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78화 (78/178)

Chapter35. 배우의 종류(1)

오디션 합격 이후로 영화 제작이 탄력을 받았다.

이무석은 주연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의 리스트를 뽑아서 작업에 들어갔다.

대부분이 무명의 배우였다.

어째서 이들이냐, 진호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겉멋이 안 들어있는 배우들로 추렸습니다.”

흔히 말하는 쿠세가 없는 것이다.

그래야 감독의 지시에 잘 따르고 색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다.

이건 상업적인 면은 완전히 배제한 캐스팅이었다.

“이런 캐스팅 보드로는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힘들어. 좀 더 이름 있는 배우를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제 나름대로 계획이 있습니다.”

박종찬이 현실적인 문제로 설득을 해 보았으나 완강했다.

“플랜은 짜 두었습니다. 이미 영화 양식을 추려서 뿌려 두었으니 투자자가 모이기를 기다리면 되겠죠.”

“양식이라고? 한 번 볼 수 있을까?”

“이겁니다.”

이무석이 보여준 영화 양식은 대학교 리포트 수준.

투자자의 구미를 당길 만 한 매력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영화의 재능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이무석은 그다지 신뢰 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나마 박종찬이 연결해준 회사가 메인투자자가 돼 준 덕분에 영화 제작이 굴러갔을 뿐이다.

“이무석 감독님. 괜찮다면 투자 관련해서 제가 좀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진호 씨가 말입니까?”

“네. 영화를 하면서 이래저래 알아 둔 인맥도 있는 편이고······가능하면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으음. 배우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건······”

“전 괜찮습니다.”

이무석은 망설였지만 진호가 강경하게 요구했다.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지만 이 상태로 가다가는 영화가 중간에 전복 될 위기였다.

게다가.

“해보고 싶던 일이거든요.”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

진호는 광고회사 출신이다.

그것도 내부적으로 탑급 수준의 실적을 올리던 에이스다.

제품의 매력을 어필하고 소비 충동을 자극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트렌디한 형태를 취하는 건 나름의 기술이었다.

“반응이 좋구만.”

시나리오를 부각시키며 주연으로 자신의 이름을 박았다. 이미 많은 투자를 받은 듯한 부풀리기는 기본. 당신이 투자를 하면 몇 배의 이득을 얻을 거라는 은근한 말투는 기술이었다.

혹한 회사가 여럿이었다.

“우리, 기본 제작비 얼마로 맞춰져 있죠?”

“80억입니다. 영신 미디어에서 40억을 투자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충당 중입니다.”

“80억이라. 너무 적지 않나요?”

“······부족하지만 저도 현실은 알고 있습니다.”

이무석도 현실적은 제약점은 알고 있었다.

80억이라는 금액은 아마 그가 타협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이었을 것이다.

“만약 영화에 제가 투자를 하면 어떨까요?”

“네? 진호 씨가 직접 말인가요?”

“네. 시나리오는 마음에 드는데 제작비가 부족해서 연출이 안 되면 그만큼 아쉬운 것도 없을 거 같아서요.”

지난 영화로 돈 꽤나 번 진호다.

넉넉잡아 150억 정도는 투자 가능할 정도로 지갑이 두꺼워졌다.

“으음. 배우가 영화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알력이 신경 쓰이나요?”

“보통은 지분 문제로 많이 다투니까요.”

“감독님이 그런 문제로 꺾일 사람 같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절 설득 할 자신이 없어요?”

“보통 이럴 때는 감독 말에 충실하게 따른다고 약속하지 않습니까?”

“전 그런 타입이 아니라서.”

진호는 감독을 충실히 따르는 타입이 아니다.

의견이 상충하면 다투고 적극적으로 개선 방향을 내어 놓는 타입의 배우.

감독 마음 편하라고 입 발린 소리 할 생각은 없다.

“······상관없겠죠. 어차피 제 영화입니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직접 진호 씨를 설득해 드리죠.”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투자를 하겠죠.”

“대체 얼마나 투자를 할 생각입니까?”

