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65화 (65/178)

Chapter30. 쓰는 법(1)

결과적으로 말해서 중국 개봉이 미뤄지고 있는 건 최고당의 결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당에 로비를 하고 있는 것이 황천.

기간 내에 개봉하는 황천 쪽 영화들의 흥행을 보장하기 위해서 수를 쓴 것이다.

“게다가 그 인간이 화교 출신으로, 황천의 계열사를 다녔다라······”

파리에서 진호를 습격했던 남자.

그가 화교 출신이며 황천의 계열사를 다녔던 것이 드러났다.

서훈이 중국 쪽 지인을 통해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이 사실 만으로 무언가를 특정 짓기는 어렵지만, 구린내가 나는 건 사실이네.”

“고의로 해치려 했다? 하지만 왕호룽은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글쎄. 그 사이에 뭔가 변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두 일이 별개의 상황일 수도 있지.”

몽상가이기는 했으나 왕호룽 자체는 대단했다.

진호가 한국사람이 아닌 중국인이었다면 그의 포부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웠을 것이다.

일련의 행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대로 중국 개봉이 묶이면 어떻게 되죠?”

“뭐······수익 면에서는 이미 벌 만큼 벌었으니 문제는 없겠지. 다만, 이런 식으로 선례가 생기는 건 곤란해. 개봉 영화중에 중국 시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는 많이 없으니까.”

“투자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이거군요.”

“그렇지. 영화에 사상 쪽 문제가 있던 거라면 다들 납득하겠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니까. 혹시 제작사에? 감독에? 배우에? 여러 가지 의문이 따라 올 거다.”

투자자는 현상을 보고 비전에 돈을 건다.

중국의 행동이 영화가 아닌 그 부속품 일부에 의한 결과라면 차후 영화를 제작 할 때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국 영화 보호를 위해서라.”

진호는 단어의 울림을 곱씹었다.

#

영화 흥행은 진호에 대한 브랜드 가치를 올려 주었다.

이미 드라마와 예능.

영화제 수상 등으로 이미지가 좋던 진호다.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수준의 흥행으로 대박을 때려 버리니 가치가 천장지부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진호에게는 다른 스타에게 없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얼굴이 평범해서 좋다 이거지?”

“큭큭. 그렇다니까? CF감독님한테 물어보니까 오빠가 나온 제품이 훨씬 높은 선호도를 가졌데.”

“별 일이네.”

흥행을 주도하는 브랜드에 가치에 제품을 부각시키는 외모가 장점이 된 것이다.

옷이면 옷, 가전제품이면 가전제품.

어떤 걸 가져다 놓아도 마지막 즈음에는 제품으로 시선이 가게 됐다.

보통, 유명 연예인들이 잘 생긴 외모로 광고에 들을 보는 것과는 정반대의 경우였다.

오죽했으면 ‘진호 브랜드’라고 광고했던 제품을 따로 모아두는 행사까지 열리곤 했다.

“밥솥 광고하고 학원 광고. 몇 개 더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래?”

“······이제 좀 줄여도 되지 않아요?”

“지금까지 몇 개 찍었더라?”

“열다섯 개요.”

“어우. 많이 찍었구나. 그럼 이제 적당히 추려서 보내줄게. 네가 골라 봐.”

유명 제품을 위주로 CF를 섭렵하고도 아직 제의가 넘치도록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국내의 이야기.

영화의 흥행이 한창 주가를 탈 때는 프랑스와 미국 쪽에서도 광고 제의가 들어왔었다.

조건을 거르며 두어 개로 그치기는 했지만 한국인이 외국에서 이런 식으로 광고를 찍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영화 한 방의 효과가 컸다.

“이 마당에도 금지를 안 풀어준다 어거네.”

문제는 영화가 얼마나 흥행 하는지 와는 상관없는 중국의 태도였다.

중국 내에서도 보고 싶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상영 금지를 유지했다.

심지어 쇼케이스나 방송 출연도 막았다.

글로벌한 현대 사회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의 폐쇄적인 반응이었다.

“진호야. 이거 한 번 봐봐라.”

