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45화 (45/178)

Chapter20. 팬미팅. 그리고 애정전선(2)

팬미팅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장소를 섭외하고 참가 할 사람을 신청 받았다.

저마다 사연을 담아서 카페에 글을 남겼다.

그 숫자가 천 단위를 훌쩍 넘어갔다.

“여기서 딱 백 명만 추첨하는 거죠?”

“응. 너무 많으면 관리하기 힘들어.”

“후. 다들 오고 싶어 하는 느낌인데. 아쉽네요.”

“설마 그거 전부 다 읽고 있냐?”

“네. 그래도 제 팬미팅에 참가하시는 분들인데 사연 정도는 읽어야죠.”

짧게는 ‘참가하고 싶어요!’, 길게는 인생사다.

진호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폰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참가 사연들을 읽어갔다.

졸린 눈을 깜빡이며 폰에 집중하는 모습에 송학이나 최현석이 대충 하라고 해도 진호는 멈추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허투루 대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같이 못하게 됐어요.”

“아우. 진호야, 하나씩 언제 다 달려고 그래?”

“금방 해요. 나름대로 시간 내서 남겨 주신 분들인데 그냥 무시하는 것도 그렇고.”

“크. 정성이다, 정성.”

추첨에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댓글을 남겼다.

송학은 정성이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진호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런 식의 소통은 언제 해도 즐거웠다.

“형. 형. 참가한 팬들한테 선물 좀 돌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네가 선물을 준비하게?”

“네. 따로 제 사비로 뭘 좀 준비할까 해서요.”

“야. 그런 거 회사랑 얘기하고 해.”

“에이. 회사 차원 말고 제 개인적으로 보답을 하고 싶어요. 어떤 게 좋을까요?”

“참. 너도 별나다.”

송학이 혀를 차면서도 머리는 바삐 굴렸다.

그래도 매니저 짬밥이 있다고 몇 가지 툭툭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일단은 뭐 먹을 게 최고지.”

두런두런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송학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배우에 그 매니저라고.

두 사람도 어느새 닮아가고 있었다.

#

참 많이도 준비를 했다.

팬미팅 진행 상황을 들으며 최현석이 한 말이다.

진호도 차마 부정은 못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과할 정도로 준비 한 것이 많았다.

“어머, 어머. 이거 전부 다 나눠주게요?”

“네. 입구에서 따로 전달하는 편이 낫겠죠?”

“제가 몇 명 추려 볼까요?”

“아뇨. 제가 스텝 몇 분 고용해 뒀거든요. 그분들이 들어오는 순대로 나눠주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건 카페지기 미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가 행사장에 도착 한 건 팬미팅 두 시간 전.

진호의 연락을 받고 하던 일 때려 치고 달려온 것이다.

‘설마 직접 오실 줄이야.’

연락 받고 달려 올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행사장 가면 그냥 매니저와 이야기를 하겠거니, 정도.

헌데, 웬걸.

와보니 진호가 직접 팬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하. 좀 유별나죠?”

“네? 아이고, 아뇨. 이렇게 직접 준비하는 거 알면 다들 기뻐 할 겁니다.”

“그래야 할 텐데. 처음 하는 거라 걱정이 많네요.”

그럼에도 걱정된다고 머리를 긁적이는 진호.

미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 어느 연예인이 이렇게 소탈하고 진솔할까.

연기에 반하고 재능에 놀라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또 인간성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야, 소영아. 대박이지?”

“참 나. 그게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 가게까지 닫고 나와서?”

“어. 어. 하루 좀 쉬면 어떠냐. 이렇게 진호 씨 눈앞에서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완전 계 탔다고. 오늘 기념일로 삼자.”

“아오, 이 아주머니.”

볼멘소리를 내는 소영이지만 한 가지는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평범해도 확실히 사람은 매력이 있었다.

소탈한 듯하지만 사람을 끌어 들이는.

가만히 있어도 무리의 중심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호라는 배우는.

“두 분 출출하시죠? 제가 유부초밥 만들어 왔는데. 한 번 드셔 보실래요?”

“······플러스 10점.”

그렇게 팬이 또 한 명 늘었다.

#

은서는 심호흡을 했다.

할 수 있는 건 분명 모두 하고 왔다.

전날 동서남북 다 돌면서 기도를 드리고, 이른 새벽에는 교회까지 다녀왔다.

지극정성도 이정도 지극정성이 없다.

