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8. 영화제(1)
한 바탕 시끄러운 녹화를 끝나고 얼마 후.
편집을 마친 영화가 개봉되었다.
경쟁작이 그리 많지 않은 덕인지 스크린 숫자는 넉넉했다.
“첫 날 부터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이럴 때는 역시 술 한 잔.
진호는 자주 가던 술집에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일이 바빠서 못 오는 서훈을 제외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시작 치고는 괜찮은 거지?”
“어. 일단은. 제작비 대비해서 이 정도 속도면 무난하게 손익분기점 넘겠어.”
그래도 이런 쪽으로는 은서가 선배였다.
첫 날 집계된 관객수를 보며 앞날을 예상했다.
“언니, 그게 아니죠. 첫 날 딱 보고 사람들 평가가 올라가잖아요? 그럼 그 뒤부터 탄력이 붙는다는 말씀.”
“보통은 가라앉아.”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요. 박종찬 감독님과 진호 오빠의 캐미. 아직 사람들은 어떤 영화인지 감도 못 잡고 있잖아요.”
아영이 땅콩을 씹으며 말을 덧붙였다.
시사회를 본 사람들의 평가가 이미 올라가 있지만, 실제 관객 평가와는 또 다르다.
실제로 관객들 중에서는 평론가 평도 무시하는 사람이 꽤 많다.
“진호 오빠. 관람객 평가 읽어줄까?”
“······나 고문하는 거지?”
“응. 절절매는 모습 한 번 보고 싶어서.”
은서가 킥킥 거리며 관람객 평가를 하나 열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평가였다.
“연기와 플롯이 좋음. 특히 주연 배우인 홍진호의 감정 연기가 인상적. 다만,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길어서 후반부다 늘어지는 경향이 있음.”
“좋은 건가?”
“전반적으로는? 난 후반도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역시 일반 관객하고는 보는 게 다른가?”
“그 추격 부분에 교차 편집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가 화면에 안 나오면 긴장감이 확 떨어지던데.”
“아. 그런가?”
워낙 초반부터 극을 주도하던 진호이기 때문에 그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사라지면 전체적인 긴장감이 떨어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박종찬도 인물간의 교차 편집으로 텐션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자라다는 평이 상당했다.
“아쉽네. 진호 오빠랑 부딪쳐 줄 상대역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야야. 그거 다른 배우들에게 실례야.”
“윽. 그렇네요. 진호, 오빠. 이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요.”
예의상 말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박종찬조차 그렇게 말했었다.
진호 수준의 배역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영화가 두 배는 긴장감 있게 흘러갔을 거라고.
“내가 부족한 거지. 좀 더 연기 호흡을 리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내 연기하는데 바빠서 신경을 못 썼어.”
“뭐래, 이 오빠가. 그렇게 남들 다 신경 쓸 수준이면 이미 황금 여명상 같은 걸 받았겠지.”
“지향점이라 이거지. 지향점. 나 혼자만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올려주는 연기. 얼마나 멋있냐.”
“할 수만 있으면 진짜 대박이긴 하겠다.”
연기에도 방식이 여럿이고 그마다 지향점이 다르다.
이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만 진호는 나름의 방향성을 잡고 있었다.
“아, 악평 올라왔다. 읽어 줄까?”
“······재밌냐?”
“응.”
술자리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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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아영의 말이 옳았다.
영화가 개봉하고 며칠이 지나자 관객 상승폭이 더 늘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이 유입된 것이다.
특히, 형사물이라 해서 식상하다 싶었던 관객들도 세부 내용을 알면서 몰렸다.
더불어 경쟁작이 없는 것도 도움이 됐다.
배급사 쪽에서도 슬금슬금 스크린 수를 늘려서 관객 유입을 더욱 유도했다.
“이야. 이건 너무 티나지 않나?”
하지만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쏟아지는 호평 속에서 악의적인 악평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개중의 상당수는 티나게 작위적이었다.
“누가 일부러 테러하는 걸까요?”
“뻔하지 뭐. TM쪽에서 사람을 풀었거나 아니면 그쪽 팬들 소행이야.”
최현석은 확신했다.
연예계 바닥에서 살다보면 딱 보이는 게 있었다.
혹시, 싶으면 거의 맞고 설마 싶으면 절반은 맞았다.
이번처럼 티 나는 악평은 열 중 아홉은 뻔했다.
“개봉 전에 나간 방송 탓도 있지. 우리야 덕 좀 봤지만 TM에서는 썩 기분 좋지 않았을 거 아니냐.”
