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85화 (85/178)
  • Chapter38. 우리 사위가(2)

    촬영 중간, 쉬는 시간.

    진호는 준비해 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읽었다.

    내용도 길어서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될 정도였다.

    “뭐하냐?”

    그런 진호 곁으로 송학이 다가갔다.

    “선물 좀 고르게. 은서가 리스트를 보내 줬는데 좀 많아야지.”

    “이게 다 선물 리스트라고?”

    “평소에 좋아하는 걸 뽑아달라고 그랬거든. 어떤 걸 보내는 게 좋을까?”

    크게는 의류 브랜드도 있고 작게는 반건조 오징어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부 포함해서 보낸 것이다.

    “이거 가지고 찾아가게?”

    “촬영 끝나고 잠깐 시간이 될 거 같아서. 은서네 집에서 며칠 쉬고 간다니까, 사서 전해드리면 되지 않을까?”

    “아주 그냥 지극정성이네.”

    “부모님께는 잘해야지.”

    진호가 손끝으로 리스트를 하나씩 지웠다.

    과하거나 불필요한 건 제거하고 첫 선물로 적당하다 싶은 걸 골랐다.

    “어. 괜찮네. 지금 주기 딱 좋아.”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너무 부담되지도 않고, 상황에 어울리는.”

    “자식이 그래도 처음 치고는 잘하네.”

    “누가 보면 형은 베테랑인줄 알겠어?”

    “흐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선물은 내가 구해서 올까?”

    “이용권은 내가 번호만 보내면 되니까 괜찮고, 다른 두 개만 형이 좀 사다 줘.”

    “오냐. 매니저 역할이 뭐겠냐. 우리 배우님 연애도 커버하는 거지.”

    송학이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인 뒤 촬영장을 떠났다.

    필요한 두 가지는 꽤나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었다.

    #

    “오빠?”

    조금은 늦은 저녁.

    은서는 집으로 찾아온 진호의 모습에 놀란 얼굴을 했다.

    “미안. 너무 늦었지?”

    “올 거면 온다고 말을 하지.”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괜히 말했다가 실망할까봐 그랬지. 안에 어머님도 계셔?”

    “없으면 뭐하려고?”

    안방에서 은서 어머니가 걸어 나왔다.

    어떻게 말은 편하게 하고 있었지만 태도는 썩 편하지 않았다.

    진호가 허리를 크게 숙이며 인사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어머니.”

    “알면 자중해야지. 다 큰 사람이 그러면 되나?”

    “그게, 오늘이 아니면 또 시간이 어려울 것 같아서요.”

    진호가 뒤로 감춰 두었던 선물을 내밀었다.

    “어머. 이게 뭐야? 식기들이네?”

    “은서가 어머님이 올라오셨는데 식기가 없어서 가지고 온 반찬을 제대로 목 먹었다고 했거든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올라와 계신 동안 편히 드시라고 몇 개 샀습니다.”

    “그래? 우리 은서가 몰래 팁을 줬나 보네?”

    “팁이랄 게 있습니까. 은서 어머니면 제 어머니와도 같은데요. 모녀가 도란도란 모여서 집 밥 먹는 게 외식보다 좋지 않겠습니까.”

    “······말은 잘하네.”

    퉁명스러운 대꾸지만 표정은 썩 괜찮았다.

    안 그래도 반찬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는데 제대로 못 먹은 게 걸렸던 차였다.

    식기들도 썩 고급 져 보이고 마음에는 들었다.

    “그리고 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또? 이번에는 무슨 벽장이라도 가지고 왔나?”

    “하하. 그렇게 거창 한 건 아니고······그냥 오신 김에 피로나 좀 풀고 가셨으면 해서요.”

    진호가 미리 준비해둔 이용권을 은서에게 보냈다.

    동반 1인 스파 이용권이었다.

    집에서도 가깝고 일주일 내라면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었다.

    “엄마, 엄마. 스파야. 잘 됐다. 안 그래도 엄마 피곤하다고 했잖아. 여기 가서 피로 좀 풀자.”

    “어······스파? 좋네. 스파는 한 번 가고 싶었는데.”

    “다음에는 아버님 것까지 해서 제가 넉넉하게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올라온 김에 은서랑 오붓하게 보내시죠.”

    “큼. 흠. 진호가. 은서 남자친구가 센스는 좀 있네.”

    은서 어머니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어줍지 않게 꽃다발에 보석 따위로 환심을 사려 했다면 그대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물은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적어도 노력은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지고 오냐고 고생했을 텐데 와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게.”

