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25화 (25/178)

Chapter10. 예능도 한 번(2)

“길거리 노래방?”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

회사로 섭외 문의가 들어왔다.

케이블에서 진행 중인 신규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카피해서 새로 만들었잖아. 사람 많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노래 고수를 찾는 포멧이야.”

“게스트는 역할이 뭔데요?”

“많지는 않아. 대부분이 리액션 정도? 참가자들과 대화하거나 노래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 하는 게 전부야.”

“비중이 높지는 않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주가 되는 건 참가자들이니까.”

비중이 적다는 말에 진호는 안도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꼈다.

“출연하는 것이 좋을까요?”

“딱히 나쁠 건 없어. 비중은 없어도 크게 예능 식으로 이미지가 소모 될 것도 없으니까. 그냥 인지도 펌핑식으로 잠깐 나갔다 오면 될 거 같아.”

“그것뿐인가요.”

“따로 재주가 있으면 다르겠지만.”

“따로 재주 있으면 달라요?”

“게스트가 나와서 재주를 선보이기도 하니까. 배역 외적으로 매력 어필을 해서 나쁠 건 없지.”

어디까지나 요즘은 자기 어필 시대다.

배우라고 배역 자체로만 자신을 소개 할 필요는 없었다.

“재주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재주가 있을 때의 이야기.

진호는 인생을 되짚으며 생각해 봤다.

재주라 할 만 한 것이 있을까, 하고.

#

역시 없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진호는 결론을 내렸다.

한 평생을 뒤져봐도 남에게 자랑할 만 한 재주는 전무했다.

운동을 잘하는가?

아니다.

노래를 잘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특별나게 다루는 악기라도 있는가?

리코더조차 불지 못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까 너무 비참한데.”

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도 하나 쯤 있지 않을까, 싶던 그의 바람은 완전히 박살난 후였다.

이래서야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박수 셔틀로 끝날 판이었다.

“······아니지. 난 특기가 없어도 다른 이들은 많잖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생 체험으로 광고 회사에서 일했던 진호다.

연기도 전생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 남에게 보일 재주 하나 쯤 전생에서 빌려 올 수 있지 않을까?

‘말 그대로 전생을 체험하는 거니까.’

문제라면 방법.

“전생의 악사를 연기하면 될 거 같긴 한데.”

수많은 전생 중 유명한 악사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을 전생과 접목시키면 몰입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재주라고 말하기 어렵다.

자신이 재주라고 말 할 수 있으려면 직접 자기 손으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기도 빌려서 하면서.”

고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전생을 빌려와서 하는 연기가 과연 자신이 연기가 맞는지에 대한 고민.

전생을 가다듬고 배역에 맞는 형태를 빚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그 능력을 체화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편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계속 거짓으로 자신을 채워 갈 순 없지 않는가.

재능을 쓰되, 그것에서 배우는 사람이고는 싶었다.

그래야 적어도 ‘오늘은 한 컷 땄어요!’라며 톡 보내는 하윤이 같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그래. 해 보자. 전생 체험 학습 코스라면 강남에서도 못 누리는 사치잖아?”

할 수 있다.

전생을 깊고 깊이 탐험해서 그 사람의 재능과 연습 과정마저 배워오면 되는 거 아닌가.

정말로 누군가 일생(一生)을 체험하는 것이다.

#

며칠 뒤 강남의 한 거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촬영 스텝들 사이로 진호의 모습이 엿보였다.

조금은 긴장한, 그런 얼굴이었다.

“이거, 이거. 섭외 받아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선배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그럴까?”

그 옆에 서 있는 건 유석재.

평소처럼 이른 시간에 촬영장을 찾아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들었고?”

“네. 길거리에서 노래 고수를 찾는다. 맞나요?”

“프로그램 주인공은 참가자들이니까. 너무 부담 안 가지고 해도 될 거야.”

“리액션만 잘 하면 된다 이거죠?”

