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93화 (93/178)

Chapter42. 배우의 하루는(1)

관객수의 증가가 점차 더뎌져갔다.

슬슬 볼 만 한 사람들은 다 봤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추산 국내 기준 1200만.

예상으로는 1300만 언저리로 보고 있었다.

“10억 불 돌파?”

월드 와이드 수익은 10억불을 돌파했다.

세계적으로도 몇 없는 수익 레코드에 한국 영화가 포함 된 것이다.

유행의 흐름을 잘 탔다고 해도 이건 대단한 기록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도 특별한 사례로 이를 집중 조명했다.

“일상적인 흐름으로 촬영을 하고 싶다네.”

“다큐멘터리인가요?”

“비슷하지. 총 8부작으로 구성한다고 해.”

이런 수요를 반영하여 한미 공동으로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감독인 이무석과 배우 진호가 중심이 되는 내용.

영화 제작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포함해서 개개인의 삶에 대한 것도 조명하는 방식이었다.

“나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촬영이 길어요?”

“영화 쪽 인터뷰 길게 한 번. 그리고 일상을 담는 관찰 카메라 하루 분 정도? 그렇게 길진 않아.”

“관찰카메라라. 따로 대본 나온 거 있나요?”

“없어. 완전히 리얼리티를 살리는 게 컨셉이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라네.”

“지루하지 않으려나.”

진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슬슬 스케줄이 비던 참이라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싶진 않았다.

“촬영 다해봐야 2, 3일 정도야. 팬 서비스로 생각하고 한 번 가자.”

“한국이랑 미국에서 동시에 방영되는 거예요?”

“어. 촬영 끝나면 다른 나라로도 번역해서 나갈 거다.”

“그럼, 해야겠네요.”

당분간은 CF든 방송이든 전부 거절하고 쉴 계획이다.

그 공백을 프로그램으로 채우면 되지 않을까.

잠시의 작별 인사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

하루가 지나자 담당 PD와 연출팀들이 단체로 몰려왔다.

“하하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컨셉 회의 아니었나요? 단체로 오셨네요?”

“다들 뭐 실물로 보고 싶다하니, 겸사겸사 왔죠.”

껄껄 웃는 PD는 꽤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일단 편하게 앉으세요. 지금부터 찍을 건 아니죠?”

“아, 그게 괜찮다면 회의하는 장면부터 촬영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요?”

“네. 오면서 딱 떠오른 건데, 방송에 컨텍 됐을 때 연예인이 어떤 식으로 회의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이런 걸 보여주면 좋아 할 거 같아서요.”

“흐음.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진호가 답을 미루고 최현석에게 물었다.

어차피 준비는 다 되어 있으니 촬영은 문제가 없었다.

“괜찮겠지. 그럼 여기보다 좀 넓은 곳에서 하죠. 위층에 컨퍼런스 룸이 있으니 그쪽으로 갑시다.”

“오. 블루 아이의 내부 모습도 담을 수 있겠군요.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사적인 공간에만 안 들어가면 돼요.”

“하하. 당연하죠. 애들아, 카메라 들어라.”

PD가 선두에 서고 VJ들이 뒤로 포진했다.

이미 찍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모양새였다.

2층 접견실부터 해서 위층 컨퍼런스 룸까지 카메라에 쭉 담으며 올라갔다.

“이곳이 회사의 중요한 일들이 결정되는 방이군요.”

“그냥 가끔 모여서 쓰죠. 대부분은 대표님 방에서 정해져요.”

“오. 그럼 그 방에서 진호씨도?”

“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가죠.”

“아, 그럼 관계가 아주 수직적인 건 아닌가 보네요?”

“하하. 대표님이 원래 사람을 편하게 대하시거든요. 회사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런 건 없었어요.”

카메라가 최현석으로 쫙 돌아가자 ‘그때는 편했고, 지금은 제가 모시는 중이죠.’라며 농담으로 응수했다.

유쾌하기도 하고 납득도 되는 대답이었다.

“그럼 컨셉 회의를 해 보죠. 평소처럼 해 주시면 됩니다.”

