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04화 (104/178)
  • Chapter46. 몽상(2)

    진호는 아이디어를 주변과 공유했다.

    회사 직원들부터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된 지인들과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현 시국에서 일본 공연이 부정적으로 보일 거라는 예상부터 보이콧과 다양한 마찰을 우려했다.

    “어중간해서는 안 돼.”

    진호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험악해진 양국 관계 중간에서 일개 연예인이 설쳐봐야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눈치 보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양국 모두가 관심을 보여야 해. 무시 할 수 없는 규모로. 사람들을 운집시키고, 언론의 조명을 받아야 일이 진행 될 거야.”

    “혼자서 가능하겠어?”

    “혼자서는 불가능하지. 도움을 받아야 해.”

    진호는 배우다.

    영화나 드라마.

    무대 위에서 하는 연극으로 관중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이런 대규모 공연을 혼자서 감당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필요했다.

    가수, 개그맨, 댄서, 표현예술가 등.

    이목을 잡아 끌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필요했다.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거야?”

    “어차피 양국의 마찰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거야. 현 상황이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니까 유지하는 거지.”

    “이걸 바꿀 수 있다고?”

    “일단 분위기부터 바꿔야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휩쓸리고 있을 뿐이야.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분위기는 전염되기 쉽다.

    특히, 일본은 의외로 폐쇄적인 구석이 많다.

    불이 붙은 건초처럼 혐한 분위기가 빠르게 번지고 있는 중이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지.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한국 문화를 많이 소비하고 있구나. 난 저걸 좋아하고 있었구나. 우리가 척 질 필요는 없구나. 환기만 시키면 되는 거지.”

    “에이, 그렇게 쉽게 되겠어?”

    “휩쓸리기 쉽다고 했잖아. 일부만 태도를 바꾼다 해도 지금처럼 험악하게는 안 굴러가.”

    “그래서 그 다음은?”

    “메시지. 예술의 가장 훌륭한 점은 단편적인 것에 수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거야.”

    서로 귀 닫고 비방만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많은 이들이 공감 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서 사회 전반적인 각성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확실히 대표님이 몽상이라고 할 만 하네.”

    “지금 이 상황이 오래가면 결국 피해보는 건 보통 사람들이야. 핏대 세우며 비방하던 이들은 정치 방향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악수하겠지. 자신들은 손해가 없으니까.”

    “확실히 그건 그래. 예로부터 적극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민중이었고, 피해보는 것도 민중이었지.”

    “그러니까 그 피해를 줄이고 싶다 이거야.”

    몽상이라도 좋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비방해도 좋다.

    하지만 무언가 할 수 있다면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 않은 채 ‘그럴 줄 알았다.’라며 잰 채 하는 것보다야.

    “그럼, 은서야 너희 회사는 부탁할게.”

    “응. 내가 대표님 설득 해 볼게.”

    가까운 사람부터 한 명씩.

    꿈을 위한 퍼즐을 맞춰갔다.

    #

    [그거 재미있겠군]

    오랜만에 연락한 빌에게서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확실히 넌 특이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그 정도로 성공했으면 그냥 편하게 놀고먹으면 될 걸]

    [성미가 안 그런가 봐.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하하. 확실히 우리가 봐도 꼴이 영 아니긴 하지]

    한일관계는 두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아래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그럼 우리도 참여하지. 이런 의미라면 극단에서도 동조하는 애들이 많을 거다]

    [고마워. 네가 나서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근데 확답을 주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무대를 꾸미는 것······일본의 허가는 받은 거야?]

    단순한 공연이라면 돈으로 충분히 해결이 된다.

    하지만 진호가 구상하는 건 상당히 자극적인 일.

    일본 내부적인 반발도 상당 할 것이고, 혐한 무리의 움직임도 거칠 수밖에 없다.

    나라에서 제제가 들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 이미 어느 정도는 해결 해 둔 상태니까]

    [흐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무슨 수를 쓴 거냐?]

    [일본에도 내 팬이 있어서. 공연에 대해서 운을 뗐더니 양 팔 벌려서 환영을 해 주더군]

    [그 팬이 보통 팬은 아닌가 보네?]

