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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17화 (17/178)
  • Chapter7. 한층 더 깊이(3)

    감독인 지남운을 비롯한 스탭들이 전부 모여 들었다.

    이번 촬영이 방영 적 마지막 작업.

    게다가 극 중 전환점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중요했다.

    먼저 촬영을 마친 은서나 다른 배우들 역시 자리를 잡고 촬영을 구경했다.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 사람 호흡.”

    은서가 팔짱 낀 채 보고 있는 선배 배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뭐, 그럭저럭. 전에 리딩때 보니까 확실히 감정선은 진호 씨 쪽이 좋긴 하더라. 근데 또 겉보기로는 일수 씨가 좋고.”

    “겉보기라. 확실히 드라마 전체를 생각하면 무시 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네요.”

    “나도 연기력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알잖아, 그런 거. 시청자들은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따라오지 않아.”

    은서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녀는 아이돌 출신이다.

    노래나 춤이 부족해도 얼굴 하나면 부족함을 상쇄 할 수 있었다.

    남일수의 잘생긴 얼굴은 그 자체로 고득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연기 자체가 매력이 되는 사람도 있잖아요.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도 있고.”

    “그야 그렇지. 근데 오늘 촬영분 정도로 그게 표출 될까? 일수의 대척점 정도로 이미지 구축해 두는 편이 현명 할 거야.”

    “적당히 라는 말이군요.”

    “은서도 알잖아. 제작사 쪽에서 일수 밀어주는 거. 너무 튀면 되레 깎여나가.”

    그렇게 수정 된 분량이 두 화 분은 될 것이다.

    은서는 조금 초조한 얼굴로 촬영 준비 중인 진호를 바라봤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들어가서 묻고 싶을 정도였다.

    #

    진호는.

    아니, 남호는 천천히 걸었다.

    손에는 미호에게서 받은 빵 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르바이트 첫 날, 주문 실수를 해서 한 바탕 고역을 겪고 난 뒤에 사과라면서 건넨 빵이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과로 빵을 건넨다?

    이렇게 이상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

    하지만 그렇기에 어딘가 눈에 밟히는 구석이 있었다.

    그저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하지만 그냥 스쳐가지 않을 거란 느낌도 받았다.

    “이봐요.”

    “음?”

    그런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

    어딘가 화가 난 듯 눈썹이 크게 올라가 있었다.

    “그쪽이 미호 사장 맞죠?”

    “그렇습니다만.”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애가 와서 펑펑 우는 겁니까? 사장이라고 알바 생 막대해도 되는 겁니까?”

    손에 쥔 빵 봉투를 곁눈질로 살폈다.

    죄송하다며, 실수였다며 고개 사과하던 미호의 모습이 스쳐갔다.

    돌아가서 운 걸까?

    눈앞의 남자 곁에서?

    “이봐요! 제대로 답을 하란 말입니다!”

    어깨에 닿는 손.

    작은 버러지가 자신의 목소리를 뽐내고 있다.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버러지들과 같이.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버러지는 눈에 밟힌다.

    미호가 신경 쓰였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미호 양이 실수를 했습니다. 사장인 전 당연히 질책을 하였고. 돌아가서 울었다니 안타깝기는 하지만 제 3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상황은 아니군요.”

    “뭐요? 누가 제 3자라는 겁니까!?”

    “그럼? 미호 양 애인이라도 되는 겁니까?”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친구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가까운 친구!”

    친구라는 말에 봉투를 쥔 손에서 살짝 힘이 빠졌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라면 이리 찾아와 행패부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은 행동임을 아셔야 할 것 같은데.”

    “행패라니! 미호가 울었단 말입니다! 당신 때문에!”

    “미호 양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화가 난 겁니다. 한 번 울고 나면 그 감정을 떨쳐 낼 수 있겠죠.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찾아와서 따져 묻는 건 그녀를 믿지 못한다는 의미 아닙니까?”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사회생활은 그런 겁니다. 실수하면 질책 받고, 그 책임은 스스로 감수하는. 미호 양은 그걸 체득해 가는 과정이죠. 당신은 모르고 있겠지만.”

    버러지야 너는 되지 않는다.

    저열하고 희미한 웃음소리가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이 의미 없는 짓임은 알고 있었지만 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이상한 궤변으로 빠져 나가려 하지 마시죠! 결국 당신 때문에 미호가 울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하아. 지겹군요, 이 대화. 그래서 뭘 어쩌자는 말입니까? 미호 양이 울었으니 제가 사과라도 하기를 바라는 겁니까?”

    “말 잘 했네! 당장 미호에게 연락해서 사과 하세요!”

    “하지 않겠다면?”

    “큭.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죠?”

    버러지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놈은 몸이라도 부풀리고 싶은 것처럼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경고합니다. 미호를 건드리지 마세요. 만약 이 경고를 무시하고 또 다시 미호를 울리면······당신. 내가 가만히 안 둘 겁니다.”