    “네, 어머님.”

    웃는 건 은서였다.

    #

    진호는 틈 날 때마다 방문했다.

    얼굴 도장을 찍고 마음에 들어 할 만 한 선물을 골라서 공세를 이어갔다.

    “어머나. 심연자 선생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영광이다, 얘.”

    “마음에 들어요?”

    “들다마다. 이 엄마가 심연자 선생님 오랜 팬이잖아. 언제고 한 번 만나야지, 만나야지 말만 했지 어디 뭐 엄두를 냈니?”

    “헤헤. 마음에 들어 한다니 다행이다. 근데, 엄마. 이 티켓 진호 오빠가 구해 준 거야.”

    심연자 데뷔 30주년 콘서트 티켓.

    은서에게서 은서 어머니가 심연자의 오랜 팬이라는 정보를 획득하고 공을 들여서 얻어냈다.

    들인 돈도 돈이지만 그동안 쌓았던 인맥을 정말로 총동원해서 얻어 낸 결과물이었다.

    “세상에. 진호가 그렇게 능력이 좋아? 심연자 선생님 공연 티켓은 진짜 구하기 어려운 건데.”

    “오빠가 진짜 어렵게 구한 거야. 선생님이 특별 티켓 배부를 잘 안 하는 성격이라서 고생 엄청 했어.”

    “알지. 내가 그래서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 거 아니냐. 그렇다고 선생님 팬인데 암표를 구하기도 그렇고.”

    워낙 깐깐한 성격으로 유명한 심연자다.

    암표로 입장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서 콘서트 블랙리스트로 올린다.

    “어휴, 참. 보면 그래도 진호가 참 노력을 많이 해. 요즘에는 떴다 싶으면 어깨에 힘만 주는 사람이 가득한데. 성실하고 정직하고. 바른 청년이란 말이야.”

    “그럼. 오빠가 세미라고 힘든 처지에 있던 애 도와준 이야기는 알아?”

    “세미가 그 네 아역으로 나왔던 애 아니니?”

    “와. 엄마 그런 것도 다 알고 있었어?”

    “네 모니터는 꾸준하게 하니까. 아역이래서 눈 여겨 봤지. 진호랑 회사도 같던데.”

    “그러니까 그 이야기가 기가 막힌다는 거야.”

    은서는 진호 자랑을 한 보따리 풀어 놓았다.

    어떻게 세미를 만났고 그녀를 도와주었는지.

    그것도 단순한 동정에서 끝나지 않고 일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눈을 반짝이며 늘어놓았다.

    “사람이 생각이 깊네. 깊어. 그래야지. 대충, 뭐 하다만 동정만큼 나쁜 것도 없어요.”

    “그치? 우리 오빠가 그렇게 진국이라고.”

    “하이고. 아주 그냥 진호 칭찬이라면 헤벌레 해서는. 엄마 아빠 칭찬을 그렇게 해 봐라.”

    “왜에에. 내가 엄마 아빠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진호 오빠도 엄마가 참 생각 깊고 날 많이 아낀다고 칭찬했는걸.”

    “그랬어?”

    “그럼. 화가 나도 험한 소리 하나 안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완전 귀부인. 그거라고 했다니까?”

    “흠. 흠. 그래도 진호가 사람 볼 줄은 아네.”

    코 평수가 넓어지는 것이 진짜로 기쁜 모습이다.

    은서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엄마, 엄마. 공연 시작한다.”

    성은 곧 함락 직전이었다.

    #

    며칠 뒤 은서 어머니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마지막까지 ‘사위 잘 부탁하네.’라고 못 박은 건 아니지만 처음에 비하면 일취월장이었다.

    일단 눈빛부터 달랐다.

    저런 도둑놈 새끼, 라는 눈빛에서 ‘좋은 청년일세.’라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가기 전날에는 따로 초대를 해서 다 같이 식사도 했다.

    “그래서 그냥 왔다고? 아이고, 이 여편네야.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더니 은서의 아버지가 에둘러 불만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혼자서 즐기다 온 와이프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럼 진호가 주라고 맡겨 둔 거 필요 없겠네?”

    “어? 뭐 또 선물 같은 거 준 거야?”

    “나만 챙긴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따로 주더라고. 참, 생각이 깊어. 요즘 애들 같지 않고.”

    “뭔데? 뭘 사온 건데? 한 번 보자고.”

    남편의 채근에 은서 어머니가 짐을 풀었다.

    전날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가 불쑥 내민 선물이라 거절 할 수도 없었다.

