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3. 하다 보니(2)
예전에 진호가 한참 정신병원을 돌았을 때.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연극을 해 본 적 있다.
병동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묶여서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다.
심리치료에 도움이 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연기를 하면서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다.
사람은 뭔가를 함께 하면 친해지는 법이다.
서로를 경계하던 병동 친구들도 연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연극 제목은 나무야.”
진호는 아동용 연극을 들고 나왔다.
가뭄이 들어서 말라버린 나무를 여러 동물들이 돕는다는 친환경적인 연극이었다.
“귀찮은데.”
“원장 선생님. 우리 이거 해야 해요?”
“재미없을 거 같아. 그냥 티비나 보죠.”
“잠 온다.”
물론, 아이들이 대뜸 좋다고 따라 온 건 아니다.
귀찮다고 칭얼대는 아이가 반, 재미없다고 딴청 피우는 아이가 반이었다.
“연극 무대 완성하면 형이 선물 줄게.”
“선물이요?”
“뭔데요? 뭔데요?”
“게임기! 나 스위치 가지고 싶어요!”
이럴 때 아이 다루는 법은 단순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로 유혹하는 것이다.
“오케이 스위치 한 대. 받고 더 없어?”
“전 짜장면 먹고 싶어요!”
“그래. 짜장면 추가.”
“추, 축구공 사주세요! 축구공!”
“축구공도 사줄게. 아니, 이렇게 된 거 다들 가지고 싶은 거 적어보자. 형이 가능하면 사줄게. 대신 다들 힘 모아서 연극을 완성하면. 어때? 이러면 연극 할 마음 생기니?”
아이들의 고개가 빛처럼 끄덕였다.
나이 꽤나 먹은 애들도 눈앞의 선물에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속물적인 것 같지만 효과는 직빵이었다.
“그럼 배역 한 번 골라보자. 나무 하고 싶은 사람?”
“저요! 제가 하고 싶어요!”
“내가 주인공 할래요!”
공교롭게 싸웠던 두 아이가 동시에 나섰다.
나름대로 무리 우두머리였던 모양이다.
손을 들고 나서다가 서로를 팍 째려보는 모양새가 어른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두 사람 다 나무를 하고 싶다고?”
“네!”
“주인공 할래요!”
“좋아. 그럼 두 사람이 같이 나무를 하자.”
“네?”
동시에 물음표를 띄우며 진호를 올려다봤다.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나무 연기를 하는 거야. 가뭄에 말라붙은 나무니까 서로 꼭 붙어 있어야겠지?”
“아, 왜요!? 그냥 저 혼자하면 안 돼요!?”
“그런 거 싫은데! 다른 거 할래요, 그럼!”
“어허. 한 번 말을 뱉었으면 지켜야지. 자꾸 그러면 선물 없던 걸로 한다?”
진호가 으름장을 놓자 깽,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애들이 강짜 부려봐야 상대 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주연은 정해졌고. 다른 애들도 배역 정해보자. 사슴 할 사람?”
“저요!!”
“저요! 저요!! 저 할래요!”
“사슴이면 뿔 커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
아이들을 모아서 배역을 분배하고 연기를 연습시켰다.
하지만 진호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회사로 연락을 해서 사람을 몇 명 빌렸다.
귀찮은 일임에도 마다않고 달려와 주었다.
“하하, 꼬맹아. 연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우와! 이 아저씨 잘난척이야!”
“뭐야!?”
“바보 아저시다! 와하하하!”
삼삼오오 묶어서 연습을 시켜 놨더니 알아서 잘 어울렸다.
호랑이 흉내를 낸다고 바닥에서 어흥어흥, 거리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박수치며 웃었다.
칼 같은 연습은 아니었지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냥 이렇게 어울려서 연습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
“바보야. 나무니까 팔을 벌려야지.”
“하지만 팔 벌리고 오래 있으면 아프다고.”
“내가 아래에서 받쳐주면 어때?”
“어? 그럼 팔이 덜 아프겠다.”
투닥거리던 둘도 금세 친해져서는 나무 연기하기에 바빴다. 애초에 서먹함이 화로 드러날 나이였을 뿐이다. 적당히 어울려 놀 대상이 있으니 더 이상 경쟁 할 필요도 없었다.
“진호 형. 한 번 모아서 해볼까요?”
해가 떨어져 잘 때가 되었다.
눈을 슥슥 닦으며 꾸벅꾸벅 조는 애들도 더러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 할 것 같았다.
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하윤이 애들을 불러왔다.
