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75화 (75/178)

Chapter34. 오디션(1)

진호는 휴가 기간을 다 털어서 고아원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방문하는 장소마다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연극도 있었고, 장기자랑도 있었고, 소풍가는 영상도 있었다.

고아원, 이라는 이름 때문에 터부시 되던 걸 액면 그대로 보여주었다.

반응은 꽤 좋았다.

구독자도 늘고 개별 후원도 눈에 띠게 늘었다.

게다가 이런 행보에 영감을 받았는지 다른 연예인들도 동참해 주었다.

일종의 릴레이 첼린지.

유행처럼 잠시 반짝하는 거라 해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중에 연예인 할 거에요! 형처럼 배우 할래요!”

“나도, 나도! 진호 형처럼 되고 싶어요!”

아이들도 알게 된 것이다.

자신들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환영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작게나마 아이들에게 희망을 품게 했다.

“네. 주기적으로 연락하면 좋을 거 같아요. 필요하면 영상 찍는 것도 도와주고. 2사옥에 올 애들도 연기 연습 겸 해서 방문훈련 하면 좋잖아요.”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자 이거지?”

“제가 너무 과하게 일을 벌이는 건가요?”

휴가의 끝자락에서 진호는 최현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연예인이라면 판이 좀 크지. 회사도 저런 걸 전부 관리하기 부담스러워 할 테고.”

“보통이 아니면요?”

“하고 싶은 걸 할 역량이 있으면 돼. 사람이 없으면 고용하면 되고. 꾸준하게 연락하면서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되는 거지.”

“많이 벌라 이거군요.”

“그 정도 역량이 없으면 하지 말라는 거야.”

역량이란 무엇일까.

돈이 많으면 전부?

진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끝까지 할게요. 중간에 포기하는 일 없이. 그리고 돈도 왕창 벌어오죠. 이러면 될까요?”

“지치지 않고, 연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일을 누가 마다할까.”

“대표님은 많이 귀찮으실 텐데.”

“하하. 그러라고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니더냐.”

어중간하지 않은 마음.

시작한 일을 끝까지 이어 갈 의지.

그리고 이를 도와 줄 주변 사람들까지.

진호는 자신에게 충분한 역량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럼 이제 휴가는 끝이네요.”

“음. 일해야지.”

휴가의 마지막이었다.

#

쉬는 동안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와 있었다.

국적 불문, 장르 불문.

스타 반열에 오른 진호를 원하는 감독은 많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진호는 신중했다.

좋은 배우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눈 또한 지녀야 했으니까.

“이건 어때? 미국 AC 필름에서 보내온 시나리오야. 감독은 아직 미정인데 투자 규모가 상당 할 거라고 하더라.”

“감독미정은 좀 그래요. 투자금이 많아도.”

“그럼 이쪽은? 필립 칸 감독의 작품인데. 널 꼭 주인공으로 삼고 싶다더라.”

“흐음. 시나리오를 읽어보기는 했는데, 썩 와 닿지가 않아요.”

거르고 거르고 거르고.

수십, 수백의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검토했다.

작품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는가, 이야기의 짜임새는 어떤가.

고려해야 할 건 산만큼 많았다.

“······응? 이건 어디서 보내 온 거죠?”

그렇게 시나리오의 산을 헤집기를 며칠.

진호는 어딘가 독특한 색의 시나리오를 하나 발견했다.

몇 장 넘기지 않았음에도 강렬하게 잡아끄는 면이 있었다.

“아. 까만 색 테그인가?”

“네.”

“그럼 신인 감독일 거야. 내 기억이 맞으면 아마 투자가 무산되어서 공중에 붕 뜬 작품으로 알아.”

“투자가 무산돼요? 시나리오만 봐서는 제법 매력이 있는 거 같은데.”

“그게 감독이 좀 꼴통이라나 봐.”

최현석이 진호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말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더 있었다.