그러기를 두 달여.

국내와 미국 등지의 흥행 열풍도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한 통의 메일이 최현석의 계정으로 날아왔다.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왕호룽]

황천의 대표, 왕호룽의 메일이었다.

날짜와 장소가 적힌, 짧은 몇 마디가 전부였다.

진호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결정했다.

“스케줄 조정해 주세요.”

한 번 보고 싶은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

며칠 뒤 진호는 약속장소로 움직였다.

매니저와 최현석만 대동한 조심스러운 행보였다.

서울 중심가에 있는 호텔 최상층.

몇 번의 보안 점검을 받고 나서야 약속 장소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불쑥 찾아와 만났던 첫 만남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오랜만이다, 진호.”

커다란 침상, 링거를 줄줄이 달고 있는 왕호룽이 진호를 반겼다.

안색이 창백하고 몸이 깡말라 있었다.

이건 빈말로라도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하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웃을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만.”

“그렇지. 그래. 확실히 웃을 일은 아니야. 까딱 잘못했으면 목이 날아갈 뻔 했으니까.”

겨우 몸을 일으키는 왕호룽의 가슴팍에는 핏자국이 역력한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고라도 당한 건가요?”

“그랬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난······숙청을 당하는 중이다. 최고당의 결정으로 말이지.”

“수, 숙청이요?”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황천이라는 회사는 민간 기업이나 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문화 진흥을 위해 손을 잡았다, 정도로 보면 될거다.”

민간기업과 공기업의 분리가 철저한 편인 한국과는 다르게 중국은 경계가 모호하다.

황천은 미디어 사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특히나 흐릿한 경계로 운영되어 왔었다.

“근데 왜 갑자기······?”

“당의 입장이 바뀐 거지. 복잡한 전후사정은 부차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개방책이 폐쇄정책으로 바뀐 거다.”

“폐쇄정책? 그럼 영화가 개봉 금지에 걸린 것도?”

“강경노선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지.”

“이런 고약하게 걸렸군요.”

“고약한 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진호의 표정이 달라졌다.

지금 상황만 해도 충분히 무거운데, 이제 시작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당의 노선이 바뀌는 건 그리 희한한 일도 아닙다. 대외적 환경의 변화로 노선이 이리저리 흔들리곤 하니까.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라.”

“다르다면?”

“당의 고위 간부 중 하나가 황천을 통째로 삼키려고 하고 있다. 자기 사람을 회사에 심고 날 암살하려고까지 했지.”

“아, 암살?”

“뭐, 흔한 일이지만.”

왕호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진호는 그럴 수 없었다.

암살이 말이 쉬워서 암살이지.

결국 사람 죽이는 일 아니던가.

“사실 이건 당내의 복잡한 경쟁관계가 얽혀있는 일이라 설명이 좀 곤란해. 그냥······폐쇄정책을 지지하는 강경파 하나가 일을 벌이고 있다 정도.”

“그렇군요.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말하는 거죠?”

“부탁드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저한테요?”

진호의 얼굴이 모호해졌다.

중군 내부의 알력 다툼이 자신과 무슨 상관일까.

“온갖 권력 다툼을 다 하더라도 최고 권력은 한 분에게 결집되어 있다. 나는 이분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

“······무슨 소리인지?”

“영화에 출연해 다오.”

“하?”

점입가경이 딱 이럴 터였다.

“현 중국의 경제 상황과는 다르게 문화적 스탠스는 크게 두 부류가 맞서고 있다.”

“이것도 역시 개방과 폐쇄입니까?”

“그렇지. 문화 개방을 통한 경쟁력의 고취가 내가 추구하는 방향. 반대로 폐쇄를 통해 자국 문화를 보호하는 것이 반대파의 방향이다.”

“그 반대쪽이 당의 권력자의 일원이다?”

“정확해. 날 암살 시도한 것과 진호. 널 암살하려 한 사람이 같은 분파니까.”

덜컥, 하고 진호의 표정이 굳었다.

