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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62화 (62/178)

Chapter28. 당신들 말고(1)

며칠간의 핑크빛 분위기를 마치고 은서는 돌아갔다.

마음을 확인하고 달달한 밀크티 놀음을 하고 싶은 둘이었지만 스케줄이 빡빡했다.

아쉬움에 눈물적시며 휴일을 기약했다.

[굿! 굿! 아주 좋습니다!]

진호의 집중력은 최고로 상승했다.

씬을 빠르게 소화하고 촬영 일정을 앞당겼다.

파리 전역을 거치는 강행군이었음에도 군말 하나 없이 따라갔다.

되레 빌이 지쳐서 허덕일 지경이었다.

‘서러워서 이거 참.’ 이라고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일정을 소화했다.

“프로모션 일정 잡혔어. 프랑스부터 시작해서 쭉 돌거야.”

그러기를 두어 달.

모든 촬영이 끝났다.

제작발표회를 필두로 개봉 나라를 돌면서 홍보가 계획되어 있었다.

“한국은 언제 들어가요?”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 쪽 먼저 돌고. 미국 걸쳐서 한국으로 갈 거야.”

“일정 장난 아니네요.”

“보름 정도는 이 악물고 돌아야지.”

일정은 굉장히 타이트했다.

보름 동안에 스물이 넘는 나라를 방문하여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한 두 시간 짧은 행사라고 해도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보통 힘든 일정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잠깐 쉴 시간 있을까요?”

“바로 일본으로 넘어 가. 길어야 두어 시간 정도?”

“아으, 빡빡해. 그때 잠깐 얼굴이나 봐야겠네요.”

“누구? 은서?”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해서요. 같이 보게 될 거 같은데.”

“뭐야. 벌써 상견례도 하고 그러는 거냐?”

“에이 뭐래요. 그냥 가벼운 식사에요.”

“야. 그건 네 입장이고. 은서 씨 입장에서 그게 그냥 식사 자리겠냐?”

진호가 가만히 듣다, 머리를 긁적였다.

송학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 와서 취소도 못하고. 어쩌죠?”

“어쩌긴. 네가 중간에서 잘 해야지. 은서 씨 부담 안 가지게 다독이고. 부모님도 기분 좋게. 어? 마, 효자랑 좋은 연인이 쉽지 않다고.”

“그러니까 형이 그런 얘기를 하면······”

“형도 애인 생겼다.”

“와!”

뭐가 또 ‘와!’냐고 한 바탕 투닥거리고 남은 일정을 다시금 확인했다.

행사는 며칠도 남지 않았다.

#

제작발표회 당일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프랑스 현지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 꽤나 있는 사람들이 방문을 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심이 상당했다.

거장 벨로스와 명배우의 조합.

영화제를 노릴 수 있는 작품성 있는 영화일까, 아니면 파격적으로 상업적인 루트를 탈 것인가.

관심만큼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진호 씨. 고국에서 먼 곳까지 날아와서 영화를 촬영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다른 나라, 다른 사람, 다른 문화.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적응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어려운 것과 동시에 설렘도 품고 있죠. 두근거리는 소년처럼 연기를 했습니다]

인터뷰는 벨로스, 빌, 진호 셋에게 균등하게 주어졌다.

이건 명성을 생각하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명장인 벨로스와 명배우인인 빌은 동급이라고 쳐도 진호는 사실상 신인에 불과했으니까.

[공개된 촬영본에서 진호 씨의 연기를 봤습니다. 프랑스어 발음이 매우 유창하고 제스쳐가 굉장히 독특하던데. 따로 연습을 한 건가요?]

[나라마다 문화마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죠. 형식적으로 대사만을 외워서는 이를 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배경을 공부하고 행동 양식 등을 학습했죠. 그 점이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대단하네요]

이건 촬영 중간중간 공개한 현장 모습의 덕이 컸다.

연기, 발음, 인터뷰 등.

신인이고 주목도가 떨어지는 진호 쪽으로 최대한의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이건 벨로스의 제안이었다.

