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12화 (112/178)

Chapter51. 영화 보는 눈(1)

화려한 결혼식이 열렸다.

멋 낸 송학과 부끄러운 듯 웃는 마리가 주례 앞에서 우렁차게 맹세했다.

휙휙 돌려서 던진 부케는 은서가 받았다.

미리 약속해 둔 건 아니었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얼떨결에 받고 말았다.

송학은 그 일로 ‘꿰였어.’라며 웃곤 했다.

“신혼여행 갔다 와서 바로 복귀할게. 그 동안은 큰 일 없겠지?”

“당분간은 광고나 사업차 방문이 전부니까. 후속 작 시나리오나 읽고 있어야지.”

“그래. 이왕 신세 진 거 며칠만 더 놀다올게.”

“가서 형수한테 잘하기나 해.”

송학은 식이 끝나고 허니문을 떠났다.

최현석도 진호도 이런 부분은 배려해 주었다.

돌아오면 열심히 굴리겠지만, 지금은 즐거운 신혼 아니겠는가.

“그래서 몇 편이나 들어왔어요?”

“당장 굵직한 것만 해도 스물. 아닌 것도 포함하면······솔직히 세기 어렵다.”

그렇게 송학을 보내고, 진호는 시나리오 검토에 들어갔다. 그 동안에도 틈틈이 들어오는 것들을 확인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작심하고 쭉 살펴 볼 요량이었다.

“차기작은 어떤 게 좋을까요?”

“지금까지 영화 이미지를 고려하면 강인한 캐릭터가 좋지. 카리스마 있고.”

“하지만 한 가지 이미지가 고착되면 안 좋잖아요.”

“그건 맞아. 이왕이면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지. 연기 스펙트럼도 넓히고.”

진호는 연기를 차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떤 연기가 됐든 기회가 되고 마음에 든다면 모두 시도해 보고 싶었다.

로맨틱 무비, 코미디, SF, 살인자 등.

다양한 캐릭터로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건 어떠냐. 아메리카 스튜디오에서 넘어 온 건데. 엄청나게 돈 들인 블록버스터라고 하더라.”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네요. 최근 트렌드인 슈퍼 히어로 영화 무비인가요?”

“아무래도 경쟁 업체 영화가 잘 나가고 있으니까. 동양인 캐릭터에 널 캐스팅 하고 싶나 봐.”

“동양인 슈퍼 히어로라.”

매력적인 내용이기는 하다.

프랜차이즈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잘만 하면 3, 4편 정도는 거뜬하게 주전으로 낙점 될 수도 있다.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하니 홍보나 기술력도 문제가 아니다.

“······뭔가 좀 아닌 거 같아요.”

“왜? 감독이 마음에 안드냐? 이 양반이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스타인데.”

“아뇨. 감독은 좋아요. 연출력도 있고 슈퍼 히어로 무비에 딱 맞는 사람이죠. 근데 뭐랄까. 전체 구성이 너무 유치하다고 해야 하나? 이상하게 안 끌리네요.”

“그러냐. 난 마음에 드는데.”

조건은 좋은데 이상하게 안 끌렸다.

예전 시나리오 낙점 할 때처럼 한 눈에 팍 들어오는 그 느낌이 없었다.

“차라리 이 시나리오가 더 마음에 드네요.”

“코미디? 당장 코미디를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냐?”

“코미디가 어때서요?”

“시도는 좋지만 갭이 크지. 적어도 중간 단계는 하나 쯤 건너가자고.”

진호의 답에 최현석이 현실적인 면을 지적했다.

카리스마 요원에서 코미디 주인공은 갭이 컸다.

“하긴 지나치게 갭이 크면 어색하긴 하겠네요. 근데 이거. 볼수록 좀 아깝네. 왠지 대박 터질 거 같은데.”

“에이. 요즘 코미디가 대박치기는 어렵지.”

“그럴까요······”

답은 하지만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뭔가 모르게 끌리는 느낌.

다른 시나리오에게서는 받을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이거, 회사에서 지원 할 사람 한 번 찾아볼래요?”

“회사 내에서? 그렇게 아깝냐?”

“네. 제가 안 할 거면 회사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이 배역 땄으면 해서요.”

“허. 그렇게까지 말 할 정도야? 이거 속는 셈 치고 애들 좀 모아봐야겠는데?”

최현석은 진호의 눈을 신뢰했다.

당장 실패 한 작품이 없으니 당연한 말.

‘이게 괜찮다고?’

자신의 눈에 그다지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한 번 찾아보죠.”

믿고 갈 만 했다.

#

진호는 모인 사람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했다. 괜찮은 작품 같으니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 추려서 제작사 측에 문의를 해보자는 거였다.

