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6. 사고(2)
양 손에 붕대.
다행히 이번에도 상처는 깊지 않았다.
진호가 통증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힘을 뺀 덕이었다.
겉가죽만 살짝 베인 채 멈췄다.
“이 정도면 확실히 고의야.”
문제는 상황이었다.
소품이니 차체가 무너지고 설탕 공예품이었어야 할 잔이 실제 유리잔으로 교체되었다.
한 번이야 그냥 사고라고 하지만 두 번은 아니다.
이건 누군가 고의적으로 촬영을 훼방하는 것이다.
그것도 진호를 중심으로.
“이대로 계속 촬영을 이어가도 되는 거냐?”
“멈출 이유는 없어요. 여기서 멈춰주면 그 누군가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는 거죠. 최대한 스케줄대로 촬영은 진행 할 거라 전해주세요.”
촬영도 잠시 중단되었다.
두 번이나 연달아 사고가 발생했으니 제작사 측에서도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소품 담당자와 재고 관리인등을 모두 불러서 전수 조사를 했다.
하지만 특별한 이상함은 발견 할 수 없었다.
촬영장이 관리감독이라는 것이 교도서처럼 엄중한 것도 아니고 틈이라면 넘쳐났다.
용의자를 특정 지을 수 없었다.
“허어. 이거 귀신에 곡할 노릇이군.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그건 제가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네요.”
결국 며칠 동안 흐지부지 조사를 하고는 촬영이 재개되었다.
다들 괜찮다, 괜찮다 입으로는 말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촬영 자체가 삐걱거렸다.
‘대체 어떤 놈이지?’
가장 잡고 싶은 건 진호였다.
#
— 쥐새끼를 잡는 것에 병법은 의미 없지.
— 틈을 주어 적을 끌어들이는 것이 용병술의 이치.
— 친절한 가면에 속지 말 것이외다.
— 관찰해라. 관찰. 모든 것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진호가 감았던 눈을 떴다.
사고가 발생하고 이틀 뒤.
국내에서 찍는 마지막 씬이었다.
빌 고튼이 먼저 단독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형. 촬영 스텝들은 전부 고정되어 있나요?”
“스텝들? 일부는. 자주 사람이 바뀌는 쪽도 있고. 그건 갑자기 왜?”
“첫 번째 사고가 난 날과 두 번째 사고가 벌어진 날. 공통되게 현장에 있던 스텝의 숫자는 전부 서른여섯 명. 그리고 오늘 보이는 건 전부 스물넷이네요.”
“······그걸 전부 셌다고?”
촬영 현장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이 상주한다.
기본적인 영상, 오디오, 장비, 관리책임자를 비롯해서 연예인 각각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 등.
한 영화를 위해 모였지만 저마다 소속도 다르고 인사 한 번 안하고 끝나는 관계도 여럿이다.
그렇기에 진호는 직접 눈으로 이들을 셈했다.
“관리명부는 불확실하니까요. 어제 오늘만 해도 누락된 사람 숫자가 여덟이에요. 그걸 믿느니 내가 직접 세는 편이 낫죠.”
“그러냐?”
“특히 우리 영화는 내국인 외국인이 섞여 있잖아요. 아무나 슥 들어와서 영어로 뭐라 하면 속기 쉽죠.”
스텝별로 목에 거는 카드는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일일이 다 체크 할 것도 아니고 허술한 것은 매 한가지였다.
“그래서? 그렇게 쭉 보니까 뭐가 보여?”
“저기, 음향 쪽에서 일하는 석군 씨. 남들 몰래 장비 훔쳐가는 거 같아요. 들어 갈 때는 가벼웠던 가방이 수량 체크 끝나면 무거워져 있죠.”
“그, 그러냐?”
“그리고 저쪽에 수향이 누나. 형한테 관심 있는 거 같아요. 시간 날 때 데이트 신청 해 봐요.”
“진짜냐?”
“네. 곁눈질로 살피기도 많이 하고, 저번에는 사람들 앞에서 형 칭찬도 했어요. 관심 있는 게 아니면 장기매매 노리는 거니까 잘 선택해 봐요.”
