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19화 (119/178)
  • Chapter54. OST(1)

    데일리 토픽이 낸 기사는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협회에서 정식으로 기사 내용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협회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영화를 바라보고 있으며 무조건적인 비판을 지양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줍지 않게 나섰던 데일리 토픽은 온갖 비난에 휩싸인 채 기사를 내려야 했다.

    비판 기사를 냈던 언론은 수십이었지만 결국 맞는 건 튀어나온 돌이었다.

    “정정보도도 했네.”

    “덕분에 비판 여론은 쏙 들어갔어요. 덕 좀 봤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애초에 저들이 들쑤시던 거였으니까. 안 된다 싶으면 후딱 접는 것도 일이지.”

    여론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애초에 언론이 기 싸움 느낌으로 끌고 가던 가십이라 한 쪽이 꺾이니 힘이 빠졌다.

    “이제야 맘 편이 촬영 들어가겠네요. 감독님이랑 다들 얼마나 걱정을 하든지.”

    “그 양반들이야 소규모 작업만 해 왔지 않냐. 이렇게 큰 소동에 휩싸이는 건 처음이지.”

    “괜히 미안하네요.”

    “그런 생각은 그만 두고 가서 촬영이나 잘 해.”

    남은 수습은 최현석이 맡았다.

    기자들도 상당수 우호적으로 돌아섰으니 큰 장애물은 없었다.

    결국 모든 건 결과물이 정해 줄 뿐이다.

    “그건 제 전문이죠.”

    진호가 불끈 쥔 주먹으로 답을 대신했다.

    #

    촬영은 강원도 산지에서 진행되었다.

    최소한의 스텝과 장비가 동원되었다.

    일전에 있던 영화 촬영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다들 자리 잡고 세팅해. 20분 후에 바로 촬영 들어간다.”

    “카메라! 메인 앵글 제대로 잡으라고!”

    “잡음 들어온다. 오디오 체크해.”

    “반사판 관리 어떻게 한 거야? 다시 가지고 와.”

    하지만 사람 수가 적다고 엉망인 건 아니었다.

    각자 맡은 바를 척척 해 냈다.

    “메이크업 수정할게요. 얼굴에 흙을 조금 묻혀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번 씬이 흙바닥 이후인가요?”

    “네. 진호 씨 얼굴을 건드리고 싶진 않은데 감독님이 고집하셔서. 해도 될까요?”

    “하하. 그럼요. 씬을 살리려고 분장하는데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진호도 이런 분위기에 녹아 들어갔다.

    마음먹으면 개인 트레일러를 끌고 와서 개별 세팅하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하지 않았다.

    영화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혼자서 도드라지는 건 분위기에도 썩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수영 씨도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케이. 메이크업 체크하고, 의상 준비부터 해.”

    그 사이, 누나 역을 맡은 전수영이 도착했다.

    주말극 등에서 가끔 얼굴을 드러내던 배우였는데 감독이 콕 집어서 캐스팅했다.

    진호도 그녀의 연기를 쭉 살펴보고는 대번에 수긍했다.

    수수한 외모에 강렬한 이미지는 없지만 생활 연기가 굉장히 강했다.

    진짜로 있을 법 한 누나의 이미지라고 할까.

    배역에 딱 맞는 캐스팅이었다.

    “이쪽이에요, 수영 누나.”

    “어머. 내가 진호보다 늦게 온 거니?”

    “저도 방금 왔어요. 근데 어제 늦게 잤나 봐요? 살짝 피곤해 보이는데.”

    “세상에. 나 많이 피곤해 보여? 어제 긴장 돼서 잠을 제대로 못 잤잖아.”

    진호는 그녀와 대본 리딩 때부터 성격이 잘 맞아 편하게 지내고 있다.

    사람을 편하게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슈퍼스타인 진호를 대함에도 딱딱함이 없었고.

    “살짝 피곤한 게 더 잘 어울리네요. 굿 잡.”

    “얘는. 나도 처음은 좀 예쁘게 나오고 싶단 말이야.”

    “그건 곤란하죠. 누나랑 나랑 남매인데. 누나만 예쁘면 나는 뭐가 돼요?”

    “서울 가서 뜯어 고친 걸로 하자.”

