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92화 (92/178)

Chapter41. 효도하자(2)

진호는 원 없이 돈을 썼다.

부모님을 모시고 고급 레스토랑에 들려서 식사를 하고 맞춤복 전문점에서 한 벌씩 옷도 맞춰 드렸다.

가족사진도 새로 찍었다.

이게 뭐니, 라며 어색해 했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배경도 예쁜 걸 고르고 포즈도 이리저리 잡았다.

“아이고, 이런 건 과해.”

“에이, 뭘 또 과해요. 아버지 차 낡아서 털털 거리는 걸 내가 아는데.”

“그래도······”

“튼튼한 거 타야죠. 이게 최근에 나온 모델인데 튼튼하기가 거의 트럭이에요. 아버지 큰 차 모는 거 좋아했잖아요.”

하는 김에 차도 계약했다.

B사 최신형 모델.

차체가 크고 튼튼하다.

진호 아버지도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한 번 엉덩이를 걸쳐 보고는 이내 흡족해 했다.

“차는 집으로 보내 드릴게요. 가서 자랑 좀 하세요.”

“흐흐. 이거 보면 네 큰아버지가 아주 그냥 눈 뒤집힐 거다.”

“좀 뒤집히라고 그래요. 그동안 그렇게 괄시를 했으면 속 좀 끓어도 되지 뭐.”

“그려, 그려. 이럴 때 자식 덕 좀 보는 거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나름 속에 쌓인 게 많았다는 얘기다.

진호가 씩 웃으며 말을 더했다.

“이제 이거 타고 어머니랑 드라이브 하면 되겠다.”

“아이고, 야. 내가 무슨······”

“아니여. 왜, 뭐가 어때서. 자식 놈이 사준 차타고 오붓하게 돌아다니면 좋지.”

“그렇지. 아버지가 말 한 번 잘 했네.”

어머니도 손사래를 칠 뿐 얼굴은 밝았다.

제대로 데이트 해 본 게 대체 언제일까.

나이를 먹어도 소녀감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마워, 아들. 덕분에 호강하네.”

“에이, 제가 고맙죠. 어머니랑 아버지 덕분에 제가 멀쩡하게 자란 거 아닙니까.”

“우리가 뭐 한 게 있다고. 다, 우리 아들이 잘나서 이룬 거지. 안 그래?”

“그럼요. 우리 아들이 얼마나 잘났는데.”

이럴 때는 또 죽이 잘 맞는다.

진호가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부모의 칭찬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가요. 잘난 아들이 모실게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

휴가가 끝나고 부모님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내려가기 바로 전까지도 진호는 바로 곁에서 두 분을 수발 들었다.

재미있는 점은 고가의 차를 사고 거액의 집을 계약 할 때 보다 곁에서 조곤조곤 말을 나눌 때 부모님이 더 즐거워했다는 점이다.

돈으로는 시간을 살 수 없다.

진호는 두 분이 고향으로 내려가고 난 뒤 울적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시간 날 때 우리가 내려가자.”

“응. 그래야지. 그러는 게 낫겠어.”

은서가 그런 진호를 다독였다.

그녀는 전날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고 스파와 마사지를 함께 받았다.

어머니, 아버지.

스스럼없이 말하며 부대끼는 모양새가 가족과 다를 바 없었다.

“오빠, 며칠 뒤면 다시 출국이지?”

“응. 해외 스케줄이 빡빡해서. 미국 갔다가 중국 들렸다가, 케나다, 프랑스, 영국······전 세계 다 방문하는 기분이야.”

“바쁘네. 나 만날 시간도 없겠어.”

“투어 끝나고 나면 한 동안 쉴 거야. 그때는 오붓하게 둘이서 여행이라도 가자.”

“헤헤. 어디로?”

“글쎄. 하와이는 너무 흔한가?”

은서가 진호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댄 채 올려다봤다.

발은 동동 구르면서.

“크루즈 빌려서 지중해에서 놀아?”

“와. 스케일 보소. 월드 스타라 이거지?”

“뉴스에 나오더라고. 재벌들 휴가가 그렇다고.”

“흠. 재밌을 거 같긴 한데, 아직은 좀 부담스럽다.”

“그렇지? 나도 그건 좀 과한 거 같더라. 그냥 알아보는 사람 적은 휴양지로 가자.”

“응. 오붓한 곳으로. 오빠랑 단 둘이······”

은근히 말을 줄이며 손을 뻗었다.

진호의 목 뒤로 부드럽게 감겨 들어오는 손.

촉촉이 젖은 눈망울이 진호를 유혹했다.

RRRR—!

“아이 씨!”

하지만 이럴 때면 꼭 분위기 깨는 사람이 있다.

거칠게 울리는 핸드폰을 진호가 재빠르게 낚아챘다.