그는 영화만이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캐릭터를 어떻게 주목받게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에 대한 짤막한 말 한 마디를 듣고 갈게요]

[한 마디라. 쉽지 않네요. 그래도 굳이 한 마디로 줄인다면······인생? 인생영화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진호는 중의적인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영화가 인생이라는 건가요?’, ‘그만큼 걸작이라는 건가요?’ 라는 후속 질문이 쏟아졌지만 손만 흔들고 빠져나왔다.

호기심이라는 미끼를 던졌으니, 이제는 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다음은 어디지?”

행사의 시작이었다.

#

영화 프로모션에는 협력업체가 따라붙는다.

‘늘 구름’이라는 단체가 그러했다.

국내 프로모션 행사의 기획 및 진행.

전반적인 일정도 전부 관리하는 업체였다.

진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프로모션 행사에 들어갔을 때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접촉을 했다.

행사 기간 내의 모든 권한을 대행 받은 것이다.

“고아원 사람들을 초대하자고?”

“네. 실제 촬영장에서 사용한 장소가 지금은 이전한 고아원이거든요. 그곳 사람들을 초대하면 어떨까 싶은데.”

업체 대표 윤길학은 직원의 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화 느낌과 고아원 아이들은 썩 어울리지 않았다.

“제가 언뜻 듣기로는 결말이 훈훈한 쪽이라고 해서요. 고아원 애들 데리고 가서 사인하고 사진 찍으면 느낌이 더 살지 않을까요?”

“그거 진짜냐?”

“아니더라도 외국 배우들이 와서 선행하면 이미지에는 좋잖아요.”

“그런가? 그럼 뭐 한 번 진행해 봐.”

어차피 사진 찍고 인터뷰하고 한 시간 남짓한 행사일 뿐이다. 아이들을 초대해서 훈훈한 사진 몇 장 나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애들 추려서 인사말 같은 것도 몇 개 연습해 봐. 불어랑 영어로.”

“그럴까요?”

“그쪽 친구들은 선물을 뭐 좋아하냐? 애들이 가지고 가서 전해주면 그림 괜찮겠네.”

“그건 제가 준비를 해 볼게요.”

“그래. 시간 얼마 없으니까 섭외 빨리 하고.”

수십 수백 번이나 했던 일.

일처리는 매우 간결했다.

#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꽤나 시끄러웠다.

공항부터 몰려나온 취재진에 팬들.

가는 곳마다 몰려드는 사람 덕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이야. 인기가 장난이 아닌데?]

[나도 깜짝 놀랐어. 무슨 사람이 이렇게 나온 거야?]

[하하. 다들 널 보러 나온 거 아니겠어?]

진호는 혀를 내둘렀다.

프랑스에서 꽤나 긴 촬영이 이어지지 않았는가.

인기는 한 풀 꺾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되레 출국 전보다 인기가 많아진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상 받는 거 아니냐고. 다들 기대해서 그렇지.”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뭔 상이래요.”

“면면이 화려하니까.”

“에휴. 하여튼 설레발은 다들.”

송학의 설명에 이해는 됐지만 썩 내키는 건 아니었다.

팬들이야 팬심에서 왔다 쳐도 몰려든 기자들 중 상당수가 영화 보다 수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상보다 영화 자체에 관심을 보여 줬으면 하는데.’

핀트가 어긋난 관심은 달갑지 않았다.

“일단 호텔에서 잠깐 쉬고 이동하자. 서울 밟고 부산까지 내려가야 하니까, 서둘러야 해.”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도 행사가 있네요.”

“뭐, 촬영지는 없다 쳐도 무시 할 수는 없잖아. 얼굴은 한 번 비쳐야지.”

“끄응. 진짜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네요.”

쉴 틈이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촬영 때야 감독인 벨로스의 역량으로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홍보는 아니었다.

이쪽은 이제 제작사의 행동 영역.

최대한 이득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많이 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럼 호텔까지만 눈 좀 붙일게요.”

“5분 거리인데?”

“그게 어디에요.”

쪽잠이 고픈 진호였다.

#

햇빛 고아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영화 행사인가 뭔가로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왔다.

좋은 옷도 입고 점심은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었다.

가만히 앉아서 연습한 몇 마디만 하면 돌아가는 길에 선물도 준단다.

이보다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히히. 짜장면 맛있었는데.”

“그치? 그치? 돌아가는 길에 또 먹고 싶다.”

“바보야. 원장님이 짜장면은 비싸다고 그랬어.”

