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16화 (116/178)
  • Chapter52. 바보가 되는 법(3)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도움은 되었다.

    선우는 그 날 이후로는 더 이상 구석에 처박혀 있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어울리고 밥도 잘 먹었다.

    선생님들은 다행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진호는 그것이 정답이었는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이렇게 어중간한 상태로 떠나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진호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도 참 많이 즐거워했어요. 특히 선우 저 아이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런가요.”

    영원 한 것은 없듯 진호의 봉사시간도 끝났다.

    작별을 전할 때는 아이들이 참 많이도 울었다.

    고작 한 주 정도 함께 했을 뿐인데.

    정 드는 데 시간은 별로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거, 선우가 선생님께 전해 달라고 했어요.”

    “종이 토끼?”

    “연습하는 마술이라고 해요. 완성 되면 보여주고 싶으니 꼭 다시 한 번 와 달라고 하네요.”

    “하하. 언젠가 훌륭한 마술사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작게 접힌 종이 토끼는 한 아이의 마음이 전부 담긴 것처럼 보였다.

    온 것은 그저 연기를 위한 학습이었을 뿐인데.

    진호는 손안에 쥔 종이 토끼를 그렇게 평가 할 수 없었다.

    “아이들. 잘 부탁합니다.”

    많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받고.

    그렇게 흘러간 짧은 인연이었다.

    #

    진호는 서덕찬 앞에 섰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디션 자리였다.

    영화에 맞는 인물인지를 보기 위한 장소.

    “준비는 잘 했습니까?”

    “글쎄요. 나름 노력은 했는데, 지금 와서는 제대로 한 건지 도통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답입니까?”

    “연기의 도움이 될까 해서 갔는데, 그냥 아이들과 놀다왔지 뭡니까.”

    머쓱하니 웃는 진호를 보며 서덕찬은 헛웃음을 켰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영화라고 해도 주연은 중요하다.

    그걸 정하는 자리에서 저린 태도라니.

    ‘날 우습게 보는 건가?’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진호 씨. 이 자리, 장난하는 곳이 아닙니다.”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진지하게 응해 주세요. 애들하고 놀다 왔다니. 대체 그걸 준비라고 말하는 겁니까?”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저도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일단 직접 보고 판단해 주세요.”

    여전한 태도에 짜증은 더 올라왔다.

    하지만 말마따나 연기로 보고 평가하면 될 터.

    자격에 부합하지 않으면 따끔하게 한 소리 하고 쫓아 낼 생각이었다.

    윤길상이 아무리 ‘슈퍼스타!’라고 노래를 불러도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서덕찬 감독님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요?”

    “네?”

    “나, 볼 때마다 계속 그래. 많이 싫어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연기요. 연기. 시켜놓고 그것도 몰라요? 히히.”

    서덕찬이 움찔 하고 고개를 치켜 들었다.

    진호의 말투가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문답이라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했었다.

    “난. 이거 연기하고 싶은데. 이렇게 하면 잘 할 수 있는데. 감독님은 내가 많이 싫은가 봐.”

    “아니. 난······싫은 게 아니라.”

    “싫어하는데! 싫어하는데! 눈만 봐도 알 수 있거든.”

    “가, 갑자기 뭡니까? 떼쓰는 애도 아니고.”

    “히히. 봐라, 봐. 또 화낸다!”

    살짝 웅크린 허리, 아이같이 변한 눈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뻗은 손가락까지.

    몸에 걸맞지 않은, 지적 발달이 충분하게 되지 않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진호 씨가 해석한 배역입니까? 아이 같은 모습?”

    “바보. 난 이미 다 컸는데? 아이가 아니라고.”

    “끄응. 지금 모습 말입니다. 그게 해석한 연기라 이거죠?”

    “몰라. 그냥 이럴 거 같았어. 난 연기를 하고 싶은데 감독님이 싫어하니까. 떼쓸 거야. 연기 하라고 할 때 까지.”

