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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22화 (22/178)
  • Chapter9. 소속사(1)

    한 바탕의 귀신 놀음은 끝났다.

    날이 밝자 큰아버지는 홀린 듯 한 얼굴로 진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잘못했다고, 바로 잡겠다고.

    진호는 그를 용서할 마음이라고는 한 점 없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해서 받아들였다.

    재산 절반을 뚝 떼어 부모님 앞으로 집하나 해 준다는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로 그 말을 지킬 줄은 몰랐어요.”

    “원래 꼬장꼬장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쪽에 약하잖아.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서웠던 거지. 그러니까 만날 귀신, 귀신 하면서 진호에게 역정을 냈던 거고.”

    “무서워서 화를 낸다. 이해가 가네요.”

    은서 등은 하루가 지나고 곧바로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갔다. 진호는 어쩔까 싶었는데, 그는 생각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함께하지 않았다.

    “근데, 그거. 연기였을까요?”

    “그. 조상님?”

    “네. 진호 오빠 연기 생각하면 납득은 되는데, 또 달리 생각하면······”

    “귀신. 빙의 아닐까 싶어서?”

    아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그녀뿐만이 아니라 남은 둘의 생각도 같았다.

    과연 그것을 연기라 할 수 있을까.

    “······상관없잖아. 귀신이든 연기든.”

    “상관없는 건가?”

    “반평생을 그렇게 괴롭힘 당하고 얻은 게 그런 재능이라면. 연기든 귀신이든 상관없어요.”

    “그야 그렇지. 게다가 진호가 연기를 허투로 대하는 것도 아니고.”

    “응. 응. 진호 오빠 열심히 하죠.”

    아무러면 어떠냐.

    세 사람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은서 언니 마지막에 진호 오빠랑 무슨 얘기 했어요?”

    분위기를 전환하는 건 아영의 몫.

    화살표가 은서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게. 가기 전에 둘이서 뭐라고 한참 얘기 했잖아.”

    “그냥 뭐······대부분은 내 사과. 말도 안 하고 따라와서 미안하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

    정말로 후회하고 후회하는 일이었다.

    일이 잘 풀렸기 망정이지 이건 ‘평생 안 볼 일’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은서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계기였다.

    “그게 전부였냐? 좀 더 길었던 거 같은데.”

    “나머지는 비밀. 우리 두 사람 이야기라고.”

    “아, 뭐에요 언니. 들려줘요.”

    “사생활이 중요하다는 건 이번 일로 다들 배웠잖아. 물어보지 말라고.”

    길고 긴 사과가 끝나고 흘러나온 진호의 이야기.

    어쩌면 그와 만나고 나눴던 이야기 중 가장 진실 된 것이 아닐까 싶은.

    그런 이야기였다.

    “후련해요.”

    그때 얼굴이 참 밝다, 싶었다.

    #

    “아들, 좀 더 쉬고 가지.”

    진호는 며칠 시골 바람을 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확 변한 큰아버지와 두 형들의 태도를 몸으로 만끽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아, 아버지 아니죠?’ 라며 절절 매는 꼴이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돌아가 봐야죠. 이제 마지막 촬영분도 방영 할 때가 됐고.”

    “그래. 힘들고 그러면 언제든지 내려오고.”

    “네. 어머니 아버지도 이제 큰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큰소리 내면서 사세요. 감히 어디서 그러냐고.”

    “얘는. 네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실까.”

    어머니 아버지 얼굴로 한 층 밝아지셨다.

    재산 절반을 뚝 떼어 받아 편히 살 수 있다는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진호였다.

    평생을 그리 혼자서만 푹 죽어 살던 아이가 친구도, 직업도, 꿈도 생겼다.

    부모로서는 이보다 행복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아들. 그 젊은 색시 말이야.”

    “은서요?”

    “그래, 그래. 서울 가면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네가 잘 보듬어 줘야지.”

    “······어머니.”

    “아니, 엄마는 그 색시가 마음에 꼭 들어서 말이야. 우리 진호가 얼른 장가 들어서 안정을 찾았으면 해. 엄마 말 이해하지?”