“하하. 잘 알아 듣네.”

찰떡같이 답하는 진호를 보며 유석재가 웃었다.

예능도 절반 이상이 대본으로 굴러가지만 결국 반응하는 건 사람.

눈치 좋고 반응 빠른 사람이 잘 녹아든다.

유석재는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아, 또 먼저 와 계시네.”

“왜 이렇게 부지런해요. 우리도 빨리 나온건데.”

곧이어 다른 출연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모두가 잘 나가는 예능인이었다.

유석재를 중심으로 진호를 소개하며 두런두런 인사를 나누었다.

“하하.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게스트니까 잘 웃고 잘 박수치고. 딱 그러고 가면 돼.”

“네, 선배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이 최선까지는 됐고. 너무 잘하면 우리가 할 게 없잖아. 적당히. 적당히. 응?”

“네! 최선을 다해서 적당히 하겠습니다.”

“푸하하. 마음에 드네, 이 친구.”

그 안에서 진호는 유들유들하게 녹아들었다.

예전, 회사 생활을 하던 그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

바짝 얼어서 답도 겨우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쳐간 많은 전생들이 보는 것도 대하는 것도 전부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아, 그래. 서 PD가 물어보던데. 혹시 따로 자랑 할 만 장기 같은 거 있나? 우리 게스트 소개 할 때 짧게 빼곤 하는데.”

“아, 장기요······”

“없으면 그냥 넘어가도 돼.”

“장기라고 말 할 수준은 아니지만 악기 하나를 좀 다루거든요. 혹시나 해서 가져와 봤는데.”

진호가 촬영장 구석에 놓인 검은 색 케이스를 가리켰다.

꽤나 큼지막해서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이야, 이 친구. 미리 준비하고 있었구만.”

“역시 요즘 나오는 친구들은 다 준비성이 좋아.”

“무슨 악기인데? 혹시 뭐 리코더나 그런 건 아니지?”

“코로 부는 거면 인정해 줄 수 있는데.”

쏟아지는 잡설에 진호가 후다닥 뛰어가 악기를 들고 왔다.

현실에서 하루.

전생에서 반평생을 갈고 닦은 악기였다.

“대금입니다.”

“대금!?”

이번만큼은 유석재도 놀랐다.

#

프로그램 메인 PD 서동학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작가들이 사전 통화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다.’라는 정보는 확인해 두었다.

하지만 어차피 짧게 지나가는 장면.

기타 정도겠지, 하고 대충 넘어갔었다.

그런데 대금이라니.

“따로 배우신 건가요?”

“그냥 뭐 취미로요. 모양새가 좀 이상하려나요?”

“아. 대금. 어······”

“아이고, 서 PD. 뭘 또 고민하고 그래요. 길거리에서 대금. 이거 장면 죽이는데.”

망설이는 서PD와는 다르게 유석재는 반색했다.

프로그램 전체와는 모양새가 안 맞을지 몰라도 특이함은 항상 특별함이 되는 법.

길거리에서 대금이라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장면을 또 어디에서 보겠는가.

“그럼 짧게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에헤이. 우리 서PD. 한 동안 쉬더니 왜 이러실까. 지금 먼저 듣고 촬영 들어가면 반응이 약하죠. 세팅하고 바로 촬영분에서 연주 들어 봅시다.”

“아, 좀 불안한데.”

“아니다 싶으면 빼면 되고. 생방도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죠. 에이. 그럼 석재 씨 말 대로 가 봅시다. 다들 스탠바이 하고.”

결국 유석재의 말대로 촬영장이 세팅되었다.

기웃거리며 모여든 청중이 벌써 수십이었다.

“아, 오늘 대단한 게스트가 나온다고 하네요.”

“그래놓고 우리 중에 한 사람 또 돌려쓰는 건 아니죠?”

“에헤이. 그럼 나 오늘 안 하고 갈 거야.”

“자기야, 그냥 가. 안 말려.”