이만큼 했으면 불쌍해서라도 ‘네가 당첨 돼라.’라며 일일 데이트에 뽑힐 것이다.

“언니. 나 예뻐? 어때?”

“화장 잘 받았네. 웬만한 남자는 한 눈에 반할 거다.”

“웬만한 남자가 아니니까 그렇지. 진짜, 그 인간은 왜 그렇게 눈치가 없는 건지.”

툴툴 거리면서도 거울 보는 걸 잊지 않았다.

몇 시간에 걸쳐서 지지고 볶은 스타일이었다.

청순하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에 옅게 보이는 화장.

포인트를 준 액세서리와 3일에 걸쳐서 공수한 원피스까지.

“그냥 확 날 잡아서 자빠뜨려.”

“언니! 좀!”

“아효. 네가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뭔 소녀처럼 그렇게 망설이고 그러냐?”

“진지하니까 그러지. 진지하니까.”

은서가 가슴을 손으로 꾹 누르며 답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함이었을 따름이다.

함께 한 연기에서 받은 충격.

색다른 매력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이 호감이 되었다.

하지만 가벼운 호기심이 짧은 만남으로 변하기 전에 많은 걸 겪어버렸다.

고향에서 본 그의 모습, 영화로 드러난 그의 재능,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의 반응 등.

많은 걸 알 수록 함부로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스캔들이 터졌을 때 확 잡았으면······’

이런 후회까지 할 정도.

“으이구, 화상아. 너 정도면 충분히 진호 씨랑 잘 어울리니까 걱정 하지 마.”

“나 확 그냥 일 저지를까? 대표님이 나 멱살잡이 하지는 않으려나?”

“잡겠지. 잡으면 그냥 잡혀. 별 수 있나.”

“와. 남 일이라고.”

“야. 어차피 네 인생이잖아. 이거저거 재다가는 다 날아간다? 너, 연예인이 이미지다 뭐다 줄다리기 하면서 자기 짝 못 찾는 거 많이 봤지?”

“말을 해도 꼭.”

대중을 상대하는 연예인에게는 흔한 일이다.

정말로 이미지에 피해가 가서, 혹은 자신이 그런 상황을 두려워해서, 높아진 눈에 만족을 몰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만 날려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알았어. 나 이번에 당첨되면 일 저지른다. 연락 안 돼도 찾지 마.”

“지지배가, 아주 작심했네?”

“응. 진호 오빠가 할리우드 진출해서 쭉쭉 빵빵한 서양 언니들 만나기 전에 승부 봐야지.”

은서가 주먹을 꾹 쥐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걱정해야 할 건 저 멀리 할리우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

진호를 도와서 팬미팅을 돕고 있던 송학은 난감한 상황에 부딪쳤다.

내국인만 모일 거라 생각한 행사에 외국인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외국인이었다.

“저기, 민혁아. 나 좀 도와 줄 수 있어? 외국 분인데 통역이 필요 한 거 같아.”

“외국인이요?”

“어. 저기.”

입구 부근에서 서성거리는 금발의 미녀였다.

척 봐도 170cm는 넘는 키에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했다.

일반인, 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외모가 좋았다.

“아. 맞다. 참가 신청 한 사람 중에 외국인이 있었어요.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남긴다고 했던가? 하여튼 그거 진호 씨가 보고 처리했을 텐데.”

“그럼 진호 불러와야 하나?”

“안에도 바쁠 텐데 그냥 우리가 짧게 묻고 들여보내죠.”

“어. 그래야겠다. 신분만 확인하면 되니까.”

두 사람이 쪼르륵 가서 금발 미녀에게 말을 붙였다.

다행히 신분증은 가지고 있었기에 참가 신청을 한 사람이 본인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엘빈? 바바라 엘빈?”

출입을 위해 모여 있던 사람 중 누군가.

금발 미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한 명이었지만 이내 목소리가 수십으로 늘어났다.

“뭐, 뭐야? 유명한 사람이야?”

“저야 모르죠. 형은 연예인 매니저라는 사람이 이런 것도 몰라요?”

“야. 난 국내 전용이잖아. 내가 외국인을 어떻게 알아.”

두 사람이 이러고 있을 사이.

금발의 미녀 엘빈은 자신을 알아 본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짧게 인사를 건네는 등 자연스럽게 반응을 보였다.

대응 자체가 일반인은 아니었다.

