덕찬도 제작사 대표인 윤길상 마저.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로 와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끼어 들 방법도 없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진호야. 이번에는 아무래도 네가 성급했어. 그런 걸 단독으로 결정하면 안 되지.”

    “제가 성급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니까요?”

    “그럼 잘 다독여서 타협안을 찾아 봐야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손부터 올라가는 꼴을 보면 안 봐도 비디오에요.”

    그때 진호가 손을 잡아채지 않았다면 하명주는 분명 유선아를 때렸을 것이다.

    일에 폭력을 먼저 내미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 일 수가 없다.

    “계약 문제라면 제가 사비로 위약금을 충당하겠습니다. 여기 선아 양 참여하는 조건으로 다른 분들을 섭외해 주세요.”

    “끄응. 그렇게 말 할 정도로 마음에든 겁니까?”

    “영화에 꼭 맞는 목소리라고 해야 하려나. 한 마디든 두 마디든 꼭 들어갔으면 해요.”

    끝까지 고집 부리는 진호를 보며 최현석이 양 손을 들어 올렸다.

    알게 모르게 쇠고집인 진호다.

    이 정도까지 말하는 거면 설득하기 어렵다.

    “윤 대표님. OST작업은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샘플을 보내드릴 테니 들어보고 컨펌만 해 주세요.”

    “아이고, 대표님이 직접 말입니까?”

    “회사 연예인이 사고 쳤으니 대표가 책임을 져야죠. 대신해서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어이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진호 씨도 영화에 맞는 사람을 고르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건데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뭐하냐, 진호야. 사과드리지 않고.”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경솔했어요.”

    진호까지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윤길상과 말없이 서 있는 서덕찬 감독에게.

    “감독님은 괜찮은 거죠?”

    “······사정을 들어보니 썩 좋은 사람들 같지 않군요. 잘 했습니다, 진호 씨. 꼭 유명하다고 좋은 건 아니죠.”

    “저 편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죠?”

    “어쩐지 섭외에 너무 쉽게 응한다 했습니다. 진호 씨 유명세를 탈 목적이었던 모양이에요. 영화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죠. 그런 사람이라면 결과물도 별로였을 겁니다.”

    딱 잘라 말해주니 진호도 속이 좀 편했다.

    이래저래 고집을 부린 터라 나름 부담감이 있었다.

    풀린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제 선아 씨 노래부터 들어볼까요?”

    “네, 네!?”

    말없이 앉아있던 선아가 화들짝 놀랐다.

    #

    최현석은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링을 했다.

    사람들 다 빠져나가고 직원 몇 명만 남은 방이었다.

    10여분 가량의 짧은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틀었다.

    “신기하단 말이지.”

    선아의 노래 실력은 대단하지 않았다.

    빼어난 기교가 있거나 고음이 폭발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음색이 좋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진호가 소개하고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큼은 진호가 실수 했다고 생각하며.

    “그랬는데 말이지.”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OST가 삽입 될 장면을 연상하자 느낌이 달라졌다.

    아련함이 고조되고 먹먹함이 밀려왔다.

    맑기만 하다 생각했던 목소리에 감정이 깊이 담기고 평범하다 생각했던 기교는 되레 굴곡졌다.

    분명 같은 노래인데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이게 무슨 마술인가 싶을 정도.

    “이런 사람을 잘도 찾아낸단 말이야. 아니, 진호 주변으로 모여드는 건가?”

    세미도 그랬고 루카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진호 주변을 맴돌고 있다.

    “키워 볼까? 아니, 키워야 하는 거겠지?”

    사업가의 마인드.

    두 번, 세 번 고려해도 결과는 같았다.

    “진호 랑 선아 양 좀 다시 불러봐라.”

    #

    OST작업이 다시 진행되었다.

    팀을 다시 선정하여 진호와 선아가 중심이 되는 OST라인을 짰다. 더불어 배경 음악으로 사용 될 샘플링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일정이 밀린 터라 스케줄이 굉장히 타이트했다.

    “어디 세션이나 프로 팀에서 일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선아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그녀는 목소리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장비 세팅부터 마스터링까지 모든 작업에 능했다.

    애초에 하명주가 장비 세팅을 맡길 정도였으니 능력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메인 OST만 완성하면 될 거 같아요.”

    순식간에 작업을 끝내고 메인 OST만 남겼다.