    “푸하! 그게 뭐에요. 감독님 들으면 한 소리 하시겠다. 후딱 메이크업이나 하고 와요.”

    낄낄 거리며 전수영이 물러났다.

    은근히 입심이 좋아서 감독님들하고 걸쭉한 말싸움을 해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오죽하며 서덕찬 감독이 ‘이거 주막 이모가 딱인데.’ 감탄했을 정도.

    “촬영 오 분 전! 다들 준비해 주세요!”

    떠들던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첫 촬영은 진호의 단독 씬.

    메이크업이 끝난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고는 일어났다.

    준비는 다 끝나 있었다.

    #

    “저리 가라고! 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전수영이 소리쳤다.

    눈 밑의 다크써클과 퍼석한 피부가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밥. 밥 먹으래. 맛있는 거 많이 했다. 잡채도 있다. 누나 좋아하는 거라고 했어.”

    “그게 언제 적인데? 나 이제 잡채 싫어해.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다고.”

    “잡채 맛있는데. 고기도 있는데. 누가 먹으면 좋아 할 거라고 그랬는데.”

    “누가 좋아한다고 그래!”

    빽, 소리치는 전수영에 진호가 움찔 하고 물러났다.

    손에는 주방에서 들고 온 듯 한 잡채가 들려 있었다.

    우물쭈물 한 참을 바라보다 풀이 죽은 모습으로 몸을 돌렸다.

    “야! 있어 봐.”

    “응?”

    “그거 그렇게 들고 가면 다 식잖아. 밥 먹으라면서 그건 또 왜 따로 들고 온 건데?”

    “누, 누나 먼저 먹여주고 싶어서. 헤헤.”

    “하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사정이 있어서 잠깐 머무르고 있는 거뿐이니까.”

    “그럼 잡채 안 먹어?”

    “······어휴. 이 답답한 놈아.”

    짜증나는 동생에 전수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래도 들고 온 잡채를 버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못이기는 척 받아서 한 입 했다.

    짭짤한 것이 어릴 적 좋아하던 그 맛 그대로였다.

    ‘에이 씨. 왜 맛있고 지랄이야.’

    속으로 뱉은 투덜거림이 코끝 주름으로 나타났다.

    “오케이! 컷!!”

    그리고 그 장면을 끝으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서덕찬 감독이 연신 손을 휘두르며 ‘좋아! 좋아!’를 반복했다.

    “수고했어, 진호야. 연기 끝내주더라.”

    “누나도 수고했어요. 나보다 누나 연기가 낫지. 난 진짜 화내는 줄 알았다니까?”

    “어머 애가 아부 할 줄도 아네. 잡채라도 좀 줄까?”

    “맛있으면.”

    “맛있더라. 이 집 손맛이 참 좋아요.”

    말하며 진짜로 잡채를 건넸다.

    진호도 마다하지 않고 손으로 잡채를 한 줌 떠 입으로 가져갔다.

    말마따나 맛이 꽤 괜찮았다.

    “가요, 촬영본 확인하게.”

    “그래.”

    후다닥 잡채를 해치우고 촬영본을 체크했다.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려도 배우가 마음에 안 들면 재촬영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진호와 전수영은 신중한 눈으로 촬영본을 검토했다.

    “괜찮네. 넌 어때?”

    “나도 좋은 거 같아요. 소리도 잘 잡힌 거 같고. 잡채 때깔도 좋고. 화면 전환 될 때 잔잔한 배경음 하나만 예쁘게 깔리면 딱일 거 같은데.”

    “어. 나도 딱 그 생각했는데.”

    진호와 전수영의 의견이 일치했다.

    영화의 맛을 살리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배경 노래 만 한 것은 없다.

    흔히 말하는 OST.

    “안 그래도 음향 작업은 따로 작업 중이야. 꽤 큰 돈 들여서 유명하신 분들을 섭외해 뒀으니 기대해 볼 만 할 거다.”

    “그래요?”

    서덕찬 감독의 호언장담에 진호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제작비가 타이트하다는 건 그도 알고 있는 바.

    이렇게 장담 할 만 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하하.”

    운까지.

    진호의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진호는 OST작업에 들어간 팀이 누구인지를 알아냈다.

    음향 작업을 맡긴 외주 팀을 제외하고 메인 OST를 담당한 건 꽤 유명한 가수였다.