원년 멤버를 포함해서 모인 사람은 전부 아홉.

코미디에 관심 없는 사람을 제하고 현재 작품 들어간 사람을 제하고 전부 셋이 지원했다.

“음. 시나리오에 맞춰서 한 번 연기를 볼 수 있을까요? 괜찮다 싶으면 제가 추천을 한 번 해볼게요.”

진호의 말에 한 명이 더 추가됐다.

캐스팅 권한이야 제작사 측에 있다고는 하지만 진호의 추천이라면 제법 힘이 셌다.

실패 한 적 없는 배우니까.

“음. 음. 넷 다 연기는 좋네요.”

짧게 네 사람의 연기를 확인했다.

나름 선별해서 뽑힌 이들인 만큼 연기력은 상당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코미디 연기를 펼칠 수 있을 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 있냐?”

“개인적으로는 혁수 씨가 마음에 드네요.”

“혁수? 어째서?”

“배역과 외모가 가장 흡사하고 연기 방식이 어울리는 거 같아요. 느낌이 잘 맞는다고 할까?”

“그래? 흐음.”

최현석은 진호 말에 백퍼센트 동의 하지는 못했다.

그가 볼 때 혁수의 연기는 부족했고 차라리 다른 셋이 더 나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진호의 조언이었다.

“그럼 혁수 연기 장면 하나 더 뽑아서 저쪽에 보내 보자. 오디션 얘기도 없고 하니 이걸 받아 줄지는 모르지만.”

“해봐서 나쁠 건 없죠.”

손해 볼 것 없는 시도.

짧은 동영상이 시나리오를 보내 준 회사로 발송되었다.

#

며칠 뒤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진호가 캐스팅 수락을 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영상 속 배우도 마음에 든 다는 내용.

정식으로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고 했다.

“이야. 이거 일이 이렇게 풀리네.”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다행이네요. 괜히 오버한다고 한 소리 들을까봐 걱정했는데.”

“그쪽 감독하고 얘기를 해 봤는데, 연기가 마음에 쏙 든다고 하더라. 자기 구상하고 잘 맞는다나? 제작사 쪽만 잘 설득하면 가능성이 보일 거 같아.”

“이거 히트 치면 나 보너스 받는 겁니까?”

“흐흐. 잘 되면 내가 크게 한 턱 내야지.”

그 뒤로 몇 번을 더 오가며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제작사 측에서도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서 제작비를 늘리기 보다는 작품에 맞는 배우를 선택하는 것으로 선회를 했다.

후문으로 듣기로는 오디션 과정을 찍은 영상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거지. 무공이 경지에 이르면 검강을 쓰는 것처럼, 연기가 경지에 이르면 작품 보는 눈이 생기는 거야.”

“에이, 말 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이번에 진호 형이 시나리오 픽 한 거 봐라. 사람들 딱딱 맞아 떨어지지? 이게 그냥 운으로 될 거 같아?”

그러다보니 회사 내외로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진호가 연기에 통달해서 시나리오를 꿰뚫어 보는 신통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회사 소속 배우들이 하루건너 한 번씩 찾아오고 심지어는 다른 회사 배우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연기 신께 비나이다. 올해는 좋은 작품 하나 점지해 주소서.”

“뭐하는 거냐?”

“저도 한 작품 점지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젠 하윤이까지 와서 이러고 있다.

“자식아 그런 거 할 시간 있으면 가서 연기 연습을 더 해라. 저번에 드라마 하나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

“엎어졌어요.”

“그러냐? 뭐, 차라리 잘 됐다. 그 배역, 너랑은 영 안 맞다 싶었어.”

“진짜요?”

“네가 나이가 어리다고 하이틴 연기랑 맞냐? 차라리 좀 더 진지한 배역 찾아보는 게 나아.”

나이는 어리지만 심지가 굵은 하윤이다.

가벼운 하이틴 드라마 보다는 무게감 있는 드라마 쪽이 더 어울렸다.

“형은 진짜로 그런 게 다 보여요?”

“보이긴 뭐가 보여. 그냥 네 연기를 아니까 이쪽이 더 어울린다 싶은 거지.”

“그게 신통력!?”

“자식아, 장난은 그만 하고. 가서 세미랑 연기나 연습해.”

미련 못 버린 하윤이까지 툭 쳐서 돌려보냈다.

주변에서 하도 신통력, 신통력 하니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사람이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

진호가 생각을 머금었다.

#

진호가 들어온 시나리오를 쭉 훑었다.

낯선 제작자나 감독에게서 온 시나리오도 빼놓지 않고 전부 읽었다.

어차피 한 번쯤 다 읽어 볼 시나리오들이었으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흠.”