“아, 좀 말려줘요!”

PD의 신호가 떨어지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짧은 인사말, 소소한 꽁트, 프로그램 시작 멘트로 서두를 채웠다.

“그럼 오늘의 게스트를 만나 볼까요?”

그리고 적당한 시점에서 유석재가 진호를 불렀다.

앵글 밖에 서 있던 진호는 큰 걸음으로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유석재를 비롯한 출연자들과 주변에서 구경하던 청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와. 뜨거운 열기. 최근 들어 가장 핫한 남자. 나쁜 남자가 바로 이것이다. 홍 진호 씨를 소개합니다.”

“오! 남호다, 남호!”

“호호 커플! 호호 커플!!”

“배우님이다!”

처음 보는 것처럼.

출연자들은 능숙하게 반응해 주었다.

주변에 모인 청중들도 진호를 알아보고는 ‘남호!’, ‘호호 커플!’이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내 주었다.

드라마 종영하고 일주일도 넘은 시점.

여전한 인기였다.

“듣자하니 진호 씨 재주가 아주 많다고 하던데.”

“아니, 재주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배워 둔 거 하나 둘 정도?”

“오. 저렇게 겸손하면 꼭 대단한 거 들고 나오던데.”

“한 번 봅시다!”

자연스럽게 몇 마디 대화가 진행되고 게스트가 거쳐 가는 장기자랑으로 이어졌다.

아이돌이 나오면 보통 춤을 추고 가수가 나오면 노래를 한다.

연기자의 경우는 자신의 배역을 짧게 연기하는 정도.

악기를 가지고 어필하는 경우는 많이 없다.

“뭐야? 악기야?”

“길쭉한데. 피리라도 부나?”

“피리면 그것도 나름 웃기겠는데?”

“알고 봤더니 리코더고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기에 프로그램을 알고 주변에 모여든 청중들의 반응이 다양하게 갈렸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다.

“대금입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들어봐 주세요.”

“대금!?”

“대금이라고?”

그 반응은 진호가 대금을 들고 나왔을 때 절정에 달했다.

훙······

하지만 대금에 바람을 불어넣자 소음은 잦아들었다.

낮고 잔잔하게 퍼지는 음.

넓은 평원 위를 스쳐가는 바람처럼.

흔들림 없이 단단한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아.”

“오.”

소리가 변한 건 중간 부터였다.

평원을 타던 바람이 험준한 계곡을 만나 굽이굽이를 넘기 시작했다.

무거운 음이 날 선 소리를 냈다.

벼락같기도 하고 삭풍 같기도 했다.

소리에 가슴이 베이고 굴곡에 마음에 저며졌다.

그러다 쿵.

소리가 다시 무겁게 떨어졌다.

처음처럼 낮지만 처음과 같지는 않았다.

무거운 돌덩이처럼 낮고 깊게 내려가 귀를, 마음을 잡아 끌었다.

그것은 어찌 들으면 흐느낌이었다.

슬프고 애잔하여 눈물이 절로 새어 나왔다.

훌쩍이는 소리가 대금의 애잔한 바람과 함께 어울렸다.

— 악공이라 하여 소리만 전하면 된다 하였소?

이것은 밖으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

대금을 쥔 진호에게만 들리는 속삭임이었다.

그와 하루를 지내고 일생을 함께 한 이름 없는 악공이었다.

— 바람에도 마음이 있고, 산새의 지저귐에도 마음이 있거늘. 어찌 악공의 연주에 마음이 없겠소. 전하는 건 소리나 안에 깃든 건 마음이라오.

악공으로 살아 가난과 벗 삼에, 항상 힘들어 하던 자신의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

마른 몸을 무릎에 뉘이고 대금으로 한 소절 건넨 그의 속마음이었다.

“괜찮았나요?”

진호가 이 애잔함을 모두 대금으로 풀어냈을 때.

출연자도 청중도.

심지어 PD마저도.

입을 떼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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