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0. 팬미팅. 그리고 애정전선(3)
그 스타의 그 팬이라는 걸까.
팬들이 들고 나온 장기자랑은 굉장했다.
전직 운동선수라고 격파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인열전에 나올 법 한 곡예를 선보인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현직 댄스팀 멤버도 있었다.
돌림판의 주인공은 쉬이 정해지지 않았다.
[즉흥이긴 한데 저도 도전해 봐도 될까요?]
그렇게 정해진 도전 순서가 지나 갈 무렵.
관객석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한국어 사이에서 들린 영어라 더욱 또렷했다.
[바바라 엘빈?]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올리며 조명을 얼굴을 비췄다.
무대에 오르기 전 송학이 언급한 ‘외국 스타가 와 있어!’의 주인공이었다.
[와. 저 알아봐 주는 건가요?]
[물론이죠. 빌보드 핫 스타, 바바라 엘빈을 모르면 누구를 알까요. 누가 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게 당신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아하하. 저, 당신 팬이에요. 연기 보고 홀딱 반했어요. 회사에도 아무 말 안하고 당신 보려고 한국까지 날아 왔어요]
그녀는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미 그녀를 알아보고 있던 사람들은 ‘게스트인가?’ 등으로 웅성거렸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쏟아지는 영어에 혼란스러워했다.
[나도 이거 참가하고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
[아······그래요. 어차피 즉흥 한 두 명은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후후. 당신을 위해서 작곡 한 노래에요]
엘빈은 커다란 기타 케이스를 등에 메고 있었다.
능숙하게 꺼내서 자세를 잡고는 마이크를 앞으로 끌어왔다.
퉁퉁. 줄을 튕기는 소리에 사람들이 집중했다.
바바라 엘빈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대부분이 알고 있다.
빌보드 탑 찍은 가수가 눈앞에서 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진호와는 다른 의미로 흥분했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나는 깜짝 놀랐어요. 아름다운 멜로디, 아름다운 목소리로 색을 칠하는 사람을 봤거든요······]
단순한 기타 선율에 엘빈의 목소리가 녹아들었다.
녹는 듯 한 목소리가 이런 걸까.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한 꿀과 같아 모든 소음을 집어 삼켰다.
고요해진 무대 위에서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만 흘러넘쳤다.
[······그는 평범해요. 하지만 그는 평범하지 않아요. 그는 웃어요. 하지만 그는 울어요.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 무지갯빛 물고기 같아요······]
잔잔한 멜로디에 잔잔한 목소리.
하지만 그녀가 왜 빌보드 정상을 찍었는지는 노래가 가지는 흡입력에서 이해 할 수 있었다.
폰을 들고 사진을 찍을 법도 한데, 누구 하나 미동도 없이 그 노래에 빠져 들기만 했다.
심지어 진호조차.
[······당신도 나와 같은 걸 보나요?]
마지막 현 튕기는 소리로 노래가 끝났다.
한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고목나무 아래. 둘러앉은 아이들]
[역시!]
엘빈의 짧은 감탄 이후로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환호와 박수갈채 사이로, 두 사람은 은근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바바라 뭐?”
그리고 대기실 쪽 그림자 아래.
바드득, 이 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
엘빈은 압도적인 지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준비되어 있던 돌림판을 돌렸다.
행운이 그녀에게 따르는 건지 ‘?’로 표기된 판이 정확하게 걸렸다.
“이거 너무 민망한데요······”
진호가 준비 한 건 답가.
많이 선보였던 대금 대신에 직접 노래를 연습해서 준비해 왔다.
문제라면 앞선 무대가 너무 뛰어났던 것.
[나, 듣고 싶어요. 못해도 괜찮아요. 그냥 들려줘요]
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조르는 엘빈을 거절 할 수는 없었다.
진호는 머쓱하니 웃으며 답가를 시작했다.
실력?
딱 잘라 말해서 훌륭한 건 아니었다.
목소리가 좋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성량이나 그런 쪽이 타고난 건 아니었다.
