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 늙은 여우(2)
영화감독 박종찬은 꽤 알려진 아이돌 덕후였다.
공연장을 직접 찾아가거나 각종 굿즈 등을 사 모으는 걸로 유명했다.
이번 대학 행사에도 비니즈가 나오지 않았다면 친한 후배의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았을 거다.
“흐하하. 요즘 들어서 비니즈 하얀이가 그렇게 마음에 든다니까. 너도 한 번 덕질 해 봐라.”
“아, 선배. 어디 가서 그렇게 말 좀 하지 마요.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야! 나이가 뭐가 문제냐! 우리같이 예술 하는 사람은 마음이 젊어야 하는 법이라고!”
젊은 마음과 예술의 상관과계를 토로하며 대기실로 향했다.
이미 사전에 약속 해 놓은 일정이었다.
“어라? 분위기가 왜 이래?”
헌데, 시간 맞춰 찾아간 대기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10대 아이돌 그룹 같은 상큼한 느낌 대신 어딘가 칙칙하고 무거운 느낌만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얼굴이 굳은 매니저가 그러했다.
“매니저 님. 인사하기로 한 박종찬 감독님입니다.”
“······아.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하고 있었네요.애들아 이쪽으로 와 봐. 여기 박종찬 감독님이야.”
“아, 안녕하세요! 비니즈······”
박종찬을 안내해 온 서훈의 말이 있고서야 겨우 인사가 오고 갔다.
그마저도 마지못해서 하는 분위기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 애들 봐 주러 이곳까지 와 주시다니. 이거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하하하. 비니즈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가 어디 일이나 될까요.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거 유명 감독님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시니 더 긴장이 되고 그러네요. 너희도 그렇지?”
네. 열심히 할게요 등.
굳어 있던 분위기가 그제야 풀렸다.
박종찬은 발랄한 비니즈 맴버들과 인증샷을 찍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유명한 아이돌 덕후인 만큼 대화도 끊이지 않았다.
“아. 이제 시작하겠네요. 감독님은 공연을 보고 바로 돌아가시나요?”
“아, 그게. 이 친구 부탁이 있어서 몇 명 좀 돌아봐야 할 거 같습니다. 생각 같아서야 비니즈 분들과 함께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죠.”
“하하. 많이 아쉽네요. 근데 돌아봐야 할 사람이라면? 따로 뭐 캐스팅 목록에 둔 사람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저냥 둘러보는 거죠.”
두루뭉술한 대응에 매니저는 살짝 욕심이 났다.
감독 박종찬이면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인물과 개인적인 친분을 만들어 둔다면 나쁠 건 없다.
“그럼 일 보고 난 뒤에 연락 주시면 간단하게 차라도 한 잔 하도록 하죠. 회사에서도 그 정도는 허락 할 겁니다.”
“오! 그래도 되는······”
“잠깐만요. 제 생각에 그럴 시간을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반색하는 박종찬을 제지 한 건 서훈이었다.
“어허. 서훈아.”
“들어봐요, 선배. 장담하는데 무대 끝나고 나면 그 뒤의 일은 생각도 안 날 겁니다.”
“무슨 말 도 안되는 소리를 자꾸 하냐.”
“내기할래요? 끝나고 비니즈 분들을 보러 갈지, 아니면 내 말대로 그쪽에 올인할지.”
“허, 이놈이? 좋아 내기 한 번 하자. 내가 이기면 고급 일식집에서 한 턱 쏘는 거다. 어때?”
“반대면 선배가 쏘는 거죠?”
“그래, 인마.”
박종찬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무대가 어떻든 아이돌 덕후인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사적으로 아이돌과 차 한 잔 할 시간이 어디 많겠는가.
“끝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음은 벌써 갈대밭에 가 있었다.
#
서훈과 박종찬이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과별 장기자랑이나 동아리 행사.
준비해 왔던 것들을 차례대로 풀어냈다.
반응은 어중간했다.
모교 행사인 만큼 환호해 주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행사 말미의 초대 가수를 기대하고 있었다.
