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매소드(1)
은수는 녹화 된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화면 속 진호의 모습은 상당히 기괴했다.
한 사람에서 다른 한 사람으로의 인격 전환.
“외부의 정보를 바탕으로 인격을 구성했다기에는 너무 갑작스러워. 그렇다고 딱 맞는 인격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단순한 흉내라 보기도 어렵다.
화면 속 진호의 모습은 확실히 살인마의 그것이었다.
따라한다고 나올 수 있는 눈빛이나 말투가 아니었다.
자신이 정말로 ‘잭더리퍼’라고 믿는.
“아니면 정말로 잭더리퍼가 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은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전생 체험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뇌에서 벌어지는 자기 암시 반응의 일부일 뿐이다.
“조조도. 조운도 같은 경우겠지.”
은수가 다른 화면을 띄웠다.
단상 위 여학생과 대치하고 있는 진호의 모습이었다.
그가 말 한 전생 ‘조운’이 몸에 들어왔던 순간.
있지도 않은 창을 움켜쥐고 울분을 토해내던 장면이다.
“문제라면 이런 인격 변화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건가. 각 인격간의 기억 단절은 보이지 않으나, 이대로 개체의 해리가 심해지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현상을 막고자 한다면 아예 이런 몰입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은수는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언가에 몰입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럴 때는 벽을 세우기보다는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몰입한 캐릭터를 컨트롤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거겠지.”
툭툭.
잠시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은수가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개별 처방의 시간이었다.
#
아영은 어이없는 얼굴로 눈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설마하고 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정말로 영상 보고 찾아온 거예요?”
“네, 뭐. 전에 일 사과도 할 겸 해서요.”
진호였다.
인터넷에 뜬 영상을 보고 학교까지 찾아왔다.
동하 대학교 연극 동아리라고 하면 꽤나 알아주는 곳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대번에 길을 알려 주었다.
“진짜로 올 줄은 몰랐는데. 일단 좀 앉아요. 동방이 좀 어수선하죠?”
“이 정도야 깨끗하죠.”
과 잠바에 먹다 남은 과자 따위들.
한 쪽으로 쭉 밀어서 치운 뒤 엉덩이를 걸쳤다.
동아리 방은 크지는 않았지만 꽤나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벽에 붙은 대형 포스터들이 도드라졌다.
“저 사람 옛날 서부영화 주인공 아닌가요?”
“아? 클린트 이스트우드? 유명하죠. 올드한 영화부터 최근 영화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에요.”
“아. 요즘에도 영화를 찍었어요?”
“······몰랐어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한 채 아영이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건넨 건 김빠진 콜라였다.
“영화나 그런 쪽으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요.”
“진짜요? 연기나 그쪽 전공한 사람 아니에요?”
“전혀요. 일 때문에 정보수집 차원으로 접한 적은 있지만 딱히 관심분야는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를 체험하는 건 전생으로 족했다.
어릴 적 경험 이후로는 영화는커녕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진호다.
“흐응. 그런 사람이 무대 위에서 그렇게 했어요?”
“그건 다시 사과 할게요.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사과는 한 번이면 족해요. 놀라서 연기를 받아주지 못한 것도 있고.”
“그······상황을 받아요?”
“즉흥극은 연기 수업의 기본이죠. 상황은 조금 엇나갔지만 그때의 박력을 고려 해 본다면 잘만 받았으면 꽤 괜찮은 장면이 나왔을 거예요.”
그렇게 엉망으로 휘둘리는 상황에 대처 할 수 있는 건가.
진호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기를 배운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할 수 있나요?”
“······신기하네요. 전 그쪽 분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저요?”
“네. 그 연기. 어떻게 한 거죠?”
진호가 입술을 달싹였다.
전생체험을 했습니다, 라고는 말 할 수 없었다.
“흐응. 역시 뭔가 사정이 있나 보네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저도 잘 설명을 못하겠어요.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온 거라.”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런 연기를 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연기라 말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연기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그런 걸 해 냈다? 있지도 않는 창을 눈으로 보게 할 만큼의 연기를?
“진호 씨. 아니, 진호 오빠라고 부를게요. 저보다 훨씬 연상인거 같은데.”
“아, 네. 편하게 하세요.”
“솔직하게. 연기 배워 본 적 없다는 거 거짓말이죠?”
“아뇨. 진짜에요. 태어나서 한 번도 연기 같은 건 배워 본 적이 없어요.”
“잘 생긴 우리 이스트우드 배우님 걸고?”
“더한 걸 걸어도 배운 적 없는 건 사실이에요.”
아무리 봐도 거짓말 하는 기색은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 순간에 즉흥적인 연기력을 뿜어냈다는 말인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안되겠다. 한 번 다시 해 봐요.”
“해요? 뭐를?”
“연기요. 그때 하던 거. 이번에는 좀 더 길게 뽑아서 가보죠.”
확인을 하고 싶다.
정말로 눈앞의 인물이 그런 실력을 가졌는지.
아니면 몇 살이나 어린 자신에게 장난질을 치는 건지.
“살인자 같은 폭력적인 건 안 돼요.”
“네?”
“비폭력주의라······”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이상한 사람인지.
아영이 팔을 걷어붙였다.
#
평소보다 이르게 일이 끝난 서훈은 모교로 걸음을 돌렸다. 졸업한지도 꽤 됐는데 아직은 방송국보다 학교가 더 익숙했다.
특히,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동아리 후배들은 그의 몇 없는 낙 중 하나였다.
“애들 대리고 삼겹살이나 때려야겠네.”
밖에서야 ‘삼겹살?’ 이라고 물음표 때리지만 배고픈 대학생들이야 만세 삼창이다.
삐약거릴 병아리들 생각하며 동아리 방 문을 잡았다.
