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17화 (117/178)

Chapter53. 기자라고?(1)

영화 윤곽이 하나 둘 갖춰지기 시작했다.

주연인 진호를 제외한 배우들도 캐스팅 보드에 오르고 촬영 장소 섭외도 끝났다.

전반적인 대본 리딩과 스토리 수정만 끝나면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도 좋을 정도였다.

“어때? 괜찮지?”

“음. 음. 잘 뽑힌 거 같다. 누가 봐도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와.”

“나이랑 배경은 어때? 어울려?”

“적당해. 어느 정도 고집도 있고, 순박하기도 하고, 먹은 나이만큼의 경험도 보이고.”

진호는 계속해서 캐릭터를 조형했다.

극중 주인공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너무 과장되지 않게, 너무 메마르지 않게.

정말로 이런 사람이 30년의 삶을 살아 온 것처럼 그리고자 했다.

“휴우. 쉽지 않아.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몇 배는 더 신경 쓰는 거 같아.”

“그만큼 예민하니까. 우리는 보는 사람을 염두 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렇지. 그 애들도 보러 올 거니까.”

“선우라고 했지? 꽤 마음에 들었나 봐?”

“하하. 마음이 가는 아이였어. 너도 나중에 나랑 같이 가서 한 번 보자. 분명 마음에 들 거야.”

선우를 비롯한 시설 전체에 시사회 표를 선물할 계획이다. 아이들 특성 상 제대로 된 영화 관람 같은 건 해보기 어려우니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그 애들 앞에서 어설프게 연기 할 순 없지.’

보통 사람에게도, 조금 다른 아이들에게도 같은 감동을 주는 연기이고 싶었다.

웅. 우웅.

“오빠, 대표님 전화.”

“어. CF때문에 전화 하셨나?”

그 마음에 장애물은 없을 거라 여겼다.

이 전화를 받기 전 까지는.

#

“기사요?”

최현석은 말 대신 기사 한 줄을 보여 주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나간 기사였다.

글의 전반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의 편협함을 다루고 마지막에는 영화나 만화 같은 문화적 소비를 거론했다.

예로 꼽힌 것이 이번 진호의 영화였다.

“이게 뭐래요?”

“조회수 빨아먹기 위해서 내 놓은 기사.”

“이야, 너무하네. 아무리 그래도 아픈 애들을 조회수 때문에 이용하려고 그러나.”

“조회수면 친구도 팔아먹는 놈들인데 뭐.”

“근데 이게 왜요? 이런 기사는 흔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문제는 여기야.”

최현석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툭툭 쳤다.

기사 말미에 달린 링크에는 ‘한국 장애인 협회’라는 글자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협회? 협회가 왜요?”

“그쪽에서 성명문을 작성 중이라는 얘기가 있어.”

“무슨 성명문이요? 영화 때문에?”

“그래. 영화로 소비되는 장애인의 이미지가 불합리하다는 내용이야.”

“······아니 뭔. 영화는 아직 찍지도 않았는데. 이게 뭔 소리를 하는 거래요?”

차라리 영화가 개봉됐으면 말도 안 한다.

아직 촬영도 안 들어갔는데 이런 기사가 나오는 건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냥 성명문이 끝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지금 여기저기서 그걸 차용하고 있는 게 문제야.”

“언론사에서요?”

“한 두 곳이 아니야. 메이저 언론도 꽤 있고.”

“갑자기 왜들 이런대요?”

“뭐, 그 동안 언론하고 사이가 썩 좋았던 건 아니잖아. 게다가 현 정권하고도 그다지 달가운 관계가 아니고. 이래저래 씹고 뜯고 하자는 거지.”

진호의 유명세는 어마어마하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목이 날아 갈 정도.

하지만 언론이 너나 할 것 없이 툭툭 치기 시작하면 누가 잘못인지를 가려내기 어렵다.

애초에 없던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협회에서 성명을 내면 명분에도 딱 맞아 떨어지니까.

