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89화 (89/178)
  • Chapter40. 유행을 만들다(1)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론 웨이 측과 접촉하여 계약을 한 뒤 영화 개봉을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별도의 광고 영상을 제작하고 사전 인터뷰 형식의 방송에 다수 출연했다.

    첫 반응은 의아함이었다.

    미국에서 한국 영화를 직접 홍보하며 개봉을 기다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애초에 자국에서 개봉하는 것이 먼저니까.

    의아함은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관심을 불러왔다.

    “슬슬 SNS에서 반응이 오고 있어.”

    “빌이 테그를 해 줬네. 엘린하고 벨로스 감독님도.”

    “진호 오빠 팬이라고 팔로우 한 사람도 많아.”

    홍보 방향이 적중했다.

    사람들은 이례적이고 독특한 일에 반응하는 법.

    유행처럼 홍보물을 테그하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주연인 진호가 미국에서는 인지도가 꽤 있지 않은가.

    빌과 벨로스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니 이런 유행은 더욱 빠르게 번져나갔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안 돼. 유행은 금방 사라진다고. 최대한 빠르게 밀어붙여.”

    진호는 간을 보지 않았다.

    여러 방송에 나가며 적극적으로 영화를 홍보했다.

    키워드는 역시 ‘아시아, 한국’.

    현 할리우드의 방향성을 자극하기 딱 좋은 내용이었다.

    이런 쪽에 민감한 언론들이 달라붙고 트렌디함을 쫓는 팝스타들이 숟가락을 얹었다.

    원 히트로 사라지는 유행가처럼.

    반짝임에 불과함은 분명했지만 그 효과는 굉장했다.

    [영화 개봉 언제 한다고 했지?]

    [아, 그거. 제목이 뭐더라?]

    [영어로 번역된 건 알고 있는데. 에이전트 식스]

    [에이. 누가 요즘 그걸 번역해서 불러. 원어로 알아야지. 요······요언 유번. 맞나?]

    번역을 제외하고는 아예 현지화를 안 한 것이 효과를 더했다.

    원제는 여섯 번째 요원.

    번역으로는 에이전트 식스가 되었다.

    둘 중 익숙하기로는 후자의 것이 자명했지만 현지에서는 전자의 이름이 더 유행했다.

    다른 문화의 언어를 그대로 쓴다는 것이 좀 더 트렌디하고 깨어있는 사람의 증표가 된 것.

    “관수는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일은 일사천리였다.

    홍보, 관의 확보, SNS를 통한 유행의 전파.

    진호가 계획하던 일이 차근차근 맞아 들어갔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뿐.

    “그럼 이제 개봉이군요.”

    실전이었다.

    #

    당연한 얘기지만 진호의 이런 행보는 한국에도 알려졌다.

    반응은 다양하게 나왔다.

    미친 짓이라는 비웃음부터 획기적이라는 감탄.

    그리고 건방지다는 특정 업계의 분노까지 있었다.

    “이건 영등위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영등위의 이영미 원장이 특히 그러했다.

    제한 상영가 등급을 걸었더니 대뜸 외국에서 선 개봉이라니.

    이건 지기 싫어서 고집 부리는 수작밖에는 안 된다.

    “맞습니다. 영등위의 권고 조치를 무시하고 이런 방식을 취하다니요. 이건 공식적으로 항의를 해야 맞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일개 감독과 배우가 영등위의 결정에 이런 대응이라니. 이딴 식으로 해 놓고 멀쩡하게 한국에서 개봉 하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규탄을 하도록 하죠.”

    다른 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영등위 권고를 따르지 않고 해외 개봉을 우선시 했다는 건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권위에 도전받는 걸 지독히 싫어했다.

    “걱정마세요. 어차피 궁여지책입니다. 미국에서 선 개봉? 그런 게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까? 완전히 실패하고 돌아 올 뿐이죠.”

    “그때가 되면 따끔하게 혼을 내 줍시다. 이건 장관께서 직접 내린 지침 아닙니까. 어디 건방지게 감독과 배우 나부랭이가 이를 정변에서 반박하는 건지.”