꽉 채운 자리는 연예인을 보기 위한 선점 의도였다.
“이제 다음 순서인가?”
“네. 연극 무대를 마지막으로 정식 행사는 끝이네요. 그 뒤로 초대 가수 3곡. 단체 인사. 이렇게 마무리가 돼요.”
“흐음. 자신은 있냐? 분위기가 이래서야 어지간한 배우가 와도 흐름을 잡기가 어려울 텐데.”
박종찬이 주변 분위기를 지적했다.
초대 가수까지 무대 하나만이 남았다는 기대감에 다들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빨리 끝나라.’ 라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 정도야 다 생각해 뒀죠. 이런 것도 어쩌지 못할 사람이었다면 선배를 부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호. 그 정도냐? 어지간히 마음에든 모양이네?”
“제가 졸업하고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그 놈이 그놈이라고 혹평 한 적 있죠?”
“어. 연예계 바닥 너무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고 투덜거렸잖아.”
서훈에게도 연예인이라면 가지고 있을 ‘무언가’를 기대하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일을 하며 지켜 본 연예인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뿐이었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지닌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아마 제가 본 사람 중에서는 가장 빼어난 재능일 겁니다. 단순하게 끼가 있거나 그런 종류가 아닌······무언가 시대를 가로지를 법 한 그런 재능이 있어요.”
“이야. 표현이 거창한데?”
“직접 보면 선배도 알 겁니다.”
“너. 진지하구나?”
“네. 어중간한 거였으면 이렇게까지 모셔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사람은 진짜에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눈이 좋은 선배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은 거예요.”
서훈의 진지한 말에 박종찬도 표정을 달리했다.
조금 서툰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가 아는 서훈은 누구보다 일에 진지한 인간이었다.
그가 이 정도로 말 하는 사람이라면 쭉정이는 아닐 것이다.
“시작하네요.”
기대감을 품에 안고 무대 위로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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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
진호에게 있어서 이런 관심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본디 그는 ‘전생 체험’이라는 괴이한 경험으로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아 온 바.
쏟아지는 시선은 그를 두렵게 만들 뿐이었다.
‘그랬지. 그랬는데······’
지금은 다르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는다면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답이라면 답일까?
열기에 묻어나는 기대감과 시선에 답하고 싶은 욕구.
전이라면 느낄 리 없는 어떤 갈증이 있었다.
“사자여. 그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연기라는 건 호흡.
무대 위의 캐릭터에 스스로를 이입하여 같은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이다.
하나를 생각하고 하나로 맞춰가는 행위.
그 안에서 주고받는 열기와 마음은 실제의 그것보다 뜨거우면 뜨거웠지 약하진 않다.
“여우.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렇기에 무대 위에서 타인이 되는 순간에는 마음껏 전력을 다 할 수 있다.
한계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본래의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만큼은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간악한 여우가, 분노하는 여우가, 힘을 잃고 허무해지는 여우가.
“여우. 너에게는 더 이상 힘이 없어. 이미 다들 떠나 버렸잖아. 사자는 우리에게 맡기라고.”
“내가. 나, 여우가 다 잃었다는 거냐?”
“그래. 네가 쥔 건 그저 모래알이었을 뿐이야. 힘을 잃고 병든 네게 기댈 동물은 더 이상 없다고.”
“하. 하하. 한 끼 식사에 불과했던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올려다보는 시선 끝에 복잡한 얼굴의 토끼가 있다.
두려움, 안타까움, 후련함.
감정의 선들이 뒤엉켜서 하나로 짚어내기 어려웠다.
우물쭈물 거리는 것은 토끼일까 아니면 은서일까.
진호. 아니, 여우는 이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너졌구나.”
적벽에서 모든 것을 잃었던 조조처럼.
그가 쌓아 온 세월이 한 번에 무너지는 감정을 담아.
말 한 마디에 인생을 담았다.
자욱하게 깔리는 안개처럼 그 감정이 토끼를 휘어 감고 관객을 끌어당겼다.
