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81화 (81/178)

Chapter36. 고집(2)

영화 촬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초기에 보이던 삐걱거림도 많이 사라졌다.

무명 감독의 어거지 같던 요구도 이제는 많이 이해하는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씬이 완성되었을 때 보인 장면의 퀄리티가 굉장히 빼어났기 때문이다.

이무석은 의미 없이 요구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요구는 장면에 꼭 필요한 사항이었고 이를 전체 틀에서 이미 완성하고 있었다.

이걸 보통 사람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

“잠깐만요, 감독님. 도주하던 주인공이 갑자기 여유를 부리는 건 어색하지 않을까요?”

“여유가 아닙니다. 침착함이죠. 주인공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그래도 여유가 과해요. 아무리 특별한 재능의 국정원 직원이라고 해도 이 상황이면 당황하지 않을까요?”

“전 생각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촬영이 완벽한 합치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매 씬마다 충돌했다.

의견 대립을 아끼지 않고 생각을 피력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권위를 인정하되 굴종하여 끌려가면 안 된다.

적어도 진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호 씨도 보면 과해. 그냥 감독 말대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게. 실력은 확실히 있는 감독 같은데. 아무리 배우가 급이 높아도 감독을 침해하면 안 되지.”

“스타라 그런가 보네.”

그러다보니 되레 진호를 안좋게 보는 사람도 생겼다.

감독의 역량이 찬다 싶으니, 목소리를 높이는 진호가 고깝게 보인 것이다.

“거, 뒤에서 그만 좀 수군거리지? 진호가 못 할 말 한 것도 아니고. 문제라도 있어?”

“아니, 뭐······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자꾸 딜레이 되니까 짜증나서 그렇죠.”

“얼마나 기다린다고. 연기 하면서 촬영 딜레이 되는 거 하루 이틀이냐? 그리고 시간 연장되면 수당도 챙겨 주잖아.”

이런 의견은 또 다른 의견과 충돌했다.

아무래도 배우 쪽의 급이 감독보다 높기 때문에 알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런 마찰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썩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아하. 그러니까 감독과 배우가 자주 마찰을 빚는다 이거죠?”

그리고 이런 건 좋은 기삿감이었다.

#

[배우 홍 씨와 감독의 마찰]

[어수선한 촬영장.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기사들이 하나 둘 나왔다.

대부분은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 가지 소스를 물어서 서로 돌려쓰는 것이다.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아놓으면 조회수를 긁어가는 형태.

“이거 괜찮은 건가요? 말들이 꽤 많은데.”

윤창수도 기사에 대한 건 이미 읽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 글들을 긁어 와서 보여주는 와이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통에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이 돈벌이 한다고 마음대로 기사 찍어내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신경 꺼.”

“하지만 선배. 촬영장에서 자주 다투는 건 사실이잖아요. 불화라고 숙덕거리는 사람들도 많고.”

“마, 일하다보면 의견충돌도 있고 그러는 거야. 촬영 하루 이틀하나. 그런 거 가지고 뭐라 하게.”

“걱정되니까 그렇죠. 이러다가 영화가 산으로 가는 꼴을 오죽 많이 봤어야지.”

영화가 망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재미가 없어서.

감독이든 배우든 역량이 딸려서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고 따지자면?

아마도 인간적인 요인을 가장 크게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 뭉쳐서 하는 일.

인간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분위기를 망치고 질적 하락을 불러오면 결과는 뻔하다.

배우들이 걱정하는 것도 결국 이런 부분이었다.

“쯧. 알았다. 오늘 또 그렇게 싸움이 벌어지면 내가 나서서 중재 좀 해볼게.”

“오. 선배가 나서주는 겁니까?”

“그래도 이중에는 내가 연차가 가장 높으니까.”

윤창수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말마따나 연차가 가장 높은 것도 있지만 아까웠다.

이무석 아래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올 거란 확신이 생기던 차였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엎어지는 건 막고 싶었다.

“겹치는 씬이 내일이었지?”

날짜도 마침 가까웠다.

#

이번 촬영에서도 또 충돌했다.

진호 배역인 남태선이 처음으로 퓨의 배역인 러시아 요인을 만나는 장면이었다.

진호는 남태선이 퓨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드러내길 원했고, 이무석은 기계적인 반응을 원했다.

“아무리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도 감정까지 제어하는 건 웃기지 않습니까? 여기서는 살짝 풀어진 모습이 나오는 게 어떨까요?”

“안됩니다. 남태선은 정예 요원입니다. 업무 중에 풀어지는 모습이 나올 수는 없죠.”

“이건 업무 외죠. 별도의 임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만남 아닙니까.”

“그건 남태선이 판단 할 일입니다. 그는 임무로 여겼고 그에 따른 반응을 하는 거죠.”

둘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설득하는 말이 수차례 오가고 여러 가지 절충안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쉬이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잠시 만요. 제가 몇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그 사이로 윤창수가 끼어들었다.

“얘기하세요. 좋은 의견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그것보다. 두 분이 좀 적당히 했으면 해서요.”

“어떤 점을 말입니까?”

“의견 조율도 좋고 그런데, 하루에 몇 번씩 싸우고 있으니 촬영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거 밖에서 기사로 나간 건 알죠?”

“네. 저도 봤습니다.”

“그럼 한 분이 좀 의견을 굽히던가, 적당히 타협을 해 주세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촬영을 할 겁니까?”

윤창수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주변에서 동조하는 반응이 나왔다.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입니까?”

“뭐, 좀 그렇긴 했죠. 적당히 하면 어떨까 하고.”