무시해도 될 전화면 그냥 무음 처리 할 생각.

“대표님이네?”

아쉽게도 그럴 수 있는 전화가 아니었다.

은서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진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대표님.”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제법 다급했다.

#

발단은 한 기사부터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진호를 발견했고, 이를 따라가 사진을 찍다보니 무언가를 알게 됐다는 내용.

“빌딩 매입? 고급 승용차 구입?”

의문과 불확실한 어조로 흘려 두기는 했으나 기사는 분명하게 암식하고 있었다.

진호가 고액의 건물을 매입하고 고급 승용차와 비싼 옷들을 구입했다는 것.

“와. 고작 기사 한 줄에 너무하네.”

문제는 이 기사의 확산 속도였다.

몇 줄 안 되는 기사를 여기저기서 받아쓰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내용이 사실이 되어 버렸다.

진호는 영화가 성공하자 곧바로 빌딩을 매입하고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사실 이건 그렇다 해도 문제는 없다.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가 쓰는 일이니까.

하지만 대중이 언제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든가.

아직 서른도 안 된 놈이 돈을 팡팡 쓴다니까 배에 힘 딱 주고 물어뜯었다.

“이거 정정보도 요청해야 해요.”

“하지만 이런 일에 과하게 나서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을까요?”

“돈 쓰는 게 잘못 된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더 강하게 나가야죠. 그냥 두면 저들끼리 마음대로 떠드는 게 언론입니다.”

회사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사람이 반, 그냥 두면 사그라질 거라 보는 사람이 반이었다.

“진호야, 넌 어떻게 했으면 좋냐?”

결국 선택권은 진호에게 돌아왔다.

“중간으로 하죠.”

“중간으로? 무슨 뜻이야?”

“이거 궁서체로 대응하면 너무 딱딱해 보여요. 언론은 조심스럽게 다뤄야죠. 잘못 된 건 지적하되, 적당히 여유를 두면서.”

“말은 쉽지만 방법이 있냐?”

진호가 말을 아끼고 머리를 굴렸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석재 선배님. 연락 한 번 해볼게요.”

그 안에는 익숙한 사람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어이구! 우리 대스타님!”

오랜만에 본 유석재는 그대로였다.

주름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버선발로 달려 나왔다.

손을 꽉 쥐고 흔드는 힘은 여전했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우리 슈퍼스타께서 어디 아픈 곳 없나 걱정이야. 스케줄 빡빡하지?”

“최근에 많이 줄였어요. 곧 외국 투어가 있는 터라 살짝 템포를 조절 중입니다.”

“그래야지. 아무리 연예인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다고 하지만 과하면 다쳐. 쉴 때는 쉬면서 하라고.”

유석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봉사활동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찾아가서 일손을 보태고 이런저런 사연을 내보는 방송이었다.

취지는 좋지만 시청률은 썩 좋지 않았다.

“근데, 어떻게 우리 프로그램에 나올 생각을 다 했어?”

그렇기에 진호가 찾아온 것이 놀라웠다.

시청률 순으로 프로그램 세워 놓고 손가락으로 쿡쿡 찍어도 아무렇지 않게 나갈 수 있는 게 진호다.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른 프로그램에 굳이 왜 찾아왔는지 의문이었다.

“저 신인 때 선배님이 많이 챙겨주셨잖아요. 저도 보답을 해야죠. 그리고 프로그램이 진짜 마음에 들었어요. 취지도 좋고.”

“내가 우리 진호는 신인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크게 될 사람은 떡잎부터 달라요.”

“하하하. 얼굴 간지러워요.”

“간지럽기는. 자자, 가서 다른 사람들하고도 인사하자고.”

말뿐이라도 기분은 좋다.

유석재가 신이 나서는 진호를 끌고 다녔다.

PD부터 시작해서 카메라 감독들도 다 만나면서 ‘내가 신인 때 진호를······’이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와. 유 선배님 대단하시네요. 진짜로 친분이 있었어.”

“그러게. 난 또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쩐다. 진짜로 진호 씨야.”

그리고 같은 프로그램, 다른 출연자들에게도 소개했다.

다들 하나같은 반응이었다.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스타를 직접 보고 있으니 안 놀랄 수가 없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이쿠, 월드 스타 오셨는데 막 먼지 묻히고 그래도 되나?”

“에이, 괜찮아요. 일 할 때는 일해야죠. 저, 괜히 빼고 그러는 사람 아닙니다? 유 선배님이 말 좀 해 주세요.”

“아, 그럼. 여기 진호가 방송은 또 기똥차게 해요. 전에 예능 나온 거 다들 봤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다들 믿고 한 번 가자고.”

분위기는 좋았다.

월드 스타인 진호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시청률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

출연자들도 반사 이익을 받는다.