    그리고 경고라며 부풀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힘을 과시하고 싶은 수컷의 몸동작이었다.

    그래, 눈앞의 버러지는 수컷이었다.

    작고 귀여운 암컷을 차지하고 싶은 수컷.

    “재미있겠네요.”

    암컷을 차지하는 것은 강한 수컷의 몫이다.

    포식자는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다.

    막아서면 그 살가죽을 찢고 뼈를 발라서 원하는 암컷을 쟁취한다.

    손에 쥔 빵 봉투를 조금 들어 올렸다.

    이제야 눈앞의 버러지가 왜 이렇게 거슬렸는지를 알 것 같았다.

    “당신. 그리고 미호 양. 모두 다.”

    눈앞의 버러지는 적인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것이 아닌, 가질 만 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호한, 미호라는 암컷을 사이에 둔 수컷.

    “컷!! 오케이!!!”

    앞으로가 기대 될 뿐이다.

    #

    미묘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배우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렸다.

    “전에 리딩 때가 훨씬 잘 한 거 아니야? 그때보다 느낌이 약한데?”

    “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지금도 좋긴 한데, 그때는 진짜 잡아먹는 기분이었잖아.”

    대본 리딩때보다 훨씬 약해진 느낌 때문이었다.

    대사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진 이유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다.

    “쯧쯧쯧. 그렇게 연기 보는 눈이 없어서야.”

    “아. 송 선배님.”

    옹기종기 모인 무리 사이로 송화석이 끼어들었다.

    연기 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전보다 느낌이 약한 건 그 친구가 나름의 조절을 한 거지. 마지막 장면에서 확 끓어오르는 느낌만 봐도 확실해.”

    “에이.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분량도 적은데 무슨 조절을 한다고 그래요.”

    “에잉. 그러니까 너희가 아직 멀었다는 거다. 진호. 저 친구 아주 영악해. 연기로 표현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표현하면서 한계선은 지키고 있잖아.”

    대부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

    송화석이 혀를 끌끌 찼다.

    “제작사가 원하는 건 저기 잘생긴 친구 아니더냐. 근데 연기로 확 잡아먹으면 다음부터 어쩔까? 주연 바꿔? 주력 배우인데 그게 될 거 같냐?”

    “······그래서 적정선에서 타협을 했다?”

    “타협이라면 타협이지. 근데 그런 물렁한 이유 같지는 않아. 아마도 선을 타면서 캐릭터를 다지려는 거겠지.”

    “그건 또 뭔 소리에요?”

    “연기하다보면 안다. 점층적인 거지. 상대 배역에 맞춰서 자신의 느낌을 절제한 뒤 극의 흐름에 맞춰서 폭발시키는 거야. 이건 진짜로 극 전체를 다 꿰뚫어야 나올 수 있는 방식인데. 만약 저 젊은 것이 그 수준에 이르렀다면 놀라울 따름이지.”

    송화석은 촬영 내내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멋모르는 놈들이야 전보다 느낌이 약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드라마를 보는 건 이 모습을 처음으로 접하는 시청자들이다.

    그들의 눈에는 충분히 진호가 강하고 매력적이다.

    주연인 남일수와 자웅을 겨룰 만큼.

    “흐흐. 제작사 놈들은 그냥 좋다하고 내보내겠지.”

    지금 남일수 얼굴만 봐도 그렇다.

    놈은 자신이 진호와 비슷하게 연기했다면서 희희낙락이다.

    실제로 촬영 분 자체만으로 평가하면 그랬으니까.

    하지만 극이 전개되고 더 이상 분량가지고 장난 칠 수 없을 정도로 탄력을 받게 된다면.

    ‘그때 터뜨리겠지.’

    펑, 하고 분화 시키는 것이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왔을까.”

    송화석은 궁금한 듯 기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

    #

    첫 방송 시청률 1.4%.

    케이블인 걸 감안하면 나쁜 수치는 아니었다.

    게다가 인터넷 화제성 면에서는 합격.

    잠깐이지만 실검에서도 1위를 찍었었다.

    “주연 남일수의 연기 호평. 돌아온 아이돌 은서의 연기 대변신.”

    은서가 벤에 앉아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잘 했어. 사장님도 많이 좋아 하시더라. 너 이제 연기 좀 자리 잡혔다고.”

    “언제는 나 연기 가망 없다고 놀리더니.”

    “야야. 그건 다 너 잘 되라고 말 한 거지. 사장님이 너 지원 안 해 주신 적이 있디?”

    “예이, 예이.”

    건성으로 답하며 기사 하단을 눈으로 훑었다.

    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긍정 반 부정 반의 분위기였다.

    “헤에. 이건 좀 신기하네.”

    “응? 뭐가?”

    “댓글 말이야. 기사에서는 나와 남일수 그 인간이 제목으로 걸려 있잖아. 근데 댓글에서 거론되는 건 진호 씨가 훨씬 많아.”

