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3화 (13/178)
  • Chapter6. 전화위복(1)

    “너 밖에서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쩌렁쩌렁한 목소리.

    은서가 거북이마냥 고개를 움츠렸다.

    이곳은 그녀의 회사, DMC의 사장실이었다.

    “후우. 내가 너 스케줄 마음대로 조절하고 행사 대충 뛰는 거 가지고 뭐라고 했냐? 어? 어디 뭐 악덕 기업 사장처럼 돈을 안 주기라도 했어?”

    “아, 아뇨······”

    “근데 왜 엄한 곳에서 이딴 기사가 나오냐고!? 이제 좀 주가 오르는 판국에 스캔들이라니! 아주 그냥 막장으로 가기로 한 거야!?”

    “아니, 전 솔직히 좀 억울한데. 진짜로 사귀면서 스캔들 터진거면 차라리 덜 억울······”

    “그걸 말이라고 해!”

    쾅. 책상을 후려치는 사장에 은서가 움찔거렸다.

    옆에 나란히 선 소윤도 옆구리를 꼬집었다.

    “후우. 후우. 하여튼 넌 스캔들 가라앉을 때까지 집하고 연습실만 왔다 갔다 해. 빌어먹을 스캔들은 내가 어떻게든 잠재워 볼 테니까.”

    “지, 집하고 연습실만요? 하지만 저 이제 아이돌도 아니고 그렇게 하는 건 조금······”

    “아니면 뭐? 동아리 회식에라도 가게?”

    “헉!? 그걸 사장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요. 요. 아주 그냥 사장 알기를 우습게 알지? 내가 그걸 몰라서 그냥 둔 거 같냐? 회식의 회자도 꺼내지 마. 술자리 갔다가 또 사진 찍히면 그땐 뭐라고 변명 할 건데?”

    은서가 입술을 오물오물 씹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은 사장이지만 화날 때는 무서웠다.

    “네······”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게 전부였다.

    #

    은서는 분을 쉬이 삭이지 못했다.

    스캔들이 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왜 자기 잘못이란 말인가.

    사진도 그냥 촬영장에서 찍힌 건데.

    “······잠깐만. 그 사진 좀 다시 봐봐.”

    “그건 또 왜?”

    “하여튼. 음. 아! 역시 이거 마지막 씬 직전 장면이잖아. 나랑 진호 씨랑 대본 보면서 농담하는 거.”

    당시 진호는 별다른 촬영이 없었음에도 현장에 나와서 대본 리딩을 도와주곤 했다.

    사진에 찍힌 건 마지막 장면 연기를 두고 논의하던 모습이었다.

    “나 기억 나. 우리 이러고 있을 때 뒤에서 남 일수 그 인간이 어슬렁 거렸잖아. 그래서 내가 뭐하냐고 물어보니까 갑자기 당황하면서 도망치고. 언니도 있었지?”

    “아. 그렇게 얘기하니까 기억나네. 하긴 좀 이상하긴 했어. 처음에는 마지막 씬 합 때문에 너한테 뭐라도 말하는 줄 알았는데, 뒤에서 계속 꼼지락 거리기만 하더라고.”

    “이 씨! 역시 이 새끼였네! 이 사진 그 인간이 찍어서 제보 한 거야!”

    은서가 발을 쿵쿵 굴렀다.

    애초에 현장 사진을 찍어서 제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 없다.

    게다가 익명으로 달린 코멘트.

    “아오. 이거 싹 다 그 인간 작품이네. 지금 진호 씨한테 물먹었다고 나한테 푸는 거야?”

    “······아. 맞네. 화풀이.”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와. 진짜 인간이 덜 됐다. 어떻게 같이 작품 찍은 사람한테 이러지?”

    “아니, 아니. 그거 말고. 화풀이 말이야. 너야 회사에서 어느 정도 보호를 해 주지만 진호 씨는 어떻게 하냐?”

    “진호 씨?”

    스캔들은 어디까지나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다.

    하지만 어디 팬들이 그런 거 확인하고 화를 내던가.

    회사에서 공식 입장 내보이고 어느 정도 보호가 되는 은서와 달리 진호는 무방비다.

    “언니! 빨리 진호 씨한테 전화 좀 해 봐!”

    은서는 다급했다.

    #

    진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악플이라는 걸 받아봤다.

    그것도 수백 개가 넘는 악플을.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아 낸 거지?”

    기사에는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지만 댓글에는 진호의 정확한 실명을 거론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용은 또 얼마나 소상한지.

    제3자가 보면 사실이라고 오해 할 법 한 내용이었다.

    [뜨려고 환장한 무명 배우가 은서에게 치근거린다]

    [주연 배우와의 관계를 훼방 놓아서 촬영장 분위기가 더러웠다]

    [촬영 내내 추파를 던지는 더러운 놈이었다]

    그나마 얌전한 게 이 정도.

