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9. 공연이 끝나고(1)
공연은 막을 내렸다.
뜨거운 환호와 우레 같던 박수 소리도 사라졌다.
많은 공허함이 교차해서 지나갔다.
하지만 괜찮다.
그 찰나의 환희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티스트니까.
“오빠, 죽은 건 아니지?”
“살아 있어.”
시체처럼 누워있던 진호가 마른 목소리로 답했다.
공연 시간 자체는 짧았지만 한 번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던 터라 체력이 방전되었다.
“우리말이야. 제대로 했지?”
“당연한 말을.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어. 무대 위에서 우릴 보고 환호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웅웅거린다고.”
“이래서 가수들이 콘서트에 환장하는구나. 카메라 연기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었어.”
“응. 확실히.”
은서가 진호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녀도 무대에 섰고, 짧게나마 뜨거움을 느꼈다.
카메라 앞에서 하던 연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 스케줄 비면 연극무대에 서 볼까 해.”
“연극을?”
“응. 이번에 느낀 점이 꽤 있거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연기하는 걸 좀 더 해보고 싶어.”
“좋지. 나쁘지 않아. 많은 걸 경험하고 많은 걸 볼수록 연기에 깊이가 더해지는 거니까.”
“오빠는? 공연도 끝났는데 뭘 할 거야?”
진호가 잠시 침묵했다.
머리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답은 역시 하나였다.
“배우가 뭘 하겠어. 연기지.”
숨 쉬듯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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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리고 녹화 분 역시 곧바로 여러 매체를 통해서 방송되었다.
어마어마한 관심이 조회수로 반영되었다.
유튜브 영상은 하루만에 5억 뷰를 돌파했다.
댓글 숫자는 100만 개를 돌파해서 계속해서 증가중이다.
각종 언론의 속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모든 가십을 누른 채 당당하게 1면으로 떴다.
일개 공연의 결과 치고는 엄청난 반응이었다.
그만큼 진호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감과 출연진들의 이름값, 주변 상황에 대한 흥미가 반영된 것이다.
— 멋진 공연이었다.
— 평화를 위한 외침. 이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 아름다운 밤이었다. 화합의 장. 예술의 극한.
게다가 일분이 아까울 정도로 세계적인 인물들이 공연에 대한 의견을 개재했다.
일국의 대통령도 있었고, 세계적인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모두가 한입으로 공연의 가치를 찬사했다.
[일본 공연 대 성황. 평화를 위해서 온 몸 던진 배우의 희생정신]
[입을 닫은 정치인. 앞으로 나선 배우. 과연 누가 나라를 위한 것일까?]
[매국이라는 오명조차 뒤집어 쓴 열사.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기사들도 방향이 일정해졌다.
다른 말을 쓰기에는 흐름이 너무 강했다.
공연 시작 전만 해도 ‘매국 행동’이라고 비난하던 이들조차 지금은 말을 삼갔다.
그리고 그건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표, 표창을 하라고요?”
“아무래도 분위기가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서 모진 소리하면 우리만 모양이 안 좋아 집니다. 여기서는 상을 주며 다독이는 것이 나아요.”
“하지만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은······!”
“그만. 여기까지 합시다. 더 이상 반대하면 나도 곤란해요.”
문체부 장관에게 내려온 지시사항.
문화 관련 행동으로 국익을 가져왔으니 이에 따른 표창을 수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불같이 반대했지만 정치권의 의견은 공고했다.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국 여론.
지금은 여론의 파도를 탄 진호에게 대항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진호 귀국 하루 전.
조용히 지나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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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모든 일은 끝나고 난 뒤가 중요하다.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공연 하나를 딱 한다고 마법처럼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릴레이 운동이라. 열심히 해 주고 있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공연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소규모 공연을 연 것이다.
형태도 방식도 전부 달랐지만 의미는 하나였다.