작정하고 살펴 본 건 아니지만, 집중하고 되짚어 보니 그동안 누적됐던 정보들이 상당했다.
조조의 통찰력과 셜록의 관찰력.
그리고 제갈량의 명석한 사고력을 합치면 어지간한 컴퓨터보다 낫다.
“범인은?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거 같냐?”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요. 대충 몇 명 정도는 눈여겨보고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진호는 북적거리는 수십 명의 사람 중에서 용의자를 추려냈다.
“누군데?”
“있어요, 몇 명. 콕 집어서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뭐, 특별히 발견 한 점이라도 있었어?”
“반응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 할 때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 있잖아요.”
“그래?”
일을 벌이고자 하는 자라면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기에 촬영 녹화 본을 토대로 사고 순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날짜별로 확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고에 놀랄 때 몇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타고나기를 침착해서 일수도 있지만 일단은 의심스러웠다.
“그럼 뭐하고 있어? 당장 감독님이든 경찰이든 알려야지.”
“알려서 뭐라고 하게요? 안 놀라서 범인이라고 말 할 건가요? 발뺌하면 그만이에요.”
“그건 그렇지만······”
“일단 두고 봐요. 어차피 국내 촬영은 이것으로 끝이고, 프랑스로 넘어가면 둘 다 따라오지 않는 걸로 알아요. 속셈이 더 있으면 그 전에 뭔가를 하겠죠.”
“뭔가를 더 한다고?”
“네. 처음, 차량 사고는 굉장히 위험했죠. 하지만 유리잔은? 급조된 느낌이에요. 아마 계획대로 일이 안 되자 급하게 뭐라도 한 거겠죠.”
느낌 자체가 아예 다르다.
전자의 것이 살의라면 후자는 장난이었다.
‘그냥 그만 둘 것 같진 않단 말이야.’
손끝에 남은 비눗기라고 해야 할까.
진호는 이 일이 그냥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
빌의 촬영분이 모두 끝났다.
남은 건 두 사람이 함께 한국을 등지고 떠나는 장면.
간단하게 두 사람 뒤로 배경만 담으면 되는 씬이라 어려울 건 없었다.
[준비 됐습니까, 진호?]
[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마무리 하죠]
[같은 생각이네요]
이내, 촬영이 스탠바이에 들어갔다.
진호와 빌이 눈짓으로 자리를 맞춘 뒤 신호를 기다렸다.
팍, 하고 조명이 들어왔다.
“—위험해!!”
다급한 비명이 들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조명에 시린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을까.
무언가 크고 무거운 것이 갑자기 촬영장으로 돌진했다.
진호는 볼 틈도 없이 몸을 옆으로 날렸다.
쾅, 쾅.
무너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진호! 진호! 괜찮은 거냐!?]
다행히 빌도 무사한 듯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호는 황급히 몸을 돌려서 일어나려 했다.
‘큭!’ 하지만 발목이 욱신거리며 몸을 잡아 끌었다.
황급히 피하는 과정에서 발목을 삔 것이다.
‘트랙터?’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덮쳤던 검은 물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동용으로 사용하던 트렉터였다.
운전석에는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왜, 왜 안 맞아? 왜 안 맞는 거야?”
트렉터 위에 앉은 남자.
그는 운전대를 손으로 잡은 채 몸을 들썩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어딘가 분위기가 기묘했다.
‘정비팀의 왕호순.’
진호는 남자를 알아봤다.
그가 용의자로고 점찍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왜 안 맞는 거냐고!?”
“젠장! 다들 나한테서 떨어져!”
콰르륵,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바퀴.
왕호순이 다시 트렉터를 몰아서 진호에게 달려들었다.
진호는 사람들을 황급히 물리고는 빈 곳으로 뛰었다.
드륵드륵 말려 들어가는 바퀴 소리가 공포였다.
‘바로 뒤.’
그에게 여러 전생이 있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상산의 조자룡이 알려주는 감대로 몸을 날렸다.
“큭—!”
지독하게 욱신거리는 발목.
간신히 트렉터는 피했지만 몸이 성치 않았다.
바닥을 굴러 시야를 확보 한 뒤 손에 닿는 대로 막대기 비슷한 것을 쥐었다.
