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03화 (103/178)

Chapter46. 몽상(1)

일본 일정을 마무리하고 진호는 귀국했다.

돌아가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반대 시위자들과 팬들이 운집해서 공항 전체가 마비가 될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취재진들이 이 기현상을 취재해 갔다.

[사랑과 증오의 사이에서]

진호가 뽑은 가장 적절한 기사 제목이었다.

“아주 거하게 하고 왔네.”

“적당히 도발을 해야죠. 나름대로 선은 지켰습니다.”

촬영 분은 거의 편집되지 않은 채 이틀 만에 방송되었다.

이를 두고 일본 내부에서도, 한국에서도 말이 많이 나왔다.

과하다, 할 말을 했다.

진호가 일본에 던지고 온 폭탄은 여전히 뜨거웠다.

“문체부에서 한 번 보자고 하던데.”

“그 인간들은 할 일이 그렇게 없대요? 뭐만 하면 찾고 난리야.”

“방송 건으로 일본에서 정식 항의가 왔나 봐. 외교부에서도 움직이는 거 같더라.”

“언제부터 방송 하나에 그리 민감했다고.”

어차피 방송을 두고 정치 놀음을 하는 것이다.

일본은 물기 좋은 ‘건수’로, 한국은 정당한 ‘발언’으로.

어차피 쳇바퀴일 뿐이다.

돌고 돌지만 서로에게는 닿지 않는.

“강제로 소환 할 거 아니면 됐다고 그래요. 좀 쉬어야겠어요.”

“너 인마 정부 관료들하고 말상대 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않고 그러냐?”

“대표님이 잘 상대 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최현석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진호가 잠수를 타면 각종 압박은 그가 다 받아내야 한다.

아마 한 동안은 핸드폰이 멈출 날이 없을 것이다.

“가, 인마. 푹 쉬고. 핸드폰은 끄지 마.”

“넵. 대표님만 믿습니다.”

하지만 그게 대표의 역할 아니겠는가.

포화 속에서 연예인을 지켜내는 것.

비상용 폰을 건네고는 팔을 걷어붙였다.

우우웅. 우웅.

이제부터는 그의 턴이었다.

#

진호는 2사옥에 콕 틀어박혔다.

본래는 은서와 밀회여행을 갈 예정이었지만 언론의 마크가 심해서 포기했다.

“그래. 나가면 힘만 들지.”

“그래서 형한테 고기 사오라고 그런 거냐?”

“파는? 마늘은?”

“어우, 새끼. 다 사왔다. 사왔어.”

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초대했다.

서훈이 고기를 잔뜩 사 방문하고, 수업 짼 아영과 스케줄 처리하고 온 은서가 합류했다.

2사옥에서 지내고 있던 하윤, 세미, 루카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고기다, 고기! 으히히히!”

“야! 저기 저 야생 소녀 좀 말려 봐!”

“하윤아, 뭐하냐! 루카 챙겨. 세미야, 넌 가만히 좀 앉아 있어.”

“언니, 언니.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은 학교도 안 오고. 오빠랑 논다고 너무 한 거 아니야?”

난장판이었다.

다들 이렇게 만나는 것이 꽤 오랜만이라 그런지 두서없이 떠들어댔다.

그 와중에 루카는 낯선 사람들이 무서운지 구석에서 눈치만 봤다.

“아, 개판이네. 좋다. 역시 이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어디서 도 닦다가 왔냐? 저기 꼬맹이나 챙겨. 고기는 내가 구울 테니까. 세미랑 하윤이는 이쪽으로 와. 내가 고기 구우면 너희가 딱딱 옮겨 담는 거야. 알았지?”

“네!”

“예, 쉡!”

그나마 서훈이 상황을 정리했다.

불판 앞에 딱 자리 잡고 앉아서 고기를 착착 얹었다.

두서없이 떠들던 이들도 고기 익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자 입에서 침을 흘리며 모여들었다.

루카도 꾸물꾸물 기어 나와 진호 옆에 앉았다.

“근데 삼겹살이 뭐냐. 이왕 먹는 거 소고기로 하지.”

“형. 해외 나가보니까 삼겹살이 최고더라. 소고기도 좋긴 한데, 이상하게 난 삼겹살이 좋아.”

“일본에서 최고급 회로 배 채우지 않았어?”

“채웠지. 근데, 난 이게 좋아. 삼겹살 석 점에 파절이 살짝. 그리고 그 위에 마늘하고 쌈장. 크. 이것보다 환상적인 조합이 없더라.”

진호가 말을 하며 쌈을 싸서 서훈의 입에 물려주었다. 뭔 소리냐는 얼굴로 보던 서훈도 입 안 가득 차는 쌈에는 엄지를 치켜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삼겹살은 진리였다.