“웃기지도 않네. 이거 우리도 반박 인터뷰해요?”

“하긴 해야지. 그 전까지는 이런 일이 있으니까 주의하라고 부른 거야.”

“아직 촬영도 안 했는데.”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

기사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물음표에서 마침표를 찍는 이들도 더러 숫자를 늘려갔다.

언론의 무서운 점이라면 반박이 어렵다는 것.

아무리 아니라고 손짓해도 한 번 박힌 이미지는 떼어내기 어려웠다.

“진호야. 오늘은 뒷문으로 나가라.”

“왜요?”

“정문에 사람들 모였어.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하는데 기사들 끼고 있으니까 괜히 얽히지 마.”

“협회에서요? 장애인 협회?”

끄덕이는 최현석을 스쳐 진호가 창문으로 갔다.

회사 정문 바리케이드 뒤편으로 꽤 많은 이들이 운집해 있었다.

평소에는 팬들이 차지할 자리를 다른 이들이 장악한 것이다.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왜 피해갑니까? 그냥 정문으로 나갈게요.”

“이번에는 그냥 피해라. 괜히 잘못 얽히면 이미지에 타격이 커.”

“피하면 그게 더 이상하게 보여요. 어차피 영화 찍으면 죄다 몰려와서 한 마디씩 할 텐데 미리 들어보죠.”

“너도 참. 고집 한 번 세다.”

“하하. 제가 원래 그렇잖아요.”

애초에 장관도 정면에서 윽박질렀던 진호다.

협회와 언론사가 모여 있다고 피해 갈 이유가 없었다.

회사 직원 몇 명과 함께 정문으로 이동했다.

“저기 나온다!”

“진호 씨! 잠깐 인터뷰 좀 합시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하실 말씀 없습니까!?”

진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카메라도 수십 대에 마이크는 무슨 이쑤시개마냥 빼곡하게 물려 있었다.

“당신!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아영이가 힘들다는 거야!”

그리고 기자들과는 다른 한 명.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추레한 복장의 한 중년 여성이었다.

손으로 만든 피켓 하나를 흔들며 진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다들 잠깐만 조용히 해 주세요. 저 분 말씀을 듣고 싶군요.”

“아니, 일단 저희 인터뷰 부터 좀······”

“고집피우면 그쪽만 제외하고 인터뷰 하겠습니다. 끼고 싶으면 지금은 잠시 물러나세요.”

“크, 크음.”

그제야 기자들이 물러나고 자리가 생겼다.

진호는 주변을 슥 둘러 본 뒤 피켓 든 여성에게 걸어갔다.

“아주머니.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그래! 이 못된 놈! 배우가, 성공한 배우라는 인간이 할 일이 없어서 아픈 애들을 무기로 삼아!? 그러고도 인간이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누가 누굴 무기로 삼아요?”

“네놈 말이다! 네놈같이 영화판에서 노는 놈들이 아픈 애들을 도구로 삼아서 돈벌이하잖아! 그 때문에 우리 아영이 같은 애들이 얼마나 힘든데!”

버럭버럭 외치는 중년 여인의 얼굴이 카메라에 전부 담겼다.

플래시도 연달아 터지면서.

지금 장면은 기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영화에서 지적 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을 다루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요?”

“네놈들이 하는 짓은 뻔 하니까. 아픈 애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기나 하고! 그 모습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알고 있어!?”

“영화가 상처가 된다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아직 촬영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만.”

“그, 그건······영화가 다 뻔하니까 그렇지! 안 봐도 애들을 우습게 다룰 거잖아!”

진호는 물끄러미 중년 여성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진짜로 아픈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격분하여 나온 것이라 여겼다.

그런 거라면 이야기를 나누어 풀 수 있는 문제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중년 여성의 감정은 어딘가 평면적이었다.

정말로 아픈 아이가 있다면 더 깊은 곳에서 감정이 쏟아져 나와야 했다.