    샐쭉하니 웃고 오기 가득한 채 바라보는 표정까지.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원하는 걸 토로했다.

    아이 같기도 하고 철없는 어른 같기도 한.

    아니, 연기를 빌미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억지 같기도 한 기묘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게 또······’

    구상하던 모습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가.

    서덕찬은 반문을 멈추고 진호의 모습을 자신의 시나리오 위로 덧씌워 보았다.

    “······참. 대단하긴 하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대봐도 그림이 그려지는 연기였다.

    정말로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처럼.

    “합시다, 연기.”

    “와하하! 연기한다! 연기!”

    이래서 슈퍼스타구나.

    납득 할 수밖에 없는 서덕찬이었다.

    #

    할 수 있다고 끝이 아니다.

    진호는 본격적으로 캐스팅 보드에 오른 후, 배역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지적 장애를 앓는 아이라 해도 그 성격은 천차만별.

    이제는 정성스럽게 캐릭터를 깎아서 영화에 맞는 연기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화를 낸다. 아니, 화를 내려고 한다. 참지 못하기 때문에 본능적인 행동을 하니까.”

    끼적인 노트가 벌써 2권을 넘어갔다.

    “하지만 무려 서른 살까지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잖아. 주변 평판도 완전히 바닥은 아니고. 역시 이건 아니야.”

    캐릭터를 조형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타당성.

    영화 전체적인 배경과 이 인물이 잘 맞아 떨어지는가에 있다.

    평생을 예쁨 받아온 인물이 갑자기 분노를 토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이야기에는 앞뒤가 있고 논리적인 합치가 존재해야 한다.

    “아직도 준비 중이야?”

    “아. 은서야. 연극은 잘 하고 온 거야?”

    “피. 보러 오지도 않고.”

    “미안. 시간 맞춰서 끝내고 싶어서. 다음번에는 꼭 갈게.”

    머리를 보글보글 볶은 은서였다.

    배역에 맞춰서 나름대로 변신을 했는데, 진호는 썩 어울린다고 좋아했다.

    “됐습니다요. 준비 할 때는 많이 예민한 거 아니까. 굳이 오라고 안 해.”

    “이럴 때는 역시 동종업계 애인이 있어서 좋단 말이지.”

    “말이나 못하면. 일은 잘 돼 가?”

    “그럭저럭.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싶어서 과하게 공을 들이고 있지.”

    진호가 노트를 흔들며 웃었다.

    전생 체험을 통한 캐릭터 조형으로 간단히 끝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수작업으로 하고 싶었다.

    좀 더 세밀하게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후. 빼곡하게도 쓰셨네. 쉽진 않나 봐.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거.”

    “어렵지. 섬세한 캐릭터니까. 사람들의 선입견이나 오해 등도 고려해야 하고.”

    “사람들의 시선이라.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지.”

    “그거 알아? 이 아이들도 주변에서 하는 소리, 시선, 몸짓. 전부 알아차리고 있다는 거?”

    지적 장애는 발달이 부족한 결과로 이어진다.

    간단하게 말해서 모자란 아이가 되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아들이 전부를 모르는 건 아니다.

    부끄러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안다.

    그 표현과 처리가 보통 사람과 다르기에 모르는 것이라 보기 십상 일 뿐.

    “많이 힘들겠네.”

    “응. 그래도 보람은 있어.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해를 해 보겠어. 많은 걸 이해하고 경험 할 때 연기자는 성숙해 지는 거니까.”

    “오. 방금 그거 완전 대선배 같았어.”

    “후후. 이제 연차 좀 쌓인 거 같지?”

    끌끌 웃는 진호의 옆구리를 은서가 꼬집었다.

    “장난은 그만 치고 연기나 좀 보여 줘. 어떻게 조형됐는지 보고 싶어.”

    “아직 완벽까지는 멀었는데.”

    “그래도. 대충이라도 보면 각이 나올 거 아니야.”