“아, 그러고 보니까 진호 오빠 일본에서 사고 거하게 쳤던데. 그거 때문에 여기 숨어서 고기 구어 먹고 있는 거죠?”

“숨기는 누가 숨었다고 그래. 하도 귀찮게 구니까 살짝 피한 거지.”

“히히. 숨은 거 맞네. 근데, 잘 했어요. 우리 학교 애들은 다들 오빠 응원하더라. 속 시원하게 잘 말했다고.”

“그러냐?”

“그럼요. 누가 일본까지 가서 그런 말을 하겠어요. 누구는 외교에 악영향을 주었다 뭐다 하는데, 그 한 마디에 틀어 질 거면 외교도 아니지.”

아영이 고추를 베어 물며 답했다.

학교 커뮤니티를 봐도 잘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층에서는 진호를 응원했다.

“근데, 그거 우리 위쪽에서는 썩 달갑지 않게 보더라. 국장도 그렇고······윗선에서 달달 볶나 봐.”

하지만 서훈의 반응은 아니었다.

“왜요? 방송국에 압박이라도 들어와요?”

“오지. 야, 너 찾아서 카메라 앞에 좀 세우라고 날 얼마나 볶는지 아냐? 오늘도 아프다고 핑계대고 겨우 빠져나온 거야.”

“어우. 우리 서훈 형님이 고생 하셨네. 나중에 나랑 독점으로 프로그램 하나 하자.”

“새끼. 형님이라고 부르면 되냐?”

냉큼 숙이는 서훈에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고······기. 타.”

“응?”

“고. 기. 타아.”

“아! 탄다, 탄다. 아, 형 뭐하고 있어요. 고기 타잖아요.”

루카의 손짓에 불판을 확인하니, 고기가 타고 있었다.

진호가 냉큼 고기를 건져내고 서훈에게 한 소리 했다.

“원래 탄 게 맛있는 거야.”

“그럼 그건 형이 먹는 걸로 하자. 루카는 여기 잘 익은 걸로. 쌈 싸줄까?”

“나. 혼자. 먹어.”

“와. 루카 한국말 많이 늘었는데?”

떠듬떠듬 이긴 하지만 알아듣는 것도 잘 알아듣고 단어도 꽤 적재적소에 썼다.

한국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걸 고려하면 굉장히 빠른 습득력이었다.

“루카 엄청 빠르게 배워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래? 세미랑 하윤이가 잘 도와주고 있나 보네.”

“네! 루카 안 외롭게 항상 같이 있어요!”

“저 말 진짜에요. 세미랑 루카랑 하루 종일 붙어 다녀서 전 말 걸기도 힘들다니까요.”

“오, 하윤이 질투한다.”

“누, 누가 질투를 한다고 그래요!”

발끈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진호와 은서가 나란히 낄낄 거리자 얼굴이 더 빨갛게 물들었다.

“아, 날은 더운데 여기는 왜 봄이냐.”

“형은 연애 안 해요?”

“어휴. 일이 바빠서 그럴 틈이나 있겠냐. 원래 이 시기에는 죽은 듯 일만 하는 거라고.”

“에이, 변명. 저도 겁나 바쁜데 알아서 잘 하잖아요.”

“아, 새끼. 아픈 곳 찌르네.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여자나 소개시켜 주고 그래라.”

“멀리 말고 가까이는 어때요? 아영이 같은?”

진호가 삼겹살을 밀어 넣고 있는 아영이를 가리켰다.

서훈이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 픽 웃었다.

“아서라. 저런 꼬맹이를 어딜 보고.”

“어어? 선배. 누구보고 꼬맹이래요.”

“너, 인마. 너. 여자라면 자고로 나이도 적당히 있고, 현명하고 그래야 되지.”

“저도 이제 스물넷이라고요. 언제까지 꼬맹이인줄 아나.”

“야. 넌 영원히 꼬맹이야.”

“제 어딜 봐서 꼬맹인데요?”

아영이 숄을 걷어내며 서훈에게 상체를 내밀었다.

말마따나 꼬맹이의 체형은 아니었다.

불쑥 다가온 몸에 서훈이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나다 의자에 엉켜서 바닥으로 넘어졌다.

쿵,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왁! 선배, 괜찮아요!?”

“야, 야! 괜찮아! 아오 쪽팔려. 이게 뭔 꼴이냐.”

“그러니까 왜 도발하고 그래요? 에이, 팔꿈치 까졌네. 진호 오빠, 여기 구급약 있어요?”

“어. 안쪽에. 내가 가져올까?”

“아니야, 됐어. 오빠는 여기 있고, 아영아 네가 서훈 오빠 부축해서 가서 치료하고 와라. 2층 올라가서 왼쪽 첫 번째 방이야.”