“그럼 어머니. 이렇게 할게요. 제가 아영이? 따님 분 이름이 맞나요?”

“우, 우리 딸 이름은 왜!?”

“아영 양에게 물어보고 싶어서요. 전 영화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해요.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물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헛소리 하지 마! 우리 딸을 네놈이 왜 만나!?”

“영화가 아영 양 같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터놓고 얘기하면서 방향을 고려해 보고 싶어요. 허락해 주시겠어요?”

“······”

중년 여성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무언가 이해타산 따위를 머리에서 재단하는 느낌.

진호는 이 부분에서 확신했다.

“제가 아영 양을 만나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우, 우리 아영이는 사람을 가려! 낯선 사람을 만나게 둘 수는 없다!”

“어머님도 함께 있으면 되잖아요.”

“안 된다고!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빽, 하고 외치는 소리에 논리는 없었다.

처음에는 뭔가 싶어 보던 기자들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하자 셔터 누르는 손이 느려졌다.

“아쉽네요. 정 그러시면 여기 제 명함이 있으니 가능 할 때 연락을 주세요.”

“······”

“그럼 이번에는 다른 분들 이야기를 좀 들어 볼게요. 질문 있는 분들은 앞쪽으로 모여 주세요.”

그리고 이내 그마저도 포기하고 진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사 거리는 확실히 이쪽이었다.

#

중년 여성과의 대담은 기사 몇 줄 나가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뒤로는 모습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뭔지도 신원이 뭔지도 모호했다.

협회 측에 물어보니 그런 사람은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하, 진짜. 흠집 내려고 안달이 나셨구만.”

“역시 고의로 사람 심은 거죠?”

“뻔하지. 시비 거리만 만들어서 기사 뿌리면 네 이미지만 내려가니까.”

“이해를 못하겠네요.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죠?”

언론과 마찰이 많았던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를 쓰며 흠집 내기를 하려는 이유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건 네가 언론의 속성을 아직 다 몰라서 그래.”

“속성이요?”

“연예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뭐냐? 스캔들이야.”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 근데요?”

“너도 그래야 한다고. 언론이 휘두르는 권력은 유명인에게 치명적이어야 하는 거야. 너처럼 뻗대고 맞받아치는 건 저들 입장에서는 하극상이지.”

“······하?”

“웃기지? 근데 진짜로 그래. 언론은 자신의 펜대를 권력으로 쓴다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내어 놓을 기사를 무서워하라 이거야.”

진호는 한 번도 언론에 굽힌 적이 없다.

그렇기에 상당수 언론이 그런 행동에 반감을 가진 것이다.

마치 당연히 굴종해야 할 후임의 하극상처럼.

“이러니 우리나라 언론이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죠. 진실보도를 하는 사람은 없는 겁니까?”

“왜 없겠냐. 있긴 있지. 근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높이 못 올라가잖아. 찍혀서 내려오고 얻어 터져서 좌천당하고. 그런 거지.”

“참······더럽네요.”

다른 말로는 설명이 어려웠다.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됐으니까 이제 부터라도 적당히 피해 다녀라. 원하는 말 좀 던져주고.”

“저보고 굽히라는 겁니까?”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거지. 계속 각 지고 싸우면 피해보는 건 우리라고.”

최현석은 한 발 물러날 것을 조언했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 기사 한 줄에 나락에 떨어지는 걸 얼마나 많이 봐 왔는가.

굳이 그런 위험을 안고 싶진 않았다.

“알겠어요. 대표님 말씀이 그러시다면 따라야죠.”

“······정말이냐?”

“까라면 까는 거죠.”

“어째 답이 좀 불안하다?”

“걱정 마세요. 사고치지는 않을 테니까. 대표님 말대로 유연하게 대처하면 되는 거죠.”

진호는 웃고 최현석은 불안한 얼굴을 했다.

어째서 긍정이 긍정으로 안 들리는 걸까.

“유연하게.”

표정은 쉬이 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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