“투자자 설명회에서 대판 싸우고 엎었다나? 투자자들이 원하는 배우도 싹 다 무시하고 입맛대로 고르다가 마찰이 생기고. 하여튼 별종도 이런 별종이 없다고 하더라.”

“작품은 어떤 대요? 출품작은 있죠?”

“뭐, 실험 영화 몇 편 하고 대학 때 만들었던 작품 몇 개 있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시나리오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

“흥미가 동해서요.”

시나리오 자체도 흥미롭지만 주석으로 달아 둔 설명이 더 이목을 끌었다.

일종의 카메라 워킹과 촬영 방식을 디테일하게 구술해 놓은 것이었다.

고아원 아이들을 촬영하면서 촬영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진호의 눈에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아. 여기 있네.”

그 사이 최현석이 전작들을 찾아냈다.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된 영상들이었다.

“대표님, 팝콘 드실래요?”

영화 관람의 필수품이다.

#

진호는 앉은 자리에서 전작을 모조리 봤다.

싸구려 카메라의 질 낮은 화면임에도 눈도 안 떼고 봤다.

영상에는 매력이 있었다.

감독 특유의 느낌이 확실하게 실려 있었다.

물론,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과한 구석도 있고, 연출이 엉망인 장면도 더러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날 것 같은 매력이 존재했다.

무미건조하게 잘 꾸며놓은 기성품보다 들쭉날쭉하지만 제작자의 감성이 풍부하게 담긴 수제품이었다.

진호는 이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시나리오대로라면 연출을 이런 방식으로 할 테고. 장면 전환은 이렇게? 음. 특수 효과를 추가하면 좋을 거 같고.”

진호는 시나리오를 다시 살폈다.

전작을 모두 섭렵하고 오니 색다르게 보이는 장면이 많았다.

완성된 작품이 눈에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걸어가는 주인공과 주변에서 도는 카메라, 터지는 폭약, 고함치는 주변 사람들.

글자들이 영상이 되고, 영상이 영화가 되었다.

“대표님, 대표님. 일어나 봐요.”

“우, 우으으음? 뭐야. 영화 다 끝난 거냐?”

세 편 정도에서 골아 떨어졌던 최현석이 일어났다.

“이거. 시나리오 보낸 분하고 연락 될까요?”

“그쪽에 출연하려고?”

“일단 얘기 좀 해 보고요. 잘 맞으면 한 번 촬영해 보고 싶어요. 이 감독이 그려내는 이야기에 제가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지 궁금하네요.”

“허 참. 유명한 감독들 시나리오는 싹 다 무시하고?”

“안 될까요?”

“아니. 안 될 건 없지. 배우가 원하면 하는 거지. 내가 번호 찾아서 연락 넣어두마. 기다리고 있어.”

최현석이 잠을 쫓아내며 답했다.

회사의 모토가 무엇인가.

배우는 연기를, 이다.

원하는 작품이 있으면 그걸 서포트 하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었다.

“아. 근데 이름이 뭐였지?”

“이무석이요.”

“그래. 그래, 이무석.”

최현석이 일하기 시작했다.

#

이무석은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연극판을 떠돌며 단편을 찍던 시절까지 전부 포함해서.

괴짜 감독.

독특한 연출과 참신한 시나리오 등으로 타인에게 인정을 받지만 개차반인 성격과 까다로운 조건 등으로 무시도 많이 당했다.

한 때 재능을 살려보겠다고 돈을 들고 달려간 투자자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제풀에 지쳐 떨어졌다.

동종업계 동료들도 비슷한 실정.

재능이 아까워서 어르고 달래 보지만 마땅하게 그를 메이저로 끌고나간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사람이 꼬장꼬장하고 까다로웠다.

“오디션? 오디션을 보라고?”

최현석은 한 통의 전화를 마치고 어이없는 듯 중얼거렸다.

“이무석 감독님하고 통화하신 거예요?”

“허. 참. 별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왜요? 뭐라는 대요?”