게다가 스타라고 잰 채 하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좋게 잘 어울려 주는데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이쿠, 천천히 옮기라고. 무리하지 마.”

“괜찮습니다, 선배님. 저 의외로 튼튼해요.”

“와. 진호씨보다 일 못하는 사람이 오늘 회식 쏘는 걸로 하죠!”

“으억! 그러는 법이 어디 있어!?”

프로그램은 기름칠 한 것처럼 잘 굴러갔다.

사연대로 집을 선정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들어서 옮겼다.

연탄, 세재, 쌀, 옷, 휴지 등.

언덕 끝자락에 위치한 달동네라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불평 없이 움직였다.

“힘들지? 좀 쉬면서 해.”

“괜찮아요.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천천히 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래요. 좀 쉬면서 하세요. 우리가 이런 동네 많이 다녀봐서 아는데, 초반에 힘쓰면 나중에 지쳐요.”

“아. 그런가요? 이런 동네가 많이 있습니까?”

진호가 바닥에 엉덩이를 대며 물었다.

“많지. 흔히 보는 도심 속에도 숨어 있고. 생활이 어려워서 허덕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그렇군요. 저도 썩 형편이 좋게 자란 건 아니지만 이런 모습은 많이 낯설어요.”

“어. 진호 씨 부자 아니었어요?”

출연자 중 누군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부자 아니에요. 어릴 때 아팠던 터라 부모님이 많이 고생하셨죠. 집도 팔고 뭐 그렇게······”

“아. 죄송해요. 전 또 요즘 기사만 보고 원래부터 잘 사는 줄 알았어요.”

“요즘 기사요?”

“모르세요? 빌딩 사고······”

“야, 야야!”

또 생각 없이 말하는 걸 다른 출연자가 막았다.

아직 카메라도 돌고 있는데 민감한 질문이었다.

“아. 그 기사요. 그건 저도 봤죠. 워낙 내용이 터무니없어서 그냥 두고만 봤는데.”

“어? 그럼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닌 거예요?”

“야! 넌 좀 눈치 있게 굴어라. 그걸 왜 여기서 물어봐.”

“괜찮아요. 못 할 말도 아닌데요, 뭐. 전 그냥 대수롭지 않은 기사 같아서 신경을 안 썼는데 많이들 그렇게 알고 계셨나 봐요?”

진호가 주변을 슥 훑으며 물어보니 다들 비슷한 얼굴이었다.

“아. 이야기가 꽤나 잘못 전해졌네요.”

“그럼 건물을 사고 그런 게 아니었어?”

“그때 부동산 사람하고 건설업체 사람을 만난 건 맞아요. 근데 제 집이 아니라 부모님 사실 곳 때문에 만난 거거든요. 고향에 부모님 사실 곳 지어 드리고 싶어서요.”

“부모님께? 집을 지어드리려고?”

“네. 지금 부모님인 큰집에서 얹혀 살고 있거든요. 이번 기회에 두 분이 편히 지낼 수 있게 집을 지을까 했죠.”

사람들 시선이 변했다.

똑같이 집을 사도 자기 집과 부모님 집은 느낌이 다르다.

“옷이랑 차도 전부 부모님께 드리는 물건이었요. 아버지 차가 오래된 거라 튼튼한 걸로 바꿔 드렸거든요.”

“어이구, 이거 완전 효자였네.”

“에이, 그동안 못한 걸 이제야 조금 하는 거죠. 어릴 때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는데요. 이제나마 갚을 수 있어서 다행이죠.”

손사래 치는 진호의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PD, 카메라 감독, 음향감독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우리 진호가 많이 억울했겠네. 효도하려고 그런 건데 괜히 뭐 돈 낭비하는 사람처럼······”

“그러게. 기자가 잘못 알았던 거네.”

“그런 걸 가지고 뭐 또 낭비니 어쩌고저쩌고. 하여튼 사람들이 남 말 하는 건 좋아해서.”

“하하. 괜찮아요. 살다보면 오해 할 수도 있죠. 전, 그 분들을 욕하기 보다는 그냥 잘못 된 걸 알았으면 이 기회에 부모님께 효도나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이야. 나이는 나보다 어린데, 생각은 훨씬 나아.”

유석재의 얼굴에 진호가 머쓱하게 웃었다.

부끄러움과 순진함이 뒤섞인 그런 얼굴이었다.

“그 소문은 우리한테 맡기라고. 아주 딱 바로잡아 줄 테니까.”

“그럼, 뭐 선배님만 믿습니다?”

“그래. 믿으라고. 하하.”

정정보도보다 많은 이들이 보고 많은 이들에게 관심 받는 법.

그리고 훨씬 더 부드러운 형태.

[배우 H씨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30억을 쾌척. 훈훈한 미담이······]

미담에 미담을 더해서.

진호는 가볍게 여론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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