“그건 감독님께 물어봐야죠. 얼마나 필요합니까?”

반문하는 진호의 모습에 이무석이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회복하고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영화의 최고선을 말했다.

현실에 타협했을 뿐 고점은 몇 번이나 상상하곤 했었다.

“필요한 건 300억. 그 돈이면 최고로 뽑아 낼 수 있습니다.”

“300억이라. 생각보다 많네요. 그래도 어찌하면 가능 할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절반을 감당하면.”

“절반이라고 했습니까?”

“네. 150억을 투자할게요.”

이번만큼은 이무석도 평온하지 못했다.

진호가 지난 영화로 돈을 쓸어 담았다는 건 익히 안다.

하지만 150억이 뉘집 애 이름인가.

평생을 가도 못 만져 볼 거금이다.

그걸 대뜸 투자하겠다니.

“자신 있죠? 내 돈 날리지 않을 자신.”

“······진호 씨도 나만큼 괴짜군요.”

“하하. 그걸 이제 안 겁니까?”

미친 사람이다.

자신 만큼. 아니 자신보다 더.

그렇기에 마음에 든다.

“돈방석에 앉게 해 드리죠.”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걸 돈으로 답했다.

#

당연한 얘기지만 투자자들은 대상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돈을 건다.

이무석의 영화는 사실상 그런 점에서는 약하다.

무명의 감독과 진호를 제외한 무게감 없는 배우들.

투자를 결정지은 영신 미디어 쪽이 이상할 정도였다.

“배우가 150억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러면 경우가 다르다.

자비를 투자하는 배우라면 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의미.

가능성이 보인다는 말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언론에 흘린 거죠?”

“미리미리 이목을 끌어 두는 거지.”

“반응은 어때요?”

“반반. 그래도 널 믿고 응원하는 사람 쪽이 많아. 업계에서도 긴가민가하는 쪽에서 긍정적인 평가 쪽이 더 많아지고 있어.”

게다가 그 투자자가 스타배우다.

그것도 국내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흥행작의 배우.

액수에 대한 건 둘째 치더라도 안목에 대해서 흥미가 동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단순하게 말해서 이런 것.

‘그래도 할리우드 물 먹고 온 사람이면 다르지 않겠는가.’

어떤 근거도 되지 않지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영진 미디어와 AJ그룹에서 손을 잡았다던 얘기가 있더라.”

“AJ쪽이랑은 사이가 썩 좋지 않은데.”

“뭐, 개인 관계와 사업은 별개라는 거지. 그래도 국내에서는 그쪽이 배급을 꽉 잡고 있잖아.”

남일수와의 관계 때문에 데면데면한 AJ그룹이지만 영화판에서 놀자면 무시 할 수는 없다.

영진 미디어와 손을 잡고 배급에 관여하는 거라면 관 수는 확도 되었다고 봐도 좋다.

“쓸데없이 영화에 개입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크게 걱정 할 필요는 없지. 어찌 됐든 영화 최대 투자자는 너니까. 역시 사람은 돈 좀 있고 봐야 하나 보네.”

“그럼 형이 말해서 우리 회사도 좀 투자하라고 해 봐요.”

“아서라. 2사옥 확장에 시설 보강으로 회사에 돈 없어. 네가 이번에 벌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송학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최현석은 꽤나 아까워했다.

가능했다면 아마 회사를 담보로 투자했을지도 모른다.

“걱정 마요. 이번에도 왕창 벌 거 같으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최현석은 더욱 아까워했지만.

어쨌든 영화는 차곡차곡 구색을 맞춰갔다.

#

영화의 사전 준비가 끝나가며 배우 오디션도 추가로 진행되었다.

주인공인 진호를 보조해 줄 조연들이었다.

감독인 이무석이 추려 두었던 연기자 중 응답한 숫자는 전체의 3할 정도였다.

의외로 적은 숫자였다.

어째서냐고 묻자, 박종찬이 답을 대신해 주었다.

“무석이 평판이 썩 좋은 게 아니라서.”