    진호와 선아의 목소리가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굳이 내 목소리가 들어가야 하나? 너 혼자 하면 안 될까?”

    “아니에요. 진호 오빠 목소리가 들어가야 균형이 잘 맞아요. 절 따라오면서 부르시면 돼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 사이, 꽤 친해져 오빠 동생 하는 관계까지 왔다.

    “먼저 부를게요. 제 음대로 따라오세요.”

    소리를 떼고 노래를 시작하면 그녀는 대단했다.

    수줍게 숨어 노래를 부르던 때와는 또 달랐다.

    음을 척척 잡아내고 음향 팀과의 호흡도 굉장했다.

    오죽하면 섭외했던 팀이 ‘우리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극찬했을 정도였다.

    “아, 잠깐만요. 또 음이 틀렸어요.”

    “끄응. 잘 따라했다 싶었는데.”

    “너무 힘주지 마세요. 편하게 불러도 돼요.”

    유일하게 오점이라면 역시 진호였다.

    연기는 그렇게 기똥차게 하면서도 노래는 꽝이었다.

    선아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음치 끼고 OST는 무리.

    반복되는 작업에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어려우면 잠깐 쉬었다가 할까요?”

    “그래. 이거 노래도 보통 일이 아니네.”

    숨 돌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선아가 숨어서 노래하던 바로 그 휴양림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숨 돌리기에는 딱이었다.

    “노래가 어려우면 편곡을 다시 해 볼까요?”

    “곡도 만질 줄 아는 거야?”

    “조금요. 예전에 배워둬서요.”

    “장비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 하고 곡도 만질 줄 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프로보다 나은 거 같은데. 왜 그런 인간 밑에서 일하고 있었던 거야?”

    진호가 가볍게 물었다.

    “예전부터 명주 선생님 집에서 일을 했거든요. 어머니가 가정부로 허드렛일을 할 때부터 알아온 인연이라······”

    “가정부? 그 인간 집이 그렇게 잘 사는 거야?”

    “네. 굉장한 부자거든요. 어릴 때부터 유명한 분들에게 노래 배우고 악기 배우고 그랬죠. 전 어깨 너머로 그걸 훔쳐 배운 거고.”

    그냥 팀의 막내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인연이 깊었다.

    “그럼 지금도 그 집에서 사는 거야?”

    “아뇨.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로는 나왔어요. 음악을 배우고 싶어서 계속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아, 그랬구나. 미안. 몰랐다.”

    “괜찮아요.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요. 지금은 다 잊었어요.”

    사람이 소심 할 만 한 환경이었다.

    혈혈단신 음악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어릴 적부터 모시던 집 도련님을 따라다니는 격이니까.

    하명주가 심하게 낮춰 보더니, 그 이유가 이것에 있었다.

    “어쩌면 널 질투했는지도 모르겠다.”

    “네?”

    “그 인간. 하명주 말이야. 네 이야기를 꺼내면 굉장히 격하게 반응을 했잖아. 처음에는 성격이 뒤틀려서 그랬다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질투 같아.”

    “절 질투했다고요?”

    “생각해 봐. 자기는 좋은 선생 아래에서 질 좋은 교육을 받으며 가수가 됐는데, 넌 그냥 어깨 너머로 훔쳐 배운 거잖아. 근데 네가 더 나은 거지. 아무리 부정을 해도 실력은 거짓말을 못 하는 거니까.”

    허드렛일만 맡기고 중요한 건 손도 못 대게 하지 않았는가.

    한 번 노래 불러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 자체를 질투 한 것이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뭐,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으니까.”

    “자기만의 기준이라······”

    좋든 싫든 사람은 기준선 안에서 밖을 보니까.

    어쩌면 그 하명주라는 인간도 찌질할 뿐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진호 오빠 기준은 어떤 거예요? 절 어떤 눈으로 봤기에 그렇게 망설이지 않고 도와 줄 수 있었던 거죠?”

    “내가 볼 때 너는 노래를 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렇게 보였어요?”

    “응. 이곳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를 때도. 마구 소리쳐 뽐내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 느낌이었어. 아마 내가 널 꺼내지 않았으면 화병 났을 걸?”

    선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웃고 말았다.

    고작 며칠 만에 자신이 훨씬 밝아져 있다는 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건지.

    진호 말대로 참기만 했으면 병이 났을 것이다.

    “보통은 그런 걸 봐도 그냥 지나가는데.”