눈으로 보는 건 인간, 진호였으나 느끼는 건 허무함에 휘감긴 여우.
인생을 잃어버린 조조였다.
“그만. 그만 쉬어.”
은서. 토끼가 힘겹게 말을 뱉었다.
그녀는 감정에 버거워 하면서도 끝까지 토끼를 유지했다.
비록 여우가 토해낸 허무함에는 비할 바 아니었지만 그 감정 선의 연결은 옅지 않았다.
“그래. 쉬자. 내 역할은 여기까지 인 것 같으니.”
그렇기에 진호는 이를 받아서 연결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의 종지부를 짧은 대사와 함께 마무리 지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여우는 체념한 노인이었고 삶을 내려놓은 조조였다.
그렇기에 관중은 이 끝맺음에 조용히 작별을 보내 주었다.
박수가 터져 나온 건 1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름이 뭐라고?”
관중 속 한 사람.
박 종찬은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며 물었다.
그는 희미하게 웃는 서훈의 얼굴도 쏟아지는 박수 소리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름이 뭐야!?”
눈앞에서 발광하는 보석에 마음을 빼앗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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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빗 : 너네, 그거 영상 올라 온 거 봤냐?]
[햄릿은 햄 : 무슨 영상? 재미있는 거라도 있었어?]
[레빗 : 대학 행사 영상 말이야. 연극 무대.]
[구글구글 : 연극? 비니즈가 아니라?]
[레빗 : 어, 연극. 비니즈 축하 공연도 보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연극 무대더라.]
어딘가의 커뮤니티 게시판.
수도 없이 쏟아지는 의견과 잡설 사이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이었다.
[빛과소금 : 나도 그 연극 봤어. 장난 아니던데? 소극장도 아니고 야외무대에서 그 정도로 장악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처음 봤어]
[코코자둠 : 그거 늙은 사자인가 뭔가 하는 연극 말이지? 은서 나오는]
[핸도 : 어. 근데 솔직히 은서보다 그 남자가 압도적이더라. 혼자서 무대를 씹어 먹던데?]
[레빗 : 그래, 그 남자. 주연도 아니고 조연인데 혼자서 극 중간에 박수를 받았잖아. 솔직히 여우가 죽은 이후부터 극이 좀 약해지긴 했지]
연극과 배우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행사 마지막을 장식한 비니즈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그만큼 연극 무대의 임펙트가 강했던 것이다.
[서리한 : 그리고 비니즈 말이야. 개인적으로 팬이었는데 이번에 좀 실망했어.]
[듀란 : 비니즈가 왜? 연극이 워낙 쩔어서 그렇지 걔들도 나름 괜찮던데.]
[서리한 :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니즈 매니저 말이야. 내가 공연 끝나고 사인 받을 수 있나 해서 아래 통로로 내려갔다가 딱 맞닥뜨렸거든. 근데 날 보자마자 밀치면서 욕부터 하는 거 있지]
[듀란 : 욕을 했다고? 진심?]
[서리한 : 어. 내가 없는 일을 얘기할까. 그리고 그 매니저 놈 말이야. 원래 팬 카페에서도 악명이 높았어. 싸가지 없는 걸로]
요즘 펜 카페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매니저의 행실도 따진다. 몰려온 팬을 대하는 매니저의 행실, 따위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
한 번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한 ‘행실 나쁜 매니저’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리한 : 하여튼 비니즈는 더 잘되려면 매니저부터 바꿔야해. 그런 양아치 끼고 잘 되는 애들 못 봤어.]
[듀란 : 동감. 백번 동감한다.]
[레빗 : 나도.]
[코코자둠 : 어 잠깐만. 갑자기 이야기가 그쪽으로 새버렸네. 그래서 그 무대의 남자 말이야. 대체 누군데? 연기 지망생이야?]
[레빗 :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서리한 : 너도 몰라?]
[듀란 :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게시판을 더욱 뜨겁게 달군 건 그 인물의 미스테리함. 재학생도 아니고 졸업생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소속된 배우도 아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한 동안 커뮤니티를 달군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