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90화 (90/178)
  • Chapter40. 유행을 만들다(2)

    한 때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재미있는 춤과 노래로 미국 전토를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넓디넓은 미국 대륙 전역이 그의 춤과 노래로 가득 찼었다.

    학교에서는 그 노래와 춤을 모르면 유행에 뒤쳐지는 인물이었고, 방송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으면 트렌드를 모르는 고루한 집단이었다.

    그만큼 한 번의 신드롬이 가지고 온 여파는 대단했다.

    [이례적인 흥행. 한국 영화 열풍이 할리우드를 장악하다]

    [한국이 어디인가요? 국정원이 뭔가요? 한글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나요? 끝없이 이어지는 관심]

    [한글을 못 쓰면 유행에 뒤쳐지는 아이. 새로운 한류의 지평을 연 영화]

    최근에 미국을 관통하고 있는 ‘여섯 번째 요원’의 흥행도 그와 비슷한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관련된 모든 것이 유행했다.

    한글, 한국어 발음, 한국의 조직도, 국정원, 타고 다니던 차까지.

    영화에 열광한 이들은 모든 걸 알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이를 모르는 사람은 유행에 뒤쳐지는 인물로 취급을 받았다.

    한국말 몇 마디를 모른다?

    촌스러운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이 흐름을 탔다.

    에이전트 식스라는 번역 제목보다 원제인 ‘여섯 번째 요원’을 직접 언급했으니까.

    공식적으로 유행의 선두에 여섯 번째 요원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여섯 번째 요원의 주연 배우인 진호 씨를 모십니다]

    [우리 토크쇼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한국에서 온 요원! 여섯 번째 요원의 진호!]

    들불처럼 영화가 흥행하다보니 진호의 일정도 바빠졌다.

    그를 찾는 방송이 수도 없이 많아졌다.

    월드 스타만 나갈 수 있다는 토크쇼를 비롯하여 각종 방송사의 메인 인터뷰가 이어졌다.

    영화의 장면을 재연하기도 하고 한국어를 진행자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한국말을 가르치는 장면이 시청률 톱을 찍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 굿즈에 대한 판권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캐릭터 조형 사업을 하고 싶다던데.”

    “티셔츠 추가 제작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메인 메이커를 우선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습니다만.”

    영화 흥행과 더불어서 온갖 사업이 달라붙었다.

    단순히 영화가 재미있는 거였다면 이렇게 까지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은 영화가 아니라 문화다.

    한 때의 유행이며 커다란 조류인 것이다.

    인형, 옷, 신발, 액세서리 등.

    돈 냄새를 맡은 이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버렸다.

    “전문가를 붙여주마.”

    최현석은 상황이 생각보다 크게 굴러가고 있음을 간파했다.

    제작은 ‘영신 미디어’가 주도했지만 투자자 금액을 고려하면 진호의 영향력이 그보다 높았다.

    그렇기에 이를 중간에서 컨트롤 할 필요가 있었다.

    진호가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 이걸 하는 건 불가능.

    발 빠르게 전문가를 섭외하고 사업 쪽의 팀을 꾸렸다.

    일종의 진호 담당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은 진호에 관련된 모든 사업적인 일을 맡았다.

    “한국에서 소식 왔다. 영등위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고 등급을 재조정했어.”

    “하하. 드디어 말인가요?”

    “못 버틴 거지. 위원장하고 몇 명 모가지 날리는 걸로 매듭을 진 모양이야.”

    “장관은요?”

    “그쪽도 편하진 않지. 이미영이 악 바친 말을 쏟아내는 통에 곤란하게 됐어. 당장 잘리지는 않겠지만 꽤 고단 할 거야.”

    한국에서도 희소식이 날아왔다.

    영등위가 백기를 들면서 전면적으로 개봉 계획이 수립된 것이다.

    AJ그룹에서 전폭적으로 배급을 시도했다.

    이미 여론 자체가 들끓고 있는 터라 독점에 가까운 배급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사회 크게 한 번 가죠. 초대 할 사람도 많으니.”

    “그래야지. 다들 고생했으니까.”

    이번에야 말로 금의환향.

    이미 북미수익이 1억 불을 돌파한 상황이었다.

    #

    공개 시사회가 열렸다.

    가장 넓은 관에서 일부의 초대 손님을 포함.

