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1. 아역(2)
진호는 스케줄 중간중간 틈이 날 때 마다 최대한 많이 연습실을 방문했다.
촬영까지 코앞이라 연습량이 상당했다.
“조금 더 강하게. 소리가 너무 먹히고 있어.”
“한 번 더 해 볼게요.”
진호는 특히 하윤을 중심으로 가르쳤다.
세미는 워낙 재능이 출중하여 디테일만 다듬으면 충분했고, 은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힌 터라 단기간에 바꾸는 건 어려웠다.
가장 손 댈 곳이 많고 바뀔 가능성이 많은 것도 하윤이었다.
“하윤아, 힘 빼고. 너무 긴장해 있어.”
“형이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긴장돼요.”
“사람들 앞에서 연기 안 해 본 것도 아니잖아. 긴장 풀고. 캐릭터 하나에만 몰입을 하자.”
“네. 네.”
하윤이의 장점은 성실함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매진해 온 만큼 행실이 진실되었다.
연습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고 하나를 익히는 것에도 매우 열성적이었다.
반면, 타고난 재능에서는 많이 부족했다.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약해고 표현력이 모자랐다.
재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세미와 비교되어 더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분명 수재의 영역은 아니었다.
“······멍청아. 그건 그냥 돈 빌려서 때우면 되잖아.”
“스톱, 스톱. 하윤아, 한 번 더 가자.”
“멍청아! 그건 그냥······”
“다시. 멍청이가 정말로 동생을 욕하고 싶어서 뱉는 말이야? 아니잖아. 애칭이라고 애칭. 느낌을 다르게 해 봐.”
“멍청아! 멍청아. 멍청아~”
연기에는 감각의 영역이 있다.
똑같이 대사를 뱉어도 감각적으로 맛을 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하윤은 후자였다.
머리로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발성으로도 그 감정을 표현하려 하지만 감각이 부족했다.
“멍······하아. 형, 잠깐만 쉬었다가 할게요.”
“그래. 물 좀 마시고.”
하윤이 지친 기색을 드러내며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진호도 땀을 닦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많이 힘들어?”
은서가 쪼르르 다가와 그 옆에 앉았다.
“내가 안타까워서 그렇지. 하윤이가 어떤 마음으로 대사를 치는지는 보이거든. 근데 느낌이 안 와.”
“느낌?”
“대사 하나에 캐릭터가 전부 녹아있거든. 철없는 오빠지만 동생은 생각하는. 그 맛을 대사 하나에서 살려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어.”
“하윤이한테는 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
“어렵지. 근데, 해야 해. 아니면······”
진호가 힐끔 옆쪽으로 바라봤다.
그곳에는 혼자 쭈그려 앉아 연습하는 세미가 있었다.
그녀는 이미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캐릭터의 특징을 자신의 방식으로 구축하고 있었다.
“비교가 된다?”
“응. 다른 씬이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어. 근데 두 사람은 한 씬에서 나오잖아. 까딱 잘못하면 농담이 아니라 세미한테 먹혀.”
“끄응. 하필 두 사람이 같은 드라마에 캐스팅 돼서.”
“어쩌겠어. 앞으로 하윤이가 연기 생활하려면 이런 것도 다 극복하고 나가야지.”
진호는 이런 면에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세미와 닮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한 재능의 결정판이다.
평범한 사람이 연기를 사랑하여 매진하는 것에는 동등한 입장에서 조언하기 어려웠다.
“형. 생각을 해 봤는데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휴게실에서 빼곡히 적힌 노트를 들고 나오는 하윤.
쉰다면서 또 뭔가를 구상했던 모양이다.
“쉬라니까. 자식이.”
지금은 그저 맞부딪쳐 주는 것이 최선.
진호도 소매를 걷고 일어났다.
#
며칠 뒤 대본 리딩이 있었다.
아역들도 모두 참여해서 드라마 초반부를 진행했다.
감독과 작가들을 비롯한 스텝들도 전부 참여해서 연기를 지켜봤다.
“저 아이가 홍진호 배우가 발굴했다는 그 아역입니까?”
“네. 보면 놀랄 겁니다. 재능이 보통이 아니에요.”
“호오. 감독님이 그렇게 말 할 정도라니. 기대되네요.”
관심은 세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오디션 당시에 보인 연기가 이미 스텝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던 덕이다.
감독부터 작가까지 눈을 반짝이며 지켜봤다.
“씬 3-1.”
시작은 세미였다.
은서의 아역으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조부모님 집에서 얹혀 사는.
그런데 오빠는 철이 없어서 사업하겠다고 질 나쁜 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불쌍한 아이의 표본이었다.
“오빠. 제발 철 좀 들어. 언제까지 그럴 거야? 할머니랑 할아버지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
표정, 시선, 발음, 손동작.
고작 첫 대사였음에도 모든 사람들이 알아 차렸다.
이 아이는 단순한 아역 수준을 넘어서 있음을.
“멍청아. 그러니까 이 오빠가 책임져야 하는 거라고. 이번 일만 잘 되면 너랑 할배, 할매 모두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거야.”
대사를 받은 건 하윤.
철없는 10대 끝자락의 연기를 능숙하게 해냈다.
발성도 좋고 표정도 어색함이 없었다.
“흐음. 밋밋하지만 아역이니까.”
“확실히 세미 양이 훌륭하네요.”
“몇 년 지나면 대단한 여배우가 나오겠어.”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숙덕거리는 스텝들의 목소리는 모두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었다.
‘리딩 할 때는 좀 조용하지?’
그리고 그것은 다음을 준비하던 은서의 귀에도 전부 들어갔다.
“오빠아! 어떻게 할 거야!? 할아버지 땅을 담보로 잡혔다니! 그 땅이 어떤 땅인지 알고는 있어!?”
