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86화 (86/178)
  • Chapter39. 선택(1)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남태선은 내리는 비를 몸으로 맞으며 걸었다.

    달조차 뜨지 않아 주변은 어두웠다.

    “어떻게······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냐?”

    한 때의 친구.

    국정원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이남혁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그 눈빛이 매서워 되레 가슴은 차가웠다.

    “날 버린 건 그들이다. 난 그저 갚아줬을 뿐.”

    “남태선! 네 행동은 그런 말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너 때문에 몇 명이나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죽일 사람만 죽였다, 라고 말해도 넌 듣지 않겠지. 상관없다. 그들이 자기 안위를 위해 날 버린 것처럼, 난 복수를 위해 인간의 마음을 버렸다.”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까지 변한 거냐?”

    “우습군. 어째서라고 묻는 네 모습이.”

    남태선은 친구의 순진함을 비웃었다.

    그의 이상적인 마음이 짜증났다.

    진흙바닥에서 혼자 고고한 척 소리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만 둬. 죄를 실토하고 협조하면 네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도록 내가 도울게.”

    “네가? 무슨 수로?”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아! 네가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을! 무리한 복수극만 그만 둔다면 네게도 살 길은 있다고!”

    “만약 영화였다면 네가 주인공이었겠지?”

    “뭐?”

    “영화가 아니라는 거다.”

    탕—!

    남태선의 총격에 이남혁이 물러났다.

    총알이 튄 곳은 그의 발치.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벌어졌다.

    “너 혼자 발버둥쳐도 소용없어. 내 억울함을 안다고? 내 위험성을 아는 사람이 몇 배는 많아. 넌 저기 윗대가리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내게 사과라도 할 거라 믿은 거냐?”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뭐. 내가 죽는다고?”

    “그래! 난 적어도 네가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이남혁, 이남혁. 이 잘난 놈아. 네 눈에는 내가 죽음을 각오 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냐?”

    남태선이 쏟아지는 비를 손으로 막으며 담배를 물었다. 찰칵, 찰칵. 비에 젖은 라이터를 힘겹게 돌려서 불을 붙였다.

    쓰린 담배 연기가 폐부를 통해서 스며 들어왔다.

    30년을 넘게 살며 많은 걸 후회했지만 이번 일은 한 번도 후회 한 적 없다.

    “버려진 날. 나는 확신했다. 모든 시나리오를 돌려봐도 내가 이 나라에서 멀쩡하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니야! 내가 널 돕는다면······!”

    “시끄러워, 멍청아. 끝까지 듣기나 해.”

    힐끔.

    남태선의 시선이 쏟아지는 비 너머를 응시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그림자들이 언뜻 보였다.

    시간을 끌며 사람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어차피 이 나라에 발붙이고 살 수 없다면 뭐라도 하기로. 이왕이면 내 복수심도 충족하면서.”

    “그래서 널 배신한 자들을 하나씩 모아서 죽인 거냐?”

    “쯧쯧.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하나씩? 어느 세월에 그 인간들을 다 죽일까? 국정원 윗대가리부터 날 제거하는 일에 찬성한 국회의원들. 고르고 고르자면 운동장 하나는 채우고도 남아.”

    리스트는 일찌감치 얻었다.

    필요했던 건 방법과 시기.

    그리고 솎아 낼 도구였을 뿐이다.

    “난 오랫동안 국정원에 근무했다. 그들의 방식이라면 눈에 훤해. 내가 모습을 드러내고 암살 계획을 흘린다면 싫어도 반응 할 수밖에 없지.”

    “······너.”

    “금일 19시 30분. 연례회의에 폭탄테러.”

    “설마! 그 정보를 흘려서 남은 이들을 한 곳으로 모으려 한 거냐!? 모두를 죽일 생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랐다.”

    남태선은 다 핀 담배를 바닥으로 던졌다.

    그리고 손목을 걷어 시계를 봤다.

    예정했던 시간이 다 됐다.