“카메라가 이렇게 많은데······”

“하하. 최대한 평소의 모습이 나오도록 노력해 주시면 됩니다. 과하게 설정하면 시청자들이 다 눈치 채는 거 아시죠?”

“에헤이.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진호가 능글맞게 답을 하고는 착석했다.

PD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했던 컨셉 노트를 건넸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분할해 놓았다.

“1안, 두 번째 항목. 영화 장면을 재연한다. 이건 너무 낡은 방식 같네요. 그리고 2안에 세 번째 항목에서 그냥 팔로우만 한다고 돼 있는데, 이왕이면 가볍게 대화도 하는 걸로 하죠.”

“······어, 어 잠시 만요.”

훅 치고 들어오는 진호에 PD가 순간 당황했다.

“확인하시면 3안으로 넘어와 주세요.”

“이야, 이거 굉장히 일처리가 빠르시네요?”

“보통 대표님하고도 이런 식으로 일을 하거든요.”

“하나하나 재는 거 없이 바로요?”

“걸리면 태클 넣는 거죠. 그럼 또 의견 내고. 일하는 거에는 위아래가 없어요. 싸우는 것처럼 일하는 편이죠.”

“오. 이건 또 신기하네요. 전 그냥 젠틀한 방식의 회의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1안 2안 확인하셨어요?”

“어이쿠. 지금 하겠습니다.”

PD가 다급히 노트를 넘겼다.

쩔쩔매는 PD와 공격적인 출연자.

꽤 재미있는 장면 아니겠는가.

카메라가 열심히 돌아갔다.

#

진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목을 좌우로 꺾으며 남을 잠을 털어내고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07시 00분.

하루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화면을 넘겨 스케줄을 확인하고 기지개를 쭉 폈다.

두두둑, 뼈 마찰 소리가 어쩐지 시원했다.

“진호 씨. 일어나셨나요?”

“······워. 여기부터 찍는 겁니까?”

“하하. 기상부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세수 할 시간은 주나 했죠.”

방 앞으로 찾아온 PD에 진호가 새집이 된 머리를 다듬었다.

전날 컨셉 회의를 마치고 촬영 시간과 방식까지 전부 정해 두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호’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촬영의 목적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씻고 나올 테니.”

“씻는 장면은 촬영하면 안 되겠죠?”

“잡혀가실래요?”

“하하.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PD도 꽤나 독특한 양반이다.

진호가 속으로 생각하며 찬 물로 몸을 씻어 내려갔다.

부모님이 내려가시고 난 뒤로는 다시 예전 빌라로 돌아왔는데, 시설이 낡아서 그런지 보일러 성능이 영 엉망이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잠기운을 전부 털어내고 난 뒤, 주방으로 총총 걸어갔다.

“좋죠. 아, 근데 이 집 말입니다. 언제부터 머무르고 계셨던 거죠?”

“꽤 됐죠. 4년? 5년?”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함께 했던 공간이군요.”

“정 많이 들었죠. 공간은 좁아도 한 사람 살기에는 넉넉해요.”

진호가 건물의 전경을 손으로 쭉 훑었다.

카메라가 그 손을 따라 앵글을 잡았는데, 좋게 말해도 넓은 면적은 아니었다.

“제가 듣기로 부모님께 집을 지어 드리기로 했다던데. 맞나요?”

“네. 고향에 두 분 살 집을 짓고 있어요.”

“오. 그럼 진호 씨는 그 집으로 들어 갈 생각인가요? 아니면 따로?”

“저도 조만간 집을 옮겨야죠. 정든 곳이기는 한데, 여긴 너무 알려져 있는 터라. 이래저래 곤혹스러울 때도 많거든요.”

“예를 들자면 어떤?”

“새벽에 문을 두드린다든지, 발코니 쪽으로 넘어 오려고 한다든지. 저야 뭐 괜찮다고 하지만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이 고생이죠.”

따로 신고만 안 했을 뿐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늘어나는 팬만큼 질 나쁜 사람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 있었다.

