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44화 (44/178)
  • Chapter20. 팬미팅. 그리고 애정전선(1)

    “으아아! 이게 뭐하자는 거냐고!?”

    송학수는 분을 참지 못했다.

    이루고 싶은 건 다 이루어야 직성인 그에게 ‘진호’라는 하잘것없는 배우는 역린이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배우일 뿐이다.

    그런 놈 하나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을 보자.

    업계에서 파내려고 소문을 퍼뜨렸는데 그게 되레 그를 빛나게 하는 조미료가 되고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국민배우.

    고난을 극복한 젊은 영웅.

    마약설, 일진설, 폭력설 등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아무리 소문을 부풀려도 진실이 담긴 15분의 다큐멘터리보다 강력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떤 새끼가 이런 짓을 하는 건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

    TM에서 ‘진호’를 찍어내기 위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다는 내용이다.

    방송가 찌라시로 암암리에 번지더니 이제는 몇 몇 종편에서 이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평소 전화 한 통이면 ‘네네, 대표님’하던 것들이 요즘은 연락도 안 받는다.

    “아, 짜증나. 박 팀장! 박 팀장!!”

    일이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박 팀장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꼴이 하나 없었다.

    이른 아침에 화를 못 참고 재떨이를 던진 것 때문일까?

    머리에 상처가 조금 났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박 팀장!!!”

    재떨이를 손에 쥐고 외쳐 봤다.

    #

    며칠 뒤 연예뉴스에 특종이 터졌다.

    3대 기획사 중 하나라고 알려진 TM이 기소가 된 것이다.

    죄명도 화려했다.

    탈세는 기본이고 온갖 유착에 폭행 및 음해 공작.

    줄줄이 나열해도 몇 장은 넘어 갈 만큼 죄명이 길었다.

    대표 송학수가 검찰로 송치되는 장면이 특보로 방영되었다.

    “허, 참. 인생사 알 길 없다더니.”

    최현석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3대 기획사라고 떵떵거리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기소를 당해서 끌려가는 꼴이라니.

    기쁘면서도 서늘한 광경이었다.

    “근데, 어쩌다가 기소를 당한 거래요?”

    “뉴스 보니까 내부자 고발이래. 저기 대표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이 하나 있는데, 장부를 싹 들고 검찰에 투항했다는 거야.”

    “이야. 내부자면 그쪽도 만만치 않을 텐데. 뭔 짓을 했기에 등을 돌렸대요?”

    “나야 모르지. 둘이서 싸우기라도 했나?”

    “별 일이 다 있네요.”

    진호가 땅콩을 오독오독 씹으며 품평했다.

    자세한 내막은 확인 할 길이 없으니 그냥 ‘잘 됐다.’싶을 뿐이었다.

    “저런 거 보면 사람이 죄 짓고 살면 안 돼. 결국 저렇게 벌을 받잖아.”

    “그러게요. 이 세상에도 인과응보라는 게 있는가 보네요.”

    “인과응보. 권선징악. 좋은 말이지. 암.”

    세상사 그런 거 없다 싶은 진호지만, 이번만큼은 최현석 말에 동의했다.

    일이 이 정도까지 잘 끝난 건 기적에 가까웠다.

    과거사를 토로한 다큐멘터리도 그렇고 악의적으로 방해를 하던 TM의 최후도 그렇고.

    ‘어쩌면 그때 그 예감이?’

    문뜩 스쳐갔던 좋은 예감이 어쩌면 이걸 예고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더 안 오려나?”

    “응? 뭐가 말이냐?”

    “아뇨, 아무것도.”

    요행을 바라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

    오도독.

    다시 한 번 땅콩을 씹었다.

    참 맛있었다.

    #

    악의적인 소문은 얼마지 않아 대부분 사라졌다.

    여전히 진호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욕을 하고 있지만 전처럼 동조하는 이는 적었다.

    이젠 진호의 편을 들어주고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 이유로 작게 팬미팅 한 번 하자.”

    “팬미팅이요?”

    “이번에 도움을 꽤 받았잖아. 팬들이 응원을 해 준 덕분에 소문이 빨리 가라앉은 거야.”

    정식으로 팬클럽을 창단한 것도 아니고, 따로 언급을 하거나 관리를 해 준 적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이라 지칭하는 사람들은 열과 성을 다해서 진호를 보호했었다.

    말 그대로 애정에서 나온 활동이었다.

    “팬클럽이라. 저한테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군요.”

    “자식아, 이번에 엄청 늘었어. 내가 보니까 못해도 몇 천 명은 되는 거 같던데.”