그냥 열심히 노력해서 부르는 수준.
[역시 당신은 대단해요]
하지만 답가를 받은 엘빈의 입장은 달랐다.
엉터리 박자에 뒤엉킨 리듬에도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노래라는 건 그랬다.
기계처럼 딱딱 떨어지는 정형성이 아닌, 내면의 감정이 휘몰아치는 폭풍우였다.
난잡해도 좋고, 엉망이어도 좋았다.
순수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지금의 진호가 딱 그러했다.
[나랑 결혼해 줄래요?]
[컥—!]
노래는 이 부분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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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잘 못해도 ‘marry’정도의 단어는 다 안다.
게스트 무대를 준비하고 있던 은서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연예인을 하고 처음으로 별도의 사인 없이 무대로 뛰어 들어갔다.
“노래 주세요!”
그리고 막무가내로 준비했던 MR을 요청했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번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갔다.
그녀는 멍하니 있는 백댄서까지 손짓으로 불러 빠르게 무대를 꾸몄다.
“게스트 무대입니다.”
진호도 대충 눈치를 채고 은서를 소개했다.
엘빈을 무대 뒤쪽으로 끌어당기면서.
그녀가 했던 ‘결혼해 줄래요?’에 대한 답은 일단 모면 할 수 있었다.
“소리 질러!!”
은서의 무대는 매우 강렬했다.
그녀가 아이돌로 활동 할 때 보다 훨씬 더.
강력함이 거의 메탈 벤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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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탕 폭풍 같은 무대가 지나갔다.
엘빈은 다시 관객석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 무대를 즐겼다.
혹시나 또 튀어나와 물어보면 어쩔까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질문 자체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그 정도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놀기만 했다.
“이제 마지막이네요. 절위해 모여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서 한 가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팬미팅은 마지막으로 달려갔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지만······이건 일일 데이트 권이에요. 저와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가볍게 산책을 하는? 무슨 선물을 드리면 좋을까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꺼낸 건데. 괜찮을까요?”
“저요! 저 주세요!!”
“데이트 권!!”
“완전 괜찮아요!”
뜨거운 반응에서 나쁜 선택이 아님을 알았다.
거칠게 외치는 사람 중에 왜 남자가 많이 섞여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럼 앉아있는 좌석 시트 아래쪽을 보세요. 빨간 색 공이 하나씩 들어있을 거예요.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스텝분이 커다란 자루를 들고 지나가면 그 안에 넣어 주세요.”
완전 랜덤.
바로 눈앞에서 추첨을 하고 결과를 발표 할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신이 나서는 공을 집어넣었다.
“와. 은서 씨랑 엘빈도 넣었어!”
“저 둘도 당첨되면 데이트 하는 거야?”
“스캔들 감 아니냐?”
그리고 그 중에는 은서와 엘빈도 있었다.
엘빈이야 원래 관객이었으니 상관없지만 은서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특별석에 자리 잡고 공을 투여했다.
무대의상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그럼 추첨할게요. 혹시 또 모르니까······아, 거기 맨 앞에 계신 분. 나와서 공 하나만 뽑아주시겠어요?”
“저요?”
“네.”
추첨도 팬들 중 하나로 선택했다.
앞줄에서 봉을 휘두르던 팬이 무대 위로 올라와서는 커다란 자루에 손을 넣었다.
휘휘, 손을 휘저을 때 마다 사람들의 눈에 따라 움직였다.
“잡았어요.”
그리고 붉은 공 하나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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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는 하늘을 저주했다.
며칠이나 정성을 드렸던가.
평소 안 가던 교회까지 가서 아주 손이 발이 되도록 기도했다.
근데 결과는 어떤가?
[우리 데이트 하는 건가요?]
여우같은 계집이 당첨됐다.
붉은 공에 적힌 번호를 확인하고 방방 뛰는 모양새가 아주 얄밉기 그지없다.
