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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107화 (107/178)
  • Chapter48. 공연(1)

    준비는 끝났다.

    진호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심장은 가볍게 쿵쿵 거리고 있었다.

    약간의 흥분, 기대감, 두려움.

    복잡한 마음이었다.

    “잘 될까?”

    서포터를 자처한 은서가 물었다.

    그녀와 그녀의 회사 역시 공연에 일익을 담당했던 터라 받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괜찮을 거야.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으니까.”

    “그건 알지만······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잖아. 공연에서 어떤 말이 쏟아질지 두려워.”

    “사람을 믿어. 적어도 우리 공연에 오는 사람이라면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 테니까. 우리 메시지를 이해해 주고 환영 할 거야.”

    “긍정적이라서 좋네.”

    은서가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절대로 쉽지 않았다.

    간단하게 협력했다, 라고 축약하지만 그 안에서 숱한 마찰과 싸움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잠잠한 언론조차 휘두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매국 활동이다.

    이런 말은 무시하려고 해도 상처였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는 어떻게 될까?”

    “기다려야지. 우리의 역할은 이것으로 충분해. 메시지를 던졌으면 그에 대한 답은 다른 이들이 해 줄 거야.”

    “답을 안 하면?”

    “어쩌겠어. 세상은 넓은데 우리는 작아. 몸을 추스르고 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한계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타협하고 머무르는 것도 사양하고 싶다.

    이미 한계에 타협하는 건 많이 해 보지 않았는가.

    전생을 체험하는 힘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온 거라면 보다 좋은 것에 쓰고 싶은 것이 마음이다.

    사명, 그렇게 딱딱한 단어를 쓰지 않아도 심지 굳은 마음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나 망한다고 차버리는 건 아니지?”

    “걱정 마. 그때는 내가 먹여 살려 줄 테니까.”

    “든든하네.”

    기대오는 은서의 손을 맞잡고 진호가 웃었다.

    이제 곧 공연이었다.

    #

    도쿄 돔에서 공사에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은 여타의 공연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무대 장치가 굉장히 복잡하게 들어간다.

    진호가 아이디어를 내고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완성시킨 장치들.

    “그쪽. 너무 높아요. 관객 시야에만 안 들어올 정도면 됩니다. 살짝 낮추고 천을 단단하게 당겨 주세요.”

    진호는 무대를 누비며 전체를 감독했다.

    물론, 여러 협력 업체의 대표들이 현장에 와 있었지만 전체를 보는 건 그였다.

    거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마이스터.

    부분의 전문가들은 차고 넘쳤지만 전체를 지휘하는 건 오로지 그뿐이었다.

    [하하하. 이거 시끌벅쩍하군!]

    [빌. 일찍 왔군]

    [합을 제대로 맞춰보지 못했으니 하루라도 서둘러야지]

    빌을 비롯한 몇 몇 스타들은 시간 관계상 연습 스케줄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다.

    이런 이들에게는 진호가 별도의 연습 루틴을 제공했다.

    혼자서 하지만 나중에 합을 맞추기 좋은.

    처음에는 생소한 방식에 난색을 취했었지만 중간에 합류하여 호흡을 맞춘 이후에는 입을 다물었다.

    각각 연습한 장면이 한 곳에서 어우러졌을 때 얼마나 대단한 시너지가 나오는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리허설 전에 연기 파트만 모아서 합을 맞춰 볼 거야. 알다시피 우리는 뮤지컬도 아니고 연극도 아니야]

    [돔 무대에서 연기라. 솔직히 네 말이 아니었다면 미친 짓이라고 말 했을 거다]

    [쉽진 않을 거야. 하지만 면면이 훌륭한 사람들이니까]

    스크린 연기나 뮤지컬. 혹은 연극과도 상황이 다르다.

    돔은 360도로 모든 영역이 다 뚫려 있고, 모든 행동이 라이브이기 때문에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360도로 돌아가는 대형 발판이 준비되었지만 이것이 되레 몰입을 방해 할 수도 있다.

    수만의 관중 아래에서 자기 연기를 하는 것.

    베테랑들이 모였다고 해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미있겠어. 내 평생 이런 연기는 처음이라고. 하하. 역시 자네와 어울린 건 현명한 판단이었어!]

    [나중에 실수나 하지 말라고]

    [수만명 앞에서의 실수라. 이거 등골이 다 오싹하군]

    아이처럼 웃는 빌의 얼굴에서는 긴장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시도.

    [자! 빨리 공연을 시작하자고!]

    날것에 대한 흥분뿐이었다.

    #

    무대는 빠르게 완성되어갔다.

    공연 참가자들도 하나씩 입국해 숫자를 채웠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공연은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품이 안 왔다니?”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잔잔한 바다가 더 무서운 법이다. 업체를 조율하던 스텝 중 하나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물어왔다.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합니다.”

    “공항에서 왜? 서류 작업은 완벽하게 했을 텐데?”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관계자들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제대로 말을 안 해 줘요. 자기들도 모른다는 말만 하고.”

    공연에 사용할 중요한 제품이 도착을 안 했다.

    무대 연결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 물건이기에 마땅한 대체품도 없었다.

    “기다려 봐. 내가 연락을 해 볼 테니까.”

    진호가 다급하게 나서서 전화를 돌렸다.

    세관에 묶여있는 거라면 상황을 설명하고 빠르게 물건을 빼 내면 된다.

    “······네. 네. 그쪽도 이유를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전화를 돌릴수록 상황이 기이했다.

    세관에서 물건을 묶으려면 타당한 사유가 있어야 할 터. 헌데, 아무리 전화를 돌려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이유 없이 물건을 잡아 둔 것처럼.

    “이거 어떻게, 물건 없이 진행 가능합니까?”

