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41화 (41/178)

Chapter18. 영화제(3)

수상 발표 날이 다가왔다.

진호는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이미 취재진들이 쫙 깔려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에 손을 흔들며 긴장으로 굳어있는 마음을 풀기위해 노력했다.

“긴장 되냐?”

“네. 감독님은 괜찮아요?”

“흐흐. 나라고 멀쩡하겠냐? 그냥 괜찮은 척 하는 거지.”

가장 큰 상은 아니라지만 권위 있는 영화제의 인정이다.

한 분야에서 전념해온 사람이라면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홍 배우님! 박 감독님!!”

“여기 한 번 봐 주세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차에서 내리자 한 무리의 취재진이 달려들었다.

인터뷰 존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워낙 목소리가 컸다.

“결과가 어떻든 영광스러운 자리를 빛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도 결과를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쩔 수 없어 박종찬이 대표로 짧게 대꾸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다 같이 움직였다.

“꼭 상을 받아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 주세요!”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보여 주시길!”

그럼에도 한 두 마디를 덧붙였다.

박종찬은 잠시 멈칫하다,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굳이 대꾸하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진호야. 우리가 국가대표가 된 거냐?”

“그러게요. 언제부터 영화제가 국가 대항전이 된 건지.”

왜 영화 자체를 응원하지 않는 걸까.

두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흔들었다.

#

배정된 자리에 위치하고 사회자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선별된 작품들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수상에 대한 지표나 기준 등을 설명했다.

워낙 작품 하나하나가 훌륭하기에 예단이 어려웠다.

[어떻게 봐? 누가 탈 거 같아?]

[대부분은 예상이 되는데 경쟁 부분의 작품상과 연기상 쪽이 아리송해]

[한국에서 온 영화는 어때? 영화 구성도 치밀하고 배우들 연기도 훌륭했다고 보는데]

[나쁘지 않은 영화라는 건 부인 안 해. 하지만 그래도 고국의 영화와는 비교 할 수 없지. 예술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상영회를 할 때 옆자리에 있던 그 커플이다.

여자는 그래도 많이 마음을 열어 둔 것에 비해 남자는 여전했다.

프랑스 예술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럼 남자 배우는 어때? 연기상 쪽에 유력할까?]

[제법 괜찮았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필 폰소가 더 낫다고 봐. 내면에서 올라오는 연기력이 다르잖아]

[그래? 난 그 한국 남자가 더 낫다고 보는데. 이름이 진호였나? 언어는 낯설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 있어. 굉장히 깊고 진한 종류야. 그런 걸 품은 연기자는 보통 대성하더라고]

[첫 날에는 같이 욕을 해 놓고선! 이제 와서 이러기야?]

[하하. 어쩔 수 없잖아. 좋은 작품을 봤는걸]

두 사람은 한참을 투닥거리다 발표가 임박하자 입을 닫았다.

귀를 쫑긋거리던 진호도 시상에 집중했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사회자의 손에 들린 봉투에만 시선이 쏠렸다.

“수상작은······”

#

아쉽다.

그리고 미안하다.

진호는 그런 감정으로 박종찬을 바라봤다.

작품상은 수상 실패.

대신 진호가 경쟁 부분 연기상에서 수상을 성공한 것이다.

“뭘 그렇게 보는가. 축하해. 아주 축하하네.”

박종찬은 기쁜 얼굴로 진호를 축하해 주었다.

경쟁 작품은 워낙 쟁쟁한 것들이 많았기에 기대감은 별로 없었다.

연기상 쪽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

자신이 선택한 배우가 이런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이었다.

“저만 상을 받아서 죄송해요.”

“받을 만 하니까 받는 거야. 보라고. 저 사람들 모두 너에게 박수를 쳐 주고 있잖아.”

진호가 주변을 둘러 봤다.

수백의 사람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기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모호한 감정이었다.

“가. 수상소감이나 멋지게 하고 오라고.”

“······네!”