    “내가 입수한 테러 정보에 기반한 계획이다. 날 죽이려 했던 자들 역시 이를 알고 있지. 그렇기에 그들은 대피소로 가지 않아.”

    “무슨······소리냐?”

    “폭탄이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

    허풍임을 알 수밖에 없다.

    애초에 계획은 정상회담 이후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여 인근 대피소로 정상들을 몰아넣는 식.

    장소도 다르고 실행할 여력 역시 다르다.

    그렇기에 허풍에 속지 않은 이들은 그대로 남는 것이다.

    그래야 용감한 의원으로 남으니까.

    “사실 맞는 말이야. 내가 무슨 수로 국회 안에 폭탄을 설치하겠어.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럼 대체 뭘 어쩌자는 거냐!?”

    “사람 죽이는 일에 굳이 큰 폭탄은 필요하지 않아. 마실 물에 약만 조금 타면 그만이거든.”

    “불가능해! 국회로 반입되는 모든 물건은 검사를 받는다!”

    “폭탄테러로 대다수의 요원들이 대피를 하는 이 마당에도?”

    이남혁이 움찔했다.

    평상시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을 일.

    하지만 상황이 난잡해지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북측이 계획하던 플랜 2. 플랜3. 플랜4.”

    “······거짓말. 그런 건 네 보고서에 실려있지 않았어.”

    “그야 아직 보고하지 않았으니까. 첫 보고 이후로 추가 정보를 수집하던 중이었어.”

    “믿을 수 없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 나라를 위해 봉사하던 나를 고작 분위기 때문에 버려버린 이들이.”

    복수의 달콤함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되갚아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알았으면 했다.

    누구나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 이남혁. 선택을 해라. 날 쫓아 올 테냐, 아니면 죽어가는 네 상관들을 구할 거냐?”

    “남태선! 도망 칠 수 없다!!”

    “말했지, 국정원의 수법은 훤하다고.”

    콰콰콰쾅!!!

    남태선이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눌렀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갓길에 주차해 둔 차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몰래 접근하던 요원들은 폭발을 피해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남태선!!”

    그리고 그 시간이면 도망치기에는 충분했다.

    오토바이가 남태선을 태우고 빗속을 가로질렀다.

    이남혁이 할 수 있는 건 멀어지는 남태선을 보며 소리치는 것뿐이 없었다.

    #

    진호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배역에 대한 몰입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스텝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다음 씬을 위해서 바삐 움직이고 있음에도 계속 자리를 지켰다.

    “잘 나왔습니다.”

    그런 진호 옆으로 이무석이 다가와 앉았다.

    “잘 나온 겁니까?”

    “제가 원하던 남태선의 모습이었습니다.”

    “남태선은 만족했을까요?”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는 작품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만약 제가 남태선이었다면 복수는 꿈도 못 꿨을 겁니다. 믿었던 모든 사람이 배신한 상황에서 그 정도로 멘탈을 다잡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아요.”

    “그래서 남태선이죠. 남다른 구석이 있는 인물입니다. 애국자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국가를 맹신하지도 않아요. 국가와 개인. 자유와 충성. 수많은 생각과 이념 사이에서도 그는 오롯이 자신의 길만을 따르죠.”

    “캐릭터가 위험한 건 알고 있죠?”

    “알다마다요. 하지만 그래서 선택 한 거 아닙니까.”

    “그게 매력이죠. 터부시 되는 걸 과감하게 건드리는. 이 설정이 없다면 영화는 맥이 빠졌을 겁니다.”

    남태선은 정의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다.

    그의 행동은 복수심에 의거했고, 그 결과도 국가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남태선에게는 정의였다.

    그 과감함, 타협 없는 행동이 매력적인 것이다.

    “감독님. 우리 청불로 가죠?”

    “네. 화끈하게 터뜨렸는데, 수위를 타협 할 수는 없습니다.”

    “역시. 감독님이 뭘 좀 아시네.”

    진호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슬러졌다.

    “마무리. 끝내주게 해 봅시다.”