“피. 나 그거 연습도 열심히 했다고. 원장님이 잘 하면 선물 준다고 그랬는걸?”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일찍이 대관한 건물 복도에 쪼르륵 앉아서 점심에 먹은 짜장면이 맛있었니, 짬뽕이 맛있었니를 두고 다투었다.

“에잉. 거, 애들 좀 조용히 시킵시다.”

늘 구름의 윤길학은 그 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눈총을 줬다.

“아, 죄송합니다. 애들아 조용히 있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선물도 받고 그러지.”

“하여튼 못 배워먹은 것들은. 쯧. 괜히 이런 걸 기획해서는.”

윤길학은 원장의 중재에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 직원의 조언에 따라 일을 추진 할 때만 해도 괜찮다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우르르 와서 자리를 잡고 보니 이렇게 정신 사나운 게 또 없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데?’

게다가 행사 예정 시간이 다 돼 가는데 도통 소식이 없다.

“야, 석진아. 서울에 가 있는 애들하고 연락 됐냐? 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

“그게 좀 딜레이 되고 있나 봐요.”

“딜레이? 왜? 뭐하는데 아직도 안 내려와?”

“서울 시장이 왔다나······”

윤길학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서울 행사는 부산 행사 이전의 요식행위.

유명 인사도 따로 초대하지 않았다.

서울 시장이 찾아왔다면 그건 약속에 없던 행동일 뿐이다.

“미치겠네. 얼마나 더 걸릴 거 같다냐?”

“모르겠어요. 시장이 영화 팀 축하한다고 사람 다 잡아놓은 터라.”

“아, 미친. 그 인간은 왜 멋대로 나서는 건데? 우린 뭐 어쩌라고?”

“어떻게, 행사 좀 뒤로 미룰까요? 저기 애들도 복도에 계속 기다리기 힘들 거 같은데.”

“야.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때냐? 저 거지 떼들은 그냥 둬. 넌 서울 일정이나 수시로 체크하고.”

“······네.”

윤길학이 직원의 말을 일축했다.

복도에 모여 있는 고아원 애들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대관료 대 줄 것도 아니고. 짜증나네.’

돈이 문제였다.

#

진호는 간신히 표정을 유지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기존의 행사를 끝내고 부산에 도착해야 정상.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서울 시장 덕분에 일정이 한참이나 딜레이 돼 버렸다.

이미 시간은 늦어서 부산으로 가기에는 무리.

하루를 더 서울에서 묵고 일찍 움직여야 할 판이다.

“그 양반 어지간히도 짜증나게 하네.”

“네가 참아라. 촬영지 옮긴 건으로 별별 소리를 다 들었잖아. 나름대로 유권자 눈치를 살피는 거지.”

“그럴 거면 미리 일정을 잡든가. 대뜸 나타나서 뭐하는 거래요. 부산도 못 가고 일정만 늦춰지고.”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

송학의 다독임에도 진호의 화는 쉬이 풀리지 않았다.

일정이 밀린 탓에 여차하면 몇 시간의 여유도 날아갈 판이었다.

“하여튼 뭐 내일 새벽에 움직인다고 하니까 눈 좀 붙여 둬.”

“부산에서는 별 일 없었대요?”

“거기도 하루 딜레이 된 덕분에 이래저래 고생이지. 듣기로는 고아원 애들도 나왔다고 하던데. 잘 쉬고 있나 모르겠네.”

“어구. 고아원 애들이요?”

“어. 우리 촬영지에 있던 고아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됐잖아. 그쪽 애들이래.”

진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것도 같았다.

“새벽부터 가면 애들 힘들지 않을까요?”

“뭐······일정 취소 됐으니까 미리 가서 쉬고 있지 않을까? 애들도 너 보는 거 기대한다고 하던데. 좋아 할 거야.”

“선물이라도 하나 사갈까요? 애들이면 과자 같은 거 좋아하려나?”

“아이고. 또 일 벌리려고?”

“하하. 애들이잖아요.”

진호가 침대에 누워서 선물이 될 만 한 것들을 떠올려 봤다.

선물을 받고 좋아 할 아이들의 얼굴 역시.

‘좋아해 주겠지?’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아니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만의 상상이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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