“박선호 말이군요.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치졸하게 나오나요?”
“이 바닥이 더럽게 치사하기로는 유명하잖아. 그리고 팬덤에서 주도하는 일이라면 상식은 버려.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고 하는 게 팬덤이야.”
“······무섭네요.”
“무섭지. 아군일 때는 그보다 든든한 사람이 없는데, 적이면 지옥보다 무서워.”
진호의 팬덤은 아직 부족하다.
드라마와 영화로 주가를 올리고는 있지만 흔히 말 하는 스타성에서는 결격 사유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외모.
10대들이 좋아 할 외모가 아니었다.
“그럼 저도 뭐 팬미팅 같은 거라도 해야 하나요?”
“하면 좋지만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이미지를 잘 구축해야 해. 저번에 예능 나갈 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컨셉 같은 거 말인가요?”
“보통은 그런 걸 정하지. 신비주의나 친근함. 이런 식으로. 근데, 난 그렇게 작위적인 건 좋아하지 않아. 그런 컨셉은 결국 다 드러나게 돼 있거든. 네 진솔한 모습으로 이미지를 구축해야 된다고 봐.”
만드는 이미지와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있다.
최현석은 후자의 것을 선호했다.
“진솔한 모습이라. 그러다가 팬들 더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고.”
“······대표님?”
“농담이다. 당장이야 외적인 것 때문에 인기에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연기자는 연기력이야. 탄력이 받기 시작하면 금방 궤도에 오를 거다. 그때까지만 참아. 억울해 하지도 말고.”
“딱히 억울할 것도 없죠.”
애초에 대접 받고 살아온 인생도 아니다.
못생겼다고, 아저씨라고, 나쁜 놈이라고 욕을 먹어봐야 정신병자 취급당하던 과거만 하겠는가.
맞아서 내구성을 올릴 수 있다면 진호는 이미 강철 배때기였다.
“······응? 잠깐만.”
그렇게 잡담과 더불어 업무 메일을 보던 최현석이 멈칫했다.
평소 보던 것과 다른 종류의 메일이 눈에 띈 탓이다.
“리옹 국제 영화제?”
초청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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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세계 3대 영화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리옹 국제 영화제.
다른 두 영화제와 비교해서 조금 더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영화제로 알려져 있다.
진호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 된 것이다.
최현석이 메일을 확인하고 얼마 안 있어 박종찬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 역시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하하.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군요.”
“이게 다 감독님 능력 아닙니까. 리옹에서 그걸 인정해 준 겁니다.”
“흐흐. 듣기 나쁜 말은 아니네요.”
발 빠르게 관계자들을 소집했다.
황천에서도 한국 지부 측, 제작사 임원을 파견했다.
돈 대 주며 영화를 만들었을 뿐 영화제 초빙 같은 건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그쪽에서도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날짜는 어떻게 됩니까?”
“보름 뒤요. 생각보다 촉박하네요.”
“허, 참. 우리 쪽 영화는 어떻게 알았답니까? 보내 준 적 있어요?”
“글쎄요. 개봉작이니 보려면 볼 수 있겠지만······”
최현석도 박종찬도 이 부분에서는 아리송해했다.
아무런 접촉 없이 덜컥 영화제 초청이 온다는 것이 생경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참가해서 나쁠 건 전혀 없으니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수상을 못 해도 참가만으로 영광 아닙니까.”
“그럼요. 배우든 감독이든 이력에 영화제 한 줄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 모를 겁니다.”“흐흐. 안 그래도 이상한 것들이 자꾸 악평 달아서 속상했는데 이번 건을 잘 써먹을 수 있겠네요.”
“암요. 제 영화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히 잘 뽑혔잖아요? 하하하.”
박종찬과 최현석이 나란히 웃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둘 다 나름대로 이 바닥 베테랑.
영화제가 가져온 파급 효과에 대해서라면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상’에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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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영화제 경쟁부분 초청작이 확정되자 악평이 확 줄어들었다.
더불어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일종의 아군이었다.
[웃기시네. 이게 영화제 경쟁부분에 들 수준이라고?]
[야. 너, 뭐냐? 뭔데 주제넘게 이래라 저래라야?]
[영화제에서 어련히 평가한 거 아니냐? 방구석 평론가라고 마음대로 떠들지 마]
[수준이래. 주제에 뭘 안다고]
한 마디 하면 열 마디가 날아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초빙된 영화인데 왜 네가 욕을 하냐는 논리였다.
참 우습지만,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300만 넘었다고?”