    어디까지 가시는 걸까.

    진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을 회피했다.

    은서에 대한 건 그도 간단하게 답 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여튼 저 이만 가 볼게요.”

    “그래, 그래. 우리 아들 하는 일 다 잘 되고.”

    “몸조심하고. 건강이 최고다.”

    서둘러 인사를 마무리 하고 차에 몸을 실었다.

    나란히 서서 인사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자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려와 보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

    내려 올 때와 올라 갈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

    진호가 서울로 돌아오고 며칠 뒤.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분이 방영되었다.

    최종 시청률 10.5%.

    케이블, 그것도 8부작 드라마가 무려 10%를 초과한 시청률을 찍은 것이다.

    방송국, 제작사 등 난리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건 좀 과한데.”

    이 여파는 당연하게도 진호에게 전달되었다.

    드라마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였고 그에 따라 배우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조연인 진호의 주목도가 어마어마했다.

    전체 분량은 15%나 됐을까 말까 한 조연인데도 언급 수준은 주연 두 사람을 뛰어넘었다.

    장면 장면이 영상으로 편집되어 유행처럼 퍼졌다.

    “광고, 인터뷰, 화보, 예능······기획회사에서 온 것도 여러 개네.”

    주가 높은 배우를 주변에서 가만히 두겠는가.

    마지막 방송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각종 섭외 문의가 날아 들었다.

    개중에는 기획사에서 온 것들도 상당수였다.

    “와. 이건 혼자서 다 처리 못하겠는데.”

    진호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한 두 개면 어떻게 할 수 있겠지만 지금 확인한 것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게다가 이건 당분간 지속적으로 상승 할 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래서 소속사가 필요한가.”

    괜히 연예기획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연기자가 연기에만 집중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서포트 해 주는 집단.

    진호에게는 그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다.

    ‘주변에 이런 쪽에 능통한 사람이 있긴 한데······’

    연예계 바닥을 잘 알고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

    기획사나 예능 따위에 대해서 박식한 사람.

    주변에 그런 사람이라면 알맞은 후보가 한 명 있다.

    “아직은 얼굴 보기 좀 그런데······”

    전직 아이돌 출신 배우.

    은서였다.

    #

    머쓱하다.

    어색하다.

    괜한 긴장감이 흐른다.

    위 묘사에 맞는 상황을 표현하자면 지금이 딱 그렇다.

    “그······잘 지냈지?”

    “아, 응. 진호 오빠도?”

    “어. 어. 뭐, 며칠 밖에는 안 지났으니까.”

    스케줄이 비는 시간.

    사람이 적은 카페에서 약속을 잡고 만났다.

    시골에서 헤어지고 고작 며칠밖에 안 됐는데 서로 얼굴 보기가 꽤 어려웠다.

    “저기, 그. 진호 오빠.”

    “응?”

    “그때 따라갔던 거. 다시 생각해도 내가 많이 잘못했던 거 같아. 지금 다시 사과할게.”

    한참을 어색하게 ‘어, 음’만 반복하다 은서가 먼저 치고 들어갔다.

    “에이, 됐어. 그때 사과 다 했는데 뭘 또 하고 그래.”

    “그래도. 내가 너무 철없었던 거 같아서. 만약 내가 오빠였으면 내 얼굴 보기도 싫었을 거 같아.”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었던 거지. 그리고 네가 와 준 덕분에 일도 잘 풀렸고.”

    “그럼 나 싫어하거나 그런 거 아니지?”

    “안 그래. 안 싫어해. 되레······어. 커, 커피?”

    “으, 응. 커피 나왔네.”

    자연스럽게 대답을 이어가다 말이 툭 튀어나올 뻔했다. 진호가 황급히 이야기를 전환하고 커피를 받으러 일어났다.

    아직 벨도 울리지 않았는데.

    “그래서 진호 오빠. 오늘 나 부른 이유가 뭔데?”

    그렇게 어색함과의 전투가 끝나고.

    커피 한 잔에 서먹함이 씻겨나갔을 때, 은서가 먼저 본론으로 뛰어 들었다.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는 네가 나보다 선배잖아. 그래서 조언을 좀 구하고 싶어서.”