“사실 그 건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싶다. 반대파에서는 널 내 사람으로 파악했던 것 같아. 다행히 사람을 써서 상황은 막긴 했지만, 위험에 처하게 한 건 사실이니······”

“하. 어쩐지 이상하다 싶더니.”

이제야 퍼즐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썩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지만.

“잠깐만요. 그럼 진호가 왕 대표님의 영화든 뭐든, 그런 거에 출연하면 다시 위험해 지는 거 아닙니까?”

그때, 듣고만 있던 최현석이 나섰다.

“······아니라고는 말하기 어렵겠네요. 네. 만약 영화에 출연한다면 그들은 진호를 제 사람으로 생각 할 겁니다. 어쩌면 위험하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건 안 됩니다. 위험 할 지도 모르는 일에 진호를 동원 할 수는 없어요.”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생각이라도 들어봐 주시기를.”

왕호룽은 몸을 숙이는 것으로 최현석에게 양해를 구했다.

태도가 상당히 진중한 터라 최현석도 마냥 화를 낼 수만은 없었다.

“주석께서는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서 깊이 통찰하고 계십니다. 가수 한 명이 수천, 수만의 사람보다 월등한 홍보력을 지니기도 한다는 점. 자동차 천 대를 파는 것보다 게임 하나, 옷 하나가 국격을 올리기도 한다는 점. 하지만······”

“방향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 진호 네 말대로 정해지지 않았다. 당장이야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폐쇄적인 문화 스탠스가 옹호를 받고 있지만 이건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일 뿐이야. 중국 내수에 만족하던 지난 문화들이 어떤 경쟁력을 지녔는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흔한 중국몽이다.

대륙 안에서 우쭈쭈하는 문화들로 내수 이득은 만족했지만 해외로 나갈 때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비웃음과 멸시.

문화 전체에 대한 빛을 잃었다.

“난 이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문호를 개방하고 같은 아시아권 내에서는 더욱 활발한 교류를 해야지. 그래야 아시아 특유의 문화를 고취시킬 수 있다고 봐.”

“서구대 아시아? 이런 걸 원하는 겁니까?”

“난 철저하게 중국 사람이야. 문화적 역량을 올리는 것도 결국 중국의 미래를 위해서지. 하지만 세계 시장을 놓고 보자면 혼자서는 역부족이야. 반드시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전히 말은 잘하시네요.”

왕호룽은 스스로 말 한 것처럼 중국인이다.

그렇기에 생각의 흐름 역시 중국을 위주로 돈다.

‘문화적 교류도 결국에는 중국이 이긴다는 전제로 사고하는 거지.’

이 또한 중국몽일 뿐이다.

“그래서 이걸 영화 한 편으로 돌릴 수 있다 이겁니까?”

“너라면 가능하다. 주석께서도 네 영화는 직접 관람하셨다. 역량을 이해하고 비전도 가늠하셨지. 문제라면 네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점 뿐. 그것만 잘 다스려 준다면 설득에 무리는 없을 거다.”

“잘 다스린다면? 무슨 의미입니까?”

“약간의 연기일 뿐이다. 중화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문화 개방에 따라 너 같은 사람도 인재로 넘어 올 수 있다는 가능성만 타진해 다오.”

“하!”

진호는 코웃음을 쳤다.

말이 연기고 말이 가능성이지 이건 비약이다.

중국의 주석이란 인물이 한 사람의 선택으로 마음을 휙휙 바꿀 수 있겠는가?

이건 타개책이기 보다는 궁여지책이었다.

‘급해. 급해서 찾아 온 모양새다.’

진호는 숨을 골랐다.

왕호룽의 처참한 모습과 다급한 목소리에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그런가?”

“급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군요. 저 혼자만의 일도 아니고.”

최현석 쪽을 흘깃 보며 진호가 답했다.

혼자서 오지 않은 것이 정답인 것 같았다.

“휴. 그래. 이건 중요한 문제지.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리 여유가 많은 상황이 아니야. 빠른 시일 내에 답을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입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을 하죠.”

중국식으로 포권.

진호가 짧게 인사하고는 물러났다.

생각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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