    “그 말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하군요. 쥐새끼 같은 것들 몇 명이 모여서 저들끼리 잘났다고 계획을 짜냈을 걸 생각하니······하하하!”

    “하하! 저들이 뭉쳐봐야 쥐새끼 아닙니까. 하하!”

    이영미를 포함, 영등위의 누구도 화를 냈을 뿐 이 상황을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장관의 언질로 시작된 일.

    발버둥 쳐 봐야 결국 결과는 동일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일단 공개적으로 의사표명부터 합시다.”

    “제가 작성하도록 하죠.”

    “똑 부러지게 부탁합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하하.”

    못된 제자를 훈계하는 선생 같은.

    적어도 그들 생각에는 그러했다.

    #

    진호는 시사회장을 찾았다.

    가볍게 사전 행사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전 반응은 제법 괜찮았지만 결과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

    진호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 반응을 살피기 바빴다.

    몇 몇 남북관계에서 오는 특이성에서 사람들이 의아해 할 때는 입술을 깨물었고, 화려한 액션에 환호 할 때는 주먹을 쥐었다.

    무어라 콕 집어 반응을 확정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영화가 꺼지고 관에 불이 들어왔다.

    짧은 3, 4초 가량.

    반응이 나오기 직전의 그 시간이 진호에게는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재밌는데?]

    [응. 응. 굉장했어! 특히 마지막 싸움에서는 전율이 일 정도야!]

    [할리우드 영화처럼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건 아니지만 굉장히 오밀조밀해. 특히 배우의 연기력이 압권이야. 전혀 모르는 언어인데도 그 감정이 전해 질 정도로]

    [단순한 아시아 영화 수준이 아닌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말문이 트였다.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특히 구성과 연기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유행 따라 영화를 보러 왔던 사람들조차 순수하게 감탄을 할 정도였다.

    [인스타에 올려야지. 이거 안 보면 후회하겠어]

    [나도, 나도]

    [배우 이름이 뭐였지? 호?]

    [호. 한국 이름으로 진호. 진호 홍]

    [재미있는 이름이네]

    너나 할 것 없이 SNS에 올리기 바빴다.

    영화의 여운을 즐겨야 한다, 라는 영화인 관점에서는 나쁠 수 있었지만 흥행에서는 만점 태도였다.

    진호도 한 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단상에 올라갔다.

    “무대인사하죠.”

    표정도 밝았다.

    #

    개봉 첫 날.

    관은 대부분 매진되었다.

    관람한 평가들도 매우 빠르게 올라왔다.

    대부분이 긍정적, 일부는 찬사를 쏟아냈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 우리도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영화가 재미있는 건 덤]

    [한국의 스타 배우, 진호. 다시 한 번 그가 미국에 커다란 폭탄을 던졌다. 이제 과연 누가 그를 부정 할 수 있을까? 그는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왕도를 따르되 창의성을 잃지 않은 영화. 배우의 열연도 뛰어나나 그 완성도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평단에서도 발 빠르게 반응했다.

    미국에서 개봉한 아시아 영화.

    일부는 그 부분에서 배척되는 평을 내놓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환영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게 트렌드니까.

    서양이 정치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유행이었다.

    “관을 추가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굉장히 뜨거워요. 다른 지역에서도 수입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영화의 완성도였다.

    억지로 흠집을 잡는다 해도 영화가 훌륭하다는 건 부정 하지 못했다.

    연출, 분할, 연기.

    심지어 CG까지.

    할리우드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정갈하고 잘 빠진 영화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럼 이 영화가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다.

    돈 굴리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미 판단을 내렸다.

    관을 늘리고 제휴를 맺어도 좋을 만큼 영화가 훌륭하다는 사실.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닌, 유행을 선도할 상품이라는 걸 인정했다.

    “한국에서의 반응은 어떤가요?”

    “난리 났습니다. 어째서 해외 개봉이 먼저인지 미친 듯이 묻고 있더군요.”