    [하하. 절대로 보통 팬은 아니지]

    진호는 일본을 출국하기 전, 한 사람에게서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어찌 보면 사과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왕이니까]

    일본의 왕. 일왕이었다.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흔히, 문체부 장관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최근 방일 이후 언론에 한껏 휘둘려서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대동했던 진호가 방송에서 크게 사고를 쳐 버린 것이다.

    공식 행사와 방송은 별개지만 언론이 그걸 그냥 둘 리 있겠는가.

    연일 때려대는 통에 목이 남아나질 않았다.

    “······이 놈은 나한테 원한이 있는 거지?”

    “죄송합니다, 장관님.”

    근데, 오늘 또 일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전보다 더한 일이었다.

    “다시 제대로 읽어 봐. 뭐라고?”

    “일왕의 초대에 감사하며 양국의 평화를 위한 대대적인 공연 개최를 약속드립니다.”

    “아니, 일왕하고 갠톡하는 사이래? 어떻게 연락을 받은 건데? 확실 한 거냐?”

    “일왕도 반응을 올렸습니다. 양국 평화를 위해 좋은 공연을 해 달라고.”

    “허, 니미.”

    이마를 손으로 쥐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반응은?”

    “반반입니다. 이 시국에 일왕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말이 되냐고 성토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좋다고 박수치는 사람도 있겠지.”

    “네. 더불어 정부 무능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많이 늘었습니다.”

    “시팔, 그러니까 민간이 설치면 안 되는 거라고.”

    장관이 팔걸이를 손으로 후려쳤다.

    민간이 나서서 양국 관계를 회복시킨다.

    단순하게 보자면 좋은 일이지만 정부 인사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할 일은 민간이 대신하면 무능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니까.

    “일본에서는?”

    “그쪽도 보통 난리가 아닙니다. 새롭게 즉위한 일왕이 너무 경솔했다는 말도 있고, 적극적인 행동이 좋다는 분류도 있습니다.”

    “내각은?”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죠. 일왕이다보니 함부로 말을 못 하는 터라.”

    “그쪽도 개판 났네.”

    어찌 보면 일왕이 내각의 정치 방향과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타게 된 것이다.

    한창 한국을 비판하고 때리는 와중에 평화를 운운하며 공연 개최를 응원했으니 대립각이 안 생길 리 없다.

    “장관님,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일단 간만 봐. 개인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쪽 대표랑 홍진호, 그 인간 좀 소환해 봐.”

    “또 불응하면 어찌합니까?”

    “어떻게든 끌고 오라고!”

    “네, 네!”

    재떨이까지 들고 나서야 겨우 비서가 움직였다.

    장관은 한참이나 씩씩 거리다 겨우 숨을 골랐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욱신거렸다.

    #

    공연이 조금씩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다.

    공연장 섭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무대를 꾸밀 전문가와 디렉터 이름도 물망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호기심 가지고 참여했다.

    세계적인 배우에 이름을 올린 진호의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형식 자체가 이목을 끌기에 매우 좋았다.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한 공연.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가.

    명성을 올리고자 하는 이는 그런 이유로, 이미 명성이 가득 찬 사람은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수많은 스타들이 모여들고 전문가들이 협조했다.

    “외국에서도 이번 일에 투자를 하고 싶어해.”

    “의도는 고맙지만 이번 공연은 국내 자본으로 해결하는 것이 나을 거예요. 해외의 스타들이야 가치관을 초월해서 모인다고 하지만 자본은 이야기가 다르죠. 분명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흠. 괜찮은 거냐? 영화 수익이 엄청났다는 건 알지만 이런 공연이 한 두 푼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국내 투자자를 찾으면 되죠. 이번 일에 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 이겠어요?”

    공연은 단숨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이미 방일 과정에서 드러난 행적으로 언론 중심에 노출되어 있던 진호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이런 일을 밀어 붙이고 있으니 대중이 가만히 둘 리 없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돈으로 직결된다.

    “당장은 정부 눈치 보냐고 망설이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갈 겁니다.”

