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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72화 (72/178)
  • Chapter32. 이상한 접근(3)

    수사는 조용하게 진행되었지만 언론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결국 사건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갔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연일 특보를 이를 다루었다.

    [연예인 H씨 성추문에 휩싸여]

    [성추행 의혹. 연예인 H씨의 이야기]

    처음에는 이니셜로 기사가 나갔지만 그것도 이내 무용지물이 되었다.

    경찰에서 진호를 보았다는 제보자가 나오고 이니셜은 곧 실명으로 바뀌었다.

    “진호 씨! 진호 씨!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진호 씨! 이번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그냥 가지 말고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성추행을 하신 겁니까!?”

    회사부터 집까지.

    심지어 제2 사옥과 고향집까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리는 전화통에 아예 전원을 꺼 둬야 했다.

    “오빠. 그때 그 사람들이지?”

    “응. 작정하고 물고 늘어지는 모양이다.”

    “성추행은 아닌 거지?”

    “내가 했겠니? 애초에 업계 사람들도 수두룩하게 모인 자리였는데.”

    “하긴. 오빠가 그런 짓 할 사람은 아니지.”

    그나마 주변 사람들은 진호를 신뢰해 주었다.

    평상시 행실을 알고 있는 만큼 그가 성추행 같은 짓을 했을 리 없다고 믿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황을 타개 할 방법이지.”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죠?”

    “응. 조만간 소환장이 올 거다.”

    최현석은 나름의 인맥을 동원해서 수사 추의를 살피고 있었다.

    고소는 쌍방으로 진행.

    사건은 접수되어 이미 검찰로 송치된 이후였다.

    “오빠. 방법은 있는 거야? 방안의 사람들이 모두 짜고 치는 거라면 수가 없잖아.”

    “단순히 증인의 개념으로 보자면 어렵겠지. 하지만.”

    “하지만?”

    “그 점에 되레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대표님. 혹시 LGM이라는 회사가 등록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쪽 소속사 사람들 목록하고.”

    “한 번 알아볼게. 근데 그게 도움이 되는 거냐?”

    진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성추행 문제는 진술과 증언으로 끝난다.

    여기에는 손 댈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일을 다른 쪽으로 끌어내서 흔드는 방법이 최선.

    ‘날 물로 봤어, 당신.’

    죽어도 물러날 마음이 없었다.

    #

    며칠 뒤 회사 전화로 이강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내용은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이거, 상황이 곤란하게 됐습니다. 설마하니 홍 배우께서 저 모르게 그런 짓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꽤나 뻔뻔하시네요.”

    “하하. 사업을 하다보면 다 그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어떤가요? 아직도 그때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까? 슬슬 저희와 손을 잡죠?”

    사건에 대한 언급은 피하며 교묘하게 물어왔다.

    호인이라 느낀 첫 인상이 무색할 만큼 뱀 같은 인물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딴 식으로 일하는 사람과는 함께 할 마음이 없습니다. 어디 마음껏 해 보시죠. 혼자는 안 죽습니다.”

    “······이야. 그래도 외국물 먹고 사리분별 하는 사람 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철없는 애였네요.”

    “철 들어 양아치가 되느니, 철없이 살고 말 겁니다.”

    “뭐. 언제까지 그 생각이 유지되는지 지켜봅시다. 갈가리 찢어진 뒤에도 그 고집이 여전할지 궁금하군요.”

    독 오른 이강민과의 통화를 끝낸 뒤, 녹취본을 바로 변호사에게 보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내용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알아보니 LGM은 이미 등록이 되어 있더라. 소속 연예인들도 전부 계약을 끝내 둔 상태고.”

    “목록을 볼 수 있을까요?”

    “힘들게 구해왔다.”

    대신 써먹을 구색으로는 충분했다.

    최현석이 인맥을 통해서 알아온 자료를 보여 주었다.

    일전에 연기 건으로 신세 졌던 경찰서 사람들이 암암리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역시. 그 날 보았던 사람들이 모두 등록되어 있어요. 여기에 제 이름만 딱 넣어서 발족하려던 생각이었네요.”

    “지독한 새끼들. 자력으로 사람을 끌어 와야지. 이딴 수작이나 부리고.”