    “조언? 어떤 거?”

    “회사. 소속사가 필요 할 거 같아.”

    진호의 말이 떨어지자 은서의 눈이 번뜩였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이었다.

    #

    말보다는 행동이라.

    은서는 그길로 진호를 끌고 회사로 들이닥쳤다.

    접수처를 통해서 사장에게 연락을 넣고 회사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여기가 연습실. 평소에는 연습생 애들이 사용하지만 작품 들어가면 내가 전용으로 써. 난 역시 출신이 출신 이다보니 이런 곳에서 연습하는 게 훨씬 잘 돼.”

    “회사에서 특별대우를 해 주나 봐?”

    “뭐, 주력은 여전히 아이돌이지만 회사 전체 간판은 나라고 보는 게 맞을 걸? 전담 매니저 팀도 있다고.”

    “전담이라. 작품이 들어오면 그쪽에서 널 케어 해 주는 거야?”

    진호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일적인 분담.

    연기에 대한 거야 진호가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버겁다.

    “전담 매니저가 붙으면 스케줄 관리부터 일상적인 영역까지 전부 도와 줄 거야. 필요하면 작품 관계자들과의 대화도 도와 줄 수 있어.”

    “이쪽 매니저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아, 음. 이거 솔직하게 답해야겠지?”

    “살짝 양념치는 건 봐 줄게.”

    “에휴. 그래, 뭐.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배우 전문 회사가 아니잖아. 전문은 아이돌이고. 그렇다 보니 매니저들도 아이돌 쪽에 특화 되어 있어. 현장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매니저도 허다하고.”

    아이돌과 배우는 활동 영역이 다르다.

    하는 일도, 현장도, 스텝도.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화 부분에서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작품을 하나 들어갔다고 쳐. 그럼 작품에 대한 탐구를 위해 도움이 필요하게 될 텐데. 그걸 회사에서 처리 해 줄 수 있나?”

    “배역에 대한 거?”

    “응. 기본적인 건 당연히 내가 하겠지만······그래도 도움은 필요하잖아. 아니면 조언 구할 사람이라도.”

    “끄응. 기본적인 건 도와 줄 수 있지. 근데 동업자의 조언 같은 건 아무래도 조금 어려워. 회사 소속 연예인들이 대부분 아이돌이라서.”

    은서 자신을 포함해서.

    전통적인 배우가 회사 내에 전무하다.

    아니, 배우나 그런 쪽에 선을 대 줄 사람조차 거의 없다.

    “은서야, 사장님이 부르셔.”

    “아. 오빠, 일단 가서 얘기부터 해 보자.”

    그렇게 고민이 잉크처럼 툭 떨어져 번져 갈 무렵.

    데스크에서 일하던 직원이 은서를 찾아왔다.

    사장과의 면접 시간이었다.

    #

    “아무래도 우리는 좀.”

    한 시간 반가량의 이야기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은서의 회사 사장은 진호에게 전력으로 투자 할 마음이 없었다.

    이유인즉슨, 회사가 아이돌 전문이라는 점.

    그리고 스캔들 당사자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 진짜! 사장님 바보! 멍청이!”

    “다 들리겠다. 그만 해.”

    “그래도!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오빠 놓치면 손해라고 말을 해도 못 알아먹어!”

    “뭐, 사장님은 사장님 나름의 생각이 있는 거지.”

    사장은 진호와 계약했을 때의 이득보다는 스캔들로 빠지는 은서 쪽의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연달아 주연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은서가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답답한 판단이지만 사업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또 납득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아쉽게 됐네. 같은 회사라면 좋았을 걸.”

    “······으으. 진짜 너무해.”

    “어쩌겠어. 이 회사가 아니면 연락 온 쪽에서 한 번 찾아보는 수밖에.”

    “에이.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오빠를 서포트 할 수 있는 곳으로 골라 봐. 사장님 바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는지 두고 보라고.”

    “야야. 너네 회사잖아.”

    “흥.”

    은서는 삐뚤어진 얼굴로 미리 뽑아 둔 카탈로그를 쫙 펼쳐 두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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