    “내가 누구냐. 연예계 바닥 이슈 메이커. 사고 촉진제. 가는 곳마다 사단을 내는 인물 아니더냐. 그냥은 못 지나가지.”

    “그게 뭐에요, 킥킥.”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으면 좋잖아. 나는 그걸 도와 줄 능력이 있고. 나 또한 날 알아 봐 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 누군가 눈에 띈다면 그걸 그냥 도와 줄 뿐이야.”

    진호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뒷짐 졌다.

    이런 이야기는 조금 쑥스러웠다.

    “도와 줄 수 있으니 도와준다?”

    “영웅도 아니고 용사도 아니지만. 그냥 보이는데 있으면 손 내미는 정도야. 그걸로 일어서는지 다시 넘어지는지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몫이겠지.”

    “······보통은 손 내밀지 않아요. 내민다 해도 많은 걸 바라겠죠.”

    “말했잖아. 나는 홍진호야.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역광을 지고 진호 얼굴이 선아의 눈에 투영되었다.

    그냥 덤덤하게 다가온 사람일 뿐인데, 이때는 왠지 크게 느껴졌다.

    “아. 오빠가 왜 노래를 못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응? 갑자기?”

    “네.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래요.”

    “생각이 많아서?”

    그게 답이 되는 걸까.

    진호가 의문 부호를 눈에 담아 깜빡이자 선아가 그의 소매를 잡아서 당겼다.

    “가요. 이번에는 제대로 노래 할 수 있을 거니까.”

    부쩍 가까워진 목소리였다.

    #

    선아의 말이 맞았다.

    진호가 노래를 못하는 건 음정이나 박자를 못 찾아서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다보니 생각이 많아졌던 탓이었다.

    너무 많이 알면 피곤하다고 하던가.

    딱 그런 경우였다.

    적당히 생각을 덜어내고 필요 한 부분만 뽑아서 부르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노래가 나왔다.

    “굉장한 보이스네.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야.”

    “잘만 다듬으면 크게 될 소리네.”

    “OST하나로 끝내기는 아쉬울 정도야.”

    그 결과 스텝 전원의 찬사를 받은 OST가 완성되었다.

    감독인 서덕찬은 ‘이거야!’라며 손뼉 치며 방방 뛰었을 정도.

    OST의 색이 영화의 흐름과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네. 나중에 하명주를 보거든 내가 이 정도 했다, 라고 자랑 한 번 해 줘.”

    “에이 그건 유치해요.”

    “안 하면 내가 나중에 해 주고. 완성된 OST들으면 깜짝 놀랄 걸? 약이 올라서 부들부들 떨지도 모르겠다.”

    진호가 낄낄거렸다.

    사연은 사연이고 고소한 건 고소한 거였다.

    “아, 맞다. 확인 다 끝나면 사무실로 한 번 오래요.”

    “누가? 대표님이?”

    “네. 상의 할 일이 있다고 하네요.”

    “아. 그거.”

    진호가 얼마 전에 최현석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눈앞에 있는 선아와도 관련 된 대화였다.

    “넌 어떻게 하고 싶냐? 마음에 드는 회사가 있으면 내가 추천 해 줄 수 있는데.”

    “배우 전문 기획사보다는 역시 가수 전문인 곳으로 가라 이거죠?”

    “그것도 선택지라 이거지.”

    “그게 현명 할 수도 있겠네요. 근데, 전 이왕이면 진호 오빠랑 있고 싶어요. 날 찾아 주었으니 높은 곳까지 밀어주세요.”

    최현석은 선아를 탐냈지만 기획사 특성 상 가수는 서포트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진호와 몇 가지 옵션을 두고 길게 상의를 했었다.

    “끝까지 책임을 지라? 다른 회사보다 느릴 수 있는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저 같은 사람도 한 눈에 찾아내는 도사인데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겠어요.”

    “거, 꽤나 고평가를 하는군.”

    그 중 하나가 가수 쪽을 서포트 할 시설과 인력을 구비하자는 것.

    들어가는 돈은 진호가 회사 지분을 보유하는 대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거다.”

    “후회 안 해요. 이미 가장 후회하던 일은 오빠 덕분에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 그래. 천천히 노래하면 되지.”

    OST작업 끝.

    블루 아이 새로운 장르 개척.

    신인 가수 유선아 영입.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끝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