“제법 효과도 있어.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지만 일본에서 이런 반향이 일어나는 건 굉장히 드물거든. 내각에서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양이야.”
“정권이 흔들린다는 건가요?”
“현 정권은 굉장히 콘크리트야. 어지간한 일에는 지지율 변화가 없지. 한국을 때리면서는 되레 올랐을 정도야. 하지만 이번 공연이 터지면서 왠지 모르게 지지율이 급락했어.”
“급락이요? 그 정도까지 효과가 있을 리 없는데?”
“나도 의문이지만 사실은 사실이야. 일본 내부에서는 반대파의 공작이라는 음모론도 돌지만 지금 분위기에서는 먹히는 소리가 아니지.”
일본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일을 퍼뜨리고 있다.
영상이 공유되고 직접 나서서 같은 의미의 공연을 선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종의 트렌드처럼.
“현 정권의 방향성을 거부하는 거네요. 지금까지는 관심 없던 사람들이 의견을 피력하니까 그게 반영되는 모양이에요.”
“하긴. 일본은 이런 쪽으로 많이 무관심하지. 이번 일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면 좋을 거야.”
“정치권도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정치인의 힘은 결국 표에서 나온다.
전제정권이 아닌 이상 표의 흐름과 동떨어진 정책을 밀어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진즉에 친하게 지냈으면 좋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꼭 맞아야 말을 들어.”
“교장 샘. 이번 회초리는 꽤 따끔했던 모양입니다.”
“허허. 진호 샘. 회초리라니. 몽둥이지.”
진호와 최현석이 나란히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나중에 찾아온 회사 직원이 ‘대표님과 진호 씨가 실성했어요!’라고 할 때 까지 신나게 웃었다.
어쩌겠는가.
웃음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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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관계가 극적으로 흘러가고 있을 무렵.
다른 한 쪽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계산 제대로 한 거 맞아? 돈이 비잖아!”
“어쩔 수 없잖아. 현장에서 쓴 걸 제대로 경비 처리도 안 했는데.”
“그거 중간에 정리해 두지 않았어?”
“그 뒤에 또 썼다고!”
블루 아이 회계팀이었다.
이번 공연은 출연자들 출연료만 해도 역대급의 공연.
금액을 처리하고 정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워낙 중간중간 뽑아서 쓴 돈도 많고 경로가 복잡하게 얽힌 터라 다들 머리가 쪼개질 지경이었다.
“이거 지출이 어마어마한데?”
“전부 최고급으로 끌고 갔으니까. 나온 사람들 출연료만 해도 얼마냐? 이 돈이면 같은 공연을 몇 번 더 열겠다.”
“이럴 거면 중계료와 입장료는 받지.”
“대표님하고 진호 씨가 안 한다는데 뭐 어쩌겠냐. 큰 의미가 있겠지.”
지출은 많고 수익은 적었다.
공연 자체를 광고판 삼아서 광고 수익을 올리기는 했으나 지출을 메울 정도는 아니었다.
회계 장부에는 계속해서 마이너스만 찍혔다.
“단순하게 보면 안 돼. 지금 당장에야 손해가 크지만 얻을 걸 고려해 보라고.”
“얻은 거? 인지도? 하지만 이미 인지도는 충분했잖아요.”
“그게 아니야. 인지도는 그냥 아는 거고, 이번에 얻은 건 파급력이야. 스타가 가지는 파급력. 그 사람이 가지는 브랜드 파워.”
“뭐가 복잡하네요.”
“안 복잡해. 오히려 단순하지. 만약 네가 기업 오너라고 생각해 봐. 같은 가격에 모델을 쓸 거면 어떤 사람을 쓰고 싶어? 평범한 배우, 양국의 마찰을 불식시킨 평화의 상징.”
회계팀 선배의 말에 다들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언뜻 들었는데, 섭외 문의가 장난 아니야. 유명 의류 브랜드도 장기 계약을 하고 싶어 하고 차, 건물, 음료, 통신기기 등 종류 가릴 것이 들어와. 심지어 회사 자체와 장기간의 협업도 논의되고 있다고.”