    “······곤란해요. 이번 공연은 전체가 하나의 극. 중간에 나사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렇기에 진호가 총괄했던 것이다.

    무대 하나하나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일본 쪽에 연락 해 볼 사람 없습니까?”

    “있긴 하지만 분위기상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네요.”

    “어째서요?”

    “아무래도 이거 사고 같지가 않습니다. 사고가 생긴 거라면 적어도 이유는 알아 야죠. 이렇게 대책 없이 묶어 두는 거라면 누군가 고의로 일을 방해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짚이는 사람이라면 한 트럭 정도는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번 공연을 탐탁지 않게 보는 부류가 한 가득 있었으니까.

    ‘하필 이제 와서!’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훼방을 놓는 건 그냥 반대 수준이 아니었다.

    악의에 가득 차 다 망쳐 놓으려는 심보다.

    “어떻게 할 겁니까? 이제 와서 무대 구성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 텐데.”

    “······대체 할 물건을 찾아봐야죠.”

    “이제 와서요?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끼리 안 되면 다른 사람 손이라도 빌려 봐야죠.”

    진호가 입술을 깨물며 폰을 꺼내 들었다.

    사람이 흔히 바쁘고 힘들 때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이 딱 그랬다.

    #

    “이게 먹힐까?”

    진호가 선택한 방법은 SNS였다.

    자신의 개인 계정을 통해서 도움을 청한 것이다.

    도착하지 못한 물건에 대해서 묘사하고 이를 도와 달라고.

    “일단 반응은 뜨겁네요.”

    개시한 글에는 순식간에 수천 건의 댓글이 달렸다.

    다만, 대부분의 글이 의미 없는 환호나 이모티콘이었다.

    글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수 소제로 만든 장막이잖아. 이렇게 글 몇 줄 올려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해 봐야죠. 만약 소용이 없으면······중간 파트를 생략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생략이라고? 그러면 전체 완성도가 떨어 질 텐데.”

    “떨어지겠죠. 그래도 완전히 망치는 것보다는 나아요.”

    특수한 소재로 만든 장막이 빛을 흡수하고 돔의 일부를 완전히 까맣게 만들어 준다.

    이건 시간의 변화를 표현하는 연극 도구이면서 동시에 무대 전환 장치.

    만약 이 도구가 없으면 무대 전환이 어색해지고, 이는 몰입을 깨는 결과로 이어 질 수밖에 없다.

    진호가 기를 쓰고 대체품을 찾으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공항에서는 아직도 무응답인가요?”

    “아, 겨우 연락이 닿긴 했어. 근데 결과는 마찬가지야. 위험물에 대한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 중이라고.”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시간 맞춰서 풀릴 가능성은 있을까요?”

    “······어렵다고 본다. 당장 공항을 뜬다고 해도 여기까지 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최현석의 답에 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었기에 이런 결손은 상당한 불쾌함으로 다가왔다.

    ‘꽤 아픈 구석을 찔렀어.’

    누가 됐든 진호가 아파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공략한 셈이다.

    “오빠! 진호 오빠, 이거 봐봐!”

    그때였다.

    구석에 앉아 댓글을 읽던 은서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거. 내가 제대로 번역 한 거 맞지? 일본에 있는 회사인데, 자기들한테 비슷한 물건이 있데.”

    “진짜? 봐봐.”

    진호가 폰을 가져와 댓글을 확인했다.

    일본으로 장문의 댓글과 링크까지 걸어 두었다.

    눈으로 훑어보자면 은서의 말이 정확했다.

    자신들에게 비슷한 물건이 있으니 확인해 보고 연락 달라는 글이었다.

    “이거 진짜 있는 회사인가?”

    “링크 확인해 봐봐.”

    “······어. 일단 나오기는 하네. 연락 해 볼까?”

    “해서 손해 볼 건 없지.”

    그 말 대로.

    진호가 사이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음이 이어지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폰을 통해 전해졌다.

    [XX화학 맞나요?]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제 계정에 걸린 댓글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계정? 어······설마 진호 상!?]

    폰 너머의 목소리가 갑자기 올라갔다.

    [네. 제가 홍 진호입니다. 혹시 댓글 단 본인이신가요?]

    [네! 네! 제가 당직이라 보고 있다가 냉큼 달았어요! 세상에 내가 진짜로 진호 상과 전화를 하고 있다니!]

    [하하. 일단 좀 진정하시고······그 물건 말입니다. 혹시 어느 정도 사이즈까지 구할 수 있을까요?]

    일단 사람까지는 확인했다.

    하지만 공연에 적합한 물건이 아니라면 의미 없는 일.

    진호는 짧은 침묵을 괴롭게 기다렸다.

    [프로젝트용으로 만들어 둔 제품이 있어요. 가로 세로 5미터를 조금 넘죠. 이걸로 도움이 될까요?]

    [5미터.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희가 그 물건을 잠시 대여해도 될까요?]

    [그럼요! 되고말고요! 어차피 프로젝트 이후로 폐기되는 물건이라서 처분이 곤란했거든요]

    [그럼 잘 됐네요. 아예 제가 그 물건을 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입을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냥 가져가세요]

    [그럴 수는 없죠. 제값 치루고 사용한 다음에, 제대로 감사 인사하러 방문하겠습니다]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팬은 확실히 제대로 팬인 것 같았다.

    [그럼 저희가 물건 회수할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주소는 사이트에 나온 그대로겠죠?]

    [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진행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야말로 고맙죠. 진호 상이 이 세상에 있는 게 저한테는 고마운 일이랍니다]

    팬심 가득한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남는 인원을 사이트에 적힌 주소로 곧장 출발시켰다.

    왕복 두어 시간.

    이 정도면 공연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진호 씨. 문체부 장관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교로운 타이밍으로 방문객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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