    남일수와 은서의 팬으로 보이는 긍정 가득한 댓글을 제외하고 보면 더욱 그렇다.

    “뭔가 평범한 것 같은데 느낌이 좋다. 발성이 꽉 차서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자꾸 생각나는 얼굴이다. 음음. 확실히 진호 오빠가 그렇지.”

    “어쭈? 야, 넌 너 인기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

    “에이 왜 이러실까. 난 팬덤이 있잖아. 우리 애들이 알아서 챙겨 줄 거야. 이런 건 진호 오빠가 거론되는 편이 좋지.”

    아래로 쭉 읽어보니 긍정적인 댓글이 훨씬 많았다.

    그 중 가장 주류를 이룬 건 ‘인상적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진호의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역시 연기가 우선이라니까. 남일수 그 인간처럼 얼굴 하나 가지고는 안 돼.”

    “그 이야기 너한테도 해당되는 거 알지?”

    “헤헤. 그래서 난 열심히 연기 연습하잖아. 요즘은 술도 안마시고 연습만 한다니까?”

    “어, 그래 뭐. 요즘 많이 하긴 하더라. 늦게 철 들었나?”

    “아니. 그런 것보다는······뭔가 목표가 생겼다는 느낌? 손에 쥐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열심히 하게 되더라.”

    말 하며 붉어지는 볼이 백미러로 다 보였다.

    하지만 소윤은 굳이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연예계 바닥. 어차피 힘들고 거칠다.

    꿈이라도 하나 가지고 달려간다면 그냥 응원할 뿐이다.

    ‘사장님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백미러에서 시선을 뗐다.

    #

    진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건조하게 마른 표정에 눈꼬리는 살짝 내려가 있다.

    어딘가 무료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감정을 가다듬고 캐릭터에 이입하자 인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미묘하게 올라가는 눈썹과 말려드는 입 꼬리.

    어딘가 비열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거 재미있네.”

    “뭐가 재미있어요?”

    “응? 아, 아영이냐?”

    오랜만에 연극 동아리 사람들을 보러 나온 길.

    일찍 나온 김에 거울을 보며 표정 연기를 연습하고 있던 차였다.

    “이거. 얼굴 말이야. 사람은 아주 미묘한 차이로 다른 인상을 그려 낼 수 있다는 거. 신기하지 않냐?”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게 뭐가 신기하다고.”

    “그래? 난 신기한데. 봐봐. 똑같이 웃는 얼굴인데 눈썹만 살짝 달리해도 느낌이 다르잖아.”

    진호가 눈썹을 달리해가며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하나는 즐거워서 웃는 얼굴, 다른 하나는 슬픔을 참기 위해 억지로 웃는 얼굴이었다.

    “킥. 그게 뭐에요. 무슨 광대 같네.”

    “광대는 이런 느낌이지. 항상 웃음을 달고 있지만 속마음은 다른. 항상 가면을 쓰는 사람 말이야.”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기쁘면서 슬프기도 하고, 화나면서 즐겁기도 하다.

    이는 표정에서도 복잡하게 드러난다.

    얼굴은 웃음 짓지만 속은 슬퍼서 찢어지는.

    “······와. 오빠, 그 얼굴 하지 마요.”

    “응? 왜?”

    “보는데 그냥 소름이 쫙 끼치네. 사람이 이렇게 괴이 할 수가 있나?”

    “많이 이상했냐?”

    “그냥 이상한 정도가 아니에요. 얼굴은 웃고 있는데, 그 웃음이라는 것이 너무 기괴해서······”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저 웃음이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될까?

    가면 안의 사람을 엿보기 두려운 그런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느낀다면 제대로 한 모양이네. 역시 다음 씬에는 이걸 적극적으로 사용해 봐야겠어.”

    “다음 씬? 이번에 찍는 드라마 말이죠?”

    “응. 꽤 중요한 씬이 기다리고 있거든. 내 캐릭터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라서 신경 쓰고 있어.”

    “그래서 그 얼굴을?”

    “연기에 대해서 따로 공부하고 있거든. 난 대사에 따른 감정선만 염두에 뒀는데 표정이나 손짓 등도 굉장히 중요하더라. 이걸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그럼 이전에는 따로 신경 쓴 게 아니었어요?”

    “그냥 느낌대로 한 거지.”

    뭐 이런 사람이 있지, 란 얼굴로 아영이 바라봤다.

    표정이나 손짓 등을 꼭 연기로 치장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것이 더욱 좋은 연기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상황의 순간순간 필요한 것이 다르다.

    과장이 요구 될 때도 있고, 자연스러움이 요구 될 때도 있다.

    진호는 지금 부족했던 부분을 메워가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말이지.’

    거울 보며 표정을 이리저리 바꿔가는 진호를 보자면 질투조차 안 생긴다.

    “오늘 회식은 오빠가 쏴요.”

    “응? 뭐야, 갑자기?”

    “하여튼 쏴요.”

    이건 그냥 투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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