[결과는 결과니까 데이트는 해야죠. 근데, 엘빈. 이렇게 사적으로 움직여도 괜찮아요?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하나요?]
[괜찮아요. 사생활은 절대로 터치 하지 않는 게 계약 조건이었거든요. 아, 나 너무 기대돼요. 우리 어디부터 가나요?]
[지금 바로요?]
[네! 지금 당장 가요! 나, 기대 돼서 참을 수 없어요]
게다가 뭐가 그렇게 바쁜지 날치기로 진호를 훔쳐가려고 한다.
스케줄이니 뭐니 말을 해도 안 통했다.
한 동안 고민하던 진호도 ‘차라리 오늘 끝내자.’라며 데이트를 수락했다.
지조 없는 남자 같으니.
“언니. 송학 오빠 번호 알지?”
“어. 알긴 아는데, 왜?”
“어디로 움직이는지 좀 알아봐 줘.”
여자, 은서.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고 말겠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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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진호는 엘빈과 함께 자주 가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물론, 매니저와 촬영을 위한 스텝도 동행했다.
[한식당으로 갈까 하는데. 괜찮아요?]
[나, 한국 요리 좋아해요. 김치찌개, 된장찌개. 그리고 삼겹살! 삼겹살 아주 좋아해요!]
[한국에 와 본 적 있어요?]
[아뇨, 처음이에요. 진호 보고 한국에 가겠다고 근처 한식당에서 먹어 봤어요]
[날 보기 위해서?]
농담인가 싶지만 생글생글 웃는 엘빈은 그런 기미가 없다.
하지만 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엘빈. 기분 나쁘게 듣진 말아요. 혹시 미국에서 따로 프로그램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죠?]
[프로그램?]
[네. 리얼리티 쇼라든지, 그런 거요.]
[아. 진호, 지금 날 그렇게 보는 게예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딱 노려보는 엘빈.
[난 지금 휴가에요.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진호 보러 한국에 왔어요. 프로그램이니 뭐니, 그런 건 전혀 없다고요]
[미안해요. 엘빈 같은 스타가 날 위해 그렇게까지 해 줬다는 게 신기해서]
[스타인게 중요해요? 난 그냥 엘빈이에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서 온 엘빈]
하지만 금세 화를 풀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순수한 소녀 같아, 진호도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여자를 상식으로 상대하는 건 어려울 일이었다.
[여기에요. 매운 건 좋아해요?]
[나 매운 거 잘 먹어요. 고추도 먹어 봤어요]
[하하]
엘빈이 오독오독 씹는 시늉을 했다.
진호도, 매니저 송학도.
따라온 스텝도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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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는?”
약간 어두운 실내.
모자를 푹 눌러쓴 은서가 물었다.
“안쪽, 화장실 기준으로 두 번째 칸.”
“고마워, 오빠.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걸리지나 마라.”
고개를 끄덕이며 은서가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명한 한식당답게 사람이 복작거리고 있었다.
사전에 파악해둔 정보를 따라 자리를 정하고 미리 앉았다.
“어서 오세요~!”
이내 밝은 톤의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진호를 포함한 방송팀이 들어온 것이다.
오는 길에 섭외를 해 둔 터라 일행은 정해진 위치로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은서가 등진 자리였다.
“언니, 확실하게 할 수 있지?”“그럼. 내가 미국 유학만 1년 반이라고. 말은 못해도 알아드는 건 기똥차게 해.”
보조로 매니저 언니를 동원했다.
날도 더운데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는 은서 옆에 찰싹 붙었다.
처음에는 ‘이러면 안 돼.’라고 말리더니 지금은 자기가 더 열심이다.
“왔다, 왔다. 고개 숙여.”
주인공이 자리를 잡았다.
은서 바로 뒤로 진호가 앉고 맞은편에 엘빈이 위치했다.
매니저와 스텝은 옆으로 빠졌다.
최소한의 사람들만 투입되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나랑 결혼 안 해 줄 거예요?]
“푸흐흐흡!!”
은서는 물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