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18화 (118/178)
  • Chapter53. 기자라고?(2)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악이고 어디서부터가 선일까. 경계는 모호하고 결국 기준은 개인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진호는 그렇기에 나름의 기준을 만들었다.

    “아. 윤 기자님. 또 보네요.”

    “어? 제 이름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까?”

    “하하. 자주 보다보니 익숙해 졌네요. 이른 아침부터 나와 있으려니 많이 힘들죠?”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아직은 기자라 불러도 좋을 만 한 사람을 추렸다.

    새벽부터 회사 앞에 나와서 죽치고 있는 윤기자도 그런 부류였다.

    “저희야 뭐 일이니 어쩔 수 없죠.”

    “기자 분들도 고생이 많아요. 쉬는 날도 없고.”

    “그렇게 알아만 주셔도 고맙죠. 요즘 기자들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열심히 일해도 욕먹기 바쁜 시대인지라.”

    “하기야 그렇죠. 기사를 마음대로 찍어내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아, 물론 윤 기자님은 다르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윤 기자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커피라도 한 잔 하실래요?”

    “좋긴 한데······혼자서 마시면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을 거 같네요.”

    “하하. 하긴 기자들 동업정신도 꽤 빡빡한 편이라죠? 인터뷰를 따로 진행해도 욕먹을까요?”

    “이, 인터뷰를 말입니까? 단독으로?”

    “윤 기자님이라면 짧게 가능 할 거 같아서요.”

    윤 기자가 마른 침을 삼키고 뒤를 살폈다.

    이른 시간이라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깐이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안으로 들어오세요.”

    덜컹, 하고 정문 바리케이드 열렸다.

    #

    윤 기자와는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영화를 맡은 이유, 장애인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 상황에 대한 감정 등.

    중간 중간 윤 기자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진호 씨도 많이 힘드셨겠네요.”

    “사람이 가장 슬플 때는 의도가 곡해됐을 때라고 봐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 주변에서는 이렇다고 매도 할 때. 참 답답하고 억울하고 그래요.”

    “하긴. 그럴 때 많이 힘들죠.”

    “그래도 윤 기자님처럼 제대로 전해 주실 분 만나서 다행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언론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윤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내에서도 진호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정도.

    취재가 까다로운 부류에 속했다.

    “제가 설마 언론을 싫어하겠습니까? 우리 이야기 실어주는 것도 다 언론이고 기사고 그런 거잖아요.”

    “그야 그렇죠.”

    “근데 일하다보면 사람이 많이 예민해져요. 아닌 얘기 나오면 화도 나고. 그래서 참 많이 싸운 거 같아요. 언론하고.”

    “그랬군요. 하긴 예술 하시는 분이니 예민하긴 하겠어요. 저도 기자일을 하긴 하지만 새벽부터 몰려가서 운집하고 있으면 답답하긴 하거든요.”

    “하하. 그걸 이해해 주시니 고맙네요.”

    기자, 언론사 직원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나면 그냥 사람 대 사람일 뿐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여튼 이번 기사는 잘 부탁하겠습니다. 아, 그렇다고 무슨 청탁이나 이런 건 아닙니다. 그냥 있는 일을 그대로 내보내 주시면 만족해요.”

    “당연하죠. 기사의 본분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가서 동료 분들께 이야기좀 전해주세요. 전 언론의 적이 아니라고. 혹시 또 압니까, 관계가 좋아지고 이러면 차기작 스케줄이나 또 다른 공연 소스가 나올지.”

    “······!”

    윤 기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차기작이나 공연 계획에 대한 걸 단독으로 내보내면 기자 커리어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진호는 국내에 비교 할 대상이 없는 스타 아니던가.

    “그럼 윤 기자님만 믿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윤 기자의 머리가 끄덕였다.

    #

    간만에 우호적인 기사가 나왔다.

    공들인 윤 기자의 손에서 나온 기사였다.

    단독 인터뷰 자체가 실려 있었기 때문에 기사 신뢰도 역시 높았다.

    “배포용 기사. 역시 한 명으로는 안 되네.”

    하지만 그럼에도 언론은 여전히 진호를 쪼았다.

    기사 한 줄은 그저 포섭의 결과라는 것이다.

    실상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한 명이 안 되면 두 명. 두 명이 안 되면 세 명. 계속 늘리다 보면 저들끼리 싸우겠지.”

    어차피 기자는 직업.

    커리어를 위해서 앞으로 튀어 나가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언론의 힘을 위하여, 라며 힘 모으는 것도 동일한 선상에 머물러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새벽부터 나와 있으면 힘들잖아요. 커피라도 한 잔씩 하고 하시죠.”

    진호는 아예 회사 앞으로 커피차를 대령했다.

    적당히 구슬리고 적당히 다독였다.

    물론, 소스를 주는 건 개중에서 마음에 드는 기자뿐이었다.

    “아니 왜 저 친구만 인터뷰를 해 주는 겁니까?”

    “기사 전반을 살펴보니 마음에 들어서요. 이왕이면 저도 마음에 드는 기자님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그런······”

    “이게 마음에 안 든다면 마음에 들 만 한 행동을 하면 되겠네요.”

    진호는 기자들을 상대로 조련을 시도 한 것이다.

    어차피 그들도 소스를 받아서 쓰는 입장.

    상상에서 떠드는 것보다야 직접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쪽이 신뢰도도 높고 조회수도 높게 나온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고집을 세우며 계속 깎아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고집 꺾고 소스를 받아 올 것인지.

    [홍 진호. 장애인 협회의 질타를 받다]

    [진심을 다한 연기. 장애 아동을 향한 마음]

    [지나친 욕심. 누구를 위한 연기인가?]