    팀 보이스 소속의 하명주라는 인물이었다.

    여러 가지 TV프로그램을 통해서 얼굴을 알리고 최근에는 차트 역주행도 하는 라이징 스타였다.

    “와우!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홍 진호라고 해요.”

    “저야 말로 반갑죠. 하명주입니다.”

    직접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한 가지 제의 때문.

    “OST작업에 저도 참여했으면 한다고요?”

    “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쭉 느낀 건데, 진호 씨 목소리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짧게라도 작업에 참여하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전 노래에는 재능이 없는 편인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요즘은 보정 기술이 워낙 좋아서 대충 흉내만 내도 좋게 만질 수 있어요.”

    하명주의 제안에 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악기도 다루고 무술도 가능한 진호였지만 노래만큼은 쉽지 않았다.

    전생에 가수가 없는 건 아니나 그걸 구현해야 할 진호의 재능이 처참했다.

    대금을 한 번에 불고 무술의 틀을 단번에 흉내 낸 것만 봐도 얼마나 재능이 없는지가 드러난다.

    “정 걱정되시면 짧게 녹음 해 보고 결정해도 돼요. 어차피 실제 목소리가 들어 갈 분량은 얼마 안 되니까 부담도 없죠.”

    “끄응.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권하시니 한 번 해볼게요.”

    “오케이. 하하. 이거 작업이 재밌게 됐네요. 선아야, 유선아. 와서 세팅 좀 해.”

    하명주는 크게 웃으며 누군가를 불렀다.

    머리를 지저분하게 기른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뿔테 안경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세팅은 이 친구가 할 테니까 우린 잠깐 나가 있죠. 곡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할 겸.”

    “아······그럴까요?”

    하명주가 직접 안 하는 걸까.

    진호는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어차피 이쪽은 문외한이었다.

    그의 말을 따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커피 한잔을 들고 휴게실에 몸을 실었다.

    “촬영이 많이 힘들죠?”

    “뭐, 일이니 참고 해야죠.”

    “하하. 역시 프로의식이 남다릅니다.”

    하명주는 꽤 밝은 어조로 말을 이끌어냈다.

    커피의 달콤함보다 그의 말투가 더 달콤했다.

    “제가 진호 씨 열성 팬이거든요. 영화도 전부 다 봤고 드라마도 싹 다 정주행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이거 고맙네요.”

    “참 보면 진호 씨 연기는 뭔가 남달라요.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 다른 배우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힘이 있어요.”

    “하하. 과분한 칭찬이네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크으. 이런 겸손함까지. 이래서 사람들이 진호 씨를 좋아하나 봅니다.”

    지나친 달콤함이었지만 팬 중에 이런 부류는 꽤 많았다.

    굳이 그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감탄한 건 일본에서 있었던 공연입니다.”

    “공연 말입니까? 꽤 성대하게 하긴 했죠.”

    “진짜 보면서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흐른 거 있죠?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기획 할 수 있을까 소름이 돋았다 이 말입니다.”

    “어디 뭐 저 혼자 한 일일까요. 많은 분들이 도와 준 결과입니다.”

    홀짝이던 커피도 다 마셨다.

    슬슬 일어나고 싶은 마음에 진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사실 좀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어요.”

    “음? 어떤 부분 말인가요?”

    “그때 그 공연에서 만약 제가 무대에 섰다면 조금 더 화려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 무대 말입니까.”

    당시에 초대된 가수들도 어느 하나 빼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하명주보다는 전부 급 높은 이들이었다.

    “하하. 제가 괜히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래 봐도 실력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다른 누구보다 진호 씨 부대를 잘 살릴 수 있다 이거죠.”

    “그런가요. 아직 실력을 못 봐서 제대로 감이 안 오는군요.”

    “보면 딱 알 겁니다. 전 진호 씨가 그 정도 안목은 있다고 믿거든요.”

    하명주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정말로 그 정도의 실력이 있든지, 아니면 허언 뿐인 사람이든지.

    진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세팅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부담스러운 자리에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유선아라고 불린 여성이었다.

    ‘목소리가 굉장히 좋네?’

    신기할 정도로 머리에 콱 박히는 그런 목소리였다.

    “저 분도 OST작업에 참여하나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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