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8. 공연(2)
장관은 조용히 들어와 주변을 살폈다.
그가 생각하는, 그가 기대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이곳은 아마도 초상집.
그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먼 걸음을 달려온 것이다.
“장관님 아닙니까? 이곳가지는 어쩐 일로?”
“하하. 세간이 주시하는 공연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국민의 일원으로서 응원하러 왔죠.”
“그거 참 영광이군요.”
왼쪽으로 슥, 오른쪽으로 슥.
장내를 눈으로 훑었다.
다급하고 긴장된 기색은 느껴졌지만 절망감은 보이지 않았다.
‘태연한 척 하는 건가?’
장관은 입 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공연 준비는 잘 돼 갑니까?”
“네. 많은 사람들이 도와 준 덕분에 차곡차곡 진행 중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혹시라도 공연이 잘못되고 그러면 국제적인 망신이 되다보니······걱정이 많았습니다.”
“하하. 걱정은 접어 두세요. 준비하던 천을 동네 똥개가 물어가서 살짝 곤란하긴 했지만 발 빠르게 대응을 했죠.”
“또, 똥개?”
“네. 혹시 오다가 못 보셨나요? 아주 더럽게 생긴 똥개 한 마리가 귀찮게 했는데.”
장관의 턱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똥개가 누구를 비유하고 있는지 못 알아 들을 머리가 아니다.
“······그래요. 준비가 잘 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이왕 이렇게 오신 거 VIP석에서 관람하다가 가시죠. 좋은 구경 될 겁니다.”
“아뇨. 아뇨. 아쉽지만 공무가 바쁜지라.”
“그렇죠. 공사다망하신 분이니 어디 허투루 쓸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럼 배웅은 안 하겠습니다. 사고 친 똥개를 잡으러 가야 해서요.”
빠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호는 무시했다.
장관과 척 지어 좋을 게 없다는 건 알지만 이미 몇 번이던가.
적의로 달려오는 이를 양 팔 벌려 환영해 줄 아량 따위는 없었다.
“자자. 다들 공연 준비합시다.”
지금은 그런 똥개보다 중한 일이 있었다.
#
시간 맞춰 장막이 도착했다.
진호는 기존 설비에 장막 길이를 조절해서 설치 한 뒤 종합적인 리허설을 실시했다.
모든 공연자들이 참가하여 진지하게 임했다.
실제 공연 수준의 리허설.
무대 하나하나가 폭발적이고 이어지는 흐름이 굉장했다.
“이런 공연은 생전 처음이군요.”
“여러 가지 공연을 봐 왔지만 이렇게 하나로 통일 된 이야기는 처음입니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군요.”
“관객들은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신기한 경험이 될 겁니다.”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리허설로 드러난 공연의 전체 윤곽은 커리어 전체를 털어서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종류였다.
생소하고, 신기하고, 환상적인.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었다.
“관객들 입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연을 만끽할 관객들이 드디어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표는 매진되어 거액의 암표가 횡횡했을 정도.
도쿄돔을 꽉 채우고도 남을 사람이 동원되었다.
입장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상당수가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인도 미국인도 다른 국적의 외국인도 다수 있었다.
“취재진 숫자를 봐.”
“어마어마하네.”
공연은 완전히 오픈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실시간으로 취재하기 위해서 온갖 방송사들이 다 찾아들었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저명한 방송사들도 전부 사람을 파견했다.
도쿄돔의 일부를 이들에게 제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이들이 공연을 보고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싸우기만 하는 머저리들에게 한 마디 해 주러 가자.”
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더 이상 고래 싸움에 터지는 새우가 많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호가 걸음을 떼었다.
#
5만 명에 가까운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받는 기분은 어떠할까.
진호는 지금 그 기분을 온몸으로 만끽중이다.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시선 속에서 무대 위를 천천히 걸었다.
“좋은 밤입니다.”
[좋은 밤입니다]
진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함께 사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천장에서 큰 보드가 내려와서 자막을 입히게 되지만 지금은 필요 없었다.
“여기 계신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왜 이런 공연이 열리게 되었는지.”
진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5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숨을 참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건 신기한 광경이었다.
“인간은 다툽니다. 그건 부정 할 수 없는 역사고 사실입니다. 한국과 일본도 그러했죠. 과거에도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오만의 관중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되짚고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국의 싸움이 정말로 어떠한 정의를 담고 있습니까?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합니까? 아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철없이 다투는 아이처럼. 그저 자기 앞가림을 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총 뿌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정작 피해보는 것은 자신들이 아닌데도.”
공연에 이런 말을 듣기 위해서 온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내의 누구도 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 할 수 없었다.
차분한 진호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있었고, 조명 아래에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무엇보다 진지했다.
“그렇기에 전 공연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너희는 싸워라.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정말로 가야 할 길은 아귀다툼이 아닌 상생의 길이라는 말을.”
딱. 진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돔 상부에서 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동시에 바닥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각 파트를 담당 할 출연자들을 밀어 올렸다.
“우리는 아티스트입니다. 노래로, 춤으로, 연기로. 모든 걸 동원해서 호소 할 겁니다. 그것이 부디 즐거움으로, 행복으로, 만족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가기를 기도합니다.”
퍼퍼퍼펑.
말이 끝나는 순간, 폭죽이 사방에서 터져 올랐다.
핀 조명이 쏟아지고 자리에 잡은 출연진들의 얼굴이 커다란 전광판에 잡혔다.