    “답변은 제대로 했겠죠?”

    “하하. 저희가 굳이 언급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영등위에서 이미 우리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더군요.”

    “자충수라니.”

    알아서 발등을 찍어 준다면 나설 필요도 없다.

    왜, 좋은 영화를 볼 수 없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의문이 영등위의 글 하나로 답을 찾게 될 테니까.

    “대표님, 일정 중간에 한국을 넣어 주세요.”

    “오냐.”

    개봉에 맞춰 미국으로 왔던 최현석도 웃으며 답했다.

    진호의 생각이라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장작 좀 더 넣으러 가죠.”

    불난 집에 부채질이었다.

    #

    영등위 위원장 이영미는 손을 움켜쥐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힘을 주지 않으면 소리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입국했다고?”

    “네. 공항에서 짧게 기자회견하고 이동했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국내 개봉 문제로 저희를 찾아오지 않을까······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쾅. 결국 참지 못하고 리모컨을 던졌다.

    분리된 배터리가 바닥에 퉁퉁 튕기고는 구석에 처박혔다.

    “장난해? 이미 저렇게 개망신을 줘 놓고서는 우리를 찾아온다고?”

    “끄응. 어쩝니까. 상황이 그런데.”

    “상황이 뭐? 뭐가 어떤데?”

    “······아니 위원장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며칠 전에 공식적으로 저쪽 행보를 질타했습니다. 온갖 욕이란 욕은 우리가 다 먹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영등위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로 다운되어 버렸다.

    방문자 숫자가 평소의 수백 배를 넘어 버리니 견디지 못한 것이다.

    “아니, 우리가 뭘 어쨌다고? 우린 절차에 맞춰서 권고조치를 했고, 저들이 안 들어 먹으니까 제한 상영가를 내린 거라고. 그것도 싫어서 해외에서 개봉하는 걸 우리보고 어쩌라고?”

    “저도 그렇게 설명을 했죠. 근데, 들어 먹습니까? 해외에서 개봉작 보고 온 사람도 넘치는 판에.”

    “봤는데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거냐!?”

    “······”

    부하직원은 입술을 달싹이다 그만 두었다.

    봤으니까 더 한 거다.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절대로 ‘제한 상영가’등급 영화는 아니라고 보장을 한다.

    잔인한 것도 성적인 것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내용도 없다.

    그런데 대뜸 제한 상영가를 받았다고 하니 아무도 납득을 못하는 것이다.

    “안되겠어. 이대로 두면 더 설칠 거야. 확실하게 못 박아서 엄두를 못 내게 하자고.”

    “······네? 등급을 재조정 하는 게 아니라요?”

    “우리가 왜? 이미 등급 판정은 내렸다고.”

    “감당 가능하겠어요? 당장 저희 홈페이지만이 아니라 국민 청원도 올라가 있는데.”

    “뭐? 국민청원?”

    “네. 확인 안 해 보셨어요?”

    직원이 스리슬쩍 폰을 내밀었다.

    ‘여섯 번째 요원의 등급을 조정해 달라.’라는 청원이 벌써 30만의 서명을 받아냈다.

    사회적 이슈를 제외하고 이례적인 속도였다.

    “이런 개돼지들 같으니······”

    “여론이 안 좋아요. 여기서 못 박아 버리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겁니다. 그냥 적당히 수긍하고 넘어가시죠.”

    “수긍하면? 우리 꼴은 어떻게 되는데?”

    “아니 지금······”

    꼴이 문제인가.

    직원은 여전히 사태 파악이 안 되는 이영미를 보며 혀를 찼다.

    “말은 끝까지 하라고. 무슨······”

    우우웅.

    그 순간, 이영미의 폰이 울렸다.

    그녀는 짜증나는 듯 거칠게 폰을 꺼냈다가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태도를 확 바꿨다.

    “네, 네. 장관님······”

    기어가는 목소리.

    직원이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한 번 쳤다.

    이 뒤의 일은 안 봐도 훤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