“그럼 연극 연습 첫 번째 날. 모의 연극을 시작합니다.”
“와아!!”
“연극이다, 연극!”
무대는 고아원 앞 공터.
바닥에 선을 죽죽 긋고 핸드폰으로 녹화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신이 난 듯 우르르 몰려와서는 자기 배역대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나무야!”
그리고 연극을 시작했다.
대사도 엉망, 발음도 엉망, 동선도 모두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크게 상관없었다.
아이들은 실수해도 웃고 발음이 꼬여도 웃었다.
이건 그냥 재미있는 놀이였을 뿐이다.
“크으. 이래서 봉사활동은 나오죠. 역시 애들은 보고만 있어도 훈훈해져요.”
“······”
“응? 형,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 그냥. 우리가 보는 걸 다른 사람들도 같이 공유하면 어떨까 싶어서.”
“공유요?”
“응. 인터넷 방송 같은 거 있잖아.”
아이들의 모습을 화면에 잡다보니 문뜩 든 생각이다.
사람들이 고아원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불행한 모습과 우울한 얼굴부터 그리지 않을까?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면이 있음을 알려 주고는 싶다.
이 아이들이 행복 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2사옥에 촬영 장비들 있지? 연습용으로 쓰던 거.”
“있긴 한데, 그거 쓰는 법은 알아요?”
“오늘 내일 해서 익히면 안 될까?”
“형도 참 대책 없어요.”
“하하. 그 맛에 하는 거 아니겠냐.”
진호가 짧게 웃으며 머리를 굴렸다.
이상하게도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았다.
#
최현석의 허락을 받고 촬영 장비를 빌려왔다.
자동 편집까지 가능한 고가의 장비였다.
큰 트럭으로 이를 실어왔던 회사 직원은 ‘제발 고장 내지 말아 주세요.’라며 사정했다.
“음. 음. 이렇게 쓰는군.”
진호는 밤을 꼬박 새면서 매뉴얼을 읽었다.
낯선 단어들이 나올 때면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면서 사용법을 익혀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하윤이는 ‘진짜로 익힐 생각이에요!?’라며 놀라워했다.
“자자. 오늘도 연극 놀이 한 번 해보자.”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 때, 진호는 장비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됐다.
구상하던 장면대로 카메라를 세팅하고 애들을 불러왔다.
아이들은 하룻밤 자고 났더니 생긴 장비들이 신기해하면서 주변을 빙빙 돌았다.
“아이고. 이게 다 뭔가요?”
“애들 연극을 녹화해 볼까 해서요. 가능하면 인터넷에도 한 번 공개를 하는 걸로. 괜찮을까요?”
“연극을 말입니까?”
“네. 즐거운 모습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원장이 놀람 반 걱정 반의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모르겠네요.”
“제가 한 번 말을 해 볼게요. 애들이 싫어하면 당연히 하면 안 되죠. 어디까지나 애들이 주인공인데.”
“뭐, 그렇다면 상관은 없지만······”
원장은 미진한 반응이었다.
애들 연극인데 누가 볼까 싶었다.
나름대로 열의를 가지고 하는 일인데 별 다른 효과가 없어서 실망할까, 그게 걱정되었다.
“우와! 그럼 우리 티비에 나와요!?”
“아니지! 바보야, 유튜브라고!”
“나, 나! 나 할래요!”
“멍청아. 우리 모두 나가는 거야.”
애들을 팔팔 뛰면서 찬성했다.
나이 좀 찬 애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좋아. 그럼 연습부터 완성까지 전부 촬영하는 거다. 다들 열심히 하기. 알았지?”
“네!”
“열심히 할 거예요!”
“형! 형! 나 다른 거 시켜주면 안 돼요!?”
“나도! 너구리 말고 다른 거 할래요!”
북적거리는 모양새가 열의 하나는 확실했다.
고아원 선생들과 회사에서 나온 직원들도 소매 걷어 부치며 나섰다.
진호와 하윤, 송학도 마찬가지.
고아원에 때 아닌 연극 열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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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보니까 이게 또 재미있었다.
연기 할 때와는 또 다른 면이라고 해야 할까.
진호는 아이들의 연극 무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 기획, 편집했다.
“이거 어때? 뒤에서 풀 샷으로 잡으면서 천천히 다가가는 거야.”
“······아니 뮤직비디오 찍으세요? 애들 연극에 뭘 그렇게 공을 들여요?”
“이왕 할 거면 멋있으면 좋잖아.”
며칠에 걸쳐서 전부 여섯 편.
연극 시작부터 완성 본까지 전부 촬영을 마쳤다.