    “뭐, 어쨌든 이 자료 덕분에 한 고비는 넘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나중에 서에 찾아가서 사례 좀 해야겠어요.”

    “그래야지. 근데 이 자료가 도움이 되는 거냐?”

    “네. 통화 녹취가 법적 효력은 없겠지만 여론전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요.”

    사람 끌어들여서 싸우는 건 싫어하지만 지금은 예외로 두고 싶다.

    그만큼 진호도 독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

    검찰 조사를 위해서 출두하는 날.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취재진이 몰려와 있었다.

    방송사 숫자가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연일 속보를 쏟아내고 특종이라고 기사머리를 올리고 있으니 이 정도 열기는 당연했다.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진호 씨! 지금 심경이 어떤가요!?”

    “추행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는 건가요?”

    우르르 몰려와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통에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진호는 당황하지 않고 사람들을 훑어봤다.

    죄 지은 것도 없고 피할 일도 아니었다.

    “전부 이쪽으로 서 주세요. 들어가기 전에 짧게 몇 마디하고 가겠습니다.”

    기자들을 한 쪽으로 몰아서 세우고는 그 앞에 섰다.

    일종의 기자회견장 느낌이었다.

    “향간에서 퍼지고 있는 제 이야기는 전면으로 부정합니다. 전 성추행을 한 적이 없으며, 이를 가지고 절 핍박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을 할 겁니다.”

    “세력? 무슨 세력 말입니까?”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이때다 싶어 송학이 출력해 준 자료를 전달했다.

    LGM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 절 초대한 건 브랜드 야닉의 대표인 이강민. 그는 현재 LGM이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 후, 연예인과 계약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어. 들어 본 내용이네.”

    “LGM. LGM. 이 회사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기자들은 짧게 정보를 스캔 후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간단합니다. 당시 술자리에 있던 전원이 LGM소속. 그리고 절 포섭하려고 했던 이강민이 그곳 대표입니다.”

    “포섭이라고 하셨나요?”

    “네. 당시 이강민 대표는 저에게 전속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지금 계약되어 있는 블루 아이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자신과 계약을 하자는 거였죠.”

    “지, 진짜입니까!?”

    갑자기 커지는 이야기에 기자들도 술렁였다.

    성추행 문제를 취재하러 나온 거지 이런 일이 거론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야지. 꽁꽁 숨겼으니까.’

    무기는 항상 예측하지 못했을 때 효과가 큰 법.

    따로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이 자리에서 입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 거절했습니다. 블루 아이와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을 뿐더러, 술집에서. 그것도 소속사 사람들을 전부 모아놓고 은근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탓이죠.”

    “아, 아니 잠깐만요. 그럼 이번에 진호 씨를 고소한 여성분도 LGM소속이라는 겁니까?”

    “네. 소속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전부 진호 씨의 일방적인 주장 아닌가요?”

    “그건 이 녹취를 듣고 판단해 주세요.”

    진호가 준비해 왔던 녹취를 들려주었다.

    이강민은 사건을 최대한 피해서 말을 돌렸지만 그의 본래 목적 자체는 숨길 수가 없었다.

    “정말로 영입하려고 한 거잖아?”

    “그럼 뭐야. 고소 건으로 약점 잡으려 한 건가?”

    “······잠깐 자리 지켜 봐. 이거 본사에 연락 좀 해봐야겠어.”

    기자들이 분주해졌다.

    특종 더하기 특종.

    아니, 곱빼기 특종이 쏟아져 나오니 혼자서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 자료는 모두 공개해 두겠습니다.”

    “하지만 진호 씨. 녹취를 동의 없이 공개하면 처벌 위험이 있습니다만······”

    “상관없습니다. 감옥을 가든, 처벌을 받든.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손가락질 받는 건 참지 못합니다. 절 끌어내리고자 했으면 당사자도 무사하게 넘어 갈 생각 따위는 집어 치워야죠.”

    독 오른 진호의 답에 기자들이 움찔했다.

    수십의 기자들 앞에서 이 정도까지 당당한 사람은 쉬이 찾기 어렵다.

    되레 압박하는 사람은 더더욱.

    “그럼 전 조사를 받고 나오겠습니다. 부디 좋은 기사를 내 주시길.”