“고생이네요.”

“이것도 감수할 일이죠. 그래도 동네 분들이 친절해서 많이 도와들 주세요. 전에는 창에 돌 던지려는 애들을 주민분이 잡아 주기도 했으니까요.”

“어우. 그건 좀 위험해 보이네요.”

“최대한 빨리 집을 옮겨야죠. 이사하면 PD님 다시 한 번 초대할게요.”

“이야. 영광입니다. 하하.”

짧은 대화를 끝내고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나눴다.

싸구려 믹스 커피였지만 기상 후 한 잔 하는 커피의 맛은 각별했다.

“그럼 외출 준비를 할 테니 잠깐 기다려 주실래요?”

“아. 아침인데 벌써 나가는 겁니까?”

“10시 전까지 아침 운동하고 2사옥 쪽으로 출근하거든요.”

“출근이요?”

“말이 좀 그런가? 2사옥에서 애들 가르치고 있거든요. 요즘은 시간이 많이 나는 편이라 일찍 가서 하고 있어요.”

2사옥이나 세미에 대한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직접 가르치는 장면은?

제대로 외부로 공개 된 적이 없다.

PD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

“흐억! 흐억! 끄어어억!”

숨넘어가는 소리가 PD 입에서 흘러나왔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고 팔다리도 정신없이 후들거렸다.

“좀 쉬었다가 갈까요?”

“네······흐억. 헉. 헉. 제발. 좀 쉬죠.”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뛰어 본 경험이 없어서요.”

진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돌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2사옥 근처 등산로.

평소처럼 쭉 달렸더니 PD부터 시작해서 스텝들이 전부 퍼져버렸다.

“여기 물 마셔요.”

“후우. 후우. 감사합니다.”

PD는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신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땀이 줄줄 흘러서 턱에 고일 정도였다.

“뒤에 스텝 분들은 괜찮아요?”

“······”

스텝들도 멀쩡하지 않았다.

특히 카메라 들고 따라온 VJ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카메라 저한테 주고 좀 앉아요.”

“아니······허억. 헉. 그래도. 헉. 헉.”

“그러다 죽겠네. 주고 쉬어요.”

헐떡이는 VJ의 카메라를 진호가 넘겨받았다.

고대로 픽 고꾸라지는 모양새가 더 갔으면 제대로 사람 한 명 잡을 뻔했다.

“힘들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요.”

“아니, 뭐 어디 태릉 출신이세요? 무슨 산을 그렇게 빨리 타요?”

“드라마다 영화다 촬영하다보면 체력이 많이 달리잖아요. 평소에 꾸준하게 단련을 해 두는 편이죠.”

“이건 뭐 단련 수준이 아닌데. 철인 3종 경기 나가고 그래요?”

“전에 신청은 해뒀는데, 스케줄 꼬여서 포기했죠.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한 번 도전해 보려고요.”

PD가 혀를 내둘렀다.

경사가 상당한 산을 한 번도 안 쉬고 내달려 왔는데 진호는 땀도 안 흘리고 있다.

언뜻 내비쳐지는 팔과 가슴팍도 상당한 근육질.

영화를 위해서 단련한 거겠지만, 그 정도가 굉장했다.

“매일같이 산길을 타고 2사옥으로 가는 겁니까?”

“여기 정상을 넘어가면 약수터로 이어지는 길이 있거든요. 중턱에 운동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보통은 거기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더 하고 가죠.”

“여기서 더해요?”

“외국 스타들 보면 꾸준하게 자기관리 하잖아요. 그거에 비하면 전 그냥 평범한 거죠.”

이게 어딜 봐서 평범할까.

PD는 황당함과 함께 호기심을 느꼈다.

“정상까지 멀었습니까?”

“아뇨.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그럼 여기까지 온 김에 운동하는 장면까지 다 찍고 가죠.”

“그럴래요? 하하. 잘 됐네요. 저도 중간에 돌아가면 찝찝하다 싶었는데.”

진호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는 제가 정상까지만 들고 갈게요.”

힘든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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