“저도 그래요. 좋은 장면 찍고 싶은 건 이해하는데, 하루 이틀이어야지.”

“그러게요. 촬영 딜레이되면 힘든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주변 반응은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이무석이 배우들을 쭉 눈으로 훑은 뒤 진호에게서 멈췄다.

“진호 씨는 어떤가요?”

“하아. 설마하니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기사야 읽었지만······”

“역시 의견 충돌을 좀 줄여야 한다고 보나요?”

“설마요. 더 싸워야죠. 죽을 만큼 싸우고 끝에서 짜낼 거 없을 때가 되어야 만족을 할 겁니다.”

진호의 발언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이다.

“진호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선배님. 선배님도 이무석 감독님 능력은 인정하죠?”

“······뭐. 찍다보니 실력은 있는 분 같더라.”

“그럼 욕심 같은 거 안 생기나요?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떤 장면이 최선인지. 이런 욕심.”

진호는 이무석이 싫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의견을 무조건 반대해서 싸우는 것도 아니다.

“절충하려면 절충 할 수 있죠. 이무석 감독은 충분히 좋은 분이니까 지시 내에서 연기를 뽑아내도 멋진 영화가 나올 겁니다.”

“그게 모자라다는 거냐?”

“전 그래요. 그런 배우입니다. 최선 이상의 것을 원해요. 이게 욕심이고 불편한 길임은 알지만 그렇다고 포기 할 생각은 없어요.”

“끄응.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 않냐.”

“죄송하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이기적입니다. 사이를 중재하고 좋은 말로 다독일 수도 있죠. 분위기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연기 자체를 위해서는 그럴 수 없어요.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연기로 필름을 채우고 싶지 않아요.”

이무석과 촬영을 하면서 그 생각은 확고해졌다.

스스로가 어떤 배우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

끝없이 갈망하고 싸우는 배우였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의 불편함에 긍정 할 수 없었다.

“만약 그 불편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촬영을 거부하면 어쩔 거냐?”

“또 한 번 죄송합니다. 그 정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저도 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

윤창수가 발끈해서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자신을 보는 진호의 눈에서는 한 점의 흔들림이 없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생각에 확신이 있는 거였다.

떠밀려 나온 자신과는 다르게.

“제 사과로 마음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사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포기하라고 하신다면 그럴 수 없어요.”

“그러다가 영화가 망할 수도 있는 거 알고 있냐?”

“최선을 다하고 망하면 차라리 웃을 겁니다.”

“허, 참. 너도 어지간히 고집이 세다. 이무석 감독님도 진호랑 같은 생각입니까?”

“어쩌다보니 비슷한 사람 둘이서 만났네요. 제가 감독인 이상 방식의 변화는 없을 겁니다.”

못 박는 소리에 윤창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래서야 더 강하게 나가기가 힘들었다.

[지금 무슨 분위기죠?]

그때, 트레일러에서 쉬고 있던 퓨가 나왔다.

말은 이해 못해도 분위기는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인 통역사가 쪼르르 달려가서는 상황을 설명했다.

[세상에. 고작 그런 일로 싸우고 있었던 건가요? 여러분은 영화를 만들려고 온 것이 아니었나요?]

이 말도 통역사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때 아닌 외국인의 일침에 배우들이 움찔했다.

[최고를 위해서는 담금질이 필요하죠. 더 나은 걸 위해서라면 전 멱살잡이라도 할 겁니다. 조금 편하기 위해서 이런 걸 피하겠다는 건가요?]

외국 배우가, 그것도 명성 높은 배우가 말하니까 설득력이 강했다.

윤창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얼굴이 묘해졌다.

[진호. 고작 이런 사람들과 일하려고 절 부른 건가요?]

[퓨. 걱정 마요. 이분들은 그저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라면 부족함이 없어요]

[정말로 그럴까요?]

[그럼요. 지금 이 상황도 최고를 위한 다툼이니까요]

[아. 당신 설마?]

[말로 설득하기보다 한 번 크게 터뜨리는 쪽이 낫죠]

진호의 가벼운 웃음에 퓨가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손을 휘휘 저으며 통역하지 말라고 말렸다.

이 연극의 끝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꼴이 우습게 됐네요.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갑시다. 더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세요.”

판을 벌리고 장작을 쑤셔 넣었다.

타오르는 불꽃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

어느 연예 매거진에서 이무석과 인터뷰를 했다.

촬영장에서 잡음이 많이 들려오는데 괜찮은 거냐고.

이에 이무석은 아주 짧은 말로 답변했다.

‘우리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라고.

사람들은 이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감독이니 잡음을 죽이기 위해서 그냥 둘러댄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단역으로 모든 분량을 다 소화한 배우와 우연치 않게 인터뷰를 했을 때.

사람은 혼란스러워했다.

“엄청 싸워요. 의견 충돌도 많고 촬영 자체가 멈추는 일도 허다해요. 근데, 그럴 때마다 최고의 결과를 뽑아냈어요. 싸우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도 있거든요.”

그냥 입 발린 소리일 뿐인가?

단역에 불과한 배우가 굳이 그럴 이유는 없다.

그럼 진짜로 영화 촬영이 잘 되는 건가?

매일같이 싸우는데?

“죽어라 싸우죠.”

“싸우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요.”

“이젠 무난하게 지나가면 이상할 정도에요.”

“싸우면서 찍는 거죠.”

하지만 그 소리가 한 두 명이 아니게 됐을 때.

사람들은 그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촬영장에서 들려오는 잡음이 나쁜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무석의 발언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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