일어서려는 진호를 은서가 만류했다.

아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여전히 붉어져 있는 서훈을 부축했다.

‘괜찮다는데······’라며 툴툴 거리기는 했지만 부축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뭔데?”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자 진호가 입을 뗐다.

“뭐가 뭐야. 딱 보면 나오잖아. 오빠 스케줄때문에 해외 순방하고 그럴 때 두 사람 사이에 은근한 느낌이 있었다니까.”

“형이랑 아영이랑? 와, 생각도 못했던 전개인데?”

“자주 보면서 썸탄거지 뭐.”

“그래. 잘 어울리긴 하네.”

나란히 보자면 꽤 괜찮은 두 사람이다.

한여름에도 여기는 봄인가.

진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불판으로 손을 뻗었다.

“어라?”

“······마이따.”

고기를 한 입 가득 우물거리는 루카.

불판은 텅 비어 있었다.

#

진호가 푹 쉬는 사이에도 일은 진행되었다.

일본 열도 전체가 방송 이야기로 도배되고 뉴스에서도 연신 이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몇 몇 극우성향의 방송에서는 ‘대대적인 도발’이라며 자극적인 말까지 사용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개 연예인이 과했다, 라는 반응과 시원하게 잘 말했다는 반응이 각을 세웠다.

여기에 정치권도 한 발 걸쳐서 연일 말들을 쏟아내니 뉴스가 도배 될 지경이었다.

“양국 관계 최악으로 치달아. 배우가 던진 돌이 나비효과로 돌아오나.”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언론이 다 그렇지.”

“신경 안 써요. 일 생길 때마다 받아먹는 게 언론인데요. 분위기 바뀌면 또 말이 달라지겠죠.”

대부분의 뉴스가 비슷했다.

어차피 정치적 발언이 대부분인 현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기사라고 해 봐야 그게 그거였다.

“응? 이 칼럼은 좀 의외네요.”

그렇게 읽어가던 뉴스 란에서 독특한 제목을 발견했다.

[문화가 흔들어 놓은 정치와 경제. 어쩌면 해답은 이곳에 있지 않을까]

일본 경제 전문가가 내 놓은 칼럼이었다.

제목만큼 내용도 흥미로웠다.

“정치와 경제는 단절해도 문화는 단절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더 힘을 가지는 건 문화적인 파급력이 아닐까.”

“일본 전문가가 쓴 거라고?”

“네. 현제 정국을 정치나 경제가 아닌 문화 쪽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게 가능한 일이야?”

“글쎄요. 칼럼의 댓글에서도 꽤나 욕을 먹고 있긴 한데.”

애초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던 사람이 정치, 경제적 마찰로 갑자기 마음을 바꾸지는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

반한시위를 한다 해도 다른 한 쪽에서는 여전히 한류 바람이 부는 것도 사실.

문화는 정치 경제와 별개로 작동한다는 말도 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역시 효용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네요. 그래봐야 의미가 있겠냐 이거에요. 아이돌 좋아하고 배우 팬질한다고 상황이 타파가 되겠냐고.”

“아쉽지만 그게 사실이지.”

“흐음.”

“왜? 신경 쓰여?”

“효용성 면에서는 저도 회의적이긴 해요. 하지만 이 사람 말에도 일리는 있어요.”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 뉴스로 도배되고 있는 건 진호의 방일 일정이었다.

문체부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아예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

한 명이 정부 집단보다 위에 선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꽉 막혀 있다면 움직일 수 있는 건 문화뿐이죠. 효과는 미미할 수 있겠지만.”

“왜? 일본에서 공연이라도 하려고?”

“······가능할까요?”

“응?”

툭 던진 말에 답이 돌아오자 최현석이 되레 놀랐다.

“한일 합동 공연. 그것도 아주 대대적으로. 사람들이 안 볼 수 없는 수준으로 하는 거죠.”

“진담이냐?”

“만약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뭐······재밌게 보겠지?”

“네. 정치나 경제와 상관없이 재밌게 볼 거예요. 그리고 작게나마 생각하겠죠. 굳이 싸워야 하는가. 정치적 경제적인 보복 조치가 필요한가. 논리는 필요 없죠. 그냥 그것이 좋으니까.”

“너무 몽상아니냐?”

“꿈을 꾸는 것이 우리 아티스트의 권리 아닙니까.”

양 팔 벌려 웃는 진호를 보며 최현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이런 발상은 대단했다.

누가 있어서 이런 시도를 하겠는가.

“번 돈 다 까먹어도 모른다.”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죠.”

“새끼. 도사 납셨네.”

최현석은 매료되었다.

눈앞에 있는 터무니없는 몽상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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