진호가 그대로 단상 위로 올랐다.

사회자에게서 상패를 전달받고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이곳에서 보는 시선은 관객석과는 또 달랐다.

무언가를 이룬 자의 자리이기 때문일까.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우선 이런 대단한 상을 제게 주신 영화제와 영화제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진호는 불어로 소감을 표명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미 영어 인터뷰를 통해서 한 차례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어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계열,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손까지 흔들며 환호를 보내 주었다.

[오, 쉣. 저 남자는 불어까지 유창하잖아!]

[멍청아. 그러니까 말조심을 했어야지]

[젠장.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군]

진호 옆자리에 있던 커플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렇게 도움을 주신 감독님과 많은 사람들의 협조로 이런 좋은 영화를 찍은 거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진호는 그 동안 도움 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가깝게는 연기를 시작하게 해 준 아영이나 서훈.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춰 본 은서.

소속사 사장이나 감독 박종찬 등.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도와 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정신병 걸렸다고 미친 놈 취급을 받을 때도 꿋꿋하게 뒤를 받쳐주신 분들.

그 지원이 있었기에 이런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천고의 재능이 있다 해도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진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분들에게 이 상을 돌립니다]

마지막 말은 불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쏟아지는 박수 소리 사이에서 진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

시상식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진호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뛰어난 배우라고, 훌륭한 연기였다고.

한 마디씩 던지며 축하 릴레이를 이어갔다.

[저기. 그때 우리 둘이 하는 말을 전부 들은 겁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옆자리 커플도 있었다.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너무 무례했군요]

[그럼 이제 아시아인에 대해서도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건가요?]

[아, 아하하······그럼요. 편견은 완전히 버렸습니다]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럴 리 있겠는가.

가시 박힌 말에 프랑스인 커플이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로 편견을 버렸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는 함부로 뒷담화 하지 않을 것이다.

[수상 축하합니다, 진호.]

[아. 벨로스 감독님.]

[뤼앙 벨로스!?]

한 술 더 떠서.

축하 무리사이로 뤼앙 벨로스가 나타났다.

그는 친근하게 진호에게 인사를 걸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주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놀랐다.

작품상과 최고상을 제외하고 연기상 수상자를 따로 찾아와 인사하는 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거장이.

[괜찮다면 그때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습니까?]

[네. 인터뷰를 끝내고 호텔로 찾아가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종종 걸어 사라지는 벨로스를 사람들이 눈으로 쫓았다.

그리고 고개를 팍 돌려 진호를 봤다.

대체 저 거장하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는 눈빛이었다.

“벨르스 감독님도 마른안주 좋아할까요?”

하지만 이야기 해 줄 리 없지 않은가.

진호가 어린애 같이 웃으며 농담으로 응수했다.

뭡니까, 무슨 일입니까, 알려 주세요.

병아리마냥 따라오는 사람들이 어쩐지 조금 재미있었다.

‘이런 건가?’

이제야 좀 유명인이 된 기분이었다.

#

영화제가 마무리 될 무렵.

한국에서도 꽤나 번잡하게 일이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제 경쟁부분 연기상 수상.

한국인 배우가, 그것도 채 서른이 안 된 인물이 첫 번째 영화에서 덜컥 상을 받아버린 것이다.

당연히 온갖 매체에서 이 일을 다루었다.

그의 인생이 무엇이고, 그의 철학이 무엇이고, 그의 친구는 누가 있는지.

급격하게 상승하는 인기만큼 궁금증도 늘어났다.

“네가 짧게 하나 하자.”

“진심이세요?”

“그래. 15분, 단편으로. 가능하지?”

서훈은 이른 아침에 국장의 호출을 받고 올라왔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다큐멘터리 하나를 작업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제 연차 몇 년 안 된 FD.

프로그램을 주도 할 입장은 분명 아니었다.

“네가 연줄이 있다면서? 편성해 주면 따올수 있지?”

“일단 시도는 해 볼게요.”