“저기,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결국 송학이 핸드폰 들고 방방 뛰는 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어머. 몰라요? 바바라 엘빈?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 중 하나잖아요. 22살에 싱어송라이터로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른 천재.”

“빌보드······아! 설마, may어쩌고 하는 노래?”

“네. 그거요. 그거 부른 사람이잖아요. 활동 끝나고 미국에서 휙 사라져서 사람들이 궁금해 했는데. 세상에, 한국에 와 있을 줄이야.”

“한국에는 왜 왔대요?”

“모르죠. 근데, 원래 그런 거로 좀 유명했나 봐요. 힙스터 기질? 히피기질? 좀 자유분방하게 행동해서 사건사고도 좀 많고. 그런 스타일이래요.”

송학이 다시 엘빈 쪽을 봤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데 그녀는 거리낌 없이 사람들과 사진 찍고 웃으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럼 뭐야? 진짜 팬으로 참가 한 거라고?’

이것이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송학은 매니저의 본분도 잊은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

진호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팬들을 바라봤다.

분명 이보다 많은 사람의 시선도 받아 봤는데,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달랐다.

애정도가 높은 팬들이기 때문일까.

심장의 고동이 쉽사리 가라앉지를 않았다.

“······백 명. 생각보다 많네요.”

약간은 어색한 목소리로 진호가 말문을 열었다.

핀 포인트 조명 아래에서 잘게 떠는 그 모습을 보며 팬들이 환호했다.

“휴. 이거 생각보다 많이 떨리네요. 시상식 때도 괜찮았는데.”

“괜찮아요! 떨지 마요!”

“꺄아아아!”

“안 잡아먹어요!”

관객석에서 응원인지 뭔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팬들 입장에서는 긴장한 진호의 모습도 신기하고 재밌을 따름이었다.

“일단 참가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쉽게 추첨에서 떨어진 분들은 나중에 또 기회가 올 거라 믿어요. 한 번으로 끝낼 건 아니니까요. 그렇죠?”

“네!”

“반드시요!!”

이건 진호나 팬들이나 한결 같은 마음이었다.

“그럼 우리······팬미팅. 시작해 볼까요?”

“푸하하!”

“해요, 해! 빨리 해요!”

“와아아아!”

팬과 스타의 축제.

시작의 장을 열어젖혔다.

#

진호는 정말로 많은 걸 준비했다.

다른 사람들은 팬미팅에서 ‘이런 것’을 준비한다고 들으면 일단 쑤셔 넣었다.

대관 시간이 부족하면 돈을 더 주어서라도 늘렸다.

최대한 팬들이 많은 걸 즐기고 갈 수 있게 준비한 것이다.

“작중 남호가 마지막으로 나온 장면은?”

“떠나는 미호를 먼발치에서 보는 장면! 마지막 회 22분 35초!”

“저, 정답!”

간단하게는 퀴즈.

드라마나 영화.

예능까지 포함해서 진호에 대한 퀴즈를 진행하고 그에 따른 선물을 증정했다.

이 선물들은 모두 진호가 사비로 준비 한 것.

하나하나 손수 포장하고 손 글씨로 편지까지 동봉해 두었다.

“어머, 어머! 이거 설마······”

“네. 제가 드라마 첫 촬영에서 입은 옷이에요.”

“이런 거 받아도 돼요?”

“그럼요. 세탁은 잘 해 뒀는데, 냄새만 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냄새 나는 게 더 좋은데.”

“네?”

특별 상품으로는 애장품까지 꺼내들었다.

진호에게는 꽤 의미 있는 물건들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하하, 호호 가볍게 웃던 팬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스타의 의미 있는 선물을 탐하지 않을 팬은 없었다.

“어? 저기 돌림판에 적힌 물음표는 뭐에요?”

“저건 특별한 선물이에요. 딱히 물질적인 건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준비를 한 거죠.”

“설마, 허그 찬스 이런 거라도 있어요?”

“음. 글쎄요?”

두루뭉술한 답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재미있는 부분이라면 참가한 팬 중 무려 30%가 남자 팬이라는 점.

하지만 ‘형, 나 죽어요!’, ‘나도 안아보자!’라며 목소리 높이는 남자 팬의 화력은 여자 팬에게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그럼 돌림판을 돌려 줄 사람을 뽑아 볼까요?”

팬들이 꾸미는 무대.

경쟁이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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