“이, 이······! 이거 놔! 투자금만 돌려받으면 그딴 돈 별 거 아니라고!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생각이 있다니? 어디가!? 저번에도 부모님 패물 팔아서 투자했다가 전부 말아먹었잖아!”
“야! 나도 생각이 있다고! 넌, 이 오빠를 좀 믿어 줄 수 없니!?”
“나도 믿고 싶어! 하지만 오빠가 믿게 해 줘야지!”
“썅! 진짜!!”
“오케이. 여기까지. 잠깐 숨 좀 고릅시다.”
짝,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분위기로 상황을 읽기에는 충분했다.
세미와 하윤 모두 열연으로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특히 세미는 눈물까지 쏙 뽑은 터라 얼굴이 엉망이었다.
“세미야, 괜찮냐?”
“······”
“세미야.”
“아, 아! 네! 괜찮아요.”
몰입을 빠져나오는 것이 조금 느렸다.
은서는 휴지를 뽑아서 세미에게 건네주고는 힐끔 하윤 쪽을 바라봤다.
그는 입술을 깨문 채 대본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기도 아는구나.’
씬은 소화했지만 확실하게 잡아먹혔다.
“보통이 아닌데요? 그 진호 배우가 발굴했다고 해서 어떤가 싶었는데. 와. 아역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연기가 아니에요.”
“하하.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디션에서 딱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니까요. 이 아이. 분명 크게 될 겁니다.”
“이거 아까워서라도 분량을 늘려야 하려나.”
“하하. 작가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작가와 감독의 대화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세미는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서 감정을 뽑아낸 것에 비해 하윤이는 그렇지 못했다.
격렬하게 소리쳐도 그 안에 감정이 실리지 않으면 그저 시끄러울 뿐이다.
아쉽게도 하윤의 연기는 세미에게 미치지 못했다.
“하윤아, 잠깐 바람 좀 쐬자.”
“······네, 누나.”
은서가 보다 못해 하윤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주변의 숙덕임이 잦아들자 표정이 조금 풀렸다.
“하윤이 담배 안피지?”
“······안 피거든요? 유도심문?”
“그래. 잘 하고 있네. 몸에 안 좋은 건 하지도 말고.”
은서가 농 섞어 분위기를 풀었다.
“조금 전, 연기. 마음에 들었어?”
“제 연기요?”
“응. 네 연기.”
“그냥 뭐. 전 만족했어요. 연습 한 만큼 나온 거 같아요.”
“그렇구나. 근데 왜 표정이 그럴까?”
“······”
하윤이 입가를 손으로 매만졌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밖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힘들지? 재능이 넘쳐서 주체 못하고 날뛰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긴. 나는 진호 오빠 연기를 보고 있으면 종종 그렇게 느끼곤 하는데.”
“누나가요?”
“그럼. 난 뭐 연기 욕심도 없는 허당인줄 알았냐?”
하윤이 황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오빠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야. 보고 있으면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싶을 때도 많아.”
“······맞아요. 제가 세미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했잖아요. 훨씬 전부터 단역도 많이 돌고. 근데, 보고 있으면 세미가 훨씬 잘 해요. 따라잡을 엄두도 안 날 만큼.”
“억울하지. 재능이라는 거는.”
“솔직히 너무해요. 저, 진짜로 열심히 했거든요. 밤새서 캐릭터 연구도 하고 대사도 틀리지 않으려고 화장실에서도 외웠어요. 근데······”
“네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하윤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답 받지 못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라 해도.
“보자. 누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 세미가 만개하는 장미라고 한다면 너는 들꽃이야.”
“들꽃이요?”
“응. 흔하지만 항상 곁에 있고 은은하게 향기를 내뿜는. 지금 이 순간에는 장미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돌아서서 보면 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꽃.”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죠?”
“어. 근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이 일 하겠니? 어차피 세상에 재능 넘치는 사람은 차고 넘쳐. 일일이 비교하면서 일하려면 멘탈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그냥, 저런 인종이 있구나, 하고 자극제로 삼아야지.”
“누나 응원 되게 못하네요.”
“에이 씨.”
은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그럴 듯 한 말로 다독이고 싶었는데 잘 되지가 않았다.
“모르겠다. 그냥 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야. 꺾이지 말라고. 나는 사람이 있으면 걷는 사람도 있는 거야. 인생은 길고 연기는 평생 가는 일이야. 걷고 또 걸어서 산 끝에 도착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걸어서 산 끝에 도착한다······”
“응. 그리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적어도 우리는 너를 제대로 봐 주고 있으니까.”
하윤이 입술을 오물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완벽하게 납득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은서 덕분에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다.
“하윤 오빠! 하윤 오빠!!”
“가, 봐라. 세미가 찾는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세미의 손짓에 다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윤 오빠, 어디 갔었어?”
“잠깐. 밖에, 바람 좀 쐬려고.”
“그랬구나. 난 또 오빠가 혼자 다른 거 준비하는 줄 알았지 뭐야.”
“다른 거?”
“응. 오빠는 만날 새로운 거 가지고 와서 연기하잖아. 이번에 또 다른 거 있으면 같이 하려고 했지.”
하윤이 세미를 돌아봤다.
그녀는 ‘동작을 이렇게 하는 거? 표정을 이렇게 하는 거?’ 라며 하윤의 평상시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그럴듯해서 하윤이 웃고 말았다.
“그거. 재밌냐?”
“응. 난 하윤이 오빠 연기가 재밌는 걸. 항상 새로운 걸 가지고 오잖아.”
“······그래.”
자신만 세미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니다.
세미 역시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그래. 조급해 하지 말자.’
방법이 다르고 가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누구나 같을 터.
하윤은 세미와 나란히 서서 걸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아직은 아역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