    나머지는 자유 관객으로 진행되었다.

    반응은 시작부터 매우 뜨거웠다.

    “상영 등급을 재조정 받았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일부에서는 이미 관객수 기록을 갈아치울 거로 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셨나요?”

    “북미 수익이 이미 1억불을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최종 성적을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질문이 쏟아졌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서 질의응답을 따로 할 수 있게 해 두었던 터라 열기가 굉장했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계속 한국 활동을 이어갈 생각인가요?]

    [최근 유행하는 요원 포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우 스칼린이 진호 씨를 이상형으로 뽑았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게다가 절반 이상이 외국 사람이었다.

    진호가 귀국 할 때 같이 따라온 외국 기자들이었다.

    쏟아지는 외국어가 신기했는지 관람객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에 대한 질문도 좋지만, 오늘은 영화에 대한 걸 물어봐 주세요. 이 영화는 저 혼자서 만든 게 아닙니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질문을 정리 한 건 진호였다.

    한국말에는 한국말로 영어에는 영어로.

    프랑스어에는 프랑스어로 대응했다.

    그 발음과 태도가 얼마나 유연한지 사람들은 연신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었다.

    “시민 기자 박중철입니다. 약간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그렇게 어느 정도 소요가 가라앉았을 때.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초대석 자리가 아니라 일반 관람석 자리였다.

    “편하게 질문하세요.”

    “네. 그럼······혹시 관 독점에 대한 의견을 좀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국내 개봉을 하면서 AJ측에서 관을 독식하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뿐이 아니라 사회자를 비롯한 다른 관계자들의 얼굴도 비슷해졌다.

    조금 민감한 질문이었다.

    “정말 곤란한 질문이었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진호 씨의 입에서 듣고 싶었습니다.”

    “네. 답은 해야겠죠. 음. 전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공급은 어디까지나 수요의 문제.”

    “그럼 관의 독점이 정당하다는 말인가요?”

    “기본적으로 그렇습니다. 수요가 있는 만큼 공급이 주어지는 건 시장경제의 원리니까요. 다만.”

    “다만?”

    진호가 입술을 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완전한 방임은 옳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특히 도전적인 영화들이 일정 부분 관을 할당받는 건 좋은 취지라 여깁니다.”

    “도전적인 영화라 하면······실험 영화 같은 것 말인가요?”

    “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입니다. 영화를 배급하고 제공하는 회사들도 어디까지나 이윤을 추구하고 있죠. 그렇기에 단정적으로 말은 하지 못합니다. 다만, 번만큼의 사회적 환원이 가장 아름다운 순환이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박중철의 얼굴이 조금 모호해졌다.

    그의 질문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다.

    관 독점으로 인한 다른 영화들의 입지를 물은 건데 진호는 독립영화나 실험영화에 대한 답을 내왔다.

    “아, 이런 답을 원한 게 아니었나 보네요?”

    “네, 뭐. 제가 묻고자 한 건 스크린 독점으로 인한 문제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만······”

    “하하. 이거 제가 오해했군요. 요즘 들어 영화 개봉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말이 잘못 나온 거 같습니다.”

    “그럼 독점에 대해서는?”

    “단순합니다. 자본으로 관을 독점하여 영화를 억지로 보게 한다? 반대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원해서 관을 늘린다? 이건 찬성입니다.”

    “이 영화는 후자의 것이라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진호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얼핏 오만해 보일 수도 있는 태도였지만 장내의 누구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해야 할 답을 했다는 느낌.

    “영화가 재밌으니까요.”

    너무나 단순한 논리였다.

    #

    국내 개봉 하루만에 100만을 넘어섰다.

    정확한 집계로는 130만 가량이었다.

    국산 영화로는 기록적인 속도였다.

    “아이구야, 이게 다 우리 아들놈 영화 보러 온 사람이라고?”

    “그렇다니까 그러네. 아주 그냥 국민배우여, 국민배우.”

    그렇게 예매가 한창인 극장 안.

    한 부부가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어머님, 아버님. 벌써 오셨어요?”

    “어이구. 우리 은서 왔니?”

    “천천히 오지 그랬어. 우린 여, 안에서 기다려도 되는데.”

    그런 두 사람 앞으로 은서가 다가왔다.