    [돈을 쫓지 않는 연기자. 빛을 내다]

    그에 따라 기사도 아주 중구난방으로 쏟아졌다.

    한 쪽은 칭찬하고 한 쪽은 비난하는 양강구도였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천차만별이었다.

    욕과 칭찬이 뒤섞여서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아주 벌집을 뒤집어 놨네.”

    “밥그릇 싸움을 붙여놔야 저한테 집중 못하죠.”

    “방어가 아닌 공세로 의표를 찌른다 이건가?”

    “병법의 기본이죠. 적이 연합체라면 자중지란을 만드는 것이 최선입니다.”

    병법의 달인이라면 전생에 여럿 있다.

    회유책과 이간책을 섞어서 적을 자중지란으로 빠트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중 포화는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네. 근데 그 다음은?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 할 거야?”

    “기자들 입 싹 닫게 하는 데는 공신력 만 한 것이 없죠.”

    “협회?”

    “네. 협회로 가려고요.”

    다음 행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장애인 협회.

    정확하게는 한국 지체장애인 협회.

    장애인 민원 및 복지. 구인구직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단체다.

    여러 산하 단체를 후원하기도 하면서 국내 장애인 복지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탐탁지 않군요.”

    이 집단의 대표인 한장춘이 으름장을 놓았다.

    상대는 진호였다.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장애인의 이미지가 소모되는 걸 걱정하시는 겁니까?”

    “매우 불쾌하죠. 장애인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몸이, 어떤 이는 정신이. 징후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헌데, 방송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나가더군요. 모자란 인간. 바보.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겉절이로.”

    목소리에서 심한 적대심이 느껴졌다.

    방송 등으로 그려지는 장애인의 이미지가 굉장히 불쾌했던 것이다.

    “저도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모두 같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생활 패턴도 모두 다르죠. 하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게 다 당신들 같은 방송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 때문 아닙니까?”

    “물론, 방송이 미친 악영향도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장애인을 바보로 여기고 도움만 필요한 존재로 부각시켰죠.”

    “그걸 아는 사람이······”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아니, 달라지려고 하고 있죠. 장애인은 반드시 동정만 받아야 하는 사람인가? 웃음거리로 희화화만 되어야 하는 건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 말입니다.”

    어떤 문화든 성장기간이 필요하다.

    날 것 같던 방송이 자리를 잡고 점차 성숙한 생각을 요구하게 되는 것처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시간에 흐름에 따라서 점차 성숙하고 있었다.

    “영화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솔직함입니다. 장애인도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욕망이 있다는 사실. 그들이 단순히 결핍된 존재가 아니고 동정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말뿐이지 않습니까!”

    “평가는 영화가 완성 됐을 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도 내키지 않는다고 말씀 하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영화 개봉을 막도록 하죠.”

    “그, 그렇게까지 말해도 되는 겁니까?”

    “이야기 들으면 대표님하고 감독님께 쌍욕을 듣기야 하겠지만······그만큼 제가 진심이라는 겁니다.”

    한장춘은 진호를 다시금 봤다.

    적당히 달콤한 말로 자신을 설득 할 것이다, 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완전한 정공법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공법이 매우 뜨거웠다.

    ‘솔직함이라.’

    오롯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걸 부끄러워하는 건 과연 누구였던 것일까.

    괜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후.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 한다면 답은 촬영이 끝난 후로 미루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실망스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큰 성공을 이룬 배우가 굳이 이런 일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흙탕이 될 거란 생각은 못 했나요?”

    “이유를 묻자면 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연기가 누군가에게는 삶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진흙탕이라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겁니다.”

    배우가 짊어지는 업.

    한장춘은 눈빛에서 그 무게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무게라면 허튼 자는 아닐 것이다, 라는 확신을 얻었다.

    #

    데일리 토픽 국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새롭게 낸 기사의 반응이 영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반응이 왜 이러냐?”

    “요즘 반반이잖아요. 다른 곳을 쥐락펴락 하는 통에 기사를 내도 반응이 썩 좋지 않아요.”

    “하. 그 새끼. 진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테이블을 툭 치며 볼멘소리를 냈다.

    기죽이기 위해서 쏟아낸 기사들이 처음에는 좀 먹히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 주춤거렸다.

    여론도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저희도 슬슬 노선을 바꾸죠?”

    “이제 와서 말이냐?”

    “어쩝니까. 다들 호의적인 기사로 갈아타고 있는데. 계속 악평 쏟아내 봐야 우리만 손해 일 거 같은데요.”

    직원의 말에 주름은 더 깊어졌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당겨보자. 협회 쪽은 어때? 여전히 불만 쏟아내고 있지?”

    “최근에는 잠잠하던데, 분위기를 보는 거 아닐까요?”

    “그렇지. 그쪽이야 꾸준하게 영화에서 장애인 소모되는 걸 싫어했으니까.”

    국장이 테이블을 다시 두드렸다.

    잘난 척 하는 진호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 건 여전했다.

    “이렇게 하자. 협회 쪽 발췌하는 식으로 비난 어조에 힘을 실어.”

    “협회와는 이야기가 안 됐잖아요.”

    “그걸 또 언제 이야기하고 있냐? 어차피 같은 생각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누르고 봐. 협회를 걸고 넘어지면 다른 쪽도 넘어 올지 모르니까.”

    “그럴까요?”

    “아니면 말고. 뭐라 하면 전달 간에 실수가 있었다고 하면 되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 하니까.

    뱉고 말면 아니라고 하면 될 뿐이다.

    “세게 내. 아주 세게.”

    하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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