    “공연 스폰으로 말이지.”

    “이슈는 키워야 돈이 되는 법이죠.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일본에서 공연 하면 그곳 언론만 모일까요? 움직이는 광고판입니다.”

    “그래서 무료공연이라 이거지?”

    “어차피 공연 수익은 의미가 없죠.”

    공연은 전액 무료로 구상되고 있다.

    최대한 많은 방송사를 모아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돈이야 왕창 깨지겠지만 후일을 생각하면 투자의 개념이다.

    “······참 볼수록 대단하다. 난 이거 구상만 봐도 심장이 콱콱 막히던데.”

    “큰물에서 놀아본 분들이 있으니까요.”

    전생의 왕만 몇 명이던가.

    숫자 놀음이 거대하다고는 하지만 왕으로 다룬 생명의 숫자와 비교하면 우스울 뿐이다.

    “그럼, 슬슬 가죠. 더 기다리게 했다가는 헬기라도 보낼지 모르니까.”

    “아. 그렇지. 시간이 됐구나.”

    진호가 시계를 툭툭 치며 약속을 언급했다.

    최현석이 황급히 내선 전화를 돌리고 차를 준비시켰다.

    “장관님 얼굴이나 한 번 보러 갑니다.”

    목적지는 장관의 자택이었다.

    #

    문체부 장관.

    힘이 있든 없든 일단 장관이다.

    보통은 그 직함 아래에서 일단 고개를 숙이고 본다.

    근데, 이 인간은 아니다.

    “또 보는 군요, 장관님.”

    그래서 이 인간이 싫다.

    장관이 어금니를 깨물며 내민 손을 무시했다.

    “긴 말은 제하고 본론부터 들어가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말을 안 해 주면 모르지 않습니까.”

    “장난은 그만 두시죠. 일본 공연 말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

    “배우는 공연하면 안 되나요? 이래 봐도 해외에 친구들이 꽤 많아서요. 힘을 빌려서 큰 공연 한 번 해볼까 합니다.”

    느긋한 태도도 마음에 안 든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놈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태연하게 앉아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어째서 저 어린놈은 겁먹지 않는 걸까.

    “지금 시국이 어떤지는 이해하고 있습니까? 일본에서 공연이라니요?”

    “이 시국에 잘 먹고 잘 노는 분들도 있던데요. 좋은 취지로 공연 한 번 하는 것이 크게 잘못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홍 진호 씨. 좋은 말로 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말로 안하면 절 잡아가기라도 할 건가요? 아직 사람 잡아다가 가두는 장소가 따로 있어요?”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장관은 공권력의 상징과 같은 존재.

    그 앞에서 이런 말을 편히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이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자기 잘난 맛에 사는군요.”

    “글쎄요. 일하라고 뽑은 자리에서 흥청망청 놀기만 하는 누구들과는 다르게 일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 봐요 홍 진호 씨!!”

    쾅. 테이블을 치는 장관의 손이 거칠었다.

    눈에는 핏대가 서 있고 몸은 분을 참지 못해서 부들부들 떨렸다.

    “힘 빼요, 장관 어르신. 이미 상황은 그쪽 손을 떠났습니다. 내가 이 마당에 공연을 취소하면 그 후폭풍을 당신이 감당 할 수 있을까요?”

    “너······”

    “그 자리 보존하고 싶으면 군소리 말고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세요. 감당 못 할 일에 나서면 된서리 맞는 법입니다.”

    그 앞에서 진호는 태연하게 읊조렸다.

    장관은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해 할 수 없었다.

    어째서 눈앞의 이 젊은 놈은 당황하지 않을까.

    이 정도까지 되면 겁을 집어먹든 당황하든 해야 정상인데 말이다.

    ‘나보다 더 경험이 많아서?’

    순간 의혹이 스쳐갔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채 서른도 안 된 놈이 무슨 경험이 있단 말인가.

    “초대장은 보내죠. 공연이나 감상하러 오세요.”

    그냥 이 놈은 미친 거다.

    미쳐서 두려움을 모르는 것뿐이다.

    장관은 그렇게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상식의 테두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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