    “이거죠? 인터넷 카페, SAHO. 사호? 이렇게 부르면 되나?”

    “어. 그쪽이야. 슈퍼엑터 홍이래.”

    “아, 네······”

    이름은 좀 민망했다.

    하지만 자신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 아닌가.

    게시글도 상당하고 활동사진 등도 여러 종류 별로 모아서 스크랩 해 두었다.

    진호도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자료가 상당했다.

    “네가 직접 가입해서 인증 글 올려. 그리고 이쪽 카페 회장하고 연락해 봐.”

    “인증 글이면 사진 같은 거 찍어서 올리면 돼요?”

    “너, 이런 거 안 해 봤냐?”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글들을 쭉 훑으며 눈을 반짝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 봐 둬. 이 힘으로 연예인 하는 사람도 많거든.”

    팬심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기 시작한 진호였다.

    #

    팬클럽 카페, 사호의 카페지기 미호.

    나름 잘 나가는 현실 커피숍의 주인장이다.

    한 때 드라마에 빠져 살 때 진호의 연기를 보았고 그 날로 팬이 되어서 카페에 가입했다.

    일반 팬으로 활동하다가 카페 지기를 넘겨받은 것이 두 달 전이다.

    초기에는 그냥 좋은 배우 한 명 응원하자 싶은 수준이었던 것이 영화제 이후로는 급격하게 커졌다.

    카페 인원수도 수십 배로 늘어났고 하루에도 몇 백 명씩 가입 문의를 해 왔다.

    “으으. 머리아파. 대체 이런 쓸데없는 애들은 왜 가입 문의를 하는 거야?”

    “언니. 또 카페보고 있어요? 장사 안 해요?”

    “아이고, 이것아. 잠깐만 있어 봐. 이럴 때 분탕종자들 안 걸러내면 카페 망하는 거 순식간이라고.”

    “어느 카페가 본업인지 모르넸네.”

    대학 후배이자, 카페 종업원인 소영이 볼멘소리를 냈다.

    어차피 가게 오너이고 일은 일대로 하는 사람.

    팬카페 운영하는 것으로 불만 가져본 적은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과하다.

    ‘대체 그 사람이 뭐가 좋다는 걸까?’

    연기자라고 했던가.

    얼굴도 평범하고 특별한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꺄아아악!!”

    그 순간.

    노트북을 깨작거리던 미호가 갑자기 비명을 터뜨렸다.

    설거지 하던 소영이 접시를 손에 쥔 채 튀어나갔다.

    “뭐야? 언니, 무슨 일이야!?”

    “이, 이······”

    “이? 이 뭐? 이가 뭔데?”

    “인증 글 올라왔어!”

    “어?”

    접시를 툭 내려놓고 미호 옆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띄워 놓은 화면에 한 남자의 사진이 크게 박혀 있었다.

    ‘인증합니다.’라는 스케치북을 든 모습으로.

    “세상에, 세상에. 소영아, 진호 씨가 인증했다고. 어떡해! 꺄아아아! 난 몰라!”

    “아니, 이 아줌마야 왜 이러세요. 정신 좀 차리고. 뭘 어쨌다고 이 난리야?”

    “인증 했다고! 진호 씨가 카페에 직접 가입 한 걸 인증 해 줬다는 말이야. 이 글 올린 사람이 진호 씨라고.”

    “아. 배우가 직접 글을 남겼다고? 그래서 비명 지른 거야?”

    “응! 응! 세상에, 진호 씨 글도 예쁘게 쓰네. 역시 사람이 참 고와.”

    이런 미친년을 봤나.

    소영은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말을 겨우 막았다.

    고작 인증 글 하나 때문에 비명을 지르다니.

    설거지 하다가 접시를 던질 뻔하지 않았는가.

    “어머, 어머. 팬미팅?”

    “또 뭐가 있어?”

    “진호 씨가 팬미팅 하고 싶다네. 나한테 메시지 남겨 달래. 소영아, 어떡해. 나 심장 터질 거 같아.”

    “아오, 이 철없는 아줌마야. 정신 차려. 저런 거 다 매니저가 남기는 거지. 연예인이 미쳤다고 직접 글을 남기겠어?”

    “아······그런가? 어. 야, 너 너무 냉정하다. 내 달콤한 꿈을 그렇게 날려야 속이 시원했냐?”

    “어, 좀.”

    미호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인증글을 남긴 계정으로 개인 메시지를 남겼다.

    “어머, 어머. 보고 있나 봐.”

    답변은 바로 왔다.

    #

    진호는 고민이 많았다.

    팬미팅 같은 건 처음.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서서 악수만 할까?

    너무 밋밋하다.