    그녀는 뛰어 왔는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에이. 오랜만에 올라오셨는데 제가 잘 모셔야죠. 오는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힘들긴 무슨. 우리야 그냥 차타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바쁜 아가 불러다가 고생시키는 거 아닌 가 몰라.”

    “안 바빠요. 요즘 한가해서 좀이 쑤시던 차였어요.”

    은서가 손사래를 치며 부부를 근처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바쁘지 않다, 라는 말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황급히 스케줄 조정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차였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부부는 진호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예능 하나보다 이쪽이 우선이었다.

    “아버님은 커피? 어머님은······?”

    “찬 물이면 되는데. 아니면 그냥 은서랑 같은 거.”

    “그럼 어머님이랑 저는 녹차라떼로 해요.”

    주문까지 다 받고 자리를 잡았다.

    짐이 한 가득이랑 옮기는 것도 일이었다.

    “뭘 이렇게 가지고 오셨어요?”

    “우리 새끼,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나 싶어서. 외국이다 뭐다 많이 왔다 갔다 하면 배곯잖아.”

    “헤. 그럼 안에 그거 다 음식이에요?”

    “그치. 우리 진호가 좋아하는 것들로 싸왔어.”

    “오빠 진짜 좋아하겠다.”

    은서가 웃었다.

    안 그래도 스케줄 때문에 끼니 거르는 것이 일인 진호였다.

    어머니 반찬이라고 좋아 할 얼굴이 떠올랐다.

    “아, 근데 올라오실 거면 전에 시사회 할 때 오시지 그랬어요. 그럼 편하게 보셨을 텐데.”

    “아이고. 그러면 또 사람들 부대껴서 힘들어. 그냥 조용히 와서 우리 진호가 우째 영화 찍었는지 한 번 보고 가는 거지.”

    “그러셨구나. 안 그래도 오빠가 두 분 어떻게든 초대를 해야 한다고 전전긍긍하던데.”

    “바쁜데 뭘. 그냥 우리끼리 봐도 돼.”

    손사래 치는 부모님 모습에 은서가 웃었다.

    이렇게 보면 진호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오빠가 투덜거리던데요? 부모님 모시고 영화도 못 본다고.”

    “아이고, 됐다 그래. 오면 또 난리 나고 그러잖아. 끝나고 밥이나 한 끼 하면 되지.”

    “대신 제가 어머님 아버님이랑 재밌게 볼게요. 그럼 오빠도 덜 투덜거리겠죠?”

    “그려, 그려. 우리 은서 아가밖에 없네.”

    “그쵸, 어머님?”

    아양 한 스푼을 덜어 넣고 예매해 두었던 표까지 뽑았다. 본래는 송학이 오기로 했던 한 자리까지 포함해서 딱 3자리였다.

    “어이구, 세상에나. 저게 뭐하는 거람?”

    “응? 어머님, 뭐가요?”

    진호 어머니가 영화관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외국인들이 단체로 몰려와서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과거 유행하던 플래시몹하고 비슷했다.

    “아. 저거요? 요즘 유행이에요. 한국을 방문해서 단체로 인증 샷 찍는 거죠.”

    “외국인들이?”

    “그럼요. 예전에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 본 다음에 현지 가서 사진 찍고 그랬잖아요. 그걸 이젠 반대로 하는 거죠.”

    “세상에. 별 일이 다 있네.”

    우르르 몰려다니는 외국인은 한 두 팀이 아니었다.

    분명 국내 영화관이었는데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말마따나 별 일 이었다.

    “그만큼 영화가 대박을 친 거예요. 외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정도로.”

    “아이고. 우리 진호가 훌륭한 일을 했구만.”

    “그러게. 장하네, 장해.”

    진호의 부모님은 몰려다니는 외국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현상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것이다.

    “다 두 분이 잘 키워주신 덕분이죠.”

    “크흠. 그렇게 되나?”

    “어머나. 그걸 또 그대로 받아요? 아가가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데.”

    “뭐, 좋으면 좋은 거지. 틀린 말은 없잖어.”

    “그럼요. 없죠.”

    은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진호 부모님은 조금 머쓱해 했지만 싫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자기 자식이 이만큼 해서 칭찬받는데 싫어 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아. 영화시간 됐네요. 가실까요?”

    “그려. 우리 아들놈 한 번 보러 가자고.”

    “스타라잖아. 스타. 스타 아들놈 보러 가자고.”

    어깨에도 말투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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