    영화는 이제 막바지였다.

    #

    촬영을 비롯한 영화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촬영본의 편집 및 그래픽 작업도 순조로웠고 매체를 통한 홍보도 정석대로 흘러갔다.

    거액을 투자한 영화인만큼 기대감도 많았다.

    세 차례에 걸쳐 예고편을 내보낼 때 마다 조회수가 폭발했다.

    돈 들인 만큼 영화가 제대로 뽑혔다는 반증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영등위에서 권고조치가 내려왔어요. 영화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네요.”

    “선정적이라고?”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를 통해서 등급분류를 받는다.

    작품의 형태와 폭력성을 고려하여 청소년 관람불가까지는 예상했지만 권고조치는 의외였다.

    “영화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제한 상영가 등급을 내려 줄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뭐가 그렇게 선정적인데? 그 흔한 섹스씬도 없는데 뭘 어쩌라는 거야?”

    “일단 공문 온 거 보내드릴게요.”

    이무석은 직원을 통해서 영등위에서 보내온 문건을 받았다.

    구구절절한 미사여구를 빼면 내용은 간단했다.

    작품의 내용이 지나치게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국가기관을 희화하고 지나치게 직접적인 묘사로 사회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라네요.”

    “이 새끼들은 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냐? 대통령 명치에 총 박는 내용도 버젓하게 영화로 상영되는 판에 고작 이거로 우리한테 태클 건다고?”

    이무석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작품 내용이 고위직 인사들을 안 좋게 묘사한 건 맞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그보다 더한 내용도 영화로 상영되는 판에 이걸 걸고 넘어지는 건 과한 행위였다.

    “감독님. 혹시 그거 때문이지 않을까요?”

    “어? 뭐?”

    “언뜻 뉴스로 봤어요. 얼마 안 있어 정상회담을 하고 문화교류라를 한다고 했나? 하여튼 꽤 친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거 같아요.”

    “남북관계가?”

    “네. 그래서 영화 내용이 마음에 안든 건 아닐까 하고.”

    “아이고, 맙소사. 시대가 역행을 하는구나.”

    이무석이 머리를 짚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영화는 영화다.

    이걸 현실에 대입해서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진호 씨에게 전화 좀 걸어 봐.”

    상의 할 사람이 필요했다.

    #

    소식은 진호에게도 전해졌다.

    그 역시 영등위의 결정에는 꽤나 놀랐다.

    사람을 통해 전화를 돌리고 여러 루트로 접근을 해 봤다.

    “감독님 말대로 분위기가 문제라네요.”

    결론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 문제였다.

    영화 속 남태선이 그런 것처럼, 현실도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른 제동이 걸려온 것이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다 겪어 보는군. 아니, 남북관계가 좋으니까 영화 내용을 수정하라고?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따로 가이드라인이 나온 건 없나요?”

    “별도의 건 없습니다. 가이드 치기에는 저들도 우스운 거겠죠. 대체 뭘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안 걸리는 겁니까?”

    이무석이 혀를 찼다.

    애초에 남북관계는 영화의 핵심 부분이다.

    이를 부정하면서 편집 할 수는 없는 노릇.

    몇 장면 덜어내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수정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죠. 그러면 제대로 볼 사람이 몇 명 되지도 않을 겁니다.”

    “제소 방법은 없습니까? 이런 시대에 이딴 방법으로 제한을 걸다니. 독제 국가도 이렇게는 안 합니다.”

    이무석과 진호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기껏 영화를 잘 만들어 놨는데 엄한 곳에서 암초에 걸린 것 아닌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직접 찾아가 보죠.”

    “영등위로 말입니까?”

    “네. 두 눈 보고 직접 듣고 싶네요. 대체 영화를 어떻게 바꾸자는 건지.”

    진호가 칼을 빼들었다.

    영등위라면 영화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꺼려하는 조직이지만 물러나고 싶진 않았다.

    아니, 물러날 수가 없었다.

    “바로 갑시다.”

    배우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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