아이들은 벌써 끝났다고 아쉬워하고 직원들은 이제야 끝났다고 숨을 돌렸다.
“다음에 또 했으면 좋겠다.”
“응. 응. 재밌었는데.”
“너, 연극 되게 잘했어. 진짜 나무 같더라.”
“뭐야. 너도 잘했는데 뭘.”
“헤. 가서 축구할까?”
“응.”
본래의 목적은 순조롭게 달성했다.
싸우면서 친해지고 함께 놀면서 친해지는 게 애들이다.
햇빛 고아원 출신 애들과 전입된 애들 사이도 금세 가까워졌다.
“그럼 이건 이렇게 편집해서 올리자고. 계정을 따로 파야겠지? 고아원 앞으로 하나 해둘까?”“두개 파요. 하나는 형이 해서 올리고 다른 하나는 이쪽에서 관리하게.”
“그 편이 나을까?”
“그럼요. 아무래도 형 이름이 직접 나오는 쪽이 파급력도 좋죠.”
이런 쪽에는 하윤이가 훨씬 낫다.
조언을 따라서 개정을 만들고 편집본을 차례대로 업로드했다.
“이걸로 끝이다. 많이 봐 주면 좋을 텐데.”
“구독자 늘어나면 꾸준하게 업로드 하게요?”
“또 모르지. 이게 나름의 첼린지가 될 수도 있잖아. 재정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진호는 이미 고아원 쪽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시설을 확충하고 애들이 쓸 물자에 들어간 돈이다.
하지만 그 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줬으면 했다.
이런 아이들이 있고,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심과 사랑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야, 하윤아. 너부터 구독해라.”
일단 바로 옆 구독자부터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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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거 편집 잘했는데?”
쉬는 시간에 폰을 가지고 놀던 서훈은 인기 클립에 뜬 영상을 클릭했다.
아이들이 연극을 준비하는 영상이었는데, 화질과 영상. 편집이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대충 정면에서 찍고 마는 여타의 영상과는 달랐다.
“선배. 이거 봤어요?”
“어. 나도 봤다. 며칠 전부터 인기 영상으로 뜨더라. 확실히 업계 사람이 하는 거라 느낌이 달라.”
“업계 사람이에요?”
“뭐야. 너 알고 물어 본 거 아니었냐?”
서훈이 고개를 흔들자, 선배가 코웃음 쳤다.
“너 새끼, 평소에 그렇게 친하다고 자랑을 하더니. 이거 진호 씨가 오픈한 채널이잖아. 며칠 전부터 영상 하나씩 올라오던데. 못 들었냐?”
“진호가요? 어? 뭐야. 진짜로 진호 채널이네?”
떡하니 진호 이름이 박힌 채널이었다.
서훈이 깜짝 놀라서 채널 홈으로 돌아가서 확인하니 이미 구독자가 20만 명을 넘어가 있었다.
“허. 뭐야. 휴가 받아서 쉰다고 하더니 개인 채널 연 거였어?”
“나름대로 휴가는 맞지. 애들 노는 거 보니까 나도 마음이 훈훈해지던데.”
“어. 이거 영상 여기만 올라온 게 아니네요?”
“이쪽은 편집본. 아니, 압축본? 완전편은 다른 채널로 올라오고 있더라. 햇빛 고아원이라고 영상에 나온 애들이 있는 곳이래.”
“고아원 애들이에요?”
“놀랐지. 나도 깜짝 놀랐지 뭐냐. 애들이 원체 밝고 해맑아야지.”
서훈도 듣기 전까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아이들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이거. 수익 창출되는 채널이에요?”
“진호 쪽은 아니고, 고아원 쪽만. 후원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반응은 나쁘지 않더라. 꾸준하게 올려 달라는 사람도 많고.”
“허참. 기발하기도 하네. 에너지도 넘치고. 성추행 문제 가라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니까 더 좋지. 좋은 일 하면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사람들이 다 뉴스보고 사는 건 아니잖아.”
추행 사건이 무죄로 판결 난 걸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런 면에선 확실히 득이 되는 행동.
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말이다.
“그보다 이 편집. 누가 한 걸까요? 실력 꽤나 좋은데.”
“글쎄다. 회사 사람 아닐까?”
“그렇겠죠? 확실히 아마추어 솜씨는 아니네요.”
이래저래 감탄만이다.
서훈이 혀를 내두르며 영상을 끝까지 정주행했다.
그리고 채널을 타고 햇빛 고아원으로 들어가 조금이지만 기부를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