이를 두고 순풍 단 돛단배라 하던가.
항해가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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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100만 훌쩍 넘어서 300만에 도달했다.
손익분기점이 80만 정도.
예상치를 150만 정도로 잡았으니 굉장히 가파른 추세였다.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는 것도 있고, 영화제 소식으로 덕 본 것도 있다.
차곡차곡 쌓이는 돈에 관계자들이 모두 좋아했다.
“옷. 이상하지 않냐?”
하지만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좀 큰가? 다른 옷으로 입어 보자.”
“어색하네, 이런 거.”
“회사생활도 하신 분이 왜 이러실까.”
“우린 그냥 편한 복장으로 일했다고. 이런 정장은 어색해.”
진호였다.
영화제 참가 날짜가 다가오자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케줄 빈 은서와 옷을 맞추러 돌아다녔다.
최현석은 스타일리스트, 라고 중얼거렸지만 은서가 째려보는 걸로 방어했다.
“이건 어때? 코발트 블루. 오빠 얼굴에 잘 받을 거 같은데.”
“너무 화려하지 않아?”
“이게 뭐가 화려해. 진짜 아저씨 감성이라니까.”
“크흠.”
진호는 영 어색했다.
정장도 세팅된 머리도.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외면을 만드는 것에는 아직도 서툴렀다.
“저기, 고객님.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 그래주실래요?”
때마침 다가온 점원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담백한 톤의 옷으로 커버하는 쪽이 좋을 거 같아요. 이건 어떠신가요?”
센스라고는 쥐뿔도 없는 두 사람만 내버려 두면 옷만 뒤적이다가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장 직원으로 몇 년 일해 본 그녀 입장에서 진호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깔끔한 게 최고였다.
“어떤가요?”
“훨씬 낫네요. 중요한 일에 참석하시는 건가요?”
“네, 네. 영화제에 초대돼서 가는 길이라.”
“영화제요? 어머. 영화 관계자셨어요?”
“세상에! 언니! 진호 오빠 몰라요?”
“네, 네? 죄송해요. 제가 영화를 잘 안 봐서.”
아이돌 덕질하기도 바쁜 직원 입장에서는 배우라고는 잘 생긴 얼굴로 눈도장 찍은 몇 명밖에는 알지 못한다.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도 배우 하는구나.’
그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와. 진짜 모르나 보네. 오빠, 그러지 말고 극중 배역을 좀 보여줘 봐. 카리스마 있는 모습 있잖아.”
“여기서?”
“그런 걸 보면 떠올릴지도 모르잖아.”
“저기, 고객님들. 안 그러셔도······”
해 봐야 알 턱이 없다.
손사래를 치며 만류하려 했는데 진호는 이미 자세를 잡고 있었다.
맞장구라도 대충 쳐 줘야겠다.
직원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
눈을 깜빡였다.
분명 같은 사람을 보고 있을 텐데.
“어때요?”
“어, 어······인상이 확 달라지네요.”
정말로 확 달라졌다.
부드럽고 특이함 없는 얼굴이 사납고 날카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눈썹하고 눈매 조금 바뀐 것뿐인데.
사람이 이렇게 달라 질 수 있나 싶었다.
“잠깐만요. 그런 느낌이면 이 옷도 어울릴 것 같아요.”
직원은 올 블랙 슈트를 가지고 왔다.
라인이 타이트하고 어딘가 느낌이 강한 옷이었다.
“와. 이거다.”
“······”
진호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은서는 박수부터 쳤다.
그리고 직원은 말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인상이 바뀌었다 싶어서 옷도 한 번 매칭해 봤는데, 사람이 또 변해버린 것이다.
전이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면 이번에는 007같은 스파이 느낌이다.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하지만 매력적인.
나쁜 남자의 매력이 온 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저기. 평소처럼 표정 풀어보실래요?”
“아. 이렇게요?”
진호가 표정을 다시 풀었다.
그러자 007은 사라지고 다시금 회사원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본 것이 있기 때문일까?
직원은 그 모습조차 어딘가 강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포토라인에서는 아까처럼 배역을 연기하세요. 그 편이 훨씬 낫겠네요.”
“그렇군요. 배역으로 초빙되는 거니까. 일리가 있어요.”
“뭐. 그렇죠. 배역으로.”
한 번 탄력을 받았으니 그 뒤는 쉽다.
진호는 여러 종류의 정장을 구입했다.
돈이 수백 깨졌지만 아깝지 않았다.
“진호? 배우라고?”
그리고 여기.
새로운 것에 눈 뜬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