한 명 한 명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환호성이 쏟아지고 박수와 발 구름이 강해졌다.
“그럼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대단원의 막이 올랐다.
#
공연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첫 스타트를 끊은 행위예술가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댄스 팀들.
그 뒤로도 흐름을 끊지 않고 공연을 이어갔다.
“뭐야. 이렇게 다 나오는 거야?”
“춤추는 사람도 있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워 했다.
아무래도 기존의 공연 방식과는 달랐으니까.
머리에서 기대하던 것과 눈앞의 결과물에 차이가 있음은 아무래도 거부감이 생긴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이래서, 그런 춤을 춘 거야. 이제야 이해가 되네.”
“다음번은 뮤지컬인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기대가 되는군.”
하지만 차차 공연진행 될 수록 흐름에 빠져들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흐름이었다.
초반 서사에 의아해 하다가 진행되는 스토리에 조금씩 집중하는 격이다.
“다음.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그 스토리의 중심에는 진호가 있었다.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뜨거운 이야기를 진호가 맡았다.
“리프트 올라갑니다.”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조명이 진호의 머리로 떨어졌다. 환호성과 박수는 심장 고동소리에 묻혀서 조용해졌다.
5만 명 앞에서 수줍음은 필요 없었다.
크어어어엉!
진호는 몸을 웅크리고 포효했다.
진짜 짐승 같은 포효에 관객들이 움찔했다.
이 순간에 사람들은 바로 눈치 챘다.
여기부터가 가장 뜨겁고 강렬한 부분이라는 것을.
“여기에 여린 짐승이 있다고?”
진호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쇠 긁는 듯 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져나갔다.
관객들은 소름이 돋는 듯 팔을 매만졌다.
그만큼 진호의 목소리는 사람을 씹어 먹을 듯 한 힘을 담고 있었다.
“말 해 보거라 아이야. 너는 내게 무엇을 바라느냐.”
백스크린을 통해서 진호의 그림자가 비춰졌다.
짐승처럼 웅크린, 어딘가 기괴한 형태였다.
“강력한 힘이라. 그래,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지?”
이어 그림자가 연달아 튀어나왔다.
진호의 상대역을 맡은 배우들이었다.
보다 작고 연약한 짐승의 모습이었다.
“하하. 저 약한 것을 무너뜨리고 싶다고? 오. 너는 저 파렴치한 놈을 없애고 싶다고? 그래, 재미있구나. 힘을 줄 테니 싸워 보거라.”
장난기 가득한, 하지만 어딘가 두려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작은 그림자 둘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고 둘은 서로를 약해 악의 서린 말을 쏟아냈다.
“고작 그 정도인가? 더 해 보거라. 저 아이를 밟을수록 네가 얻는 것이 많아진다. 아, 다리가 아프다고? 고작 다리 정도 아니더냐. 배불리 먹고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다면 다리 정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은근한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스크린에 투사되는 그림자조차 악마의 얼굴 같아 사람들은 몸서리쳤다.
왠지 주변 기온도 서늘한 느낌이었다.
“그래. 배가 부르니 좋지? 아, 발가락이 잘렸다고? 하하. 그래서 아프더냐? 아프지 않지? 저 아이를 때려서 얻은 이 빵이면 아픔 같은 건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두 그림자는 몸을 부풀린 채 싸웠다.
볼은 통통해지고 몸은 거인처럼 부푸는데 나머지는 점차 약해졌다.
발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상처입기도 했다.
“이번에야 말로 저놈을 끝내고 싶다고? 다리가 잘려서 없어진다고 해도 좋다고? 하하. 좋은 각오구나. 그래, 그런 배짱이 있어야 이길 수 있지. 아. 너도 질 수는 없다? 맞대응을 하고 싶으니 힘을 달라고? 좋아. 좋구나. 얼마든지 너희에게 힘을 내어주마.”
진호는 두 그림자에 손을 얹었다.
마치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 그림자가 부풀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크기에 도달하는 순간, 몸이 기울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다리였다.
양 그림자 모두 다리가 부러져 비명을 토해냈다.
“하하하하하.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그 모습을 보며 진호는 박장대소했다.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 맞춰 스크린 속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마치 악마가 정말로 살아서 움직이는 듯 한 연출이었다.
“다리가 썩어가고 있음에도 배를 채우기 위해서 힘만 탐하는 모습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란 말이냐. 이것이 너희가 말하는 이성이고 현명함인가? 시궁창의 쥐가 비웃고 늪의 뱀이 조소하겠구나. 자, 이제 나는 한껏 웃어 출출해졌으니 뒤뚱거리는 너희를 잡아먹어야겠다. 어디 바닥을 구르며 재주껏 피해 보거라.”
진호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공중에 거꾸로 매달렸다. 줄은 시각적으로 가려져 있던 터라 사람들은 그가 뚝 떨어지는 거라 생각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공포야말로 노리던 부분이었다.
“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째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이제는 다시 우리를 잡아먹으려 한단 말입니까!?”
아주 잠시.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뒤이어 스크린을 통해 진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아주 평범한, 느긋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어 대사를 뱉는 순간,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없는 수준의 공포를 느꼈다.
“나는 전쟁이라고 한다.”
공연의 클라이맥스.
그 동안의 경험을 한 마디에 압축한 연기였다.
더 이상의 부언설명은 필요 없었다.
장내에 모인 5만.
아니, 이를 시청하는 모습 사람이 이해했다.
전쟁은 공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