“시도 정도로는 안 돼. 지금 해외에서도 크게 다루고 있다고. 영어와 불어까지 능숙하게 쓰는 젊은 배우 아니냐. 연기력은 부차하고 그 특이함이 꽤나 어필을 하고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외국인이 모국어를 써주는데 싫어 할 사람은 없다.

영어도 그렇고 프랑스어도 그렇다.

빼어난 연기와 더불어 인터뷰와 시상식으로 이어지는 두 번의 언어 자랑으로 해외에서 받은 주목을 받고 있다.

“전화 먼저 해 보고요.”

“그래. 빨리 해 봐라. 너 안 되면 뒤에 줄 선 사람들 한 가득인거 알지?”

“······거, 말씀을 하셔도.”

반 협박 아닌가.

서훈이 투덜거리며 국장실을 빠져나갔다.

#

“괜찮다고? 응. 응.”

서훈은 진호와 통화를 마쳤다.

소속사와 이야기를 해 봐야 알겠지만 자기는 괜찮다는 확인을 받았다.

어차피 진호 쪽 소속사가 거의 그의 의견에 따라감을 알고 있으니 이건 확답과 다를 바 없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확인 받았습니다. 소속사 컨펌만 받으면 진행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가서 필요한 인력이랑 리소스 전부 뽑아 와. 최대한 지원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국장실을 나오면서 한 번 더 환호했다.

FD에서 곧바로 프로그램 디렉터.

이게 고정적인 직위는 아니겠지만 경력에 한 줄 생기는 건 사실이다.

플로어에서 PD로 가는 게 얼마나 힘든가.

이건 거의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격이었다.

“서훈아, 너 프로그램 맡았다며?”

“그거 진짜냐? 너 프로그램 진행한다고?”

“국장님이 프로그램 따로 편성해 준 거 사실이야?”

이미 사내에 소문이 쫙 퍼졌다.

죄다 몰려와서는 서훈을 달달 볶았다.

부러움 반 질시 반이었다.

“아, 근데 서훈아. 너 이거 자신 있는 거냐?”

“당연히 자신 있죠. 제가 진호랑 호형호제 하는 사이 아닙니까. 당장 리옹으로 날아가서 인터뷰부터 따면 그만이죠.”

“그렇게 자신 있으면 과거 얘기도 다 아는 거지?”

“과거요?”

“어. 요즘 찌라시로 돌고 있는 거.”

한 선배가 폰으로 찌라시 몇 개를 보여 주었다.

방송가에서 흔히 돌고 도는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부는 아니었다.

‘정신 병원······’

진호의 정신 병력이 거론되고 있었다.

특히 그 중 하나는 그의 상담의까지 언급했다.

“선배. 이거 출처가 어디인지 알고 계세요?”

“난들 아나. 그냥 며칠 전부터 빠르게 돌던데. 내 감인데 그냥 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 퍼뜨리는 거야.”

“쯧. 심사가 베베 꼬인 분들이 있네요.”

“너, 조심해라. 이렇게 수 쓰는 사람들이면 힘 꽤나 있다는 건데. 프로그램 얽혀서 낙인찍히면 일하기 어려워져.”

짚이는 구석이라면 꽤 있다.

아마 이런 일을 할 능력도 의도도 충분 할 것이다.

기업이 치졸하게 이런 짓을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서훈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 바닥은 엄청 집요하고 치졸하다.

작은 꼬투리 하나로 방송에서 매장시키고 다시는 업계에 발 못 들이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마음에 안 든 인간 하나 찌라시로 묻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게 단순한 찌라시가 아니라는 건데.’

서훈은 진호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나, 그 짜리시들 좀 스크랩 해서 보내줘요.”

“프로그램 맡을 생각이구나.”

“해 봐야죠.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를 잡겠습니까. 게다가 이런 찌라시 하나에 흔들릴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어요.”

진호의 고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있다.

어느 쪽에 투자하겠냐고 묻는다면, 서훈은 단연 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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