‘시팔······송학 형 말대로 먼저 조치했어야 하는데.’
어중간한 영웅심으로 일을 키웠다.
애초에 뭔가 일이 생길 거 같으면 경찰이든 뭐든 맡겨야 했다.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호는 조운도, 조조도, 제갈공명도 아니었다.
그냥 일개 배우일 따름이었다.
“으아아아! 왜 안 맞냐고! 맞아! 맞으라고!!”
저런 미친 사람을 상대로 배우가 뭘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서 되는 걸까?
특별함에 너무 심취해서 해서 될 것과 그렇지 못할 것을 혼동하고 만 것이다.
‘쯧. 그건 그거고······!’
진호가 입술을 씹었다.
자책은 나중에 몰아서 해도 될 일.
지금은 저 미치광이의 위협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은수 선생님은 내거야. 내거라고. 네놈에게는 안 줘.”
“······은수? 여은수 선생님?”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여은수라면 진호가 다녔던 정신병원의 담당의다.
연기를 하면서 발길을 끊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연락을 지속했다.
그 이름이 왜 저 미치광이의 입에서?
“주, 죽어! 그냥 죽어버려!”
알려면 일단 살아야 한다.
방향을 돌려서 달려오는 트렉터를 보며 진호가 심호흡을 했다.
다친 다리로는 제때 피하기 어려웠다.
방법이 있다면 자신이 아닌 트렉터가 피해가 하는 것 뿐.
꾸욱.
무언가의 지지대.
쇠로 된 막대기를 손에 쥔 채 힘을 주었다.
‘지금!’
순간을 포착하고 그대로 던졌다.
은색의 막대기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왕호순이 쥐고 있던 운전대 사이에 틀어박혔다.
“뭐, 뭐야!?”
이물질에 놀란 왕호순이 손을 휙 돌렸지만 막대기가 방해가 되었다.
자체가 한 쪽으로 기울다가 관성을 타고 넘어졌다.
쾅. 콰르륵.
커다란 트렉터 옆면이 바닥을 타고 진호 쪽으로 미끄러졌다.
흙바닥이 파이며 길다린 도랑을 하나 팠다.
“후우.”
그 고랑의 끝은 정확하게 진호의 발치까지 이어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미끄러진 트렉터가 그의 앞에 멈춰 선 것이다.
“이 미친 새끼야. 네놈이 은수 선생님을 어떻게 아는 거냐!?”
진호의 목소리는 사나웠다.
#
촬영은 중단되었다.
경찰이 오고 소식을 주워들은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다.
어떻게 쉬쉬하면서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인간도 같은 병원 출신이라는 거죠?”
하루가 채 지나기 전.
진호는 왕호순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진호와 마찬가지로 여은수 아래에서 치료를 하던 환자였다.
물론, 이 정보가 공개된 내용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문제가 된 건 예전 ‘정신병자’소동 때.
“저에 대한 소문이 퍼졌을 때 말이죠. 근데 그건 TM의 수작이었지 않나요?”
“그랬지. 근데 알고 보니까 TM 쪽도 소스를 받아서 쓴 거였나 봐. 당시에 해킹으로 유출 된 정보를 바탕으로.”
“해킹으로?”
“병원에서는 입을 막고 언론은 너한테 집중하냐고 이슈는 안 됐지. 그 과정에서 여은수 선생의 환자 목록도 새어 나갔던 거 같아.”
진호가 기억을 더듬어봤다.
확실히 여은수에 대한 이야기까지 밖으로 새어나갔었다.
“그러니까 그런 인간이 스텝으로 일하다가 절 공격했다 이거죠? 왜요?”
“그야 나도 모르지. 경찰에서 조사를 해 보면 나올 거야. 그래도 굳이 추측해 보자면······질투 아닐까?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그런 거 같은데.”
“나랑 은수 선생님이랑 친해서?”
“편집증이라고 하니까. 뭔 이유든 붙일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 앞뒤는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진호는 뭔가 영 깔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 같은 느낌.
“어휴. 촬영 하나에 참 다사다난하다.”
“······그러게요.”
툭툭, 무릎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