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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106화 (106/178)
  • Chapter47. 프로듀서(2)

    공연 준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당일 도쿄돔의 설비 문제와 교통 건도 합의가 끝나고 지역 홍보도 조율했다.

    어중간한 입장 차이로 망설이던 일본 내각은 개입 할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미 일본 내부에서도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 끝까지 치솟아 버렸다.

    게다가 출연진이 또 어떠한가.

    외국의 유명한 가수, 배우, 댄서 등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이름 높은 스타들도 대거 참여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 행위 자체를 ‘매국’이라 매도했지만 그 반발보다는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축제는 전쟁을 불식한다고 하던가.

    한일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공연의 실체화와 더불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외교 제제를 보류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지금 당장 강경책으로 가다가는 여론이 안 좋으니까.”

    “우리나라도 비슷하네.”

    양 국 모두 강경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축제는 정치적 스탠스와 상관없이 축제일 뿐.

    이를 잘못 건드리면 그냥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

    발언이 줄어들고 정치 행보 역시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여기 상공회에서 감사패를 전달해 왔다.”

    “이건 노동조합에서 보내 온 거네요.”

    덕분에 한 숨 돌린 건 지역 소상공들.

    당장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던 이들이 공연 덕분에 살 길을 도모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감사패를 보내고 편지를 썼다.

    “부담감이 만만치 않겠어.”

    “이게 다 스타의 업이죠. 사랑을 받았으면 그만큼 베푸는 것도 필요해요. 무게가 무겁다고 내려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인마. 회사도 사활을 걸고 있다고. 잘 해.”

    “걱정 마세요. 이번 일. 예감이 좋으니까요.”

    태풍 한 가운데서 웃는 건 진호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쏟아지는 일과 부담감에 짓눌려 발버둥 쳤겠지만 그는 달랐다.

    맑게 갠 하늘을 보며 소풍을 계획하는 것처럼.

    세상 번잡한 지금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미래를 보고 있었다.

    말마따나 예감이 좋았으니까.

    #

    루카는 쪼그려 앉아 무대를 바라봤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뽐내고 있었다.

    화려한 춤사위, 멋진 노래, 격렬한 연기까지.

    보고 있자면 가슴이 콩콩 뛸 정도였다.

    “루카, 여기서 뭐해?”

    “세미, 누나.”

    “힘들어? 누나가 마실 거 가져다줄까?”

    쪼르륵 다가온 세미에게 루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힘든 건 아니었다.

    페루에 있을 때는 마른 빵 씹어 먹으며 며칠이곤 버텼으니, 이 정도는 여유였다.

    “저, 사람들. 잘 해. 나도?”

    “저 사람들만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인거야?”

    “응. 진호, 도움. 할머니. 고마워. 돕고 싶어.”

    “히히. 기특하네.”

    말뜻을 이해한 세미가 루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꼬마아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진호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몰려온 온갖 기인들이 판을 벌리고 있으니 꼬맹이 간덩이로는 힘든 것이었다.

    “걱정 마. 진호 오빠가 루카를 데리고 온 거라면 분명 할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루카가?”

    “응. 나도 그랬거든. 진호 오빠는 어떤 초능력이 있는 게 분명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거든.”

    고개를 갸웃.

    루카는 이해가 안 가는 얼굴이었다.

    “나도 진호 오빠가 찾아주기 전까지는 그냥 꿈 많은 소녀에 불과했거든. 근데, 진호 오빠를 만나고 배우 일을 시작했잖아. 지금은 제법 인정도 받고 있어.”

    “세미, 누나. 배우.”

    “응. 배우라고 불려. 그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세미가 과거를 되짚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는 비유도 우스울 정도다.

    전부 진호 덕분.

    그에 대한 믿음은 어떤 신앙보다도 두터웠다.

    “나도. 할 수. 있다?”

    “응. 루카도 진호 오빠가 데리고 온 거니까. 믿어. 루카의 재능은 진호 오빠가 확인시켜 준 거야.”