    그럼 뭔가 무대를 꾸며야 하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머리는 복잡하고 생각만 엉켰다.

    “후후후. 역시 이럴 때는 선배가 도와줘야지.”

    “그래, 그래. 선배님. 도움 좀 주세요.”

    해서, 진호는 은서를 만났다.

    아이돌 출신으로 팬미팅이라면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자, 일단 팬카페 여론을 좀 보자고. 팬들이 진호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알아야지.”

    “아. 그런 거야?”

    “그럼. 팬들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속되게 말해서 얼굴 보고 반하는 얼빠. 특정 연기나 예능의 한 장면 보고 반하는 부류. 사람 자체에 반해서 팬이 되는 경우 등.”

    “얼빠는 없겠지?”

    “있지, 왜 없어.”

    은서가 흥흥 거리며 팬카페를 살폈다.

    글 리젠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하루에도 몇 십 페이지 가량이 올라오고 있었다.

    영화제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장면 등이 많았다.

    “역시 오빠 연기 보고 반한 사람이 많다.”

    “영화제 이후로 가입한 건가?”

    “응. 수상 소식 듣고 드라마 찾아봤다는 사람이 많아. 예능에서의 활약도 그 이후에 찾아서 봤데.”

    “영화제가 도움이 많이 되긴 했구나.”

    열 명이 있으면 그 중 여덟은 영화제 이후에 온 사람들이다.

    “음. 대충 분위기는 알겠어.”

    “어떤 식으로 팬미팅 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진솔한 분위기.”

    “진솔한 분위기?”

    “응. 보면, 다들 오빠 연기보고 반한 다음에 다큐멘터리로 눈물 쏙 뽑은 사람들이거든. 그러니까 팬미팅을 해도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가는 게 좋아. 사람 대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화려한 게스트에 요란한 볼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팬들이 원하는 건 인간 진호였다.

    은서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를 간파했다.

    “질문과 답변 시간 같은 거?”

    “응. 그런 것도 좋다. 팬들 질문을 미리 받고 오빠가 답을 준비해 두는 거야. 즉석에서 몇 개 받는 것도 좋고.”

    “오케이. 그럼 다음엔?”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혔다 싶으면 팬들만 가질 수 있는 선물을 줘야지.”

    “팬들만 가질 수 있는 선물.”

    “응. 특별함이 있어야 팬들은 오래 남거든. 팬미팅 왔는데 그냥 남들하고 다를 바 없으면 기분이 별로잖아.”

    진호가 손가락까지 튕기며 긍정했다.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라면?

    그 마음은 몇 배가 될 것이다.

    “다른 곳에서 한 번도 한 적 없는 장기를 연습해 볼 게. 팬미팅에 온 사람만 볼 수 있는 걸로.”

    “좋지. 그리고 이왕이면 추첨을 통해서 한 두 명 정도 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도 좋아.”

    “아. 특별석 같이?”

    “응. 하지만 추첨은 공정해야 해. 누군가를 우대하고 그러면 팬들 사이에서 싸움 난다고.”

    은서는 그런 경험이 있었다.

    팬 중 특별히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을 회사에서 특별히 초대했고, 이것이 밝혀지면서 아주 개판이 났었다.

    팬에게는 항상 공정해야 하는 것이 스타였다.

    “혹시 게스트는 생각 있어?”

    “아, 초대 게스트? 내가 딱히 인맥이 없어서. 와 줄 사람이 있으려나?”

    “나, 있잖아. 나.”

    “회사에 말 안 해도 되는 거냐?”

    “히히. 오빠 인기 좋으니까 편승해서 가면 좋지. 회사에서도 별 말 안 할걸? 우리 친한 거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고.”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도 은서와의 인연은 많이 알려져 있다.

    흔히 말하는 친한 오빠 동생 관계였다.

    “아. 갑자기 생각났다. 아까 앞에서 특별한 경험을 시켜 주라고 했잖아. 한 명 뽑아서 일일 데이트는 어떠냐?”

    “어?”

    “거리 데이트 같은 거 많이 하지 않나? 팬과의 하루 데이트. 괜찮을 거 같은데.”

    “······추첨으로?”

    “응. 어때? 괜찮지 않을까?”

    썩 괜찮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뒷말 나오기도 딱 좋고.

    하지만 은서는 아니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

    “좋네. 추첨이면 공정하고.”

    마른 침 꼴딱 삼키면서 긍정했다.

    수십 수백 중 하나에 불과한 가능성이지만.

    그녀는 포기 할 수 없었다.

    “당첨 되면 매우 좋아 할 거야.”

    감추기엔 너무 커져버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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