    정중하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까지.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 만큼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죄가 없다, 라는 사실을.

    #

    진호가 던진 폭탄의 여파는 대단했다.

    신문 1면을 도배하고 공중파 뉴스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며칠 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성추행을 저지른 문란한 인간에서 고발의 선두에 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여론의 상당수가 진호 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어, 어쩌죠? 대표님 이런 상황은 예상에 없었잖아요.”

    여민소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여론이 뒤집히고 있으니 당사자인 그녀는 좌불안석이었다.

    “진정해. 아무리 떠들어 봐야 가진 건 없어. 네가 일관되게 주장만 하면 된다고.”

    “하, 하지만 저 이러다가 무고 당하면요? 아니, 아니더라도 이미 저 이미지 완전 망가졌잖아요. 회복이 될 거 같아요?”

    “진정하라니까. 어차피 대중은 우매한 것들이야. 상황 일단락 짓고 나중에 복귀하면 다 잊어. 넌 신경 끄고 확실하게 그 인간 묻어 버리는 것만 집중해.”

    이강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속이 문드러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일본 자금을 받아서 매니지먼트를 세울 당시, 몇 가지 자신만만하게 추진했던 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진호에 대한 것.

    얄팍한 수 몇 개면 쉬이 넘어오리란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일파만파 커져버렸다.

    일본 본사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쪼아대는 터에 그도 속이 멀쩡하지는 않았다.

    “넌 나만 믿어.”

    목소리에는 그다지 힘이 없었다.

    #

    “여민소 씨.”

    “······네, 네!”

    여민소는 조사관의 부름에 퀭한 눈을 들었다.

    무어라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까부터 계속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요. 이렇게 가면 신뢰도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 알고 계시죠?”

    “제가요? 제가 그랬나요?”

    “네. 조금 전에는 건배를 하기 전이라고 했는데, 지난 진술서에는 건배를 한 후라고 적혀 있더군요.”

    “아. 아아······건배. 건배를 하고 나서였죠. 네.”

    여민소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연일 시달렸더니 머리가 안 돌아갔다.

    “저, 저기 검사님. 혹시 오늘 진호 씨도 조사 받으러 오나요?”

    “네. 지금 다른 방에서 조사받고 있을 겁니다. 왜요?”

    “혹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제가 고소를 취하하면 진호 씨도 저 무고죄 취하해 줄까요?”

    “······갑자기 말입니까?”

    “네. 그거 한 번 물어봐 주시면 안 될까요?”

    “허, 참.”

    조사관은 어이없는 얼굴로 여민소를 봤다.

    법이 무슨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

    마음 내키는 대로 고소하고 취하하는 꼴이라니.

    “여민소 씨. 확실하게 판단하세요. 여기서 고소 취하하면 끝입니다. 마음이 바뀌어도 신뢰성이 떨어져서 안 돼요.”

    “아니, 그러니까 전······이럴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대표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라 이거에요.”

    “대표가 시켜서 했다?”

    “네, 네. 이번 일만 잘 하면 나중에 배우든 가수든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거든요.”

    “그거 자세하게 한 번 들어보죠.”

    조사관이 의자를 끌어와 여민소와의 거리를 좁혔다.

    성취행보다야 이쪽이 더 흥미로운 얘기였다.

    “저, 이거 말하면 이제 괜찮은 거죠? 무죄로 나갈 수 있죠?”

    “······일단 다 털어놓고 생각해 봅시다. 혹시 또 압니까. 최선을 다해서 반성하면 진호 씨 쪽에서 고소를 취하할지.”

    “아. 그렇죠. 네. 고소 취하······흑. 저기 검사님. 저 원래 나쁜 여자 아니에요. 흐윽. 아시죠? 네?”

    “아, 아. 거, 갑자기 왜 울고 그러실까. 알아요, 알아. 아니까 천천히 말 해 보세요. 코 풀고.”

    “흥!!”

    이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사람 하나를 대뜸 고소 할 수 있었을까.

    조사관은 어이없이 바라보다가도 이런 케이스가 많다는 것에 오싹함을 느꼈다.

    “이, 일단은요······”

    그나마 이번엔 잘 풀려서 다행.

    울음 섞인 여민소의 진술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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