    욕설로 문장을 완성한 것들은 그 몇 배가 넘었다.

    보고 있자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연예인들이 왜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지 알 것 같네.”

    처음에는 뭔 악플인가 싶어서 대수롭지 않던 진호였지만 하나, 둘 읽기 시작하자 느낌이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기분?

    전생 체험 때문에 정신병원을 막 들어갔을 때의 기분하고 비슷했다.

    ‘내가 이정도인데 은서 씨는 괜찮으려나?’

    문득 은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연예인이 악플받고 사는 것이 숙명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엔 억울하지 않은가.

    악의적인 사진하나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상처입지는 않은 걸까.

    걱정이 앞섰다.

    우웅······!

    “매니저님?”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핸드폰.

    진호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호 씨! 괜찮아요!?”

    통화가 걸린 폰은 소윤의 것이었지만 목소리는 은서의 것이었다.

    “은서 씨?”

    “네! 네! 저예요. 기사 보신 거죠?”

    “방금 봤어요. 좀 터무니없는 기사가 나왔는데. 은서 씨는 괜찮은 거죠?”

    “아니, 뭐. 저야 이런 일에 이골이 나 있어서 멀쩡하죠.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그보다 진호 씨가 걱정인데. 괜히 악플 같은 거 보고 그러지 마요.”

    이미 봤는데.

    진호는 입술을 달싹이다 그만 두었다.

    괜히 말을 꺼내서 걱정시키고 싶진 않았다.

    “저보다야 은서 씨가 걱정이죠. 드라마 시청율에 영향이 가거나 그럴까요?”

    “에이. 어차피 웹 형식이라 볼 사람만 봐요. 그리고 뭐 뒷모습만 찍힌 거라 그냥 하루 이틀 이러다가 말 거예요. 소속사에서도 해명 기사를 낼 거고.”

    “아, 소속사에서 움직이겠군요. 이거 괜히 저 때문에 피해보는 건 아닐까 싶네요.”

    “에잇! 그런 소리는 하지 마요. 진호 씨가 뭐 잘못 한 게 있나? 내가 알아봤는데 이거 그 남 일수 그 인간이 작당 친 게 분명해요. 그 인간 아주 썩었어요. 그러니까 진호 씨는 신경 끄고 단역이든 뭐든 다음 활동에만 집중하도록 하세요.”

    와르르 쏟아내는 말에 진호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왠지 부끄러워져 뒷머리를 긁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관심과 걱정을 받는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진호 씨? 왜 말이 없어요? 혹시 울어요?”

    “푸하. 울긴 누가 울어요. 그냥 고마워서 그렇죠. 은서 씨 입장에서는 그냥 단역배우였을 뿐인데. 이렇게 신경을 써 주고.”

    “뭐래. 진호 씨 아는 사람에게 다 물어봐요. 누가 진호 씨를 그냥 단역 배우로 보나. 나나 아영이나 서훈 선배나 전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런 걸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기분?

    몸이 붕 뜨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여튼 악플 같은 건 읽지 말고 누가 와서 물어보면 그냥 아니라고만 답해요.”

    “명심할게요. 은서 씨도 의미 없는 댓글에 상처 받지 말고요.”

    “흐흐. 이 정도는 거뜬하죠. 아,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한테 좀 전해주세요. 저 폰 압수당해서 당분간 연락하기 어렵다고.”

    “다들 아쉬워하겠네요.”

    안 그래도 회식이 무산되어서 다들 우울하다.

    진호가 한 숨 정도 쉬었다가 마지막 말을 건넸다.

    “저도 많이 아쉬울 것 같고.”

    정말로 아쉬울 것 같았다.

    #

    은서의 예상대로 며칠이 지나자 스캔들은 잠잠해졌다. 애초에 은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돌이나 배우도 아니었고 가십은 그저 가십일 뿐이었다.

    연락을 하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탈이 없다는 것에 안도 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저도 그 얘기 둘러 대냐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렇게 많이 물어보든?”

    “그럼요. 현장 감독님이나 배우 형, 누나들이 아주 꼬치꼬치 캐 물었어요.”

    스캔들은 스캔들 연기는 연기였다.

    진호는 또다시 단역 자리를 따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하윤 역시 같은 배역을 따 내어 함께 왔다는 것.

    “소문에는 남 일수가 몰래 사진을 찍어서 복수했다고 하던데. 진짜에요?”

    “그것까지는 모르지. 은서 씨도 그 사람을 의심하긴 하더라.”

    “와. 사람이 그렇게까지 추해지나.”

    “그러게 말이다. 헛바람 잔뜩 들어서 연기 할 때부터 사람이 좀 그래 보이긴 했지만.”