“포기해. 이젠 늦었다. 너 혼자서 해결 할 일이 아니야!”
“응?”
동아리 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게는 익숙한 아영의 것이었다.
혼자서 연기 연습이라도 하는 걸까?
창틈에 얼굴을 바짝 대며 안을 살폈다.
‘어? 저 사람······’
동아리 방 안에는 아영이 아닌 다른 사람도 있었다.
“내게 있어서 포기라는 단어는 없다. 소, 손이 부러지면 다리로. 다리가 부러지면 어······이로. 이가 부러지면 잇몸으로라도. 내가 여기 살아 있는 이상 손 댈 수 없다.”
두 사람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 합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영과 다르게 상대편은 연기가 약했다.
대사를 저는 거야 그렇다 쳐도 표현력 자체가 빈약했다.
“또 그러신다. 한 장면. 한 순간에 집중하라고요.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 상상하고.”
“은인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 동안 신세를 진 사람이에요. 가족을 구해주고 쓰레기 같던 인생을 구해 줬어요. 진호 오빠 같으면 어떤 마음이겠어요?”
“고맙겠지?”
“그 고마움에 이입해 보라고요.”
그 사실은 아영도 아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말로 상대의 연기를 지적했다.
‘흐응. 역시 그 영상의 연기는 착각이었나?’
잘 봐 줘야 신입생.
그마저도 평생 연기와는 담 쌓은 실력이었다.
“고마움. 고마움이라 이거지.”
“응?”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상대역에 선 남자의 표정이 돌변했다.
눈빛이 강렬해지고 얼굴이 단단해졌다.
계속 보고 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 할 정도였다.
“······당장 그 손 떼!”
“Shit!”
그리고 이어지는 첫 발성.
서훈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뱉고 말았다.
연기를 보다보면 한 순간에 어떤 스위치 같은 것이 들어 갈 때가 있다.
연기 밖과 안의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
‘매소드 연기?’
완벽한 몰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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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오가며 보는 사람들이 연예인이고 개중에는 ‘진짜’라 불릴 만 한 사람도 제법 섞여 있다.
그런 이들과 비교하자면 진호는 길가의 돌멩이.
어떤 아우라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그 연기.
순간적인 몰입은 지금껏 봐 왔던 어떤 사람보다 강렬했다.
“연기 자체는 엉망이지만.”
“네?”
“몰입정도를 떠나서 순수하게 연기 자체는 엉망이었어요. 주연 캐릭터와 일정 부분 부합하기는 하지만 느낌이 상이해요.”
능력에 놀란 건 부차하고 사실은 집고 넘어가야 한다. 진호의 몰입은 분명 대단하지만 상황에 맞는 연기였냐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남는다.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상황 전체를 보자면 붕 뜬 캐릭터였을 뿐이다.
“아. 그런 게 한 눈에 보이는 겁니까?”
“저도 나름 연기 전공이니까요. 극에서 요구하는 캐릭터를 자가 해석하는 것과 엇나가는 것 정도의 차이는 구별 할 줄 알아요.”
“방법이 뭡니까? 그 캐릭터라는 것에 몰입하면서 자기가 조종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겠죠?”
“······극중 캐릭터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몰입 상태에서 조종하는 방법이요?”
질문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
몰입 방식이 잘못 되었다면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고 방향성을 수정하면 될 터.
“아. 음. 전 방식이 남들과는 달라서요. 어떤 특징 같은 걸 떠올리면 제게 익숙한 캐릭터부터 몰입이 시작돼요. 이번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운이었죠.”
“아하.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연기를 한 거군요.”
“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입 상태에 휘둘리곤 하죠. 만약 그 상태를 스스로 조절 할 수 있다면 연기 방향성에도 맞고······그러지 않을까요?”
진호는 애초에 연기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다.
그에게 중요 한 건 전생의 인물을 체험하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하면 이를 조종 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 대한 제어권이었다.
“매소드 연기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건 절대로 쉽지 않아요. 연기를 오래 한 분들도 캐릭터에 매몰되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어려운 겁니까?”
“애초에 극중 캐릭터에 빠지는 매소드 연기 자체가 쉬운 게 아니죠. 어설픈 흉내라면 대충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진호 씨 같은 몰입은······”
연기판을 다 뒤져도 한 손에 꼽히지 않을까?
서훈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들을 곰곰이 따져 봤다.
나름 연기력 좋다는 배우들?
아니. 평면상의 연기력 자체는 그럭저럭 나올 수 있지만 진호와 같은 혼연일체의 모습은 없다.
이건 배워서 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재능.
그것도 세계를 다 뒤져도 손에 꼽을 만 한 재능이다.
‘단점은 확실하지만······’
장점도 뚜렷하다.
잘만 다듬으면 보석이 되지 않을까?
서훈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진호 씨. 진호 씨는 몰입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거죠?”
“아, 네. 그때 보신 것처럼 종종 사고를 일으키곤 해서요. 일상생활을 하려면 요령이 필요 할 거 같은데.”
“요령. 요령 말이죠. 그럼 이렇게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네? 어떤 거요?”
“이번에 동아리 연합 주체로 늙은 사자라는 연극을 합니다. 실제 연극배우들도 나와서 도와주시고 각 학교 동아리에서도 사람을 차출해서 나가죠.”
“어, 선배. 설마?”
“거기에 객원 배우로 나가 봅시다.”
보석일지 아닐지는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얽혀서 만들어내는 연극 무대라면 그 빛을 감정하기 좋은 장소가 될 터.
만약 그곳에서도 자신의 색을 낼 수 있다면.
“그 뒤에 천천히 얘기를 해 보죠.”
보석을 발굴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서훈 자신이 될 것이다.