    “어이구, 이게 뭐여? 담금주네?”

    “석 뭐더라. 석 주······뭐시긴가 하는 명인이 담근 술이래. 지리산의 정기를 담았다나.”

    “석주봉 선생님? 우리 주봉 선생님이 담근 술이라고? 진짜여?”

    “꼴에 명품이라고 보증서도 있더라. 봐봐.”

    잘 포장된 술 안쪽으로 보증서가 있었다.

    석주봉 이름 석 자가 딱 박힌.

    은서 아버지는 이름을 확인 하자마자 대뜸 만세를 불렀다.

    “으하하. 내가 죽기 전에 주봉 선생님의 술을 다 마시는구만.”

    “아이고, 아주 그냥 술이라면 환장을 해요. 자, 이거도 받아. 술 마실 때 쓰라고 주더라.”

    “옥배? 와. 이것도 꽤 비싸 보이는데.”

    “비싼 건 모르겠고, 좋은 술에는 좋은 잔이라고 하더라. 여기에 한 잔씩 담아서 아껴서 마시래. 괜히 흥분해서 막 퍼서 마시면 건강 상한다고.”

    “암. 암. 그래야지. 좋은 술은 아껴서 먹는 거라고. 으허허허. 우리 사위가 생각이 참 깊어?”

    “언제 봤다고 사위래?”

    코웃음 치는 은서 어머니였지만 아주 부정은 안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서울에 머무는 내내 정성을 다했던 진호다.

    사람이 한결같으면 밑 빠진 일은 안 한다고, 불합격 줄 인물은 아니었다.

    “이거 참. 좋긴 한데 계속 받기만 하니까 좀 그러네. 우리도 그 친구 초대를 해서 대접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도 생각은 해 봤는데, 아직 애들이 젊잖아. 괜히 다 늙은 우리가 나서서 그러면 부담만 심할 거라고. 적당 할 때 서울 올라가서 밥이나 한 끼 하자.”

    “음. 그게 낫겠네. 맞아. 애들 연애에 괜히 부모가 끼면 복잡해지는 거라고.”

    “하이고. 언제는 올라가서 멱살을 잡아 주겠다고 엄포를 놓더니만.”

    “으하하. 그때야 우리 사위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몰랐으니까 그렇지.”

    껄껄 거리는 남편의 모습에 은서 어머니도 픽 웃었다.

    “것보다 은서 아빠. 이것 좀 봐봐. 어울려? 백화점에서 진호가 골라 준 건데.”

    자기 얼굴도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히히히. 아빠가 선물 마음에 든데. 고맙다고 전해 달라네.”

    은서가 웃으며 문자 내용을 진호에게 보여주었다.

    이모티콘까지 써가며 마음을 드러낸 문자였다.

    “휴우. 한 시름 덜었네. 두 분 다 이제 반대는 안 하는 거겠지?”

    “반대를 하겠어? 그렇게 좋아해놓고선.”

    “다행이네. 이래도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어쩌나 했거든.”

    “흐흐.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오빠 싫어 할 사람 없다고.”

    은서가 진호 목에 팔을 두르고 웃었다.

    어머니가 올라와 있는 내내 진호가 보인 정성은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았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남자친구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럼, 오빠. 이제 오빠네 부모님 선물 사러 가자.”

    “응?”

    “오빠네 부모님도 알고 있다면서. 그럼 나도 선물사서 인사를 가는 게 인지상정이지.”

    “아니, 딱히 그럴 필요까지는······”

    “뭘 그럴 필요야. 당연히 해야지. 우리 엄마 아빠만 챙길 생각이야?”

    진호가 입만 뻥긋거렸다.

    급한 불을 끈다고 은서네 부모님만 생각했지, 정작 자신의 부모님은 고려하지 못했다.

    “봐봐. 이러니까 싸우는 거라고. 한 집에 했으면 다른 집도 해야지. 이제 엄마랑 아빠 돌아갔으니까, 내가 진호 오빠 부모님 챙길게.”

    “어······”

    “난 지금 작품 들어가는 것도 없잖아. 스케줄 조절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직접 가려고?”

    “그렇게 멀지도 않구만. 가서 한 이틀 쉬다가 오지 뭐. 오빠 어머니랑 아버지는 뭘 좋아 하나?”

    멍하니 있는 진호의 옆구리를 은서가 쿡 찔렀다.

    그제야 간장게장이니, 감자전이니 술술 쏟아져 나왔다.

    은서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어 하나하나를 노트에 적었다.

    “어머니 스카프 좋아하시려나?”

    이미 부창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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