    “흐음. 우리 은서가 보여 달라면 또 거부 할 수 없지. 근데 은서야. 너, 지적 장애인 연기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어디인지 알아?”

    양반다리를 한 채 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정, 말투. 몇 가지를 떠올려 봤지만 그렇게 뻔한 답 같지는 않았다.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는 거야.”

    “······응?”

    “어수룩한 답변, 꼬이는 표정, 모자란 행동. 이런 걸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이건 당연한 거니까.”

    “아. 하긴 당사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겠네.”

    “그리고 이들이 가진 생각, 욕구, 반응도 자연스럽게 여겨야 해. 장애가 있다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니야. 이를 간과하면 별개의 존재로 취급 될 수 있지.”

    결국 모두 사람이다.

    이 단순한 명제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연기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그럼 오빠는 그렇게 할 수 있어?”

    “글쎄. 나도 아직은 한참 모자라지. 그냥 그렇게 되려고 노력 할 뿐이야.”

    아무리 많은 삶을 살아도 완벽은 없다.

    진호 역시 그저 노력하고 노력 할 뿐.

    “그럼 해 볼게.”

    이제 막 깎기 시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

    진호는 월드스타다.

    당연한 이야기로 수많은 취재진들이 그를 노리고 있다.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던 공연 건만 봐도 그렇다.

    그의 곁만 잘 맴돌아도 좋은 기삿거리가 떨어지는 것이다.

    “저예산 영화라고?”

    “네. 혹시 몰라서 두 번 확인해 봤는데 확실합니다.”

    “아니, 어째서? 할리우드에서도 섭외 문의 왕창 갔을 텐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헌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큰 행보 대신에 어딘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저예산 영화라니.

    이제 막 데뷔한 배우라면 몰라도 할리우드 급에서 노는 배우가 어째서 그런 걸 선택한단 말인가.

    “제작사가 JJ스튜디오네요. 여긴 전문 제작사라고 말하기도 힘든데.”

    “허. 그럼 거의 독립영화 수준이겠네?”

    “주제도 딱 그래요. 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의 가족사? 대충 이런 거네요.”

    “허 참. 이 양반이 외국물 먹고 오더니 예술 병 도졌나.”

    언론사 데일리 토픽의 국장은 연신 혀를 찼다.

    스타면 스타답게 노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여겼다.

    괜히 배우병 예술병 들어서 ‘난 달라’라고 설치면 좋은 꼴 보기 어려웠다.

    “보아하니 흥행은 어렵겠고, 평단에서 점수 좀 따려나본데.”

    “이번에는 손 뗄까요? 그다지 매력적인 기사거리가 안 나올 거 같은데.”

    “······아니야. 계속 주시하고 있어 봐.”

    “뭔가 짚이는 곳이 있나요?”

    “장애인이잖아. 본래 홍진호 그 친구도 정신병인가 뭔가 앓았다고 하지 않았어?”

    국장의 물음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의 과거 병력은 꽤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과거 병력이 있는 사람이 장애인을 연기한다. 흠. 어쩌면 기사거리가 될 수도 있겠어.”

    “장애를 극복한 스타의 미담으로요?”

    “에헤이. 그건 재미없지. 이왕 기사를 내려면 자극적으로 가야 한다고. 예를 들어 이런 거.”

    국장이 빈 노트위로 펜을 끼적였다.

    “나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정상에서 보는 비정상의 모습. 이걸 기사로 내게요?”

    “거짓말은 없잖아. 이렇게 내면 다른 장애인 단체에서 어떻게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네.”

    “와. 국장님 진호 씨한테 안 좋은 감정 있어요?”

    “흥. 젊은 놈이 너무 건방지긴 하잖아. 언론을 우습게보기도 하고.”

    데일리 토픽은 과거에도 몇 번 진호와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다.

    “가서 제목 그대로 기사 좀 뽑아와 봐. 어디 이번에는 뭐라고 답하는 지나 지켜보게.”

    속도 풀고 조회 수도 찍힌다면 일석이조.

    국장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 묘수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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