    두 사람은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촬영 준비를 했다.

    공사 현장에서 벽돌을 지고 움직이는 인부 1, 2의 역할이었다.

    “응?”

    그렇게 촬영 소품을 갖춰 입고 준비를 마칠 무렵.

    진호는 촬영장 한 편이 소란스러워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 방문을 한 것이다.

    “은서 씨?”

    그리고 그 유명한 사람은 완전히 의외의 인물이었다.

    스캔들 이후로 외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은서였다.

    그녀는 먼 거리에서 진호를 발견하더니 성큼성큼 걸어서 다가왔다.

    모세의 기적마냥 사람들이 쫙 갈라졌다.

    “어후. 진호 씨. 전화는 왜 안 받아요?”

    “아······촬영 때문에 꺼뒀죠.”

    “아, 진짜. 이러니까 빨리 계약해서 매니저부터 붙였어야 하는 건데.”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때 그 기사 때문에 사고라도 생긴 거예요?”

    진호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놉. 놉. 진호 씨. 듣고 나서 놀라지나 마세요.”

    하지만 은서의 태도는 걱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되레 밝은. 어딘가 신나 보이는 태도였다.

    “진호 씨랑 저. SNT 8부작 드라마에 캐스팅 됐어요.”

    “······네?”

    “히히. 놀랐죠? 그때 그 스캔들 사진 말이에요. 그걸 감독님이 봤나 봐요. 자기가 구상하던 어떤 장면이랑 딱 맞았다나. 하여튼 그래서 우리 연기를 찾아보고서 바로 연락했다는 거 아닙니까.”

    스캔들이 캐스팅으로.

    진호는 이 간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때요? 이번에 나랑 정식으로 연기 한 번 해보지 않을래요?”

    “······이거 뭐 몰래카메라나 그런 거 아니죠?”

    “아뇨. 진호 씨 인생 드라마 첫 막 인데요?”

    “하. 하하. 그럼 거절하면 안 되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기회임은 안다.

    진호가 은서의 내민 손을 움켜잡았다.

    두 사람 모두 스캔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

    진호는 소속사가 없기 때문에 계약을 직접 진행했다.

    제작사 쪽 몇 사람과 짧은 면담을 진행 한 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름 사회생활을 해 본 진호이기 때문에 계약 조건이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아 볼 수 있었다.

    “서브 남주라는 거죠?”

    계약을 한 후에는 메인 작가와 면담을 가졌다.

    이번 캐스팅에서 감독과 함께 힘을 실어 준 것이 메인 작가 윤숙주였다.

    단편 및 미니 시리즈에서는 제법 경륜이 있는 작가였다.

    “네. 메인 주인공과 대척하면서 여주인공을 노리는 인물이에요. 전형적인 나쁜 남자 타입이라고 할 수 있죠.”

    “설정상 소시오패스 성격이 나오는 거 같던데.”

    “어릴 적 사고로 성격장애를 가진 인물이죠. 유독 여주인공에게만 끌리는 자신에게 흥미와 혼란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복합적인 캐릭터네요. 남자 주인공에 대한 감정은 어떤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반감이죠. 하지만 뒤로 갈수록 여주에게 진심인 남주를 인정해요. 일종의 가교 역할인 거죠.”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수 있는 삼각관계.

    그나마 소시오패스라는 서브 남주의 특성이 극에 활기를 더한다고 볼 수 있다.

    “상당히 비중이 높은 캐릭터군요.”

    “후후. 그렇죠. 극의 전환점에서는 반드시 진호 씨의 캐릭터가 활약을 해줘야 하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주연들 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중요한 배역에 절 캐스팅 한 건가요?”

    “그야 진호 씨에게서 가능성이 보였으니까요.”

    윤숙주가 진호를 처음 본 건 대학 연극무대 영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보다 전, 진호가 아영을 처음 만났을 때 보여 주었던 조운의 연기부터 이미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짧은 8부작 드라마에서 모든 이야기를 극적으로 다 풀어내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핵심적인 장면 몇 가지.

    ‘또래에서 볼 수 없는 연기력.’

    신인이라는 부담 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정도 힘이라면 부실한 스토리라인을 무시 할 만큼 강력한 장면을 만들어 줄 것이다.

    제작사 측에서는 반대 한 캐스팅을 감독과 함께 밀어붙인 이유가 이것에 있다.

    “그리고······”

    “그리고?”

    “아. 아니에요.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입안을 맴돌았지만 신숙주는 그냥 삼키고 말았다.

    삼킨 말은 남과 공유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하죠. 작가님.”

    “네. 좋은 작품 하나 만들어 봐요.”

    그 요인이 진호를 캐스팅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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