처음에는 그냥 별 느낌이 없었다.

평소처럼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의 흐름 같은 걸 머리에서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20편을 넘어서자 조금씩 보이는 패턴 같은 것이 있었다.

영화의 규모나 감독의 역량을 다 떠나서 무언가 잘 맞는 시나리오와 그렇지 않은 시나리오가 구별되었다.

“이건 백프로 감이라는 건데.”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맞지 않는 영화들도 긍정적인 느낌이 왔다.

독립 영화도 있었고 돈 많이 들어간 대작도 있었다.

뭐가 딱 잘라서 번쩍이는 건 아니지만 보다보면 대충 느낌대로 손이 움직였다.

“거, 희한하네. 이것도 전생 때문에 생긴 능력인가?”

짚이기로는 그것밖에 없지만 납득은 안 됐다.

전생 보는 것과 영화 고르는 눈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건 완전히 치트킨데.”

뛰어난 배우라 해도 반드시 영화가 흥행하는 건 아니다. 되레 실수도 많이 하고 흥행에서 참패를 겪으며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연기 실력과 영화 보는 눈은 비례하지 않는다.

‘근데 잘 맞는 영화를 고를 수 있다면.’

백전백승.

능력을 완전히 뽑아 쓰며 실패하지 않는 배우가 될 수 있다.

“속단하지 말자. 아직은 확실 한 게 아니니까.”

검증은 두 번, 세 번, 네 번으로도 부족하다.

확실하게 알 때 까지 단정은 무의미.

진호가 폰을 들고 손에 익은 번호를 눌렀다.

은서의 전화번호였다.

#

“응? 갑자기 슈퍼 파워가 생겼다고?”

연극 수업을 끝내고 돌아온 은서는 뜬금없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좀 확인하려고. 너 시나리오 들어온 거 있지?”

“응. 근데 나 연극하냐고 전부 고사했잖아.”

“내가 한 번 볼 수 있을까?”

“시나리오를?”

“응.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묵은 시나리오를 꺼내왔다.

드라마, 영화 등 꽤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 있었다.

“이거 다 고사하고 연극으로 간 거야?”

“그냥 마음 정하니까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멋지네. 한 번 마음 정했으면 제대로 하는 게 좋지.”

“덕담은 그만하고 읽기나 해 봐. 대체 무슨 능력이 생겼다는 거야?”

주저앉은 은서를 옆에 끼고 진호가 시나리오를 읽어갔다.

숫자는 많았지만 눈으로 훑는 건 빨랐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었다.

“이것 봐라?”

“왜?”

“네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봤거든. 근데 그러니까 하나도 좋은 느낌이 안 와.”

“전부 나랑 안 맞는다고?”

“응. 상성이 안 맞는 느낌. 아마도 네가 연극에 빠져 있어서 그런 거 같아.”

은서가 아닌 진호 자신으로 대입하니 몇 개 느낌 가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아마도 현 상황, 대입되는 사람과의 상성이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것 같았다.

“이러면 완벽 한 건 아니네.”

연기를 하다보면 컨디션은 얼마든지 바뀐다.

당장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도 작품 활동을 하다가 중간에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작품을 가늠하는 눈이라기보다는 나침반.

지금 자신의 상태에서 나아 갈 길을 찾게 해 주는 도구였다.

“뭐야. 그래서 나 연극 계속 해도 되는 거지?”

“울프 독 연습하고 있다고 그랬지?”

“응. 잘 되면 작은 배역부터 할 수 있을 거야.”

“······”

울프 독에 대해서는 제목밖에는 모른다.

하지만 연극에 대해서 말 할 때의 은서는 무언가 단단하고 굳건한 느낌이 든다.

마치 좋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울프 독이 어울리는 연극인지는 모르겠는데, 연극은 계속해도 좋을 거 같다.”

“진짜?”

“응. 너, 지금 굉장히 좋은 느낌이 들거든.”

“뭐야 그건. 오빠 지금 굉장히 변태 같았어.”

샐쭉하게 바라보지만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진호 말마따나 연극을 연습하면서 조금 더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니까 좋다. 왠지 오빠가 말하면 신뢰감이 들거든.”

“방금은 변태라면서.”

“신뢰감 있는 변태.”

“굉장한 혼종인데. 감당 되겠어?”

“그 혼종이 내편이면 괜찮거든.”

은서가 슬슬 웃으며 진호에게 팔짱을 걸었다.

초능력이고 뭐고 그냥 이렇게 부대끼는 게 가장 좋았다.

이렇게 있으면 굳이 앞날을 내다보지 않아도 전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그 느낌이 뭐래?”

“올 그린.”

진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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