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95화 (95/178)

Chapter43. 나와 같은 이들이(1)

진호는 공식적으로 휴식기에 들어갔다.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체력과 정신을 다잡는 기간이었다.

영화 흥행도 슬슬 마무리 되어 가는 시점이라 문제는 없었다.

“정산 금액 확인했지?”

“이대로 은퇴할까 순간 고민했네요.”

회계 팀에서 직접 계산해서 준 수익금.

한화로 계산하면 현재까지 벌어들인 돈이 2000억을 훌쩍 넘어섰다.

영화 출연료 자체는 높지 않았으나 투자금에 대한 수익이 컸다.

특히 유행으로 번진 영화의 소품이 굉장히 높은 수익을 올렸다.

영화 한 방에 이정도 수익을 올리는 건 할리우드에서도 정말로 손에 꼽히는 몇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만큼 진호의 이번 영화가 시기를 잘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세금에 대한 건 각각 따로 세 번씩 계산해 주세요. 절세도 어지간하면 하지 마요. 뭔가 위험 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냥 피하는 쪽으로 갑시다.”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구설수는 더 싫었다.

담당 회계사들과 함께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세금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워낙 수익처가 다양한 터라 일감이 산처럼 쌓였지만 진호는 보너스로 회계사들을 다독였다.

“그럼 이 돈은 평화 마음 재단을 통해서 기부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제가 요청한 곳으로 각각 나눠 드리세요.”

“······이 돈을 전부 말입니까?”

“수익의 90%를 기부한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 정도까지 못 되니 절반만 기부하려고 합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도량이네요.”

“하하. 도량에 나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수익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했다.

일정 부분은 그나마 투명한 재단을 통해서, 나머지는 일하며 보았던 여러 기관에 직접 건넸다.

“허 참. 널 보면 나도 나이 헛먹었나 싶다.”

“그럼 함께 하시죠?”

“그래야지. 쪽팔리기는 싫으니까.”

최현석도 이 일에 동참했다.

2사옥 확장과 인재 영입에 들어가는 돈을 제외하고 상당 금액을 기부했다.

일각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부라고 호도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숨만 쉬어도 욕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 곳보다 기부를 받아 웃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어차피 어느 쪽을 보는가는 개인의 선택 아니겠는가.

“그럼 일 마무리 지었으니 놀다 오겠습니다.”

“잘 다녀와라.”

그렇게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짓고, 진호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훌쩍 한국을 떴다.

“페루에 재미있는 게 있을까?”

은서와 함께.

#

스타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진호 정도의 세계적인 스타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시선이 따라온다.

그렇기에 여행지 선택을 굉장히 신중하게 했다.

첫 째, 영화가 개봉되지 않은 곳으로 간다.

둘 째, 완전히 색다른 문화권으로 간다.

셋 째, 한 나라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조건은 꽤 까다로웠지만 겨우겨우 만족 할 만 한 여행 루트를 짤 수 있었다.

“오빠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가 뭔지 알아?”

“올라잖아. 올라, 올라.”

“그럼 얼마에요는?”

“쿠안토······뭐더라? 비슷한 거였는데?”

“헤헤. 쿠안도에스. 식당에서 그림 딱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면 돼.”

첫 번째 행선지는 페루였다.

수도 리마를 거쳐서 마추픽추를 구경하고 외곽을 투어하는 형태였다.

인원은 현지 가이드와 회사에서 붙여준 매니저 둘을 포함해서 총 다섯.

작은 그룹으로 돌아다니기 좋은 구성이었다.

“와. 나, 남미는 처음이야.”

“나도. 근데 확실히 남미라 그런지 날씨가 덥네.”

“더워도 날은 화창하잖아. 여행하기 딱 좋아.”

은서는 신이 나서는 돌아다녔다.

운 좋게 진호의 휴식기와 스케줄을 딱 맞춘 것이다.

회사에서는 관리 문제로 여행을 극구 말렸지만 그런 거 들을 은서가 아니다.

주머니 속 과자처럼 다뤄지는 연차도 아니고.

휴가 갑니다, 라고 딱 통보하고는 냉큼 따라왔다.

“일단 숙소를 잡고 근처부터 움직이도록 하죠.”

현지 가이드는 꽤 돈을 들여서 선택했다.

치안 문제도 있고, 유명인인 진호와 은서를 잘 케어 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진호 씨. 짐은 제가 들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각자 짐은 각자 들도록 해요.”

“그래도 회사에서는······”

“그냥 두 분도 여행 왔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회사에서 진호에게 붙여 준 매니저 둘.

말이 매니저지 사실상 경호원에 가깝다.

필요 없다는 진호를 겨우 설득해서 붙인 것이다.

본래라면 송학이 자리를 했겠지만 아쉽게도 사정이 있었다.

“가자. 오랜만에 자유 시간이라 들뜨네.”

“나도, 나도!”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팔짱을 끼는 은서.

낯선 땅으로 여행 온 이유 중 하나였다.

#

여행은 즐거웠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예인의 숙명이 유명세라지만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것도 당연한 마음이었다.

“멋있더라. 세상에 난 마추픽추가 그렇게 큰 건지 몰랐어.”

“나도. 사진으로 볼 때랑은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 그게 한때는 도시였다는 거잖아. 왠지 모르게 장엄함도 느껴지고.”

“잉카제국이니까.”

“멋있는 걸 봤더니 배고프다. 저녁은 현지 음식 먹는 거지?”

“응. 가이드 분이 준비해 주신다고 했어.”

낯선 문명을 두 눈에 담다보니 한참을 걸었다.

배도 꼬르륵 거리는 것이 지금이라면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수도인 리마 쪽으로 다시 이동했다.