“너보고 오디션을 보란다. 자기 작품에 출연하려면 오디션 보고 연기 점검을 해 봐야 한다는 거야. 기가차서.”

진호는 이미 리옹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월드 와이드 1억 달러를 넘은 히트작으로 흥행성도 인정받았고.

무명의 감독이 오디션으로 부를 급이 아니었다.

최현석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쌍욕으로 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내용은 없어요?”

“없어. 일단 오디션부터 보래. 합격해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본다고.”

“꽤나 독특한 사람이네요.”

“이건 독특한 게 아니야. 무식한 거지. 세상 천지에 무명 감독이 스타 배우를 오디션으로 부르는 경우가 어디에 있냐?”

현장에서는 감독이 갑의 위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급이 될 때의 이야기다.

진호와 신인 감독을 놓고 보자면 확실히 무게추가 배우 쪽으로 기운다.

“오디션 주제는 뭐래요? 자유?”

“너 하려고?”

“합격을 해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잖아요. 이왕 마음먹은 거 맛은 봐야죠.”

“사람들이 우습게 볼 텐데······”

“제가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인가요?”

“허. 그래, 그래. 하자. 연락해서 오디션 날짜 받아 놓을 테니까 준비나 해 둬.”

최현석이 다시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네. 조금 전에 전화한 사람입니다. 오디션. 그거 해 보죠. 어디서 언제입니까?”

테이블 귀퉁이 포스트잇에 끄적끄적.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자유’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

오디션 주제는 자유.

말 그대로 자유롭게 연기해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얼핏 편해 보이지만 이쪽이 더 어렵다.

차라리 주제를 주고 한정적인 연기를 요구하는 쪽이 연습을 하는 것도 쉽다.

“자유연기라.”

진호는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능력인 전생체험은 특정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빚어내는 것.

지금처럼 자유주제에서는 붕 뜨는 경향이 있다.

‘내가 그냥 상황을 정하면 되긴 하지만······’

그 또한 결정이 쉽진 않았다.

“어떤 연기를 해야 만족을 할까.”

괴짜 감독이다.

어중간한 연기를 가지고 만족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눈이 번뜩 뜨일 만 한 연기를 가지고 가야 괴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별자리의 전생 중 가장 치열한 걸 찾아보자.’

아예 눈을 감고 착석했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길이 이어졌다.

전생과 전생을 잇는 별자리였다.

조조, 제갈량, 조운, 주왕, 악공······

한 번씩 인생을 경험했던 이들이 스쳐갔다.

이들 역시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인생의 굴곡은 파도처럼 굽이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선택 할 수는 없었다.

“누가 더 치열한가.”

과연 그런 걸 산술적으로 셈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나 인생은 주관적이다.

전부 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인생이 가장 치열 할 수밖에 없다.

어느 것을 연기해도 그것은 마찬가지.

애초에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비장의 연기라는 건 그렇게 딱 잘라서 집어 올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내게 있어서 보여주고 싶은 연기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졌다.

좌우로 몸을 까닥이며 사고의 바다를 유영했다.

별들이 깜빡이고 수많은 인생이 스쳐갔다.

코끝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그러다 풀썩 무너졌다.

머리가 쾅 닿게 누워서 대자로 뻗었다.

머리가 핑핑 돌고 코끝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이게 만화였다면 몸에서 연기가 뿜어내왔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몸이 뜨거웠다.

“뭐야!? 진호야, 괜찮은 거냐!?”

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는 진호가 걱정되어 들어온 송학이었다.

대자로 뻗어서 피를 질질 흘리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뛰어왔다.

“형.”

“뭐야? 뭔, 피야? 괜찮아?”

“뭐가 내 최고의 연기일까?”

“어? 갑자기 뭔 소리래?”

“갑자기 큰 고민이 생겼어.”

오디션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하나.

무엇이 최고의 연기일까.

“좀 잘게.”

“야! 야야!”

피로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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