배우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쥐어짜고 쥐어짜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도 여럿.

애초에 투자자들하고도 싸우는 사람이니 배우라고 안 그러는 게 되레 이상했다.

“다른 배역은 모르겠지만 여기 차주연 씨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이 배역의 무게감이 떨어지면 저도 힘을 잃어요.”

작중 차주연은 주인공인 진호를 사건으로 끌고 들어가는 인물.

신비롭고 매혹적인 캐릭터로 구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 도입부에서 힘이 빠지고 전체 흐름도 약해진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배우라도 있냐?”

“음. 현재 배우들 중에서는 하명희 선배님이나 배소연 씨 정도? 카리스마가 있고 연기력이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니까요.”

“아. 그 둘은 이미 내가 추천을 했었다.”

“추천을 했어요? 그럼 감독님이 거절했다는 의미?”

“응. 작품 느낌하고 안 맞는다고.”

지금 진호가 거론한 두 배우 모두 영화판에서는 S급이다. 나이도 절정기고 연기력도 탑티어. 이보다 나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럼 감독님이 원하고 있는 배우는 누구인데요?”

“한국에서는 윤시아 씨. 외국에서는 플로렌 퓨.”

“플로렌 퓨? 외국 배우도 섭외하려 했어요?”

“캐릭터를 보면 굳이 한국인일 필요는 없잖아. 차라리 외국인이 더 느낌 있고. 뭐, 그래봐야 답메일도 안 왔지만.”

애초에 한국의 무명 감독이 보낸 메일에 답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

구석 시나리오를 꺼내서 연락한 진호가 이상한 것.

“윤시아씨는 왜 거절했대요?”

“이미 촬영이 잡혀 있어서.”

“후. 곤란한데. 다른 배역은 몰라도······”

진호가 끙끙거리며 골머리를 앓았다.

보통의 배우라면 이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배우이며 동시에 투자자.

전체적인 면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제가 한 번 연락을 해 볼게요.”

“응? 누구한테?”

“플로렌 퓨요. 벨로스 감독님이나 빌 쪽에서 인맥이 있을지도 모르고. 한 번 연락을 해 보려고요.”

“······그렇지. 너 유명 인사들하고 인맥이 있었지.”

박종찬이 새삼스럽게 진호를 봤다.

국내 연기자나 감독 입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선택지가 그에게는 있었다.

“빌한테 카메오 한 번 나와 달라고 할까요?”

전과 다른 사람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

다행히도 빌 고튼이 퓨와 인연이 있었다.

같이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상당하다고 했다.

진호는 빌을 통해서 퓨와 접촉했다.

당장 출연하겠다, 라는 답을 들은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를 검토해 보겠다는 약속까지는 받아냈다.

적어도 메일부터 무시당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생겼다고요?”

문제는 다른 부분.

송학이 물어온 내부 정보였다.

“그래픽 작업을 해 줄 팀이 없다네. 사전에 접촉해 둔 팀이 다른 작업에 들어갔다는 거야.”

“아니, 우리랑 약속되어 있던 거 아니에요?”

“페이따라 가는 거지.”

“에라이. 우리가 더 부르지 그랬어요?”

“이 감독님께서 또 한 바탕 싸웠단다.”

“······아이고. 그 양반도 참.”

영화촬영에는 많은 인원이 투입된다.

촬영, 소품, 액션 보조, 관리, 후처리 등.

인원도 인원이고 각 팀마다 세부적으로 다루는 것이 다르다.

그만큼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하는 것도 나름의 일이었다.

“따로 만나서 한 마디 해야겠네요. 감독이 이렇게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그래, 그래. 네가 한 마디 해라. 사람이 꼬장꼬장해서인지 다들 어려워하더라고.”

“쯧. 그래서 팀은 어떻게 한대요? 구할 방법은 있는 거죠?”

“글쎄. 다른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하. 진짜.”

어차피 그래픽 작업은 후에 들어가는 거니 아직 여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번 왕호룽 쪽에 연락해 볼게요.”

할 일 많은 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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