    “······잘 몰라. 루카 재능.”

    “에이, 답답하긴. 이쪽으로 와 봐.”

    여전히 갸웃거리는 루카를 세미가 끌어냈다.

    그리고는 연습이 한창인 무대 위로 데려갔다.

    배우나 가수 등이 쫄랑쫄랑 걸어오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이니, 꼬마야?”

    “루카에요. 루카.”

    “어, 그래. 루카. 어느 분 자제니? 길 잃었어?”

    사람이 많다보니 서로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루카나 세미 둘 모두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루카도 공연 연습을 해야 해서요. 잠시만 자리 비켜주실 수 있어요?”

    “······공연이라고?”

    “네. 루카도 참가자거든요.”

    무대 위에서 연습하던 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공연임은 안다.

    인종도 제각각이고 나이도 굉장히 천차만별.

    하지만 열 살 도 안 돼 보이는 소년이 공연이라.

    선뜻 믿기지 않았다.

    “여기는 농담하는 장소가 아니란다. 정말로 그 아이가 무대 참가자라고?”

    “그렇다니까요? 페루에서 넘어온 신동! 뉴스도 안 보셨어요?”

    “페루? 본 것 같기는 한데······”

    정말일까.

    의문을 쉬이 거두지 못하자 세미가 아예 루카를 데리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럼 봐요. 보고 판단하세요.”

    “세미, 누나.”

    “걱정 마. 그 동안 진호 오빠한테서 많이 배웠잖아. 지금이라면 문제없을 거야.”

    가수는 대뜸 올라온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았지만 어린 소년 소녀를 구박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무대를 보고 나중에 훈계를 해도 충분하다.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가자, 루카. 오빠한테 배운 거 해 봐.”

    “······응.”

    루카가 머뭇머뭇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반주도 없이 주변은 어수선한데 고작 여덟 살 된 꼬마가 춤사위를 펼치는 것이다.

    이걸 누가 집중해서 볼까.

    누가 이런 모습에 감탄을 할까.

    “허.”

    여기, 이 사람들이 그렇다.

    루카의 춤이 진행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리를 내 준 가수도 그렇고 근처에서 연습하던 배우, 댄서들도 그랬다.

    진호의 기준으로 뽑혀서 온 사람들.

    그만큼 실력도 있고 보는 눈도 훌륭했다.

    “신기하네. 저렇게 짧은 팔다리로 어떻게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공연의 의미를 확실하게 담고 있어. 배경 음악이 없는데도 이 정도야. 이건 신동 정도가 아니군.”

    “내 나이 먹고 어린 아이한테 질투심을 느낄 줄이야. 타고난 아이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었어.”

    신체적 불리함을 뛰어넘는 표현력이었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루카의 춤사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자격 있죠?”

    “······사과하지. 어리다고 지레짐작을 해 버렸어. 저 아이는 이미 훌륭한 아티스트다.”

    “그럴 줄 알았어요.”

    세미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자신이 칭찬을 받은 듯 한 그런 얼굴이었다.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루카.

    자신과 마찬가지로 있을 자리를 찾은 모습이었다.

    “저 나이에 저런 실력이라니. 어떻게 가능한 건지 궁금할 지경이군.”

    “그야 루카에게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으니까요.”

    “선생님?”

    “네. 슈퍼 파워 가지고 있는 초능력 선생님.”

    세미가 뒷짐을 진 채 장난스럽게 웃었다.

    의아한 듯 보는 가수의 얼굴이 재미있어서 더 크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과 별개로 말은 진심이었다.

    ‘있지. 초능력 선생님.’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

    “어림없는 이야기.”

    문체부 장관은 담배를 씹듯이 물었다.

    “공문은 확실하게 전했지? 쓸데없이 협력하지 못하게 막아.”

    “네. 장관님 명령이니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역시 공연에 대한 건 알고 있었다.

    어떤 규모로 일을 벌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섭외하고 있는지도 파악해 두었다.