“응? 오빠, 저기 봐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어.”

“어디? 어, 그러네. 뭐지? 관광객들인가?”

“아. 저분들은 인디오네요. 원주민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숄과 폰쵸를 입은 무리들이 거리 한 쪽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얼핏 보기로도 썩 부유한 집단은 아니었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건가요?”

“마추픽추 주변으로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편이니까요. 원주민들도 생계를 위해서 여러 가지 방편을 꾸리고 있답니다.”

“그렇군요.”

페루는 다인종 국가로 원주민인 인디오가 약 45%를 이루고 있다. 다만, 그 대부분이 빈곤층으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많은 일에 봉사한다.

여행객을 위한 놀이패는 긍정적인 부류였다.

“조금 보다가 갈까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가까이서 보면 꽤 재미있을 겁니다. 인디오 특유의 노래도 있고, 저들만의 공연도 볼 만 합니다.”

“오, 공연이라.”

갑자기 흥미가 돈다.

진호가 일행과 함께 인디오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이미 타지의 관광객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피리에 가까운 관악기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와. 소리 엄청 예뻐.”

“페루의 전통 악기 중 하나인 께나(Quena)라고 합니다. 소리가 맑고 경쾌해서 축제에서 많이 불리죠.”

“다른 악기는 뭐가 있나요?”

“흔히 아는 건 역시 오카리나가 있겠네요.”

“아. 오카리나.”

은서의 감탄을 들은 듯 무리에서 오카리나 연주자가 나왔다.

께나의 연주에 섞여들어 멋진 화음을 만들었다.

관광객들도 그 소리가 마음에든 듯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쳤다.

“······응?”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연주자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진호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스물스물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캭!”

그 느낌을 따라 손을 뻗은 진호.

작고 여린 손 하나가 그 방향에 걸려서 딸려왔다.

군중에 몰래 숨어서 손매치기를 하려다가 걸린 것이다.

“캬악!! 캭! 캭!!”

7살 정도 되었을까?

아주 어린 아이였다.

잡힌 손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양새가 흡사 원숭이를 보는 듯했다.

“이놈! 어디서 소매치기를 해!”

가이드는 크게 성내며 아이를 콱 찍어 눌렀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이 잠시 놀랐으나,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연주를 이어갔다.

이런 모습이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어리다고 만만히 보면 안 됩니다. 이놈들이 얼마나 영악한데요.”

“그야 가이드 분께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발버둥치는 모양새가 꽤나 안쓰러웠다.

꼬질꼬질한 얼굴도 그렇고 거의 헐벗다 시피 한 복장도 그렇고.

“허면 옛 선조들도 그리 생각을 했더냐.”

“······어라.”

꼬마아이 뒤편으로 보이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

눈은 백색으로 물들어 있고 주름 진 입술 끝에서는 하얀 숨이 몰려나왔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본래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택하다니. 그리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랜만에 보는 전생체험이었다.

눈앞의 노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복색과 말투 자체로는 확실히 페루 지역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한탄하듯, 말속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오빠? 갑자기 멍하니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환상은 은서가 어깨를 흔드는 순간 사라졌다.

전에 보았던 환상들과 비교하자면 길이도 짧고 깊이도 부족했다.

게다가 맥락도 좀 모호했다.

[놔! 놔! 이거 놓으라고 나쁜 놈아!]

아니, 어쩌면 모호하지 않을 수도.

지금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의 말이 그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쓰는 것 역시.

능숙한 스페인어에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

소년의 이름은 루카였다.

근처 빈민가에서 사는 8살 소년.

생계를 위해 관광객들을 소매치기하기도 하고, 발품을 팔아 동냥도 하는 그런 처지였다.

[여기야. 여기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

진호는 루카가 사는 곳을 방문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약속대로 대리고 와 줬으니까 주기로 한 거 줘]

[안에도 보여주면 안 될까?]

[거짓말쟁이! 이곳까지 안내해 주면 돈을 주기로 했잖아!]

루카는 방방 뛰었다.

소매치기도 실패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눈도장도 찍혔다. 몇 푼이라도 얻지 못하면 하루는 꼼짝없이 굶을 판이었다.

[밖에 무슨 소란이냐?]

[아! 할머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오지 마!]

[또 무슨 말썽을 피운 게냐?]

허름한 집안에서 주름 가득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루카의 할머니였다.

“눈이 멀쩡하잖아?”

“응? 오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노인을 보고 중얼거리는 진호의 모습에 은서가 물었다.

아까 전부터 도통 이해 못 할 행동들뿐이었다.

[혹시 제가 보이십니까?]

[응? 그쪽은 누구요? 이곳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냥 평범한 관광객입니다. 지나는 길에 루카의 도움을 받아서 인사나 드릴까 해서 왔죠]

[거짓말은 넣어 두쇼. 루카 저 아이가 남을 도울 만 한 성정은 아니니. 또 뭘 사고 친 겁니까?]

노인은 손으로 루카의 뒷목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이거 놔!’라며 발버둥 쳤지만 손은 꼼짝도 안했다.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찾아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느낌에 이곳까지 왔다 이거요?]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이건 루카가 안내해 준 대가이니 식사에 보태시기를]

진호가 짧게 답하며 돈을 꺼냈다.

루카는 반색하며 냉큼 손을 뻗으려 했지만 뒷목을 쥔 노인의 힘이 억셌다.

[이제 보니 당신. 보통 사람이 아니군]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대신 노인은 돈을 잡고 있는 진호의 손을 움켜쥐었다.

찌르르, 전기 통하는 느낌이 들고.

[눈이······]

노인의 눈이 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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