“이거 왠지 사이즈가 커지는 느낌인데요?”
“크다 뿐이겠냐? 지금 문의 들어온 곳 중 두어 개만 제대로 잡아도 우리 입장에서는 판로가 확장되는 거야. 당장 무대에 세운 루카와 세미에 대한 문의도 장난 없다고. 이 둘도 단번에 글로벌 하게 놀 수 있어.”
“······와. 한 번에 확 와 닿네요.”
돈은 손해를 봤지만 이미지를 얻었다.
그것도 국내 한정이 아닌 세계적인 이미지를.
이제 해외에서 진호 이름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의 소속사인 블루 아이 역시.
“그러니까 다들 정신 바짝 챙겨 둬.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바빠질 테니까.”
회계 팀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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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보름.
한 때의 폭풍이 낳은 여파는 세계를 휩쓸었다.
수많은 카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지지와 호응을 받으며 크기를 키워갔다.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탄 격.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고 뒷짐 진 정치인들을 흔들었다.
[극적인 타협. 모든 제제 선언 철회. 양국의 평화가 다시 찾아오다]
결국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일본 쪽에서 모든 제제를 철회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례 없는 일이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을 꺾지 않으면 당장 지지율이 바닥을 때릴 판이었다.
앞가림이 우선인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일본, 한 걸음 나아가다]
[이제야 더 큰 의미를 찾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에서 이 과정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악 바쳐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도 분명 많았지만 지금껏 침묵하던 이들이 좋은 반응을 내보였다.
일종의 자정작용이라고 하면 좋을까.
그들도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는 걸 조금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공로를 생각하여 이리 표창합니다.”
어쩔 수 없는 표창 사례가 이어졌다.
쥐 먹은 얼굴을 한 채 표창장을 내미는 문체부 장관만 보아도 절대 자발적인 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영광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활동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더 열심히 해야죠. 그래야 장관님께 더 많은 표창을 받을 거 아닙니까?”
“······네. 부디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한국 정치인들도 일련의 사태로 욕을 많이 먹었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어째서 민간이 하냐는 내용이었다.
정치인 자격 논란도 일고 무능론이 대두되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진호를 다독이면서 같은 편임을 강조해야 했다.
우습지만 이게 나름의 정치였다.
“사진 한 방 찍겠습니다. 두 분 나란히 서시고요.”
말하자면 정치권이 진호의 눈치를 보는 상황.
의도적인 흠집 내기나 도발을 통한 인지도 상승도 노리지 못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다.
국민 배우.
지난 세월동안 이 이름을 단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로 이 정도까지 그 역할을 수행한 사람은 없었다.
“하하. 조금 떨어지죠?”
“왜 그러세요, 장관님. 친한 사이인데 딱 붙어서 찍어야죠. 안 웃어요? 안 웃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텐데.”
“너 진짜······”
“어허. 공식석상에서 반발하시면 곤란하죠. 정치, 앞으로 안 하실 거예요?”
“끄응.”
장관이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
일시적이라 할 수 있지만 진호는 문화로는 대통령 버금가는 권력을 쥐었다.
“장관님. 앞으로는 정치 열심히 하세요. 사익이 아닌 국민들을 위해서. 그러면 불편한 일 겪지 않고 정치 커리어 계속 쌓아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다고 보냐?”
“아마 장관님보는 오래 할 겁니다.”
“뒷감당은 할 수 있고?”
“보세요, 장관님. 권력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입니다. 장관님과 저 중 누가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거 같습니까?”
진호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 환호는 장관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의 수십 배에 달했다.
“정신 차리세요. 당신 정도 끝내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
“······”
웃지 못하는 장관과 환하게 웃는 진호.
두 사람이 같이 사진을 찍는 일은 두 번 다시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