    “주제 넘치게 설치면 이렇게 되는 거라고. 공연이 뉘지 애 이름인가? 혼자서 얼마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일을 크게 벌여 두었으니 조금씩 균열이 발생 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장관님을 찾아오겠죠.”

    “흐흐. 내 말이 딱 그거라고.”

    단순한 논리였다.

    진호가 공연을 열기 위해서는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업체의 도움이 필수적.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업체 중 일을 감당 할 수 있는 곳에 압력을 넣어 두었다.

    절대로 진호에게 협력하지 말라고.

    “딴따라 새끼가 조금 잘 나간다고 감히 정치에 관여를 하려고 해?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조만간 깨닫고 머리를 조아리러 올 겁니다.”

    “흥. 애초에 한국과 일본의 문제는 민간에서 간섭 할 영역이 아니야.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처리하고 있는 걸 자기가 뭐라고 설치는 건데? 같잖게.”

    씹듯이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빨았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먹인 것 같아서 속이 시원했다.

    어차피 공연이 성공하고 실패하고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설마 실패해서 관계가 악화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거 성공한다고 자기 앞길에 도움 한 점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멋모르고 설쳐 되는 딴따라 놈 하나 물 먹여 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장관님, 생각 난 김에 상황을 한 번 떠볼까요?”

    “지금? 흐음. 보고 있는 놈이 있냐?”

    “장관님 불편하시지 않게 제가 몇 놈 보내 두었습니다.”

    “역시 자네가 일을 잘 해. 그럼 어서 연락을 해 봐.”

    장관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

    대충의 진척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하게는 몰랐다.

    지금쯤이면 커진 판에 곤란해 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입 꼬리로 번졌다.

    “연결 됐습니다.”

    이내, 화상통화로 현장이 연결되었다.

    화면 뒤편으로 공연 무대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래, 그쪽 상황은 어떠냐? 내 말 어기고 협력하는 놈들은 없겠지?”

    “일단 장관님께서 지정하신 업체 쪽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흐흐. 다들 말을 잘 듣는군. 그럼 그 어린 놈 얼굴은 어때? 지금쯤 아주 썩어가겠어. 안 그래?”

    “그게······”

    화면 속 직원의 얼굴이 흐려졌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이고 곤혼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뭐데 그렇게 주저하는 거냐? 제대로 말을 해!”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공연 진척은 매우 순조로운 것 같습니다. 홍 진호의 얼굴도 딱히 어두워 보이지 않고.”

    “뭐? 그럴 리가 없잖아. 도쿄돔에서 하는 공연이라고. 준비를 혼자서 할 수는 없을 텐데? 설마 해외 쪽 업체와 손을 잡았나?”

    “아뇨. 들어보니 좀 독특한 방법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카메라 방향을 바꿔 공연장을 조금 더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했다.

    향후, 도쿄돔에 설치 한 무대를 간이식으로 만들어 둔 형태였다.

    “이 세트를 구상한 게 홍 진호라고 합니다. 오더 메이드로 작은 업체에서 이를 제작하고요.”

    “뭔 소리야? 그 인간이 무슨 재주로 그런 걸 해?”

    “저도 그게 신기해서 물어봤는데,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공연 전체를 수십 가지로 쪼갠 뒤 그 하나하나를 전부 개별적으로 의뢰했어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걸 한 사람이 무슨 수로 다 제어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장관이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사람들이 공연 업체를 쓰는 건 일의 전반적인 컨트롤에 그들이 능하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더 잘 하는 업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은? 그런 식으로 하면 실수가 나올 거야. 중간에 불만을 토하거나 그런 사람은 없어?”

    “지금까지는 완벽합니다. 되레 신기한 구성이라고 극찬하고 있어요. 공연 기획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패러다임은 무슨!!”

    결국 참다 못 한 장관이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콰득, 하고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빌어먹을 새끼. 어떻게 해서든 그 공연, 망쳐버리겠어.”

    이 악문 장관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건 폰 깨진 비서의 신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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